초록주의(녹색주의)

운문 화상이 대중에게 "[세상 사람은 흔히 약이 병을 고친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약이 병을 고치고 병은 약을 다스리는 법이다. 온세상이 다 약이다만 너희들 자신은 대체 무엇이냐?" 하고 말했다.

- 벽암록/안동림 역주/현암사 펴냄/2003.1.20/436쪽

기독교도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현실이다."

 

-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대니엘 웨그너, 커트 그레이 지음/최호영 옮김/청림출판(주)/2017.10.30

19세기 유명한 의사인 비샤는 이렇게 말했다. "생명이란 죽음에 저항하는 힘이다."

- 불교를 철학하다, 이진경 지음, 한겨레출판사(주), 2016.12.15, 355쪽

국제단위계 정의

자료 l 2018. 1. 4. 23:40

출처 : 과학동아 383호 2017년 11월호

 

자료 : 과학동아 383호 2017년 11월호

시간의 향기

- 한병철 지음/김태환 옮김/문학과 지성사 펴냄/2013.3.19

 

62p

자유를 주는 것은 해방이나 이탈이 아니라 편입과 소속이다. 그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롭다(frei), 평화(Friede), 친구(Freund)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 어원인 ‘fri’사랑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친구나 연인에게 속해 있는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 해서가 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가장 전형적인 관계적 어휘다. 받침대 없이는 자유도 없다.

 

72p

이상적인 웹 공간에서는 언제든지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최종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유동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가다, 나아가다, 행진하다가 아니라 서핑하다, 브라우징하다(브라우즈는 원래 소 등이 이리저리 다니며 풀을 뜯어먹는 것을 뜻한다)가 웹 공간에서의 걸음걸이에 대한 표현이다. 이러한 운동 형식은 어떤 방향에도 묶여 있지 않다. 그것은 길 또한 알지 못한다.

십계명을 전해준 직후, 모세는 "연장으로 돌을 다듬으면 너희가 제단을 더럽힌 것이므로"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성구는 우리가 창조에 대해 더 명심하고, 창조자보다는 우주 본래 재료들을 더 명심해야 한다는 뜻임이 분명하다. 이 제단은 본래 재료들의 영원한 목적을 우리가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웨스 잭슨. 『연장으로 깎지 않은 제단』

-낙원을 팝니다/칼 N. 맥대니얼, 존 M. 고디 지음/이섬민 옮김/여름언덕/2006.9.1/73쪽

"결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

- 한나 아렌트

 

권력이란 말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과적 관계로 이해되고 있다. 에고(Ego)가 권력에 근거하여, 타자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특정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미친다. 권력은 에고에게 타자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을 관철하는 능력을 준다. 따라서 에고의 권력은 타자의 자유를 제한하며, 타자는 자신에게 낯선 에고의 의지를 참고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이런 통상적 이해는 권력이 갖는 복합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권력의 행사는 저항을 분쇄하거나 복종을 강요하려는 시도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이 반드시 강제라는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 권력이란 무엇인가/한병철 지음/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 펴냄/2012.3.20/15쪽

한국진보적장애인운동사_조성남.hwp

2007년도에 전노련 사무실에서 도시빈민운동사 공개 세미나를 도시빈민운동 관련 주제로 연속해서 진행했습니다. 당시 조성남 전장연(준) 사무처장의 한국 장애인운동의 역사 강의와 질의응답을 정리한 글입니다. 강의안은 첨부 파일을 참조하세요.

한국 도시 빈민 운동사 공개 세미나

- 오늘의 빈곤 ․ 빈민 운동, 역사로부터 배운다.

한국 장애인운동의 역사


I. 여는 글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면서 전체 사회가 급격히 소비적으로 변한 것과 마찬가지로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는 10년은 장애인의 삶에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온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 후 풍부해진 상품을 바탕으로 장애인복지가 상대적 의미로 확충되었다.


