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주의(녹색주의)

그곳에 가고 싶다

- 지율스님의 산막일지/지율 지음/()사계절출판사 펴냄/2017.1.16

 

지율스님 하면 사람들은 100일 단식, 도롱뇽 소송, 천성산을 떠올릴 것이다. 승려보다는 투사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지율스님과 함께 생활해 보지 않고서는 승려로서의 모습, 아니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나도 도롱뇽 소송 때까지만 해도 지율스님을 멀리서만 봐 왔기 때문에 스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지율스님과 내가 가깝게 인연을 맺은 것은 스님이 4대강 공사 착공 이후 산을 내려온 이후부터이기에.

자연을 이용의 대상 한 가지로만 보는 사람이 있듯이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려진 한 가지 면으로만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산막일지는 사람들이 지율스님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 주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과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돌이켜보게 한다. 산막일지는 지율스님이 도롱뇽 소송 이후 4대강 공사 착공 전 영덕 산골 오지에 살면서 1월부터 12월까지의 농사일을 중심으로 스님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지율스님은 이 책을 쓴 이유를 지난 이 년 동안 천성산을 떠나 이 오지에 틀어박혀 살면서 산막일지를 쓰는 것은 땅이 죽어가고 있는 절박한 상황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승려로서의 지율스님과 인간으로서의 지율스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아직도 70~80년대 시골 모습을 간직한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의 정겨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100일 단식으로 피폐해진 지율스님의 몸과 마음이 농사와 공동체 삶을 물과 거름 삼아 다시 회복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박한 성장 위주의 경쟁사회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치유가 되고 삶의 방식에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혹시 이 책으로 인해 이 산골 오지 마을이 관광화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해 본다.

지율스님은 묵밭을 일구며 처음에는 그저 일을 하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동안 너무나 쉽게 살아진 내 삶을 돌아보겠다고 여유롭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일이 나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일이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얽매이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진짜 일이란 나를 돌보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지율스님은 고속철도 2단계 구간 130킬로미터의 환경영향평가서에서는 도롱뇽은 물론 보호해야 할 단 한 종도 살지 않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일도롱뇽밖에 보지 못하는 감성적인 비구니로 매도되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의 선택과 내 선택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싶어 하고 무엇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까? 그 선택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율스님은 사람이 던져 준 먹이에 길들어 가는 독수리처럼 우리도 야생성을 잃고 무엇엔가에 길들어 가고 있다고 했다.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에 깃들여 사는 인간이 환경과 자연의 순리를 파괴한 대가로 얻은 성장과 편리에 길들어져 과연 언제까지 생존해 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입춘 추위는 꿔서라도 한다 했다. 계절의 순리를 들어 세상의 순리를 비추고 세상의 순리를 들어 엎치락뒤치락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했듯이.

나도 어렸을 때는 부끄러움이 과다 분비되어 있었지만 지율스님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부끄러움도 나이를 먹어 늙는지 요즘은 거리에 나가 광대 춤을 추어도 내 흥이라고 거드럭거릴 지경이다. 그러기에 나이 오십이 넘으면 세 치 되는 가시가 목에 걸리지 않는다고들 하나 보다.” 그게 세월의 이치이고 자연의 순리인가 보다.

지율스님은 당뇨병으로 시각을 잃은 자야 아재가 풀을 벨 때 호미질과 낫질 하는 손을 유심히 보고서는 자야 아재의 눈은 보는 데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보려 하지만 자야 아재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살고 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옥이 할아버지는 삼십 년 전 약주를 끊었으나 부모님 산소에 상석을 세우기 위해 읍에 다녀오면서 약주를 했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음에도 취중에 지율스님 앞에서 이렇게 외로울 수 있나, 이렇게 외로울 수 있나하며 몇 번을 반복했는데, 그 외로움은 기댈 부모님이 없고 명절 때 오지 않은 큰아들 때문에 서운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촌구석에서 자식 오남매 키우고 공부 시키느라고 나는 내 인생도 한번 살아보지 못했어. 그런데도 생각해보면 그때가 사는 것 같았어.” 자식을 생각하고 헌신하는 부모님 마음 누군들 다를까. 우리는 너무 자신의 인생만을 위해 살아가고 그게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세상의 순리가 맞을까?

오지 마을에서 평소엔 조용한 분들이 술과 떡국을 먹고 흥이 날 때는 놀 때는 열여덟 살, 일할 때는 팔십 노인네라고 한다. 나는 술을 먹지 않고 흥을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그곳에 살고 그 나이가 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락거리가 넘치는 도시 생활에서야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한적한 오지 마을에서 그런 낙이라도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35년 동안 이장을 하고 남은 것은 문간에 걸려 있는 스무 개 남짓한 모자가 전부인 이장님이 인수인계를 하던 날 일지(날마다 한 장씩 뜯는 달력에 쓴)의 한 페이지에는 고생도 많이 하였으며 술값도 많이 써였음이라는 한마디로 소감을 표현하였다. 일지를 쓸 때 이장님의 마음은 그 한 문장만큼 단순했을까?

지율스님은 농사밖에 모르는 할머니들이 곱게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화장으로 덮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자신을 가꾸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할머니들이 짙게 화장을 하고 화장 냄새를 피우는 것을 거북해 했는데 앞으로는 그 예의에 예의로 대해야겠다.

자식 자랑하는 할머니들이 지율스님에게 그런 자식 하나도 없지 않느냐고 하자 스님은 할매는 배 아프고 낳은 자식이 겨우 다섯이지만 나는 배도 안 아프고 수백이여, 그래서 부처님 자식이라고 불자(佛子)라고 하는 것 아녀?”라며 할매는 나이 어린 자식들만 있지만 난 나이 많은 자식도 있잖은가?” 하고 대답한다. 할머니들이 아이구, 우리 스님 말씀도 잘하셔!”, “그러게, 스님이 오시고 우리 마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니까!”라고 하니까 지율스님은 당연하지, 나 때문에 평균 연령이 많이 낮아졌으니까!” 하고 대답한다. 할매들, 지율스님 말씀 잘하시는 것 이제야 아셨나요?

