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주의(녹색주의)

회복적 서클(RC)은 도미니크 바터가 소개한 갈등과 폭력에 있어서 공동체의 자기돌봄 프로세스 모델입니다.

90년대 브라질 상파울로의 슬럼가에서 마약갱 청소년들과의 대화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된 회복적 서클은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전 세계에 빠르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2011년 말에 소개된 회복적서클 모델은 현재 가정, (대안)학교·교육청, 지역아동센터, 시민단체, 경찰서와 법원 등에서 대화를 통해 갈등과 폭력의 문제를 풀고 관계를 다시 맺으며,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는 데 있어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비폭력평화물결에서는 금년부터 실시하는 교육청들의 갈등조정단과 경찰청의 ‘회복적경찰활동(Restorative Policing)’의 시범사업과 내년 전국 확대의 새롭고 급박한 흐름에 따라 RC진행자의 수요에 따라 이번 RC입문과정을 마련했습니다. 향후 연습모임과 네트워크모임을 거치면서 참여자들이 현장에 다가갈 수 있도록 상호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갈등전환모델 중 가장 짧은 교육시간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RC훈련과정에 초대합니다.

<안내사항>
- 일시 : 2019. 5.3(금) 오후 6:30-9:30(3시간)
5.4(토),5.6(월;대체공휴일) 오전 9:00~오후5:30(15시간; 총18시간; 비숙박)
- 장소 : 사회적협동조합 평화물결 서클룸(용산구 효창동 5-3, 대신빌딩 2층)
(1호선 남영역/4호선 숙대역/6호선 효창공원앞역에서 도보로 10분내외 거리)
- 대상 : 회복적 서클을 처음 접하는 분, 15명 내외
- 등록 : 21만원(입금 및 구글등록으로 완료됨 https://forms.gle/9rg6BjjNKv7MoL2SA)
- 입금계좌 : 신한은행 100-022-751270 / 비폭력평화물결
- 내용 : 회복적 서클 이해와 실습, 경청실습, 현장적용사례, 회복적 시스템 구축,
연습안내, 및 활동을 위한 네트워크 지원
- 강사 :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회복적서클가이드북저자;경찰청회복적경찰활동자문위원
- 기타 문의: 010-2271-4319 (김석봉)

비폭력평화물결- 03735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11길 20 CI빌딩 501호
http://www.peacewave.net ; E-mail : peacewave@peacewave.net
Tel 02) 312-1678 / Fax 02) 6261-0611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협력하며 재미있게 서로 배우는 서클 타임(Circle Time)’ 워크숍이 다시금 시작됩니다.

여름에도 행복한 공동체를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기쁜 자리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래의 내용을 참고해주시고 함께해주세요~

 

 

< 안 내 >

서클 타임 1 : 자아존중감

일시: 201877일 토 오전 10 - 오후 5:00 (중식 포함)

장소 :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5-3 대신빌딩 2

 

신청방법

1) 온라인신청서 작성

링크로 들어가서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 https://goo.gl/forms/fBAxa3Wr71kaS8kG2

(신청서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시고 제출해주시면 됩니다. 정확한 인원확인과 안내메일 발송을 위해 신청을 온라인 신청서로 받고 있으니 조금 어려우시더라도 꼭 온라인 신청서로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참가비 입금

비용 : 8만원

입금계좌 : 신한 140-012-201660 (사회적협동조합평화물결)

비폭력평화물결-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5-3 대신빌딩2

http://www.peacewave.net ; E-mail : peacewave@peacewave.net

Tel 02) 711-2017

 

그곳에 가고 싶다

- 지율스님의 산막일지/지율 지음/()사계절출판사 펴냄/2017.1.16

 

지율스님 하면 사람들은 100일 단식, 도롱뇽 소송, 천성산을 떠올릴 것이다. 승려보다는 투사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지율스님과 함께 생활해 보지 않고서는 승려로서의 모습, 아니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나도 도롱뇽 소송 때까지만 해도 지율스님을 멀리서만 봐 왔기 때문에 스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지율스님과 내가 가깝게 인연을 맺은 것은 스님이 4대강 공사 착공 이후 산을 내려온 이후부터이기에.

자연을 이용의 대상 한 가지로만 보는 사람이 있듯이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려진 한 가지 면으로만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산막일지는 사람들이 지율스님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 주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과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돌이켜보게 한다. 산막일지는 지율스님이 도롱뇽 소송 이후 4대강 공사 착공 전 영덕 산골 오지에 살면서 1월부터 12월까지의 농사일을 중심으로 스님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지율스님은 이 책을 쓴 이유를 지난 이 년 동안 천성산을 떠나 이 오지에 틀어박혀 살면서 산막일지를 쓰는 것은 땅이 죽어가고 있는 절박한 상황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승려로서의 지율스님과 인간으로서의 지율스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아직도 70~80년대 시골 모습을 간직한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의 정겨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100일 단식으로 피폐해진 지율스님의 몸과 마음이 농사와 공동체 삶을 물과 거름 삼아 다시 회복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박한 성장 위주의 경쟁사회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치유가 되고 삶의 방식에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혹시 이 책으로 인해 이 산골 오지 마을이 관광화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해 본다.

지율스님은 묵밭을 일구며 처음에는 그저 일을 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동안 너무나 쉽게 살아진 내 삶을 돌아보겠다고 여유롭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일이 나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일이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얽매이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진짜 일이란 나를 돌보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지율스님은 고속철도 2단계 구간 130킬로미터의 환경영향평가서에서는 도롱뇽은 물론 보호해야 할 단 한 종도 살지 않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일도롱뇽밖에 보지 못하는 감성적인 비구니로 매도되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의 선택과 내 선택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싶어 하고 무엇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까? 그 선택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율스님은 사람이 던져 준 먹이에 길들어 가는 독수리처럼 우리도 야생성을 잃고 무엇엔가에 길들어 가고 있다고 했다.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에 깃들여 사는 인간이 환경과 자연의 순리를 파괴한 대가로 얻은 성장과 편리에 길들어져 과연 언제까지 생존해 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입춘 추위는 꿔서라도 한다 했다. 계절의 순리를 들어 세상의 순리를 비추고 세상의 순리를 들어 엎치락뒤치락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했듯이.