근본적 해결과 거리는 멀지만 이렇게 복지의 확충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군사정부가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복지에 관한 유화책을 취한 것, 세계 기구가 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우리 사회가 세계의 이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로 진입한 것, 각 사회 부문이 자신의 요구를 당당히 주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보와 변화에 대한 민주주의적인 가능성이 열렸던 것 등이 그 요인으로 파악된다. 물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해내는 장애인들의 자발적인 조직 결성과 적극적인 움직임이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사회의 변화를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요인들의 유기적 결합이 현재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변화의 흐름을 이어받고 이를 새롭게 전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막연하게 알고 있는 이런 상황들을 점검하고 우리가 현재 어디에 와 있는가를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장애인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장애인 삶의 조건과 사회의 흐름 속에서의 장애인운동을 살펴보고 이를 통하여 이후 장애인운동의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II. 시기별 장애인운동사


1. 장애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응의 시작(1987년 이전)


가. 1960~70년대

장애인을 치료요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의료 및 재활 전문가 집단이 장애인계를 대표하였으며, 70년대 말까지 개인으로서의 ‘불구자’는 존재했지만 사회 현상으로서의 ‘장애’와 사회 집단으로서의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운동의 이념과 궤를 같이 하지 못한 상황이라 전체적 문제 제기나 근본에 대한 해결책을 꾀했기보다 일회성의 캠페인이나 궐기대회 등으로 개별 구제를 통한 당면 문제 해결 성격이 강했고, 주동력이 장애인 당사자라기보다는 복지 관련 업무 종사자나 부모인 것이 70년대 장애인운동의 특징이다.


나. 대중적 장애인운동의 맹아가 형성된 1980년대

국제적으로 장애인의 권리가 부각되었고,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자신의 정당성 확보의 차원에서 장애인 당사자는 철처히 배제한 시혜적 장애인 복지를 제기하였다.

- 1984년 10월 6일, 제8회 전국지체부자유학생체전 개회식에서 기습 시위 전개

1984년 9월 9일에 휠체어 이용하는 김순석(지체장애1급, 당시 34세)열사가 도로의 턱을 없애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살하는 사건을 계기로 제8회 전국지체부자유학생체전 개회식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제기한 단상 점거 농성은 장애 문제를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다양한 장애인 관련 단체 출현

장애인문제연구회 ‘울림터’, ‘한국DPI’,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이 만들어졌다.


2. 청년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태동(1987~1993년)

1987년 6월 항쟁 전후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얻은 사회 변혁 기운의 확대와 자신감 등이 동력이 되어 장애인운동의 변혁을 지향하는 조직이 태동되었다. 이념적으로는 사민주의에서 사회주의까지 다양한 이념을 바탕으로 대정부적이거나 반정부적인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또한 투쟁 방식도 공대위 구성에서 농성, 거리집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제 부문운동들과 어깨 나란히 하며, 일부에서부터 부문운동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의 붕괴와 김영삼 정부의 공안정국과 열사정국 투쟁의 패배로 민중운동의 침체기가 형성되었다.


가. 양대법안 투쟁

‘장애자올림픽 거부 투쟁’에서 시작된 장애 관련 법제화 운동이 포문을 열었다. 기만적인 ‘장애인복지법’의 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요구는 1987년 대선 공약으로도 등장한 장애인계의 지속적 요구였다. 1989~90년 법안을 만들 수 있게 되나 이후 중심 이슈를 상실하고 법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제대로 대체도 못한 채 각 조직별 재정비 과정을 거친다. 법제화 이후 이루어져야 할 지속적 감시기구로서의 역할과 압력기구로서의 역할로 이끌어 가지 못했고 현실에서 계속되는 생존권적 요구들과 연결고리 찾아내지 못했기에 다른 방향으로 운동을 전환하게 되었다.

-1988년 10월 28일 양대법안공대위가 결성됨

상층은 명망가 중심, 기층은 전지대련을 중심으로 하는 변혁적 청년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 야당 당사 순회 점거 농성

- 양대법안 국회 통과

양대법안 공대위와 노동위원회 의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절충 이후 12월 16일 장애인고용촉진법이라는 명칭으로 본회의를 통과, 심신장애자복지법도 장애인복지법으로 명칭이 바뀌어 12월 30일 국회를 통과하였다(양대법안 공대위의 상층과 정부 관료, 국회의원의 담합).