오지 마을에서는 일 년에 두 번 풀베기를 한다. 휴가철을 앞두고 한 번, 추석 전에 한 번 십리 길을 자식들을 위해 하는데 “‘속까지 빼앗겨도 밉지 않은 도둑이라고 그 도둑은 구부러진 허리를 더욱 구부러지게 하고 주름진 손을 더욱 거칠게 만들지만 그래도 풀을 베고 기다림 하게 한다.”고 지율스님은 말한다. 세상에 가족만큼 그립고 강한 공동체가 있을까? 사고로 한쪽 팔을 절단하게 된 호영이네 부친상으로 온 가족이 모였는데 지율스님의 눈에 고인이 된 할배와 할매의 이십 년 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큰아들은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사진 속의 호영이를 가리키며 엄마, 이 사진 속에는 호영이 팔이 있어.” 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울었고, 집으로 넘어오는 길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사람만이 아니다. “정택이 아저씨네 송아지가 팔려 간 모양이다. 새끼가 팔려 가면 어미는 근 열흘 정도는 여물도 먹지 않고 운다. 새끼를 잃고 우는 어미 소의 울음은 소리가 아니라 창자를 훑어내는 소리다.” 짐승도 그러하거늘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의 자식 생각은 오죽할까.

공동체는 가족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웃에서 마을로 확대된다. 사람만이 아니라 항상 관계하고 있는 가축이나 농작물 그리고 산과 들, 강 모두가 공동체다. 가족 공동체가 없이 마을 공동체, 사회 공동체가 가능할까? 지율스님이 말하는 땅이 죽어가는 이 절박한 상황은 가족 공동체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 해결은 가족 공동체의 회복에 답이 있지 않을까?

지율스님은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는 것을 꺼린다. 나도 아직 닷새에 한 번 버스가 들어가고 11가구 23명이 사는 소박한 이 오지 마을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신호 어르신, 이장님, 나무 할배와 나무 할매, 자야 아재, 옥이 할아버지, 호영이, 병아리와 송아지, 똥장군, 두엄, 지게, 이 모든 것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1. 비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엇이든지나지면아니함만못하지...

    2018.10.28 10:16
  2. 초록주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아는 비비? 베트남에서는 잘 지내고 있나요? ^^

    2018.11.24 16:41 신고

녹평 144호 서문 발제

- 초록주의

민주주의와 기본소득은 연관되어 있으므로 민주주의와 기본소득을 같이 이야기 함.

세월호 사건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통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바로 잡고 국가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옛날에는 근대국가란 자기 확대 욕망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기에 자본과 불가분적 이해관계 같이하여 국가 바로 잡아 자본 횡포 제어 애초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국가 없는 지역 차원의 자급, 자족, 자립이 대안이라 생각함. 근래 4대강사업과 원자력 문제 등 만행과 폭거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더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 존재하고 있음. 라틴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은 주민자치센터, 문명 퇴치, 헌법 교육 등으로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으며, 500만 명 인구의 코스타리카는 군대 없는 나라로 국민 누구나 소송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가 있음. 덴마크는 풍력발전과 설명책임제를 실시 등으로 국가를 바로 세우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근래 가속화 되는 기계화와 자동화는 사람을 기계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중산층 몰락해 잉여인간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대안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소득이다. 스위스는 내년에 기본소득 실시여부를 투표를 통해 결정할 것이며, 네덜란드에서는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지방정부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직접적으로 밀접한 연관 관계를 밝히지 않으면 민주주의와 기본소득의 연관성에 관한 설득력 떨어짐. 논리적으로 예를 든 나라들이 모두 기본소득을 해서 그런 민주주의를 이루었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해야 한다고 하면 이해가 되나 예를 든 나라는 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있지 않음에도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다. 또한 모든 조직은 자기 확대 욕망이 있고 조직이 크면 클수록 자기 확대 욕망이 큰 것이 아닌가. 그래서 권력이 작게 작동하는 작은 단위의 조직이 필요한 것 아닌가?

기초생활수급비는 수혜 자격 조사 심사에 인간적 모욕과 상처를 받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그렇게 심각하지 않고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직장 내에서도 보직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오히려 근로자와 실업자의 차별을 가속화시킬 것이라 낙인효과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또한 기본소득은 지구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인구가 감소되어야 하는데 많이 낳을수록 실질적 소득을 증가하므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행정 비용 들지 않는다고 했으나 행정 비용이 들면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며, 통장 관리나 편법 이용 등으로 실질적으로 행정 시스템 상 들어갈 수밖에 없어 이런 생각은 탁상 정책일 뿐이다.

예산에 따라 자기가 받는 돈이 좌우되므로 국가 재정 신경 써야 해서 시민적 권리, 시민 의식, 책임 의식이 크게 제고 될 것이다고 했지만 지금 노인연금에 과연 노인들에게서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느냐와 기본소득액 기준이 얼마냐에 따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성격이 달라지므로 함부로 속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알래스카가 연간 1,000~3,000달러를 기본소득으로 주듯이 세금 아닌 토지, 공기, , , 강과 기초 인프라 같은 공유재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기업으로 하여금 공유재의 사유화를 인정하는 것이며, 환경 파괴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코스타리카는 환경파괴 우려 때문에 석유가 있음에도 개발하지 않고 있다.

지금 청년층은 기성세대보다 높은 가격으로 부동산을 구매할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인구는 줄어드는데 아파트 등은 계속 건설해 빈 건물들이 늘어나 과잉 공급으로 가격이 폭락할 것이 아닌가.