나도 어렸을 때는 부끄러움이 과다 분비되어 있었지만 지율스님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부끄러움도 나이를 먹어 늙는지 요즘은 거리에 나가 광대 춤을 추어도 내 흥이라고 거드럭거릴 지경이다. 그러기에 나이 오십이 넘으면 세 치 되는 가시가 목에 걸리지 않는다고들 하나 보다.” 그게 세월의 이치이고 자연의 순리인가 보다.

지율스님은 당뇨병으로 시각을 잃은 자야 아재가 풀을 벨 때 호미질과 낫질 하는 손을 유심히 보고서는 자야 아재의 눈은 보는 데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보려 하지만 자야 아재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살고 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옥이 할아버지는 삼십 년 전 약주를 끊었으나 부모님 산소에 상석을 세우기 위해 읍에 다녀오면서 약주를 했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음에도 취중에 지율스님 앞에서 이렇게 외로울 수 있나, 이렇게 외로울 수 있나하며 몇 번을 반복했는데, 그 외로움은 기댈 부모님이 없고 명절 때 오지 않은 큰아들 때문에 서운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촌구석에서 자식 오남매 키우고 공부 시키느라고 나는 내 인생도 한번 살아보지 못했어. 그런데도 생각해보면 그때가 사는 것 같았어.” 자식을 생각하고 헌신하는 부모님 마음 누군들 다를까. 우리는 너무 자신의 인생만을 위해 살아가고 그게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세상의 순리가 맞을까?

오지 마을에서 평소엔 조용한 분들이 술과 떡국을 먹고 흥이 날 때는 놀 때는 열여덟 살, 일할 때는 팔십 노인네라고 한다. 나는 술을 먹지 않고 흥을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그곳에 살고 그 나이가 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락거리가 넘치는 도시 생활에서야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한적한 오지 마을에서 그런 낙이라도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35년 동안 이장을 하고 남은 것은 문간에 걸려 있는 스무 개 남짓한 모자가 전부인 이장님이 인수인계를 하던 날 일지(날마다 한 장씩 뜯는 달력에 쓴)의 한 페이지에는 고생도 많이 하였으며 술값도 많이 써였음이라는 한마디로 소감을 표현하였다. 일지를 쓸 때 이장님의 마음은 그 한 문장만큼 단순했을까?

지율스님은 농사밖에 모르는 할머니들이 곱게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화장으로 덮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자신을 가꾸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할머니들이 짙게 화장을 하고 화장 냄새를 피우는 것을 거북해 했는데 앞으로는 그 예의에 예의로 대해야겠다.

자식 자랑하는 할머니들이 지율스님에게 그런 자식 하나도 없지 않느냐고 하자 스님은 할매는 배 아프고 낳은 자식이 겨우 다섯이지만 나는 배도 안 아프고 수백이여, 그래서 부처님 자식이라고 불자(佛子)라고 하는 것 아녀?”라며 할매는 나이 어린 자식들만 있지만 난 나이 많은 자식도 있잖은가?” 하고 대답한다. 할머니들이 아이구, 우리 스님 말씀도 잘하셔!”, “그러게, 스님이 오시고 우리 마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니까!”라고 하니까 지율스님은 당연하지, 나 때문에 평균 연령이 많이 낮아졌으니까!” 하고 대답한다. 할매들, 지율스님 말씀 잘하시는 것 이제야 아셨나요?

오지 마을에서는 일 년에 두 번 풀베기를 한다. 휴가철을 앞두고 한 번, 추석 전에 한 번 십리 길을 자식들을 위해 하는데 “‘속까지 빼앗겨도 밉지 않은 도둑이라고 그 도둑은 구부러진 허리를 더욱 구부러지게 하고 주름진 손을 더욱 거칠게 만들지만 그래도 풀을 베고 기다림 하게 한다.”고 지율스님은 말한다. 세상에 가족만큼 그립고 강한 공동체가 있을까? 사고로 한쪽 팔을 절단하게 된 호영이네 부친상으로 온 가족이 모였는데 지율스님의 눈에 고인이 된 할배와 할매의 이십 년 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큰아들은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사진 속의 호영이를 가리키며 엄마, 이 사진 속에는 호영이 팔이 있어.” 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울었고, 집으로 넘어오는 길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사람만이 아니다. “정택이 아저씨네 송아지가 팔려 간 모양이다. 새끼가 팔려 가면 어미는 근 열흘 정도는 여물도 먹지 않고 운다. 새끼를 잃고 우는 어미 소의 울음은 소리가 아니라 창자를 훑어내는 소리다.” 짐승도 그러하거늘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의 자식 생각은 오죽할까.

공동체는 가족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웃에서 마을로 확대된다. 사람만이 아니라 항상 관계하고 있는 가축이나 농작물 그리고 산과 들, 강 모두가 공동체다. 가족 공동체가 없이 마을 공동체, 사회 공동체가 가능할까? 지율스님이 말하는 땅이 죽어가는 이 절박한 상황은 가족 공동체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 해결은 가족 공동체의 회복에 답이 있지 않을까?

지율스님은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는 것을 꺼린다. 나도 아직 닷새에 한 번 버스가 들어가고 11가구 23명이 사는 소박한 이 오지 마을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신호 어르신, 이장님, 나무 할배와 나무 할매, 자야 아재, 옥이 할아버지, 호영이, 병아리와 송아지, 똥장군, 두엄, 지게, 이 모든 것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1. 비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엇이든지나지면아니함만못하지...

