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주의(녹색주의)

2020년 7월 2일 어느 휴게소에서 비 온 후의 노을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책읽기모임 회원들과 대안화폐를 소규모로 운영해 본 적이 있다. 단위는 한 땀 한 땀의 의미와 땀 흘리는 이었다. ‘은 생산자가 유통자이고 소비자인 자급자족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었다. 또 인간의 모든 사회적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노동이 없는 투자와 투기에 의한 부의 축척을 지양하며, 사람끼리는 물론 지구의 모든 생명들을 돌보며, 삶을 나누는 조화로운 삶을 지향했다. 화폐는 따로 발행하지 않고 거래가 있을 때마다 결과만 카페에 기록했다.

2014년부터 2년 동안은 수원 녹색평론읽기모임 회원들이 주축으로 수원에서 지역화폐 운동을 했다. 돈이 돈을 낳는 불평등과 지역의 돈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지역순환 경제를 목적으로 삼았다. 1년 동안 사전에 수원시평생학습관의 지원을 받아 강의도 마련하고 지역화폐 현장도 답사하는 등 학습 활동을 했다. 지역화폐에 대한 이해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당시 지역화폐 자체를 모르고 있는 지역 활동가들도 있었기에 지역화폐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지역화폐 실천단원을 모집하고 생협, 카페, 음식점 등 가맹점을 모집하여 약 100명 정도가 참여했다. IT회사를 운영하는 운영위원이 있어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지역화폐를 만들었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전자화폐로 단위는 수원이었다.

그 후 2016년에는 혜화(명륜)동에서 우리마을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벼룩시장과 함께 지역화폐를 운영했다. 지역의 책방, 식당, 약국 등 가맹점과 성균관대생, 주민 그리고 풀무질책놀이터협동조합원들이 참여했다. 목적은 아직 공동체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은 지역의 주민, 대학생, 상인이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교류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벼룩시장을 운영하였다. 화폐는 인쇄된 종이에 도장을 찍어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대안화폐(지역화폐) 활동을 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다. 세상을 바꾸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의 방법이고, 하나는 아래에서 위로의 방법이다. 위에서 아래로는 정권을 잡아 제도를 바꾸는 방법이다. 하지만 시민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저항과 부작용을 동반한다. 소수의 진보적 정당이 집권해야만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소수의 진보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래에서 위로의 방법은 시민들의 생활을 바꿈으로써 기존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제 즉, 돈이다. 돈의 흐름을 바꾸면 자연스럽게 체제가 바뀐다. 기존 법정 화폐 시스템의 문제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

내가 경험한 세 번의 시도만 봐도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짐작할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지역화폐를 활성화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아직 버티고 있는 지역화폐도 있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그럼 문제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지역화폐 운영에 있어서 일어나는 문제의 공통점은 돈은 돌고 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돌아야 할 돈이 어느 한 곳이나 몇 곳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렇게 쌓이는 이유는 쌓인 곳은 정작 돈을 쓸 데가 없어서다. 그래서 벼룩시장 같은 것으로 억지로라도 돈을 돌게 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장 돈을 많은 쓰는 곳이 어딜까 생각해 보면 답은 어렵지 않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은 교육에 돈을 많이 쓸 것이고, 집 대출비, 각종 세금과 공과금, 핸드폰 등 전자제품 구입비와 사용비, 의료비 등으로 이웃과 교환할 수 없는 것에 대부분 지출한다. 정부나 공기업, 대기업 등 지역과 관계없는 곳에 주로 지출된다. 의식주 중 이웃과 교환 가능한 의식 비용의 비중은 높지 않다. 과거에는 집도 마을사람들과 함께 짓고 농사도 품앗이로 서로 도왔다. 자기가 농사짓지 못한 농산물은 서로 나누듯이 물물교환하고 옷이나 생활용품들도 사실상 교환이나 마찬가지로 거래되었다. 마을에서 자급할 수 없는 먹을거리나 생활용품은 장날 마을끼리 교환되었다. 이런 자급자족형 경제에서 돈은 사실 유통을 위한 매개체로 서로 간에 신용만 있다면 종이조가리든 쇠붙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즘 유튜브에서 귀농과 관련된 동영상을 보다보면 젊은 사람들이 귀농했다가 몇 억씩 빚더미에 앉았다는 동영상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귀농창업자금은 한 푼도 만져 보지 못하고 농지와 농기계 구입비, 시설비로 나가고 몇 년 시행착오 끝에 겨우 생활비 좀 벌겠다 싶으면 원금을 갚을 상환 기환이 돌아와 빚쟁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 말에 따르면 돈을 버는 것은 농협이나 농기계, 설비업자뿐이다.