성남시는 19세 이전 3년 거주 조건으로 19~20세 월 10만 원 내외나 연간 100만 원의 청년기본소득을 준다고 했는데 2019년이면 76,000명이 해당하고 100만 원이면 연간 760억 원, 120만 원이면 91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함. 3년 거주 조건이면 이보다 예산은 축소될 예정이며, 대형마트, 유흥주점, 도박장, 해외연수를 위한 저금 등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지역화폐로 지불할 계획이며, 군대에 간 학생들에게 제대 후의 지불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농민 연간 평균 소득이 1,000만 원으로 60%의 농민이 그 정도도 안 되며, 농민 300만 명에게 1인당 연간 451만 원을 지급하면 135,344억 원이 필요한데 2014년 농축산부 예산이 그 정도이다.

그런데 청년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이 과연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을 말하므로 일부에게 주는 것은 노인연금과 같이 차라리 청년연금, 농민연금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재분배의 역설은 모든 사람에게 돈을 줘야지 일부 계층에만 지급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하지만 오히려 세금 증가분보다 덜 기본소득을 받는 중산층이 반발함.

주류세, 대기세(환경세) 등 높이면 물가 상승해 기본소득 효과 줄어들고, 중산층의 소비가 계속 일어나도록 자극하는 시스템으로 환경 파괴 합리화가 됨.

석유 EROEI(Energy Returned On Energy Investment) 19301:100에서 19701:25로 

호오포노포노의 지혜

이하레아카라 휴 렌, 사쿠리바 마사후미 지음/눈과마음 펴냄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어려운 일을 당하면 보통 남을 탓하거나 제도나 문화를 탓한다. 그러면 이런 방식은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제도나 문화를 탓하게 되면 내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니면 그냥 체념하고 만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자기비하를 하고 열등감에 빠질 수도 있지만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되고 스스로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어렵게 된 상황을 가장 쉽게 개선할 수 있는 어떤 것이냐이다. 남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제도 또는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은 더 어렵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주체인 바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다. 또 이런 마음 자세는 남을 탓하는 사람보다 더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물론 IMF처럼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였다고 해도 국가의 정책이 잘못되면 일자리를 잃고, 제도의 잘못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것도 자신이 세상의 변화와 제도에 무관심한 책임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도 없기에 모든 것은 자기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반대로 사회는 나와 남과의 관계와 체제와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남이나 체제와 문화 탓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남이나 체제와 문화 탓만 하고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바꾸지 않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 될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먼저 바꾸고 남이 바뀌고 체제와 문화가 바뀌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 될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받은 상처의 치유를 어떻게 하느냐이다.

호오포노포노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모든 것은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거기에서 자기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고 행복한 삶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호오포노포노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할 수 있지만 최소한 불행한 인생을 살지 않게 하는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 일부를 소개한다.

 

* 무의식을 정화하는 호오포노포노의 방법

호오포노포노에서는 다음 네 마디 말을 아주 소중하게 여깁니다.

"사랑해."

"미안해."

"용서해줘."

"고마워."

이 네 마디 말로 무의식 속에 있는 기억에 감사하고 내면의 아이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네 마디 말 전부가 아니라 "고마워", "사랑해"라는 두 마디 말만으로도, 혹은 "사랑해"라는 한 마디 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정화를 하고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간다(엔도 와타루 글)

"이 우주에 오로지 당신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당신이 창조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이 만약 힘든 체험을 한다면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가 원인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그냥 묻기만 하십시오. 대답을 찾지 마십시오."

 

"나는 그들을 만들어낸 나 자신의 내면을 치유했을 뿐입니다."

"당신의 인생에 대해 완전한 책임이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지 당신 인생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호오포노포노를 통해 깨달은 내용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이제부터라도 자유로워질 기회가 있다.

·정화하는 것이 전부이다.

·선택은 정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힘이 없다.

·모든 것은 신성이 하는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지음) 2014년 책읽기 모임 발제문입니다.

 

혹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껴 본 적은 있나요?

 

아마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껴 보지는 못했어도 누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가볍게 생각해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실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날 해답도 없어 보이는데 골치 아프게 생각하느니 그냥 주어진 삶을 살아가거나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수도자가 되는 등 삶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갖게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후의 삶은 있는 것인가는 혼자 고민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통해서 해답을 찾기도 합니다. 그런데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종교마다 비슷하긴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자기가 믿는 종교의 것을 편안해서 받아들이기도 하고 정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종교적 해결 방법에 대해 철학적으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자 셸리 케이건은 죽음이 무엇인지 말하기 위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문제와 인간의 실체, 영혼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선 삶이 끝난 후에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만 이루어진 존재(이원론)인지, 육체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물리주의)인지, 영혼은 존재하는지, 또 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지와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 후 죽음의 주체인 나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인지, 육체인지, 인격인지 그리고 죽음의 본질은 무엇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 죽음은 나쁜 것인지, 영원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며, 마지막으로 자살의 합리성과 도덕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저자는 일원론인 물리주의 관점에서 육체만으로 이루어진 인간을 주장하며, 나의 정체성은 인격이고 인격의 연속성이 소멸되는 것을 죽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육체가 죽어도 영혼이 영원히 산다고 해도 영혼이 다른 인격을 지니거나 다른 인격을 지닌 육체에 스며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내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에 대해서도 일회성과 시한성을 가져야 가치가 있으므로 영원한 육체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삶을 부정합니다.

이런 저자의 견해에 대해 저는 먼저 저자의 인격의 연속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미치거나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사고로 뇌의 일부가 다쳐 성격이 완전히 변하거나 할 때 우리는 인격의 연속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만약 영화에서처럼 만들어진 새로운 기억이 주입된다면 나의 연속성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내가 나라고 믿는 내가 정말 존재하기나 한 것인가요?

, 죽음에 대한 접근법에서도 논리적이거나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고민을 갖고 있는 것이지 죽음이 나쁜 것이니 좋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상황에 따라 나쁜 것일 수도 좋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보다는 죽음을 왜 두려워하고 왜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닌지 접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죽음이 인격의 죽음이라고 말한다면 다른 동물과 식물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인격이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도 있는 것일까요? 없다면 이들은 죽음이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인격이 형성되지 않거나 없는 인간은 살아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일까요?