    2018.10.28 10:16
  2. 초록주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아는 비비? 베트남에서는 잘 지내고 있나요? ^^

    2018.11.24 16:41 신고

무엇을 위한 개발이어야 할까

 

초록주의

 

수원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칠보하면 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지금은 호매실 지구가 서수원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고 칠보하면 공동 육아 공동체를 시작으로 한 수원 마을공동체의 메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때 칠보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스스로도 촌에 산다고 말했을 정도로 칠보는 수원 사람들한테나 지역 원주민들한테나 시골이었다. 나는 칠보가 대략 어디 있는지만 알았지 성인이 되어서도 한 번 가 본 적이 없다가 몇 년 전에야 모임 때문에 겨우 가보기 시작했다.

칠보 지역이 수원에서 그 동안 저평가된 곳이라 개발의 여지가 많은 새로운 투자처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개발이 안 되어 자연이 파괴되지 않고 지역 공동체가 살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개발로 원래 자연 생태계가 그나마 보존되어 있던 곳이 파괴되고, 그러지 않아도 대형마트를 앞세운 신상권과 구상권으로 나누어졌는데 대단위 개발로 인해 새로 외지에서 들어오는 주민들과 원주민들 간에 혹시나 용인처럼 차별이 존재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용인의 경우 수지에 사는 주민들이 용인 원주민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같은 용인이라도 서울에서 살던 도시인과 촌에 살던 촌놈으로 구별을 넘어 차별을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원주민들 중에는 농사를 짓던 분들이 많아 땅값 상승으로 땅 부자가 된 분들도 있겠지만 땅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아 사실상 쫓겨나는 분들이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개발이나 재개발 되는 지역의 원주민들 중에는 새로 아파트가 지어지면 입주비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가는 경우가 많다. 마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서양인들의 이익을 위해 죽임을 당하고 내쫓기는 것처럼 자신의 삶의 터전을 개발과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기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사회의 건전성은 그 사회의 약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떻게 살아가느냐로 평가된다고 흔히 말한다. 옛날부터 칠보에 살았던 원주민이든 사실상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식물이나 동물 같은 생명들이 자신의 삶터를 잃고 쫓겨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칠보산은 질퍽산(물산)이라 부를 정도로 주변에 자연습지가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개발이 안 된 곳이 없어서 자연습지는 보기 어렵다고 한다. 특히 이곳 습지에 자생했던 해오라기난초는 무차별한 남획으로 멸종되었다고 한다. 칠보산에서 처음 발견된 처녀치마는 지금은 칠보산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개발로 새로 이사 오는 주민들이 구도심지인과 원주민들을 차별하지 않고 또 새로 입주한 주민들 중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 역시 서울에서 집을 구입할 돈이 없어 칠보까지 밀려온 분들이 다수일 테니까.

칠보산은 원래 조선시대에는 치악산이나 진악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칠보라 부른 것은 1910년 이후로 칠보는 돌옷,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구리, 철 등 영덕 칠보산의 일곱 가지 보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칠보산은 원래 여덟 가지의 보물이 있다고 해서 팔보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여덟 가지의 보물이란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수탉, 호랑이, , 장사, 금이었는데 어떤 장사꾼이 황금수탉을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칠보산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칠보의 일곱 개 마을은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어서 경조사가 있을 때 일곱 개 마을이 서로 챙겼다고 한다. 나는 칠보산이 다시 팔보산이 되기를 바란다. 장사꾼이 가져간 황금수탉을 다시 찾아서가 아니라, 개발로 땅값이 올라가 돈이 되는 팔보산이 아니라, 약자를 보살피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개발로 새로 이주해 오는 주민들과 원주민들이 공동체라는 보물을 가진 팔보산이 되기를.


"도시에서 가능한 공동체?"

<초록아고라>는 매월 일상 생활에서 생명평화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여 시민들과 함께 초록의 가치와 실천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모임입니다. 지금까지 '채식과 생태적 삶', '반려동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다뤘습니다.

<3회 초록아고라>


주제: 도시에서 가능한 공동체?

자본과 국가에 예속되지 않는 자립적인 공동체가 도시에서도 가능할까?
주거, 경제, 문화 부문에서 공동체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 분들을 모셔서 사례를 듣고, 도시에서 어떻게 공동체 삶이 가능할지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이야기손님들:
주거공동체- 해방촌 게스트하우스 <빈집>
경제공동체- <과천 품앗이>
문화공동체- 성미산마을공동체

일시: 11월 12일(목) 저녁7시~9시30분
장소: 해방촌 게스트하우스 <빈집1>
주최: 초록당사람들(준)
참가비: 1,000원 (장소 대여비)
문의,신청: 바우보 baubo@naver.com/016-232-9160 (신청하실 분은 이멜이나 문자로 연락처와 성함 남겨주세요)

찾아오는 길: 상세약도 상단 첨부파일 참조.
1호선 서울역 4번출구로 나와서 남산순환도로로 도는 버스(402, 0014)를 타고 '보성여고입구'에서 내린다.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서 롯데백화점 앞에서 143번을 타고 남산 3호터널 지나자마자 내린다.
4호선 숙대입구 8번출구로 나와서 '용산02'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약국'에서 내린다.
5호선 광화문에서 내려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버스(401, 406)를 타고 남산 3호터널 지나자마자 내린다.
6호선 녹사평 역에서 내려서 걷거나 버스(143, 401, 406)를 타고 '3호터널입구'에서 내린다.

<약도>


[4년제대안대학] 마을대학

‘마을이 희망이다.’

늘품학교 과정 신입생 모집


■ 마을대학 늘품학교는

1. 생태순환적인 마을 전문가의 산실인 마을대학 설립주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2. 다양한 연구, 공동체 생활을 통해 생명평화의 눈으로 세상을 가꾸는 ‘주체적인 나’를 준비합니다.

3. 마을대학이 정식 개교하는 2012년까지 마을대학의 기반을 만들고, 전원교원-전원학생제의 원칙에 의거한 교원으로서 내, 외적인 자격을 준비하는 학교입니다.