농사를 오래 지어 노하우가 많이 쌓인 농부들도 억대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한마디로 빚을 져야 한다. 농지를 더 구입하거나 빌려야 하고, 농기계도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단일 작물을 넓은 농지에 키우거나 돈을 더 투자해 시설재배를 해도 자연재해나 병충해 등으로 흉작이 되거나 풍작이 되어도 농작물 가격이 폭락하기 일쑤다. 2~3년 빚으로 버티다가 한 해 돈을 벌어 갚기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농부는 망해도 농업은 망하지 않는다. 대출 이자로 농기계 판매로, 설비 공사로, 비료와 농약을 팔아 돈 버는 농업 관계자들은 따로 있다. 정부의 지원금은 농부보다는 이들을 위해서 있다. 귀농인들이 많아질수록 고달파질수록 이들은 돈을 벌고, 농부들이 망해도 이들은 돈을 번다. 귀농 초년생들이 농사로 자리잡기까지는 각자의 노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 년이 걸린다. 이들에게 귀농창업자금으로 일확천금의 기회를 주는 것처럼 속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외형을 부풀리기 좋아하는 정부 관계자나 농업 관계자들은 농업이 더 금융화되기를 원하겠지만.

나는 농사로 떼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우선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돈은 우리를 편리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어야 한다. 돈 자체가 목적인 사람은 적어도 농사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보고 과거처럼 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미쉬 공동체처럼 살라고도 할 수 없다. 과거보다 훨씬 발달한 기술문명 덕분에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과거보다 자급자족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고 적은 노력으로도 풍요로울 수 있다.

마을에서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집만 해도 밭작물은 자급자족의 2배 넘게 생산하고, 옥상에 태양광발전기 3Kw 2기가 설치되어 있어 사실상 전기는 남는다. 생존에 꼭 필요한 것만 자급할 수 있다면 마을에서 각자 남는 수확물을 나누고, 일손을 돕고, 재능을 나누어 나머지를 채우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과거처럼 굳이 물물교환이나 품앗이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얼마든지 마을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해 해결할 수 있다. 화폐는 마을에서 돌고 도는 유통의 기능만 하면 된다. 경제 전반에 걸쳐서 70~80%만 자급자족하면 국내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생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농사를 지어 떼돈을 벌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대농이 아니라 소농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급자족형 마을의 순환경제에서 화폐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예를 들어 보겠다. 마을에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가게들이 있었다. 갑자기 대형 마트가 마을에 들어서서 모든 물건을 마을 가게보다 싸게 팔자 사람들은 모두 대형 마트를 이용했다. 대형 마트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모든 돈을 갖고 떠났다. 마을에 돈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서로 빚을 지고 있었지만 값을 수가 없었다. 서로 망할 지경이라 더 이상 빚을 질 수 없었다. 어느 날 여행객이 마을 여관에 들어왔다. 여행객은 10만 원을 내고 숙박비를 지급했다. 여관 주인은 재빨리 10만 원을 쌀집에 갚았다. 쌀집은 고깃집에 10만 원을 갚았다. 고깃집은 옷집에 10만 원을 갚았다. 옷집은 저번에 친구들이 와서 묶었던 여관에 10만 원을 갚았다. 여행객은 잠시 쉬다가 짐을 풀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급한 일로 일정이 바뀐 여행객은 여관 주인에게 미안하지만 숙박하지 못하고 그냥 가야겠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짐도 풀지 않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여관 주인은 환불을 해 주었다. 마을은 다시 돈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모두의 빚도 없어졌다.