자살의 문제는 어떤가요? 종교적 관점을 떠나서 자살은 하나의 현상입니다. 자살은 상황과 관점에 따라 합리적이냐, 도덕적이냐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에 합리적인지, 도덕적인지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전에 죽음의 주체인 는 무엇인가요?

미친 달러에서 세계를 구하라

- 달러 ‘Ⅲ부 빚의 노예가 되다 : 지구촌을 뒤덮은 은행가의 거미줄’ 발제문

 

  이론적으로는 공산주의처럼 완벽한 이상향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상주의자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공산주의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도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이론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제대로 조정된다면 완벽한 이상향이다.
  이론적으로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모두 똑같이 이상적이지만 실제적으로 두 체제는 서로 반대 방향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공산주의는 빈부의 차이가 크게 발생하지 않지만 개인의 경제적 소유욕을 억제시켜 성취욕과 책임감이 무뎌지게 만드는 경향을 보이며, 자본주의는 경제를 활성화시키지만 너무 소유욕을 자극시켜 승자독식이나 무노동 이익을 인정함으로써 실제적인 착취를 통해 빈익빈부익부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사회가 이상적으로 운용되기 어려운 것처럼 화폐도 본질적 기능인 교환 수단으로서 유통의 기능에만 충실하면 경제가 이상적으로 잘 돌아가겠지만 가치 척도나 저장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다른 화폐 제도를 가지고 있을 때 투기적이거나 심리적 요인 등으로 적절한 환율이 적용되지 않았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노동력이나 상품이 유통되는 양만큼만 화폐가 발행되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유통되는 노동력이나 상품의 양과는 상관없이 화폐가 부족하거나 넘치게 발행되고 저장됨으로써 화폐의 유통량이 노동력이나 상품의 유통량과 맞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외환 시장에서는 하루 2조 달러의 외환이 거래되는데, 이는 세계 주식시장 전체 거래량의 100배가 넘지만 2%만 실제 물건과 서비스의 이동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석유를 달러로만 지불하게 함으로써 달러를 비축하려는 달러 본위 제도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율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금융 투기꾼들이 문제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목표한 국가가 고정 환율을 사용하고 있으면 변동 환율로 바꾸도록 압력을 넣어 환율 조작 게임을 통해 그 국가의 경제가 파탄 나든 말든 이익을 챙기고 있으며, 경제 원조를 빙자로 부채를 진 나라의 금리를 올린 후 부채 탕감을 수단으로 경제를 개방시켜 금융권을 접수함으로써 그 국가의 산업이 무너지든 말든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물론 남아메리카 및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경제 위기를 겪었고 아직도 그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일부 국가가 금융 환란 등으로 경제가 파탄 나거나, 세계 경제가 주기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은 달러가 비상식적으로는 발행되는 화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가 의존하는 달러 본위제 자체의 모순과 금융 투기꾼들이 사익을 위해 만들어 낸 파생 상품에서도 발생하지만 환율 조작에 의해서도 발생하는 것이다.
  해결책이라면 먼저 변동 환율을 통한 환율의 평가 절상이나 평가 절하를 이용해 투기를 하는 환율 시장이라는 도박장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시간과 강도의 노동력을 제공했을 때 세계 어디서나 같은 임금을 받는 세계적으로 단일한 기준이 적용되는 화폐를 유통시키거나 그에 준하는 고정 환율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실제 생성되는 노동력이나 상품만큼만 화폐가 발행되어야 하기에 대출 이자와 같이 본질적으로 무노동(상품도 기본적으로 가치 척도를 생산에 투여된 노동력으로 봤을 때)으로 생성되는 가치를 없애야 한다.
  환경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경제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유지될 수 있게 통제해야 하지만 무역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모든 산업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 경쟁력이 없으나 생활필수품 등 반드시 필요한 사업은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보호해 줘야 한다. 그린백 화폐를 사용한 나치 독일이나 자본을 통제한 말레이시아에서처럼 환율이나 경제 개방을 이용해 착취를 해가는 금융투기꾼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미안해

서평 및 발제문 l 2014. 12. 3. 16:57

미 안 해

- ‘축하해발제문

 

한참 전에 성매매가 크게 이슈화된 적이 있었다. 성매매특별법이 효과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성범죄율을 증가시켜, 성매매를 합법화할 것이냐, 비범죄화할 것이냐, 불법화로 단속과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합법화는 인류 역사상 성매매가 강하게 통제될수록 오히려 음성화되고 성범죄가 늘어나 일반 여성들의 피해를 줄이자는 실용적 입장에서 접근하지만 일부 여성, 그리고 성 자체를 남성을 위한 노리개로 전락시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면 남성의 성매매도 합법화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도 하지만 아직 남성 위주의 성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오히려 성차별을 조장하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일반 업종처럼 관리를 통해 근로 조건이 좋아질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불법화로 인해 성매매가 음성화됨으로써 발생하는 성매매 종사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은 처벌하지 않지만 성매매업자나 성 구매자는 처벌하자는 비범죄화를 대안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비범죄화는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하고 성매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어찌되었든 성매매는 수요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여기에 피해자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커지는 것 같지만 실제 근본적인 것은 성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인 것에서 기인한다. 생존을 위한 최후의 선택으로나 쾌락과 쉽게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를 택하기도 하지만, 실연이라든가 가까운 사람에게서 느낀 배신감에 대해 복수를 하거나 삶을 포기하는 수단으로 가장 타락한 삶이라고 생각해 성매매를 선택하기도 한다. 성폭력을 당해서 자살하거나 정신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성에 대해 서로 너무나 다른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성관계는 성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쾌락의 한 가지일 뿐일까? 성관계가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생명의 탄생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래서 성관계의 방법도 제한하고 자손 번식 외에는 성관계를 불경시하는 문화도 있고, 자유스러운 성관계로 쾌락을 즐기고 유대관계를 맺는 문화도 있다. 이런 성에 대한 생각은 크게 부계사회와 모계사회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으며, 성매매는 부계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생물학적 특성상 일반적으로 여자는 성폭력의 피해자, 남자는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에 대한 폐쇄적 문화는 여성을 더욱 피해자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부계사회에서 순결은 여성들을 소유하고 지배하여 자신들의 대를 잇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남성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임신과 같은 성관계에 대한 결과는 여성에게만 나타나기 때문에 남성의 순결을 여성의 순결보다 중요시하는 부계사회는 없다.