■ 모집요강

 1. 모집대상과 지원자격: 만 20세 이상 40세 이하의 젊은이로서

- 현대문명의 위기를 깊이 인식하고 새로운 문명에 대한 희망으로 잠 못 이루시는 분

- 깨어서 있는 그대로 보며,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실천의지를 가지고 있으신 분

- 개교이전까지 대학운영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재정, 연구, 지역사업 등을 책임성있게 진행할 수 있는 여력과 능력이 있으신 분

- 대안교육에 대한 열망과 교육자적 자질이 있다고 자부하시는 분


 2. 접수일정

  - 2009년 5월 ~ 2009년 7월 20일 월요일 (오후 6시까지 도착기준)

    ※ 지원서류는 메일로만 받습니다.

  - 대표메일 : island00@hanmail.net

  - 홈페이지: http://www.indramang.org

  - 인터넷카페 : http://cafe.daum.net/maulacademy

  - 전화문의 : 한광용 (010-6275-6044), 임현수 (011-822-8484)


 3. 마을대학 첫 번째 갈닦이

 - 일시 : 2007년 7월 18일 (토) 늦은 5시

 - 장소 : 서울 양재동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교육센터 (02-576-1886, 1866)

 - 내용 : 도법스님 강연 및 마을대학에 대한 설명, 토론


4. 모집전형 및 일정

서류전형 (40%)

1차 발표 : 7월 22일 (수)

내용 : 경력 및 자기의식,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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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살이 (60%)

일시 : 7월 28일 ~ 8월 1일

장소 : 남원 귀정사 및 지리산 일대 (마을대학 부지)

내용 : 대학현장체험과 집단기획, 생활을 통한 선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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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발표

2009년 8월 10일 (개별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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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배움터

8월 20일~22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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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명상캠프(리트리트)】

 

2009년 여름을 맞이하여 명상캠프(리트리트)를 2009년 6월 12일(금) ∼ 6월 14일(일) 2박3일간 전북 완주군의 '아난다마르가 공동체수련원(마스터유닛)'에서 진행합니다. 몸과 마음을 빛과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그래서 서로의 따뜻한 가슴과 마음을 나누고, 우리 모두의 얼(영혼)이 더욱 맑게 빛나는 시간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원님들은 물론 아난다마르가(www.anandamargkr.org/)의 철학, 요가, 명상에 관심 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로 서로의 영적인 성장과 삶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매일매일의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영적수행을 위해서 치열하게 사시는 수행자들의 영감에 넘치는 메시지가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3시간 동안의 Non-Stop 아칸다킬탄(만트라 음악과 함께 하는 영적인 춤 명상)을 통하여 더욱 강력한 영적인 진동과 환희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명상캠프 프로그램 이후에, 원하시는 분은 아난다마르가 공동체수련원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같이 사실 수도 있습니다. 함께 요가/명상도 하고, 농사도 지으면서, 아난다마르가 공동체수련원에서 협동조합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고산산촌유학센터”에서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로서 또는 다른 역할을 하면서 적당한 보수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산과 호수들로 둘러싸인 공동체 터전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으며, 맛있는 채식 음식도 맛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아난다마르가를 처음 만나시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진행하오니 많은 분들의 참여로 알찬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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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09년 6월 12일(금) ∼ 6월 14일(일) : 2박3일

● 곳 : (사) 한국아난다마르가 공동체 수련원 (완주군마스터유닛, 주소: 전북 완주군 고산면 양야리 122-3)

● 누가 : (사단법인) 한국 아난다 마르가 요가협회

● 얼마 : 개인 3만원 / 부부 5만원 / 어린이 1만5천원 

● 문의 및 접수: 063-262-3336, 010-8616-3336

    (참조 : http://cafe.daum.net/anandamarga http://www.anandamargakr.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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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표]   

금요일 (12일)


오후 도착/등록

21:00 : 소개 및 친교의 시간 Introduction & Friendly Relation Time

21:30 : 킬탄/명상 Kiirtan & Meditation

22:30 : 취침 Bedtime


토요일 (13일)

04:45 : 기상/세면 Wake up & Washing up

05:00 : 5시 새벽명상(Painca Janya)

06:00 : 요가체조 Asanas 

07:00 : 킬탄/명상/설법 Dharma Cakra

08:30 : 아침식사/청소 Breakfast & Cleaning

09:30 : 영성강좌 Spiritual Class (기존회원/새로운 참가자)

10:45 : 휴식/반목욕 Rest & Half Bath

11:00 : 킬탄/명상/설법 Dharma Cakra

12:00 : 카오시키/탄다와 대회 Kaoshiki & Tandava Competition

12:30 : 점심식사 Lunch

13:30 : 침묵의 시간 Maono Brata

14:00 : 산책 Take a Walk

15:30 : 강좌 Class (기존회원은 법인 및 마스터유닛 발전/새로운 참가자는 새로운 대안사회)

17:00 : 요가체조 Asanas

18:00 : 킬탄/명상/설법 Dharma Cakra

19:15 : 저녁식사/주변정리 Dinner & Cleaning

20:30 : 장기자랑/문화예술프로그램 Rawa/RU

22:00 : 아바타킬탄(4방향으로 돌면서 하는 회전 킬탄/명상) Avarta Kiirtan

22:30 : 취침 Bedtime

 

일요일 (22일)

04:45 : 기상/세면 Wake up & Washing up

05:00 : 아칸다 킬탄(3시간 킬탄/명상/설법) Akhanda Kiirtan

08:45 : 아침식사/청소 Breakfast & Cleaning

09:45 : 강좌(새로운 참가자)/법인회의(기존회원) Class & Organizational Meeting

11:00 : 폐회식/시상식 Closing Ceremony & Awards 

11:30 : 킬탄/명상 Dharma Cakra

12:00 : 점심/청소 Lunch & Cleaning

13:30 : 귀향 Leaving

 