한때 경제 성장이 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든 때가 있었다. 3%, 은행 이자만큼은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성장 신화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깨졌다. 많은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이 인원을 줄이고 폐업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라가 망해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거나 세계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일은 없었다. 하다못해 20년 전, 아니 10년 전으로 경제가 퇴보하지도 않았다. 배달업이나 마스크 제조업 등 코로나 관련 산업은 오히려 급성장했다. 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30년 동안 다국적기업들이 그 지위를 잃고 국민들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었지만 망하지도 않았고 아직도 국제 사회에서 무시당할 정도로 국력이 쇄약해지지도 않았다.

이런 우려는 우리가 이미 성장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80~90년대에 시골에서 올라온 외할아버지의 말씀이 기억난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일 년에 한 번 자식들이 모여 살던 수원으로 올라와 열흘에서 보름 정도 나들이도 하고 자식들 집에서 지내다 내려가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올라오실 때마다 수원의 모습이 변해서 길을 찾기 힘들다고 하셨다. 수도권 도시에서 80년대 이후 과연 한 번이라도 공사가 끊긴 적이 있었던가? 2000년대에 들어서도, 2010년대에 들어서도 더 이상 아파트나 건물을 지을 때가 없겠지 생각했지만 2020년대가 들어서도 타워크레인이 한 번도 완전히 철거된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나는 2000년을 전후로 사진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 매달 한두 번은 동호회원들과 지방의 사진 찍기 좋은 명소를 찾아다녔다. 2~3년에 한 번은 다시 찾는 곳이 있는데 갈 때마다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새로운 도로, 특히 자동차전용도로가 지방 중소도시들 간에 생겨 알던 길을 찾기 어려워져서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 찍을 시간을 확보하려면 가는 시간을 아껴야 하는데, 이런 도로들은 주말에 더욱 편리했다. 다들 세상 좋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교통량을 보면 굳이 이런 도로들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생필품이 된 가전제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동네의 부자들만 갖고 있었던 흑백텔레비전이나 전화기가 어느 순간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보통 집에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보급되어 있는 정도였다. 요새 젊은이들에게는 동네사람들이 모여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은 물론 지금은 집에 아예 없거나 장식품이 되어 버린 일반 전화기를 돈을 주고 이용했다는 말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다. 흑백텔레비전이나 전화기에서 시작 된 전자제품은 선풍기, 세탁기, 컬러텔레비전, 비디오, 에어컨 등 생각하지도 못했던 제품과 가스레인지와 보일러 등의 등장과 구입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성장과 풍요의 달콤함에 빠져들었고 이를 제대로 즐겼다. 새로운 전자제품의 등장과 구입은 우리를 설레게 했다. 그런데 다들 알고 있듯이 새로운 전자제품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수기, 김치냉장고, 식기세척기, 스타일러, 와인셀러, 핸드폰에 이어 스마트폰까지 굳이 필요할까 싶은 제품까지, 집의 크기를 늘리지 낳으면 더 이상 설치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등장했고, 우리는 더더욱 편리함과 소비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꿈도 못 꾸었던 제품이 지금은 당연히 있어야 할 생필품이 되었을 뿐 아니라 IoT, AI, AR, VR 등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세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미디어에서 분위기를 더욱 조장하였다. 성장의 속도는 우리는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울 만큼 빨라 조금만 방심해도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멈추면 우리는 뒤쳐지고 끝내 소외당하고 거세될 불안함에 떨게 했다. 우리는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처럼 경제를 망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성장 열차는 과연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원자재를 수입해서 가공한 것을 수출해 먹고 사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성장 신화는 수출 신화다. 수출만이 살길이었다. 상품은 물론 사람도 수출해야 했다. 독일로,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굶지 않기 위해서,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낯선 땅에서 땀과 피를 바쳐야 했다. 