문화는 누군가에는 폭력적일 수 있다.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문화는 유럽 일부 국가처럼 성매매 합법화로 나가기에는 아직 미성숙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 지식은 물론 웃음 등의 서비스, 심지어 정신까지도 팔아먹는다. 이런 사회에서 성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판매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고, 성매매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반 서비스업종의 사람과 같이 대우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성관계가 여성들에게 생물학적으로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졌다면 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구조와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부계사회의 성문화는 생물학적 피해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여성들에게 매우 폭력적인 문화이다.

남성의 한 사람으로서 수백 년 동안 유교 문화로 인해 성문화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우리는 이 미안함이 미안함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성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도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동안 제도적으로 문화적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성관계를 단지 쾌락의 대상으로만 보기에는 생명 탄생과 직접적 관계가 있어 성스러움을 완전히 배제하기가 어려우며, 완전 피임이 사실 불가능해 쾌락의 대상으로만 보는 데는 문제가 있다. 또한 성스러운 것으로만 보기에는 생물학적 욕구를 사회문화적으로나 법적으로 완전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랑=결혼=성관계=자식이라는 異常적인 틀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현실에서 성폭력과 성매매의 문제는 결국 부계적 사회 구조와 문화를 모계적 사회 구조와 문화로 전환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본다.

 

2010년 5월 27일 샨티 출판사를 찾아가 저자 박금선님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책읽기 모임을 했을 때의 발제문입니다.

풍요가 기아를 낳는다

-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를 읽고

 

  풍요는 기아의 어머니이며, 인구 증가는 기아의 아버지이다. 장 지글러는  기아가 육류 소비, 전쟁, 자연 환경, 다국적 기업, 도시화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근본적인 원인으로 신자유주의에 의한 세계 금융자본을 요약한다. 그러나 과연 신자유주의로부터 해방되고 설명한 다양한 요인들이 제거되기만 하면 우리는 기아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수 있는 것인가?

  먼저 지구의 수용 능력을 보자. 장 지글러는 1984년 생산력 기준으로 지구는 120억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오직 생산력에만 기준을 둔 것으로 환경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은 오류를 범한 것이며, 또한 석유가 지금처럼 풍부하고 값싼 세상에서만 가능하다. 지구의 수용 능력은 최소치가 1970년 연구로 10억 명, 최대치는 1967년 연구로 122억 명으로 다양하지만 대부분 100~140억 명이다. 그런데 만일 석유가 더 이상 한 방울도 생산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지금 석유 생산량이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금처럼 석유 의존적인 식량 생산력은 곧 붕괴될 것이다. 석유를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생산력은 25천만~10억 명의 식량만 조달 가능하게 되므로 인구는 1800년대 수준인 현재의 약 1/6만 생존 가능하게 된다.

  최근 세계 곡물 생산량은 소폭 증감을 해가며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제한된 생산량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보다 더 생산력이 향상된다고 하더라도 세계 인구가 모두 굶주리지 않으려면 어느 한쪽도 풍요를 누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산업과 식량 생산과의 관계는 차치하고 식량의 문제만 보더라도 한쪽이 풍요로우면 그만큼 다른 한쪽에서 기아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곡물 생산량과 세계 인구로도 한쪽이 풍요를 누리고 한쪽은 기아에 허덕이는데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고 세계 인구가 안정화 된다는 2050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면 증가하는 인구보다 많은 인구가 기아에 놓이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탄소 발자국을 예를 들면 1인당 2.2ha이며, 지구가 제공 가능한 탄소 발자국은 1.8ha라고 한다. 한 마디로 지구가 수용하기에 인구가 너무 많다. 무엇보다도 먼저 인구가 감소되어야 한다.

  세계 인구의 2%인 농업 인구가 세계를 먹여 살리는 석유 의존의 농업 방식을 버리고, 20세기 이전 60%의 농업 인구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인구가 농부로 전업해야 되지 않을까? 이는 곧 2차 산업과 3차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말이며, 2차와 3차 산업의 인구 감소가 감소되는 관계로 인해 현재 누리고 있는 2차와 3차 산업의 풍요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화학 농업과 기계 농업보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많은 유기농을 하는 소농이 많이 생겨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미국처럼 1파운드의 식품이 약 2,000km 실어날아야 식탁에 오를 수 있다거나, 독일처럼 딸기 요구르트를 먹기 위해서 각 재료들이 총 8,000km를 이동해야 한다면 아무리 넉넉한 생산을 한다 하더라도 이동과 보관에 따른 부패 등의 손실 그리고 막대한 물류 비용 등으로 온전히 분배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내에서 자급자족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자연 환경의 변화로 유기농 자급자족을 할 수 없다면 기계농과 화학농으로 버티며 환경을 파괴할 것이 아니라 유기농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지역으로 이주하고, 그 지역의 생산력에 맞게 이주나 산아 제한 등으로 인구를 조절해야 한다.

현재의 생산력에서의 문제는 우리의 풍요다.

 

2007년 5월 23일 책읽기모임 때의 발제문입니다.

  1. 하모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기아 상태로 몰고가서 인류를 대부분 몰살시키면 다시 풍요로와 진다는 건가요?