[아난다마르가 공동체 수련원 찾아오는 방법]

▶ (사) 한국아난다마르가요가협회 주소 및 연락처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양야리 122-3,   063-262-3336, 010-8616-3336


▶ 대중교통 이용시 (513번 고산면 양야리 버스종점에 내리시면 바로 보입니다)


※ 513번 전주시내버스 이용시 ( 기점 : 교도소 - 남부시장 - 팔달로 - 고속터미널 근처 - 전북대 - 전주역 - 봉동 경유)

 《513번 버스종점인 「양야리」마을에 내리셔서 바로 보이는 큰 대문으로 들어오세요》

* 513번 시내버스 시간표 (전주역에서 양야리까지 30분소요)

  - 전주역 앞 파출소에서 고산방향 6:50, 8:30, 10:10, 11:50, 13:30, 15:10, 16:50, 18:30, 20:10, 21:50 (1시간40분 간격이오며, 5분∼10분 먼저 기다리세요)

  - 봉동에서 고산방향 7:10, 8:50, 10:30, 12:10, 13:50, 15:30, 17:10, 18:50, 20:30, 22:10


※「봉동」방면 시내버스 이용

《513번 버스를 놓쳤을 시,「봉동」방면 시내버스(511번, 515번, 522번, 534번, 535번, 541번, 551번, 552번) 이용하세요. 봉동에서 택시타면 5분거리입니다》


※ 택시 이용시

 * 아난다마르가 공동체 수련원 전용 콜택시 (011-678-6840이성우, 010-9807-8844이규성)를 이용하세요.

  - 미리 통화하시어 전주시외·고속터미널, 전주역, 봉동 등에서 탑승하시면 됩니다. 

    (마중하러 가는 시간이 필요하니 꼭 미리 전화하세요)  


▶ 자가용 차량 이용시

※ 서울 대전방향

 ⇒ 호남고속도로 익산IC - 봉동방향 - 고산·운주방향(17번 국도: 봉동에서 2∼3분 운행하면 고산가기 전에 율소리가 나옴) - 율소리 앞 우리슈퍼에서 우회전(작은 이정표 있음. 참조바람) - 다리 건너자마자 좌회전 - (우측의 첫번째 보이는 굴다리 방향으로 가지말고 11시방향 직진) 두 번째 굴다리통과 - 아스팔트길을 따라 3km가량 직진 - 화정저수지 지나감 - 인풍마을 버스종점 이정표 앞 큰 대문으로 들어오세요.

※ 목포 광주 부안 김제 방향

 ⇒ 호남고속도로 삼례IC - 봉동방향(17번 국도) - 고산·운주방향(17번 국도: 봉동에서 2∼3분 운행하면 고산가기 전에 율소리가 나옴) - 율소리 앞 우리슈퍼에서 우회전(작은 이정표 있음. 참조바람)  - 다리 건너자마자 좌회전 -  (우측의 첫번째 보이는 굴다리 방향으로 가지말고 11시방향 직진) 두 번째 굴다리통과 - 아스팔트 따라 산속까지 3km가량 직진 - 화정저수지 지나감 - 인풍마을 버스종점 이정표 앞 큰 대문으로 들어오세요.

※ 남원 진안 장수 전주 방향

 ⇒ 전주역 앞에서 올 경우 전주IC방향으로 1분운행 (시내에서 올 경우 전주역 가기전에 해금장사거리에서 우회전) - 고산 봉동 이정표(안내판) 따라 철교 밑으로 진행 - 15분가량 직진 운행 후 새로난 고속국도 진입「대전 운주방향 이정표 보임」- 고속국도 진입 후 앞대산터널 지나자마자 바로 고속국도 하차 (화정리 양화리 안내판 방향으로 내려옴) - 고속국도 내려오자마자 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고속국도 옆길 아스팔트 따라 가다 우회전 (내려오자마자 굴다리로 가지 말고 고속국도 옆길로 진행하다가 두 번째 굴다리 앞에서 우회전임) - 아스팔트 따라 가다가 다리 건너 2시방향 직진 - 산속까지 3km가량 직진 - 화정저수지 지나감 - 인풍마을 버스종점 이정표 앞 큰 대문으로 들어오세요.


관악주민자치센터에 일하시던 정봉수님(011-9480-2235)이 영동으로 귀농하면서

거창(가야산과 지리산 사이에 위치)에 공동체 사용 목적으로 땅을 구입해 생태공동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식량과 에너지 자급, 교육, 문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2만평 토지는 공용으로 무상이며, 가옥은 각자가 지으면 됩니다.

 

답사를 함께 갈 분들은 연락(017-728-3472) 주세요.

 

일시 : 3월 22일(일) 수원에서는 아침 8시 출발, 서울에서 출발할 분들은 별도 출발

지역 : 경남 거창군 신원면 구사리 상감악

위치 : 면소재지에서 2.5~3km, 흰돌기도원에서 600~700m 직진(감악사지 부도 근처)로 옛마을터(수원에서 270km정도)

토지 : 2만평(농지 7,000평) 공용(무상)

가옥 : 귀농자 각자 해결


프라우트(PROUT: 최대활용)체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근본적 대안

 현재 국내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경제위기 현상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부의 편중과 편중된 부의 투기화는 경제의 ‘거품화’를 초래하여 결국에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부의 편중을 초래하며, 더욱이 신자유주의는 세계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시킴으로써 투기의 기회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제위기의 해결은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병폐를 방지한다는, 보다 장기적이며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즉, 주기적인 공황의 원인인 부의 편중과 투기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의 내용은 자본주의 이념에 배치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으나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공산주의의 이념과도 다른 새로운 ‘대안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존의 제도로써 문제해결이 어려울 때에는 기존의 사고의 틀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곤 하였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라는 극한 상황은,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는 케인즈의 경제이론을 받아들이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그후 지난 60여년간 케인즈의 이론은 자본주의사회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또다시 시대가 바뀌어, 세계경제가 지나친 상호의존 속에 있어 개별국가의 재정 및 금융정책의 유효성이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국제간의 조정도 어려운 상황으로 케인즈 식의 유효수요 관리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 

