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내추럴리 데인저러스를 읽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범위에서 나쁜 사람은 착한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물론이다. 착한 사람의 모든 행동이 착한 것이 아니듯 당연히 나쁜 사람의 모든 행동이 나쁜 것도 아니다. 때로는 착한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세상은 생물학적인 범위에서 자연 물질과 인공 물질로 구별할 수 있지만 화학적인 범위에서는 모두 분자로 이루어진 화학 물질일 뿐이다. 물리학적 범위에서는 간단히 말해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핵과 전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화학 물질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며, 일부의 물질만이 인공적으로만 만들어진다.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지구에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자연적인 화학 물질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게 진화하였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자연적으로 잘 만들어지지 않거나 인공적으로만 만들 수 있는 미량의 물질이 만일 인류 초창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인 생명체의 탄생 초창기에 지구 환경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면 인류에게 지금의 자연 물질은 대부분 독이 되었을 것이고, 인류는 지금의 인공 화학 물질이라는 환경에 의존해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모든 물질은 그 양에 따라서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자연 상태에서 우리가 흔히 또는 많이 접하는 것들은 인체에 해가 되기보다는 득이 되는 것이다. 가끔 또는 적게 접하는 것은 약이 되거나 독이 되는데, 보통은 적을 때 약이 되지만 많을 때에는 독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자연 상태에서 아주 적거나 드물게 접하는 물질이나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합성해 자연 상태보다 수십만 배까지 접할 수 있게 만든다면 이는 일반적으로 약이 되기보다는 독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판단하기 쉽게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은 모두 몸에 좋고 인공적으로 합성한 물질은 몸에 나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러한 흑백논리를 지적하는 것은 올바른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지만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는 DDT를 옹호하거나 자연 상태에서 우리 몸에서도 항상 방사능을 만들고 또 쐬고 있다고 원자력이 안전하고 청정한 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연은 인간에게 안전하지만도 위험하지만도 않을뿐더러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런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은 그 변화에 맞춰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적응해가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순간의 편리와 풍요를 위해 우리는 우리 몸이 적응해 나갈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자연을 변형시키고 교란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인공적으로 만든 물질에 점점 더 의존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 물질인 음식물로 섭취하는 비타민은 보통은 구성 성분 중의 아주 일부로 과다 섭취로 죽을 정도로 섭취하려면 아마도 그 전에 배가 터져 죽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공적으로 자연에서 축출해 농축하거나 합성해 만든 것을 한 숟가락 먹는다면 어쩌다 약이, 그러나 그보다는 독이 될 것이다.
인간에게서 뱀이나 독버섯 등과 같이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신에게 위험한 것들은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인공적인 것들은 진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대부분 정보가 축척되지 않아 감각적으로 위험성을 감지하기 어려워 쉽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우리가 이루어낸 현재의 풍요에는 인공 합성 물질의 역할이 주요했기에 자연 물질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만큼이나 인공 합성 물질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 역시 위험하다. 우리에게 진정 위험한 것은 나쁜 사람은 항상 나쁘고 착한 사람은 항상 착하다는 흑백 논리를 가지는 것처럼 자연 물질도 인공 합성 물질도 아닌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과 맹목적인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