    2014.11.30 18:04
    • 초록주의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구의 생산력이 한계를 갖고 있고 이 상태에서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구가 제한되어 있는데, 누군가 필요 이상의 풍요로움을 추구한다면 누군가는 기아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지구의 생산력을 기준으로 인구를 적정 수준으로 줄이는(현재 인구 수준으로서는) 정책을 추구해야지 경제 성장을 위하여 인구 증가 정책을 펴면 그만큼 기아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생태발자국 기준 지구를 2.5개 정도 필요로 함)나 선진국(미국은 5개 정도) 기준으로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삶을 추구하여야 하고 거기서 아낀 식량을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기아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가진 자들이 풍요롭게 즐기기 위해 필요 이상 소비한다면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면 기아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지구의 생산력과 인구를 기준으로 작성된 글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2014.12.02 13:58 신고

에코토피아를 찾아서

- ‘새벽의 건설자들발제문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공상 과학 영화 같은 곳에서 보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 풍요와 기계에 의한 편리성에 의존하는 세상이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혜택을 누리거나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모든 사람과 생명에게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자정 능력 안에서 유한한 자원을 절제하며 사용할 때만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유토피아는 에코토피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많은 사람들이 산업화로 물질문명이 비약적 발전하였음에도 그로 인해 촉발된 황금만능주의 때문에 자연과의 분리, 영성의 파괴, 인간관계의 단절 및 인간성  상실 등에 회의를 품고 대안사회로서의 공동체를 만들어 왔다. 이런 공동체는 대체로 크기가 작지만 구성원 수와 운영 방식 등이 다양하고, 일반적으로 영성과 농업을 기반으로 자급자족 형태의 공동 운영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비주류적 종교나 지나친 성적 자유 등을 갖기도 해 주류적 정서와 관념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함께하기에는 어려움도 있다.

  어느 시대에나 주류와 비주류는 있어 왔다. 진정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주류가 없는 비주류만의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혁명적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사람들의 정서와 관습, 관념, 신념 등을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폭력적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에코토피아는 비주류를 위한 에코토피아였다. 그러나 지금 생태적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는 주류를 위한 에코토피아가 필요하다.

  일반인들의 정서와 관념에 다가가는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없다면 공동체는 비주류를 위한 비주류의 공동체일 뿐 진정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에코토피아를 굳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 왔고 또 새롭게 시도해지고 있는 방식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미 우리 조상들은 품앗이, 두레, 계 등을 통하여 공동체 생활을 해왔으며, 지역 내에서 자연순환적인 자급자족을 해온 농경사회를 이루며 살아왔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에코토피아는 비주류적 성향을 띤 소수자들이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라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모습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자연과 이웃과 함께하는 삶과, 다양한 공동체들의 수많은 사례를 통해 현대의 물질문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주류를 위한 에코토피아가 절실하다. 먼저 그런 주류적 에코토피아를 이룩한 후에 차츰 더 다양성을 갖춘 비주류들만의 에코토피아들로 분화해 나갈 때 진정한 에코토피아가 일구어질 수 있지 않을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생명운동공부모임에서 발제한 내용입니다. ^^

11/17(월) 책읽기모임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저)’를 함께 읽습니다

 

◈ 때: 2014년 11월 17일 요일 저녁 7시

◈ 곳: 성균관대학교 앞 책방 풀무질(02-763-8175)

◈ 준비하면 좋은 것: 나눌 먹거리를 챙겨오면 좋습니다.
    개인컵과 손수건, 장바구니를  챙겨 가지고 다니세요. 
    자신에겐 필요 없지만 남에겐 필요할 수 있는 물건를 가져와 나누는 것도 좋아요.

◈ 연락할 사람: 히어리(010-4728-3472)

                       풀벌레(010-4311-6175)

◈ 읽고 올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철학자) 저, 박세연 역, 엘도라도 출판사)

 

<책 소개>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나는 반드시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살아야 하는가?

 

17년 연속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DEATH’가 책으로 나왔다. 하버드대 정의(JUSTICE)’행복(HAPPINESS)’과 함께 아이비리그(Ivy League) 3대 명강으로 불리는 강의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왔던 심리적 믿음과 종교적 해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로 불리는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교수는 이 책에서 다소 무겁고 어둡게 흘러갈 수 있는 주제를 토크쇼 사회자에 비견되는 특유의 유머감각과 입담으로 흥미롭게 풀어간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방대한 철학사를 다루면서도 난해한 철학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만의 교수법은 대중철학 강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강의할 때 항상 책상 위에 올라간다고 해서 책상 교수님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그의 이 죽음 강의는, 예일대학교 지식공유 프로젝트인 열린예일강좌(Open Yale Courses, OYC)’의 대표 강의로서 미국과 영국 및 유럽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에도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출판사 제공]

 

<저자 소개>

셸리 케이건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철학 교수(사회사상/윤리학 전공).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피츠버그대학교(University of Pittsburgh)와 일리노이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에서 강의했다.
그의 철학은 도덕철학과 규범윤리학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삶과 죽음의 문제, 행복, 도덕적 가치, 공공의 선, 인간의 본성 등에 관한 논문과 저작 및 칼럼을 발표하면서, 공리주의로 대표되는 결과주의 윤리학과 칸트주의로 대표되는 의무론적 윤리학 사이의 논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대표 저작인 《도덕의 한계(The Limits of Morality)》와 《규범윤리학(Normative Ethics)》은 전세계 유수 대학에서 철학 교재로 채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의와 도덕의 불모지를 ‘사막’에 비유해 인간의 도덕성을 재고하는 《사막의 기하학(The Geometry of Desert)》을 출간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출판사 제공]

 

<풀무질책놀이터 찾아오는 길>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 성균관대 방향으로 올라오세요. 성균관대 바로 옆에 지하 1층 풀무질책놀이터가 있습니다.