우리는 또 돈이 되는 산업을 위해 돈이 되지 않는 농업을 기꺼이 희생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는 부족한 에너지를 수입했고, 값싼 농산물과 공산품을 수입해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한때 미국 마트에서 중국 상품 없이 생활할 수 있을까 조사를 해봤더니 마트 상품의 70% 정도가 값싼 중국산이라 서민들은 중국 상품 없이 생활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적이 있다. 미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임에도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자급할 수 있음에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수입하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별로 없기에 수출로 돈을 벌어 값싼 농산물과 공산품을 수입해 풍요를 누리는 대표적인 나라다.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우리는 돈을 더 벌려고도 하지만 같은 상품을 더 싸게 구입하려고 많은 나라와 자유무역협정도 맺고 있다. 미국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식량과 에너지가 넘쳐 수출하는 나라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어려운 나라다. 생존에 가장 필요한 식량과 에너지의 수입 의존도가 너무 심해 심각할 정도이지만 역대 정부들은 언제든지 수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성장하지 않는다고 우리 생활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15,000달러 이상이면 행복은 소득과 상관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성장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세계 기후 위기와 코로나 같은 전염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전쟁 등과 같은 요인으로 우리는 언제든지 준비되지도 않은 채 급격히 탈성장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바람직한 방향은 우리가 스스로 탈성장 시대를 준비해 자급자족으로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상황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농업 발달은 세계 인구를 늘려 왔다. 과거 한 지역의 인구 증가는 그 지역의 농업 생산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가능했다. 농업 생산력은 다양한 농업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증가했지만 근대에 들어서는 농약, 비료와 농기계에 의존해 증가했고 세계 인구도 그에 따라 급격히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사치품이라고 수 있는 각종 전자제품의 증가로 전기 등 에너지가 생존에 꼭 필요한 양에 훨씬 넘치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다 지금은 농산물을 스스로 생산할 수 없어도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수입할 수 있으면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탈성장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인구와 풍요가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식량과 에너지 자급력은 국민 모두에게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기는커녕 생존시키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탈성장 시대에는 우리가 주력했던 수출 주도의 경제 체계를 바꿔야 한다. 세계가 여러 이유로 급격히 탈성장으로 돌아서면 위기를 극복하기에 희생이 너무 크다. 우리는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자발적으로 탈성장 시대를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식량과 에너지만을 자급자족하기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는 너무 많다. 지금 인구가 줄어들어 인구를 늘리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한다.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다시 인구를 늘리면 20~30년 후에는 나이별 인구가 모래시계 모양으로 분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생산력 있는 인구가 깔때기 모양의 지금 분포보다 늘어난 인구만큼 더 큰 희생을 감당해야 한다. 그만큼 자급자족과도 더 멀어지기 때문에 인구는 우리 국토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만큼 인구를 줄여야 한다. 내수만으로도 성장하기 위해서 인구가 1억 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인구가 가능한 적을수록 좋다고 본다. 자급자족을 위해서 우리나라의 국토 상황으로는 많아도 현재 인구의 1/2은 넘지 않아야 한다.

탈성장 시대에 산업 구조는 자급할 수 있는 에너지로 가능한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산업을 주축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도 자급할 수 있는 천연자원과 자연을 활용한 에너지 생산에 맞춰 자급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미리 준비할수록 희생은 줄어들 것이고, 준비가 늦을수록 희생은 커질 것이다. 몇 만, 몇 십만 명의 문제가 아니라 천만 단위 희생이 발생할 수 있는 일이 당장 눈앞에 펼쳐지지 않는다고 설마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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