  공산주의를 지양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제도는 슈마허(E.F. Schumacher), 사카르(P.R. Sarkar), 바트라(Ravi Batra), 도운시(Guy Dauncey) 등에 의해서 개발되어왔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나타난 이들 이론들이 갖는 공통점은 부의 편중 억제, 최저생계의 보장, 협동조합 정신을 통한 자본과 노동의 협조적 협동, 지역공동체의 활성화 등이다. 특히 사카르는 대안제도로서, 경제를 포함한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모델은 프라우트(PROUT = Progressive Utilization Theory, 진보적 활용론)라고 불리고 있으며, 미국 명문 SMU 대학의 바트라 교수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프라우트의 이념

  자본주의 이념은 개인의 물질적 성취동기를 자극함으로써 사회가 물질적인 측면에서 더욱 풍요로운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공산주의 이념보다 분명히 우월한 체제라고 할 수 있으며, 역사적인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강조되는 이윤 내지 효용의 극대화 동기는 개개인의 이기심에 기반을 둔 것이다. 즉, 자본주의는 물질중심의 사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개인의 이기적 이윤동기를 자극하고 소유의 무한정한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부의 필연적인 편중을 초래하며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공황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소유와 관련하여 일정한 규제장치를 마련하지 않게 될 경우, 사회 전체의 연대적 또는 총체적 복지를 결코 증진시킬 수 없는 것이다.

  프라우트는 개개인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스스로의 복지를 최대한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하여, 물질적인 면에서 개인과 전체가 공동으로 진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제도이다. 사카르는, 공산주의는 물론 자본주의도 그들 이념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停滯性) 때문에 필연적으로 붕괴하게 된다고 강조하면서, 사회의 역동성을 유지시키는 것을 프라우트의 중요한 이념으로 설정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부의 극단적인 편중에 있으며, 공산주의의 경우에는 일당 독재와 근로동기의 저하로 인한 사회의 무기력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정체가 올 수밖에 없다는 면에서 양자는 같은 것이다. 프라우트에서는 사회의 정체를 야기시키는 이들 요인들을 합리적으로 지양하는 장치들을 상정하고 있다. 

  부와 소득의 편중은 비록 일부 ‘개인의 선’을 위해서는 더없이 좋을지 모르나,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의 ‘연대적 진보’를 저해하므로 ‘사회의 선’에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프라우트에서는 자본주의의 양대 지주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역기능이 심화된 말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질적 진보란 자본의 일방적인 노동착취의 결과로서 얻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 또는 가진자와 못가진자 모두가 연대감을 갖고 상호간 발전적 자극을 통해 진보를 지향한 결과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프라우트 이론은 창조된 모든 것을 인류 전체의 공동재산으로 본다. 그런데 인류의 재산은 항상 제한되어 있으므로 개인들은 이 공동재산을 사용할 권한은 갖고 있으나 남용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에 의한 지나친 부의 축적은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행복과 편의를 직접적으로 침해한다고 본다. 

  프라우트는 육체적 또는 물질적인 면에서 착취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국가나 사회는 개인의 정신적 · 영적인 면, 즉 개인의 주관적인 삶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의 역할은 개인이 물질적인 면에서 전체의 이익을 저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정신적 · 영적인 면에서는 무한성장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공산주의는 이런 정신적 · 영적인 면의 중요성을 무시함으로써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프라우트는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은 원칙들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다음과 같은 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부의 집중 제한과 최저생계의 보장

  프라우트에서는 연대감과 동기부여를 통해 사회와 개인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우선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적어도 최저수준의 삶을 보장할 것, 아울러 근로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기여도에 따라 분배의 차이를 둘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회의 활력을 높여 그 사회가 역동적으로 진보할 수 있도록 부와 소득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한편, 최저수준을 끊임없이 상향조정하여 구성원간의 분배의 차이를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의, 식, 주, 의료, 교육 등의 최저수준이 보장되도록 그것들을 분배하여야 하며, 최저생계수준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상향 조정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구성원에게는 최저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을 제공해야 하며, 그 구매력이란 노동의 기회와 노동의 대가를 적절히 보장 받는 방법으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노동이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는 노동의 기회를 주고, 노동으로부터 얻는 수입은 적어도 최저생계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증 장애인이나 고령자와 같이 노동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최저생계에 필요한 현물과 현금을 노동 여부에 관계없이 직접 제공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에 대한 대가로 최소한으로 삶의 최저수준에 맞는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거지근성’이 사회에 스며들어 게으른 사회가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매년 최저생계수준을 책정하여야 하며, 그에 맞게 최저임금을 책정해야 한다. 또한 최고임금과의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최저임금을 매년 상향조정하는 동시에 최고임금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능력과 기여도가 큰 사람에게 높은 임금으로 보상해줌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의 근면성과 창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임금격차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피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 부작용은 결국에 경제공황, 사회 연대감의 와해 등의 양상으로 모두에게 돌아가게 되므로, 높은 임금을 받던 사람도 부작용의 영향에서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능력이나 기여도가 큰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사회에 봉사 ·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넓혀주는 방향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임금상한선을 정했다고 해서, 일에 대한 인센티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근면성이나 창조성은 돈에 대한 욕구보다는 그 사람의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사람의 성품은 타인에게 봉사하고 높은 이상을 추구할 때 더욱 연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라우트에서는 부의 편중을 막는 것을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보다도 더 중시한다. 부의 편중은 소득의 불평등을 초래하며, 경제공황의 주범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의 축적은 엄격히 통제되어야 하며, 부에서 발생하는 소득, 즉 재산소득도 임금소득과 마찬가지로 통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구자나 노인, 미망인 등과 같이 근로활동의 제약을 받아 임금수입이 적거나 없는 사람들은 적절한 예외적 조정이 필요하다.