나. 장애인 시설과 관련한 투쟁과 대응

양대법안 투쟁 이후 청년 운동은 시설 비리 투쟁에 역량 집중 투여하나 조직적ㆍ내용적 성과 가져오지 못하며 정체성 확보 노력 계속하였다. 제 장애인 단체들은 시설 건립 투쟁 들어가나 양대법안 투쟁과 같은 힘내지 못하여 자기 안정화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복지관과 장애인학교 건립 반대는 이슈 부재로 결합하지 못한 장애인계를 다시  묶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 시설 민주화 투쟁의 전초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농성

1989년 직업훈련생들이 복지관의 비민주적 운영과 장애인 차별에 대해 문제 제기하며 복지관 사무실을 점거 외부 감사 실시와 민주적 운영 실험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 최초의 장애인 이용시설인 정립회관 비리와 두 차례의 점거 농성

시설 비리 문제로 1990년과 1993년 두 차례의 점거 농성해 이사장 퇴진과 관장 교체의 성과를 이루었다.

-천안인애학교공대위의 활동

천안인애학교 건립의 지역 주민 및 군청의 반대에 청와대와 국회에 압력 행사, 공청회와 대중 집회로 입지 승인을 받아내었다.


다. 장애인 교육권의 법적 보장을 위한 투쟁

기존의 특수교육진흥법은 장애인에 대한 의무교육뿐만 아니라, 특수교육의 기본원칙인 통합교육, 개별화 교육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천안인애학교공대위의 성과를 이어받아 구성된 장애인복지공대위는 장애인 교육권 확보를 위한 법적 투쟁을 전개해 특수교육진흥법을 전면 개정하였다. 그러나 전문가 위주의 운동으로 대중을 투쟁 주체로 형성하지 못하여 실질적으로 집행을 강제하지는 못했다.


라. 울림터와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에 대하여

- 울림터

장애인 인권 향상과 복지 증진을 위해 정립회관 내 고등부 모임인 ‘밀알’을 중심으로 대학생과 활동가 10여 명이 주축이 되어 1986년 9월 만들어졌다. 장애 문제를 제도 내의 문제를 넘어 변혁운동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장애인청년변혁운동 최초의 맹아였다. 전국지체부자유대학생연합(약칭 전지대련)과 함께 양대법안 투쟁 전개하였으나 1990년 활동이 정체되면서 쇠퇴하였다.

-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

울림터 활동가들이 ‘양대법안 투쟁’에서 전국적 청년 단일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해 1990년 2월 서울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약칭 장청) 건설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으나 본조직 결성에는 실패하고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약칭 전장협)와 통합해 대중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3.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과 좌절(1994~ 2000년)

1990년대 중반 장애인 문제는 사회복지운동, 빈민운동, 시민운동 등과 결합할 수 있는 성격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하게 인식되는 시기였다. 지자체 확립으로 지역 장애인 단체의 활성화와 선거에 대한 대응이 본격화되어 정치 세력화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였다.


가. 장애인고용촉진법 개악 저지 투쟁과 노동권 확보 투쟁

- 장애인고용촉진법 개악을 위한 재계의 시도가 계속 되어옴

고용률 2%는 유지되었으나 도급을 허락하는 ‘연계 고용제’가 포함되었다.

- ‘장애인고용촉진을 위한 노동자ㆍ장애인 결의대회’

1995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민주노총(준), 산재노동자협회, 전장협이 함께 개최하여 장애인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의 연대가 시작되었다.


나. 장애인 노점상들의 죽음과 그에 이어지는 투쟁들

- 서초구청 단속반에 빼앗긴 압수 물품 찾으려다 모욕당한 최정환(지체 장애 1급)열사 분신

2000명의 노점상, 장애인, 사회단체 회원과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로 ‘장애인노점상 최정환 열사 빈민장 장례 투쟁’ 전개해 공안정국 이후 형성된 민중운동진영의 위축을 일시나마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인천시와 연수구청의 노점단속 및 탄압에 저항하였던 이덕인(6급 지체장애인<남>,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 회원)열사 아암도 해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공권력에 의한 죽음이 뚜렷했고, 경찰은 이를 숨기기 위해 시신 탈취를 시도하자 민중 진영은 이덕인열사비대위를 구성하여 전국 규모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영세 장애인의 생존권 문제와 ‘문민정부’의 부도덕성과 폭력성을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 에바다복지회 비리 재단 퇴진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

에바다 학생들의 탄원서로 에바다복지회 재단의 비리가 세상에 알려져 전국적인 사안으로 ‘장애인인권확보와 비리재단퇴진을 위한 범국민대회’ 개최되었다.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와 ‘에바다연대회의(약칭)이 발족하여 비리재단을 몰아내었다. 이는 시설 주체들의 승리로 지역사회운동단체와 전국대학생들의 연대투쟁이 승리를 가능케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다. 전문 영역을 맡는 장애인 단체와 장애여성운동 단체의 등장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장애인실업자연대,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등 전문적인 활동 단체들과 장애인 여성 공감과 전국적 연합 조직인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건설되었다.


