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토피아를 찾아서
- ‘새벽의 건설자들’ 발제문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공상 과학 영화 같은 곳에서 보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 풍요와 기계에 의한 편리성에 의존하는 세상이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혜택을 누리거나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모든 사람과 생명에게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자정 능력 안에서 유한한 자원을 절제하며 사용할 때만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유토피아는 에코토피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많은 사람들이 산업화로 물질문명이 비약적 발전하였음에도 그로 인해 촉발된 황금만능주의 때문에 자연과의 분리, 영성의 파괴, 인간관계의 단절 및 인간성 상실 등에 회의를 품고 대안사회로서의 공동체를 만들어 왔다. 이런 공동체는 대체로 크기가 작지만 구성원 수와 운영 방식 등이 다양하고, 일반적으로 영성과 농업을 기반으로 자급자족 형태의 공동 운영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비주류적 종교나 지나친 성적 자유 등을 갖기도 해 주류적 정서와 관념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함께하기에는 어려움도 있다.
어느 시대에나 주류와 비주류는 있어 왔다. 진정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주류가 없는 비주류만의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혁명적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사람들의 정서와 관습, 관념, 신념 등을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폭력적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에코토피아는 비주류를 위한 에코토피아였다. 그러나 지금 생태적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는 주류를 위한 에코토피아가 필요하다.
일반인들의 정서와 관념에 다가가는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없다면 공동체는 비주류를 위한 비주류의 공동체일 뿐 진정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에코토피아를 굳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 왔고 또 새롭게 시도해지고 있는 방식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미 우리 조상들은 품앗이, 두레, 계 등을 통하여 공동체 생활을 해왔으며, 지역 내에서 자연순환적인 자급자족을 해온 농경사회를 이루며 살아왔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에코토피아는 비주류적 성향을 띤 소수자들이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라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모습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자연과 이웃과 함께하는 삶과, 다양한 공동체들의 수많은 사례를 통해 현대의 물질문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주류를 위한 에코토피아가 절실하다. 먼저 그런 주류적 에코토피아를 이룩한 후에 차츰 더 다양성을 갖춘 비주류들만의 에코토피아들로 분화해 나갈 때 진정한 에코토피아가 일구어질 수 있지 않을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생명운동공부모임에서 발제한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