  프라우트의 고용정책은 특히 완전고용을 최우선으로 한다. (생산시설 및 경제력의 일부지역 집중과 농업부문의 지나친 위축은 완전고용을 저해하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프라우트에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의 최저생계 보장을, 일차적으로 고용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으므로, 완전고용과 최저생계수준의 유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한편 프라우트는 생산시설의 자동화 및 기계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자동화나 기술발전으로 노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노동시간은 줄이되 고용수준은 줄지 않도록 하여, 여유시간을 정신적 · 영적인 추구에 활용토록 한다. 이윤극대화가 목표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생산이 자동화될수록 실업이 늘어나고, 실업자는 ‘사회문제를 야기시키는 사람들’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나 프라우트에서는 이윤이 아닌 ‘공동복지’와 모든 구성원의 최저생계 보장을 일차적인 목표로 추구하므로, 생산이 자동화되더라도 고용수준은 그대로 유지된다. 또한 자동화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수익이 자동화에 투자된 자본의 원리금 부담을 상회할 경우에는, 전보다 적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오히려 더 많은 임금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최저생계 유지를 위해 배분하고 남은 것은, 사회에 대한 개개인의 기여도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재능이 있으며, 사회에 대한 기여도도 각각 다르다. 따라서 사회를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한 사람에게는, 그가 앞으로 더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그의 기여도에 맞게 부를 더 배분해주어야 한다. 공산주의에서 내세운 “능력에 따라 봉사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말은 귀에는 달콤하게 들리나,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보통사람들’ 또는 사회 취약계층의 생활수준의 향상은 그 사회가 얼마나 역동적인지를 나타내주는 척도이다. 그러므로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최저생계수준보다 높은 물질적 편의를 제공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최저생계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경제력의 지방분산과 경제의 민주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비용극소화와 매출극대화를 통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과소비의 조장은 물론 생산시설의 일부지역 집중이 발생하게 되어, 지역간 발전의 불균형과 소득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또한 인구의 도시집중 등 여러가지 사회 · 경제적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생산시설의 일부지역 집중은 노동착취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프라우트는 지방분산을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상정하고 있다. 경제의 민주화란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제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을 지역주민들에게 분산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이 프라우트의 관점이다. 그리고 경제의 민주화에는 부가 개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지역경제에 대한 외부의 영향을 배제하여, 그 지역의 자본이나 부의 유출을 방지해야 한다. (경제력을 지역으로 분산하고 주민의 손에 의해 생산, 판매, 분배가 이루어지게 되면, 생산이 소비목적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지역내에서의 가격안정, 낭비 및 과소비 근절 등과 같은 다양한 혜택이 발생한다.) 

  또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자재를 이용할 수 있는 산업을 개발하여 지역주민의 고용을 극대화해야 하며, 원자재의 외부판매는 완전고용 상태에서 사용될 수 있는 양을 초과하여 보유할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한다. 원자재를 이용하는 지역경제 발전전략을 추구할 경우, 노동력의 유출입이 적어 지역사회가 안정된다. 이처럼 프라우트는 지역의 부존자원을 활용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특히 강조하였다.

  다른 지역과의 소득격차가 없어지게 되면 여러가지 ‘지역 컴플렉스’가 사라지게 될 것이며, 상호배타적인 감정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지역간의 심리적 균형은 사회발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이윤이 아닌 소비를 위한 생산체제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프라우트 이론에서 생산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다. 대신, 개인들이 필요로 하는 물질을 적당하게 공급함으로써 그들이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정신적 · 영적인 차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생산의 목적을 이윤극대화가 아닌 소비수요의 충족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생산체제’로서 프라우트는 피라미드형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즉 피라미드의 맨아래 부분은 공공영역,  그 위가 협동영역,  맨위가 소규모영역 순으로 구성된 산업구조인 것이다. 

  공공영역은 다른 영역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분야로, 동력자원, 중화학, 교통통신, 국방 등과 같은 사회 기간산업이다. 이 분야는 사회 전체의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국가의 관할 아래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운영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공적인 조직에서 맡아야 한다. 수익성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되며 비용을 보상하는 수준에서 가격이 책정되어야 한다. 이 분야는 여타 산업의 비용구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야이므로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기업의 민영화는 많은 경우에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협동영역은 대규모 소비재산업, 경공업, 대규모 농업을 포함하며 해당지역의 주민들이 협동조합 방식으로 경영과 노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합원들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고 토론과 대화를 통하여 경영을 하는 것이다. 협동조합 방식의 운영은 이윤의 합리적 분배를 통해 부의 편중을 예방할 수 있으며, 조합원 스스로가 동시에 소비자가 되므로 제품가격이 저렴하며 안정적이 된다. 조합원은 투자한 자본과 근로 기여도에 따라서 배당과 임금을 받는다. 근로와 자본 주체간의 ‘종속적 협동’이 아닌 ‘협조적 협동’ 속에서 생산, 판매,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던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상호배타적 이익추구로 인한 갈등을 불식시킨다. 협동영역에 있어서의 운영은 투자를 많이 한 사람들이 아니라 조합원의 민주적 투표로 당선된 이사회에서 맡는다. 그리고 강력한 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지역중심의 경제단위를 구축하는 것이다. 기존의 협동조합의 실패는 이러한 ‘풀뿌리’ 협동조합의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라고 본다. 