라. 장대협과 장총련, 그리고 한국장총

- 한국장애인복지공동대책협의회(약칭 장대협)

1995년 3월 18일 장애인복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약칭 장애인복지공대위)가 장대협으로 명칭 변경하고 상시적 연대의 틀을 형성하였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약칭 장총련)

장대협이 설립된 다음해 9월 11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한국농아인협회, 한국맹인복지연합회(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 등이 모여 장총련을 구성, 장애인 단체가 아닌 장애인을 위한 단체라며 장애인계 대표성을 자임했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약칭 한국장총)

1998년 12월 3일 정치권의 힘을 배경으로 장대협이 장총련을 와해시키며 유형별 장애단체, 상층중심의 이익단체인 한국장총을 출범, 장총련이 재등장한 2002년까지 장애계의 대표성을 획득하였다.


마. 기성 정치 세력과 연계된 시민운동 세력의 강화와 전장협의 해소

- 전장협이 사회 변화에 따라 진보적 장애인운동 세력으로 이어지지 못하자 노선을 수정한 전장협 주류는 한국DPI와 통합하여 서울DPI를 구성함

- 변혁적 노선을 견지한 소수는 노들장애인학교를 중심으로 변혁적 운동을 견지해 나감


4. 현장 대중 투쟁의 복원과 새로운 전망의 제시(2001년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 조정,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노동자민중운동의 패배와 운동의 지속적인 후퇴로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노동자 민중의 삶이 파탄에 이르게 되면서 장애인 운동은 사안별, 지역별 연대와 사회운동 단체와의 연대와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통해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가. 중증장애인 주체들의 전면적 등장

- 장애인 이동권 투쟁 시작(비타협적인 투쟁)

2001년 오이도 리프트 추락 참사로 중증장애인들이 주축이 된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이후 장애인자립생활운동에 참여하면서 장애인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 장애인교육권연대의 투쟁과 부모 운동의 등장

- 전국 단위 운동

특수교육진흥법이 아닌 실질적인 장애인교육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장애인교육지원법 쟁취 운동으로 서울 중심이 아닌 전국적으로 지역 장애인교육권연대를 결성하였다.

- 장애인운동에 새로운 주체 형성

전문가 위주의 운동이 아닌 대중(장애인 당사자, 특수교사, 장애아 부모)이 중심이 된 운동으로 부모 운동을 개척하였다.


다. 420투쟁단

정부의 기만적인 장애인복지정책을 폭로하고 시혜와 동정의 ‘장애인의 날’ 행사가 아닌, 4월 20일을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만들기 위해, 제 장애인ㆍ노동ㆍ시민사회 단체가 공동의 목표로 가지고 소시기(3.26~4.20) 투쟁을 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 사안별ㆍ영역별 공동 행동 간의 연대, 각 지역별 장애인운동 간의 전국적 연대, 장애인운동과 전체 사회운동과의 연대라는 세 차원에서의 연대를 실현함


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건설의 역사적 의의

-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전장협)의 소멸로 맥이 끊어진 진보적 현장 투쟁 조직의 복원

- 장애인 단체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되는 속에서 이루어진 독자적인 대안 세력의 구축

- 서울에 편중되어 왔던 현장 투쟁의 전국화


III. 질의응답


1. 전장연(준) 3대 투쟁 과제에 관한 질문

- 장애인차별금지법 쟁취 투쟁

재계가 반대하고 있다.

-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투쟁

시도청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 제도화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었으며, 시행과 예산을 강제하기 위한 투쟁을 준비 중이다.

- 장애인교육지원법 쟁취 투쟁

대부분 국회의원들이 이 법을 찬성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법안 통과가 되고 있지 않다(반대세력이 적어 가장 원안에 가깝게 통과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됨).

