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개발이어야 할까
초록주의
수원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칠보’하면 ‘촌’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지금은 호매실 지구가 서수원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고 ‘칠보’하면 공동 육아 공동체를 시작으로 한 수원 마을공동체의 메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때 칠보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스스로도 촌에 산다고 말했을 정도로 칠보는 수원 사람들한테나 지역 원주민들한테나 시골이었다. 나는 칠보가 대략 어디 있는지만 알았지 성인이 되어서도 한 번 가 본 적이 없다가 몇 년 전에야 모임 때문에 겨우 가보기 시작했다.
칠보 지역이 수원에서 그 동안 저평가된 곳이라 개발의 여지가 많은 새로운 투자처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개발이 안 되어 자연이 파괴되지 않고 지역 공동체가 살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개발로 원래 자연 생태계가 그나마 보존되어 있던 곳이 파괴되고, 그러지 않아도 대형마트를 앞세운 신상권과 구상권으로 나누어졌는데 대단위 개발로 인해 새로 외지에서 들어오는 주민들과 원주민들 간에 혹시나 용인처럼 차별이 존재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용인의 경우 수지에 사는 주민들이 용인 원주민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같은 용인이라도 서울에서 살던 도시인과 촌에 살던 촌놈으로 구별을 넘어 차별을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원주민들 중에는 농사를 짓던 분들이 많아 땅값 상승으로 땅 부자가 된 분들도 있겠지만 땅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아 사실상 쫓겨나는 분들이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개발이나 재개발 되는 지역의 원주민들 중에는 새로 아파트가 지어지면 입주비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가는 경우가 많다. 마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서양인들의 이익을 위해 죽임을 당하고 내쫓기는 것처럼 자신의 삶의 터전을 개발과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기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사회의 건전성은 그 사회의 약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떻게 살아가느냐로 평가된다고 흔히 말한다. 옛날부터 칠보에 살았던 원주민이든 사실상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식물이나 동물 같은 생명들이 자신의 삶터를 잃고 쫓겨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칠보산은 질퍽산(물산)이라 부를 정도로 주변에 자연습지가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개발이 안 된 곳이 없어서 자연습지는 보기 어렵다고 한다. 특히 이곳 습지에 자생했던 해오라기난초는 무차별한 남획으로 멸종되었다고 한다. 칠보산에서 처음 발견된 처녀치마는 지금은 칠보산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개발로 새로 이사 오는 주민들이 구도심지인과 원주민들을 차별하지 않고 또 새로 입주한 주민들 중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 역시 서울에서 집을 구입할 돈이 없어 칠보까지 밀려온 분들이 다수일 테니까.
칠보산은 원래 조선시대에는 치악산이나 진악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칠보라 부른 것은 1910년 이후로 칠보는 돌옷,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구리, 철 등 영덕 칠보산의 일곱 가지 보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칠보산은 원래 여덟 가지의 보물이 있다고 해서 팔보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여덟 가지의 보물이란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수탉, 호랑이, 절, 장사, 금이었는데 어떤 장사꾼이 황금수탉을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칠보산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칠보의 일곱 개 마을은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어서 경조사가 있을 때 일곱 개 마을이 서로 챙겼다고 한다. 나는 칠보산이 다시 팔보산이 되기를 바란다. 장사꾼이 가져간 황금수탉을 다시 찾아서가 아니라, 개발로 땅값이 올라가 돈이 되는 팔보산이 아니라, 약자를 보살피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개발로 새로 이주해 오는 주민들과 원주민들이 ‘공동체’라는 보물을 가진 팔보산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