  소규모영역은 소규모의 협동조합, 개인사업, 동업, 개인농업을 대상으로 한다. 개인들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보장하여 근로 또는 사업의 동기를 부여한다. 이 분야는 주로 상업과 개인서비스 사업으로서, 자유경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분야이다. 그리고 자유경쟁이 이루어지므로 자원은 최적배분이 되며 이윤도 ‘정상’이윤에 그쳐 프라우트의 원리인 ‘소비를 위한 생산’에 어긋나지 않는다.
  한편 프라우트에서는 농업부문을 특히 중시한다. 많은 국가들이 비교우위 이론에 따라 제조업분야에 치중함으로써 농업부문이 위축되어 산업의 불균형이 초래되고 지역공동체가 약화되었다. 산업의 불균형은 사회정서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것은 다시 사회의 모든 측면을 타락, 파괴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의 몰락을 가져오게 된다. 농업부문이란 단순히 농업만이 아니라, 농기계와 농산품가공 등 농업관련 산업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광의의 농업부문은 고용증진 효과가 크고 불황에도 비교적 영향을 덜 받으므로, 한 사회가 실업과 경기침체에 대해 강한 내성을 갖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토지의 궁극적인 공동소유

  프라우트에서는 농업부문의 활성화를 위한 선결요건으로서 토지의 공개념화, 즉 토지는 점진적으로 지역의 풀뿌리 협동조합의 공동소유로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와 같은 토지의 공동소유 개념은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며,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다. 안승준은 지역경제의 구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토지와 그 토지에 부수되는 자연자원의 공유라고 보았다(국가에서 공동체로, 환경운동연합 출판국, 1995). 그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의 부는 토지 자체와 그 토지에서 산출되는 것이라고 보았는데, 토지가 지역공동체의 공동소유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토지의 생성근거(존재가치)와 토지가 생산물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토지의 활용 내지 효용가치)의 근원에서 찾고 있다. 

  그는, 토지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치, 즉 존재가치는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어서 어떤 개인의 사적인 소유재산으로 인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토지가 창출해내는 부가가치는 그 토지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이므로, 토지에 살지 않거나 토지를 실질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외부인의 소유로 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라고 보았다. 안승준은 이와 같은 ‘지역공동체에 의한 토지소유’라는 개념에 바탕를 둔 ‘공동체 토지신탁’ 제도를 지역공동체를 성립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으로 보았으며, 나아가서 생태친화적인 사회의 기반 조성에도 핵심적 기여를 할 것으로 보았다. 이 제도에서는 어떤 개인도 토지를 소유할 수 없고, 공동체 토지신탁만이 토지를 소유하며, 공동체내의 개인들에게는 그 토지의 사용권을 인정해준다. 이와 같은 방식의 토지소유 및 이용 제도는 ‘용익권(用益權)의 관행’이라는 오래된 법적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와 같은 용익권은, 토지를 공동체의 공익을 위해 공동소유로 하면서도, 일정한 민주적인 통제방식 하에서 개인들이 그 토지를 활용할 수 있게 해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이 제도는 여러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투기를 목적으로 한 토지 취득이나 개발의 여지가 없으므로, 공동체에 의한 토지확보가 용이하여 공동체의 장기적인 확대발전이 가능하다. 외부인에 의한 토지관련 착취로부터 공동체 구성원들이 보호되며, 공동체 의식이 강화된다. 그리고 토지가 없거나 소득이 적은 영농 희망자에게 장기적으로 토지를 경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이 제도는, 경제적 위기가 도래할 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계층에게는 생존문제의 해결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토지소유의 집중 및 부재지주의 토지소유를 실질적으로 배제하여, 지역주민의 토지사용 지분이 좀더 균등해지도록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생태적인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여지를 키우며, 공동체 정신의 함양으로, 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유기농업을 확산시킬 수 있다. 나아가 생산자협동조합의 형성 및 도시지역 소비자협동조합과의 연계를 통해, 시장경제로 인한 가격과 수급의 불안 및 농산물 배분상의 비효율성 등을 극복할 수 있다. 두레와 같은 생활공동체적 협업의 관행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지역내 상호신용금고와 같은 금융기관을 성공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이러한 기관이 주민들의 풀뿌리 조직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지역내에서 부가 창출되고, 그 창출된 부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다시 부를 재창출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공동체 의식의 강화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안승준의 생각은 사카르가 주장한 프라우트 이론에서의 토지개념 및 소유권 귀속 입장과 매우 유사하다. 사카르는 자본의 유출을 방지하는 것과 외부자본이 이윤획득 목적으로 지역에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지역경제의 활성화 내지 외부자본에 의한 지역경제 착취를 방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또한 지역의 인적 자원, 특히 지식과 기술인력의 지역내 거주와 경제활동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런 점에서 사카르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필요한 요소를 토지뿐만 아니라, 자본 그리고 인력까지를 포괄하는 보다 광범위한 관점을 제시하였고 할 수 있다.
 프라우트의 정치체제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이 다른 계층을 착취하지 않는 경우에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최저생계수준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에서 인정하는 ‘평등한 선거권’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교육이란 단순한 정보의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로 하여금 사회 · 경제 · 정치 의식을 기르게 하며,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온갖 좁은 ‘이기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분별력을 키워주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부도덕하고 부패한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없으므로, 국민들의 도덕성을 고양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정당정치는 사람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정치꾼’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기득권층을 형성시켜, 양심적이고 유능한 새로운 인물의 성장을 어렵게 한다. 프라우트는 정당이 없는 민주주의 제도를 지지하며, 사회에 대한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도덕성을 지닌 유능한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취지에서 프라우트는 전혀 새로운 ‘이원적인 민주적 정치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관리는 지금과 같은 입법, 사법, 행정 등의 국가기관과 공무원이 담당하도록 하며, 이 정부기관과 국민들을 연결하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다. 즉, 이 위원회는 마을단위부터 국가단위까지 구성되며, 직접적으로 행정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의 의사를 수용하고 정부의 활동을 감독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무엇보다도, 육체적 또는 물질적인 면에서는 개인이 타인이나 사회를 착취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누구나 물질적 최저생계수준은 보장받도록 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물질적 조건은 궁극적으로 ‘차원 높은’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전 단계로서의 소위 ‘경우바른’ 사회가 달성해야 할 필수사항이기도 하며, 우리들 누구나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프라우트는 이러한 사상을 전제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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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아난다마르가-명상, 요가, 채식주의(http://anandamarga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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