- 시설 비리 민주화 투쟁(2006년 새로이 생긴 투쟁 과제)

성람재단 투쟁, 연세재활학교 투쟁, 사회복지사업 개정(민주적 시설 운영의 법제화) - 사회복지시설 재단과 기득권 세력이 반발하고 있다.


2. 전체 노동자민중운동이 침체인 가운데 장애민중운동은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인 운동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지?

-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비동시성(사회구조와 장애민중의 존재와 괴리)

1987년 민주화 투쟁,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총 결성 및 합법화로 노동자들의 시민권이 보장되었지만 장애인은 여전히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이다.

- 사회 분위기

시민권조차 획득하지 못한 장애민중들이 전투적으로 나왔을 때 받아드릴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장애민중운동의 전투적이고 비타협적인 운동이 가능하였다.


3. 장애민중운동과 변혁적 사회운동과의 연대 가능성은?

- 이동권 투쟁에서 많은 사회운동단체와 결합

각 사회운동단체가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합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연대로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 장애민중의 투쟁과 전체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일정한 괴리가 존재

장애민중의 투쟁은 ‘이동권 투쟁’, ‘교육권 투쟁’에서 볼 수 있듯이 시민권 획득이 주목표(기본적인 권리쟁취투쟁)이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민중 투쟁은 기본적인 시민권은 보장되었고, 오히려 첨예해지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반신자유주의 대안세계화 투쟁이 중심에 놓여 있어 양자 간에는 실질적 연대에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다.

- 새로운 환경이 양자 간의 연대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음

장애민중의 권리인 복지서비스는 신자유주의적으로 도입 및 재편되고 있다.

예) 활동보조인 서비스 자부담을 기초로 도입 예정, 의료급여 삭감(수익자부담원칙 강화, 사회복지의 시장화)

- 반신자유주의 대안세계화 투쟁을 통한 연대를 가시화시키고 있음

신자유주의적 복지 재편은 장애민중에게 필수적인 복지서비스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 이와 같은 운동 환경의 변화로 양자는 자연스럽게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IV. 닫는 글


때로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문제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했던 사건들은 장애인들의 잠재된 그러나 분출될 수밖에 없는 욕구를 반영해 주고 있다. 생활고를 비관해서 혹은 결혼 때문에 자살하는 장애인의 모습에서부터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사회 환경으로 인해 ‘사회에 의한 타살’에 처해지는 장애인의 모습, 일상의 삶에서 장애 관련 편견과 고정관념이 만들어 내는 장애 관련 시설 및 기관 설립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사건들, 장애와 관련한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사리사욕에 경도된 모습을 보이는 장애인 복지시설 및 단체의 비리사건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생존권과 관련한 사건들과 대응, 법ㆍ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의 투쟁들, 선거와 관련하여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얻기 위한 노력들, 폭행과 성추행ㆍ성폭행, 입학 거부와 임용 거부로 이어지는 인권탄압 사례들 등은 장애인운동을 일궈온 개개인의 결코 개별적일 수 없는 삶의 자취들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곧장 장애인운동과 연결될 수는 없지만 80년대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장애인운동의 고양에 근본 자양분이 되었으며, 87년의 6ㆍ10 민주항쟁의 전후로 만들어진 변혁에의 열망은 장애인에게도 무엇인가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사회의 흐름 속에서 장애인운동을 살펴보는 일은 장애인운동이 고립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10년쯤 늦게 사회 변화를 쫒아가는 장애인운동의 흐름을 보면서 우리는 80년 광주항쟁과 88년 장애인올림픽이 각 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자각할 수 있었다. 장애인운동의 늦은 출발은 사회운동이 진행되는 방향을 볼 수 있다는 프리미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늦게 출발한 장애인운동이 사회운동과의 격차를 점차로 좁혀가면서 이제는 자기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운동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우리는 체감하고 있다. 이는 사회운동의 이후 전망과 장애인운동의 이후 전망이 함께 논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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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장애인운동검토 - 자립생활연구모임

연인들

빛으로 그린 그림 l 2017. 7. 24. 18:06

무척 오래 전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은 한강시민공원과

디카로 찍은 지하철 2호선이다.

부럽다고 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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