 

싸이월드 베지투스(http://club.cyworld.com/govegetus)

문의 : 조상우(010-4728-3472, email : endofred@hanmail.net)

채식주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추구합니다.
베지투스는 생명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채식주의 운동 모임으로 채식을 바탕으로
환경, 평화, 인권 등 실천적 생명 사랑 활동을 통해 채식 문화 확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채식은 물론 환경, 평화, 인권 등 생명 사랑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려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

화폐의 종말 제15~17장 발제

-초록주의

 

15장 상업적 거래교환소-한계와 잠재력

상업적 거래교환소는 기업 간 거래가 기존 마케팅 채널 외부에서 기존 화폐 사용 않고 대규모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함.

 

1. 초창기(창업단계) 상업적 거래교환소

많은 물물교환 거래소들이 생겨 잠시 번성하다 사라짐.

실패 원인-구성 및 운용이 미숙(사업의 성격 거의 이해하지 못한 경우나 비양심적 기업가나 마케팅 전문가가 손을 댄 경우)

 

2. 통합단계 상업적 거래교환소

발전 정체기로 고객에 제공하는 주된 가치가 무엇인지, 잠재적 시장이 얼마나 거대한지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음.

 

3. 정체의 문제점: 제한적이고 비생산적인 요소가 남아 있음.

고객의 범위와 수가 제한적

회원사 수(회원 수는 몇 백~몇 천 명)와 다양성 부족하고, 지역적 범위가 한정되고, 공급사슬이 모든 단계가 아닌 소매 쪽에 집중됨.

가장 귀중한 서비스가 신용청산이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데 실패함.

거래소 운영자들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주된 가치 중 다음 두 가지를 강조하기 때문.

. 거래소 회원 기반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의 경쟁력(잠재적 신규 고객 제공)이 점이 핵심 가치면 회원사를 지역 기준 몇 군데만 받아들이면 됨.

. 회원사가 고객과 공급자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활발한 거래 중개

그러나 거래교환소의 가장 큰 특징은 신용청산 서비스임. ,

. 현금 아닌 내부 거래 신용거래: 정치적 통화제도의 기능부진과 결점으로 기업은 과잉 생산하나 이는 생산 능력을 과도하게 확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구매자의 화폐 부족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별도 교환 매개체를 제공하는 신용청산으로 매출을 증대할 수 있음.

가입 조항 일부 내용이 회원들 사이 이해관계 충돌 일으키고 내적인 거래 신용 가치 떨어뜨림.

. 체리 피킹: 운영자가 내부자 정보 등으로 일반 회원이 알기 전에 가장 좋은 구매 조건 취함.

. 빌려 쓰기: 사실상 무제한적인 신용 한도수입 이상 지출과 다른 잠재적 구매자의 경쟁 따돌림 가능.

이로 인해 거래신용 사용이 어려워지고 가치가 떨어짐회원들이 거래 신용 가격과 현금 가격 별도 책정하거나 혼합해 판매가 제시함시스템 유용성 신뢰 하락으로 이어짐.

 

4. 문제 해결 방법

체리 피킹구매 대상과 구매 시기 제한(재판매 목적 구매 금지하고 판매 등록 후 일정 기간 지나야 구매 가능하게 함.)

신용 한도 설정 기준모든 회원이 같은 기준(특권적 접근을 불허하고 객관적 기준으로 신용 할당함.)

 

5. 최고의 가치 제안-현금 없는 신용청산 서비스 현실화 방안

더 많고 다양한 회원 가입시켜야 함규모 커짐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커짐지역 기반 벗어나야 함.

참가 비용 낮춤.

각 회원 내부 신용 한도 할당 받아야 함: 개별 인출한도 기준 설정, 각 계좌의 계약 이행 보증, 악성 부채 손실 처리 방안을 마련해야 함.

운영의 투명성

표준적 절차와 규약 필요

 

16장 신용청산과 지역경제발전

건강한 경제는 자유무역과 보호 무역 양쪽 모두 필요하고 적절한 영역 안에 적절히 배치되어야 하는데, 세계화의 조류는 대형 선박 이외는 모두 박살냄. 이에 대한 대응으로 지속가능성, 지방화, 인간적 규모, 중앙에서 지역으로의 권력 이양이 필요함.

 

1. 공동체 경제 발전에 대한 접근법-신용청산 조직 구축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일자리, 생산성, 혁신 면에서 경제에 더 많이 기여함에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공동체 경제 발전에 관한 접근은 대기업 지역 유치에 집중됨.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 추구하는 조직이나 단체라면 지역 상호신용청산 조직 만드는 것을 핵심에 놓아야 함.

 

2. 지역 안에서의 시스템 설계와 구축 방법

1단계: 경제 구획 설정과 수입 대체

지역순환경제(우리 동네에서 사기): 공동체 모든 부분에서, 특히 지역 사업체, 지방정부, 비영리 부문, 사회적 기업가,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연대 조직 같은 지역 경제적 자원들과 관계들을 중심으로 구획 정하고욕구와 필요성을 공급하고 연결하기 위한 중개 서비스 필요간격 발견 시 이를 대처할 지역 기업 지원이를 위해 지역 소액 대출 기구들이 도움을 주나 빠르게 다음 단계로

2단계: 상호신용청산으로 대안지불수단 제공

다자간 거래 기반으로 한 상호신용청산 과정을 통해 이자 없이 신용 얻고 현금 없이 구매 가능함. 신용 할당은 신뢰받는 발행자에게 몫이 크게 마이너스 계좌 설정 특권을 줌.

3단계: ‘신뢰받는 발행자의 신용이 지역의 대안화폐로

공동체 전체 상대로 신용 공동 발행함. 회원과 비회원이 구매 시 바우처나 증서 등 특정 형태의 단일 신용 도구 이용함. 지역화폐가 보완적 교환매체가 되면 공식 화폐의 흐름을 보충해 지역경제를 고립이 아닌 보호함.

4단계: 지방화 지원 구조-저축, 투자, 금융 그리고 교육

지역 경제의 건강과 독립성 위해서는 교환을 지역 내에서 통제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하나 저축과 투자의 지방화도 빠트릴 수 없음. 지역 안에서 기족 화폐 및 교환신용이 일시적으로 넘칠 때는 몬드라곤 네트워크처럼 그것을 지역의 생산성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쪽으로 돌리는 구조 만들어내야 함.

5단계와 그 이후: 객관적인 가치척도 및 계산 단위로 이행

정치적 화폐의 가치척도가 떨어지고 지역의 청산 네트워크들이 국경을 넘어 연결됨에 따라 구체적인 가치척도에 기초를 두고 지역화폐를 독립적, 객관적, 비정치적 계산 단위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해지는 단계가 됨.

 

17장 완벽한 웹기반 거래 플랫폼

지불 매개체()와 교환 시스템도 비자카드처럼 형태를 바꾸고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는 성질이 내재되어 있음.

 

1. 카드의 편리함

신용카드와 직불카드처럼 전 세계적인 카드 직불 시스템은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매우 편리하지만 불평등하고, 불안정하고, 지속가능하지 않고 아주 비싼 정치적 통화 시스템의 새로운 방식 제공에 불과해 사용자와 경제 전반에 크게 불리함. 이러한 시스템은 개선할 수 있음. 더 나은 화폐 및 은행 제도는 새로운 법이나 정치적 제안 통하는 것보다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자유시장 접근법을 취할 때 성공 가능성은 더 높음.

 

2. 현상 파괴 기술

클레이턴크리스텐센이 분류한 기술에는 현상 지탱 기술현상 파괴 기술이 있는데, 조직이 노동력과 자본, 원료, 정보를 더 가치가 높은 상품과 서비스로 변형시키는 과정인 기술에는 생산뿐 아니라 마케팅, 유통, 투자, 운영관리도 포함됨. 이전과 전혀 다른 가치 제안을 시장에 가져오는 현상 파괴 기술은 단기적으로는 기성 기술에 밀리지만 주변부적이고 새로운 고객 가치를 가지고 있어 마침내 기성 기술과 지배적 기업들을 축출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음.

 

3. 정치적 화폐의 강점과 약점

강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짐. 길들여져 있음. 타 화폐와 교환이 편리함. 교환매개체에 다른 대안이 없음. 정부가 지원, 보호함. 비용과 부작용이 모호해 알기 어려움.

단점: 지배적 기업들은 기존 상품과 서비스 지속적 개선에 주로 관심을 가져, 고객이 필요로 하거나 지불할 의사 이상으로 공급해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소비자들로부터 지나치게 짜냄.

 

4. 신용청산 시스템의 확대 방법

현상 파괴에서 지속성을 향하여

보충화폐는 사회정의, 경제적 평등, 지역의 자기 결정권, 환경 회복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음. 상업적 영역에서는 공식 화폐가 부족한 가운데 교환매개체(신용)로 제공받을 수 있음.

화폐, 은행업에서의 현상 파괴 기술이란?

. 구매자와 판매자의 직접신용청산

. 인터넷 거래

. 웹기반 회계, 정보, 교환 시스템의 투명성

. 강력한 본인 인증 기술

. 정보 암호화

. 사회적 네트워킹

. 판매자와 구매자의 평판 순위 업데이트와 필요 시 언제든 이용 가능

. 상호회사, 공동책임, 지역화된 웹기반 시장 재등장

미국 우편국의 독점적 지위가 팩스나 문자, 이메일, 채팅, 인터넷 파일 전송 등 더 새롭고 빠른 전자 통신 채널로 옮겨가는 것 막지 못함.

웹기반 거래 플랫폼의 핵심 요소

지불수단과 가치척도가 문제

. 시장

시장은 반드시 물리적 장소일 필요는 없음.

. 사회적 네트워크

인터넷은 본질상 비인격적 매체이지만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아주 개인적인 관계를 만들어 냄.

. 지불수단

페이팔과 같은 것도 은행에서 만든 부채 통화라는 기존 화폐만을 용인하며, 회원들에게 이자 없이 신용한도를 할당하지 않기 때문에 은행이 만든 기존의 돈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신뢰받는 중개자의 역할로 제한되어 있음.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지불수단이 존재할 가능성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사적 화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지불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어 왔음.

. 가치척도 혹은 가격 단위

국가화폐는 정부나 중앙은행 정책에 따라 가치가 좌우되어 불안정하고 문제가 많으며, 국가화폐를 지불수단과 가치척도 양자로 규정한 법정화폐 제도 탓에 그런 가치척도는 사라져 어떤 시점에서 법정화폐는 폐지될 것임.

웹기반 거래 플랫폼의 완성

완성시키는 데는 먼저 정치적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지불 수단이 결정적이고, 국가화폐 단위에서 독립된 계산 단위 제공하는 구체적, 객관적, 보편적 가치척도이다. 여기서 우리가 혁신적 지불수단으로 제안하는 것은 직접적인 신용청산임. 또한 객관적 가치척도로 제안하는 복합 상품 기준, 이 요소들이 온라인 시장 및 적합한 사회적 네트워크 도구와 적절히 통합되어야 함.

1 2 
BLOG main image
초록주의(녹색주의)
초록주의는 생명을 섬기고 삶을 나눔으로써 평화로운 공존의 사회를 지향합니다.
by 초록주의

공지사항

카테고리

초록 세상 (558)
행사 안내 (166)
포럼 및 강의 (69)
성명서 및 기사 (20)
초록 정치 (37)
초록 사회 (52)
초록 경제 (14)
초록 문화 (42)
서평 및 발제문 (16)
책 내용 발췌 요약 (30)
자료 (40)
짧은 글 긴 여운 (40)
시인의 마을 (18)
빛으로 그린 그림 (13)
The And (0)

달력

«   2020/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