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주의(녹색주의)

미국의 인지심리학자 제임스 매클렐랜드는 일반화가 "우리의 지적 행위 능력의 핵심이다."고 주장했다.

 

- 도둑맞은 뇌,대니얼 샥터 지음,홍보람 옮김,인물과사상사 펴냄,2023.2.3

올해 1월 보름에 팔달산에 눈이 살짝 내렸다.

옛날에는 강감찬 장군상이 있던 자리였는데...

세월은 눈 녹듯이 빠르게 지나고

벌써 더위를 걱정해야 할 계절이 왔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모임 구성원 중에 이천에서 비닐하우스 없이 유기농을 하는 농부가 한 명 있었는데 항상 판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유기농산물 중에서도 비닐하우스를 하지 않는 경우 가격도 가격이지만 농산물의 품질이 고르질 않아 판로가 쉽지 않고 안정적으로 수입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모임에서 뜻 있는 사람들끼리 꾸러미 상자로 농사를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농부는 매달 25,000원을 내면 한 달에 한 번, 50,000원을 내면 한 달에 두 번씩 편지와 함께 꾸러미 상자를 보내주기로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구성원이 몰려 있는 서울의 일부 지역만이라도 한 곳에 직접 배달을 해서 근처에 사는 구성원들이 찾아가게 했다. 구성원과 농부의 직접적인 관계를 중요시하고 복잡한 유통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부가 서울은 물론 수도권에 사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직접 배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최소한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천에서 서울로 배달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시간에 농부가 쉬거나 농사에 더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결국 모든 지역을 택배를 이용해 배달하기로 했다. 물론 택배를 보내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보낼 때마다 편지를 쓰고 일일이 포장해야 하는 데다 택배비도 결코 싸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구성원 중에 박스를 지원해 주는 분이 있어서 포장비를 일부 아낄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농부와 소비자와의 관계를 중요시해서 농사가 바쁠 때는 농활로 농사를 도와주러 가기도 했고, 농부가 식사 초대를 해 구성원들과 교류의 장도 갖기도 했고, 김장철에는 농가에 모여서 김장도 함께 담갔다. 하지만 겨울이 찾아오자 문제가 발생했다. 비닐하우스를 하지 않는 농부가 생산할 수 있는 농산물이 없어서 꾸러미 상자로 보낼 것이 없어졌다. 결국 농부는 봄이 와서 정상적인 농산물을 보낼 때까지 돈을 받지 않겠다는 편지를 넣은 꾸러미 상자를 보냈다. 하지만 우리가 꾸러미 상자를 시작한 이유는 농부가 지속적으로 농사를 짓게 지원하는 것이었으므로 대신 농산물이 많이 생산될 때 더 보내면 되니 부담 갖지 말라며 돈을 계속 보냈다.

다행히 꾸러미 상자가 지인들을 통해 조금씩 알려져 구성원들이 늘어 농부는 판로 걱정 없이 농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구성원들 중에는 혼자 사는 사람도 있었고, 집을 며칠 비우는 사람도 있었다. 농산물이 많이 생산될 때는 혼자 사는 경우 보내온 농산물을 모두 처리할 수 없었고, 하루라도 집을 비워 꾸러미 상자를 제 때 받지 못하거나 하면 한여름에는 농산물이 시들거나 상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한 농가에서 생산하는 데는 품목이 아무래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농부가 보내주는 대로 받기로 했다. 하지만 농부로서도 몇 가지 농산물만 생산하기에는 구성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서 최대한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했다. 그러니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구성원들마다 취향이 다르므로 좋아하는 농산물이 없을 때는 따로 사서 먹어야 했고, 구성원들마다 싫어하는 농산물들도 달랐다. 이웃이 있거나 친척이 가까이 사는 구성원은 친지들에게 남거나 안 먹는 농산물을 나눠줘도 되지만 가까이에 친자가 없이 혼자 사는 구성원들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겨울에 농산물을 보내주지 못하고 품목에도 한정적이라 농부는 결국 다른 농부를 섭외했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유기농을 짓는 농부였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들의 신념이 달랐기 때문이다. 꾸러미 상자를 처음 시작한 농부는 대충 다듬은 농산물을 그대로 보냈다. 그 대신 양은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농부는 그렇게 보내면 구성원들이 손질하면서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들이 나오므로 보내는 것을 씻기만 하고 바로 먹을 수 있게 손질해 보냈다. 깔끔했지만 양은 좀 줄었다. 나중에 참여한 농부는 처음 시작한 농부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마찰을 빚었다. 결국 둘은 갈라섰고 구성원들도 갈라졌다.

구성원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처음 시작한 구성원들은 농부를 지원한다는 이유에서 시작했다. 나 역시 그 당시 100~200평 정도 농사를 짓고 있었고 자급할 정도였지만 한 농가라도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참여했다. 하지만 나중에 참여한 구성원들 중에는 농산물이 한참 많이 나오는 철에만 참여하고 농산물이 적은 겨울에는 빠져나가는 경우가 생겼다. 이런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발생하는 문제이고 일정 수준의 구성원이 유지되면 농부를 지원하는 데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다행히 우리의 경우 농부를 지원하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이상의 문제에서 보듯이 공동체지원농업이 본래 취지에 맞게 유지되고 확장되기는 쉽지 않다. 공동체지원농업이 제대로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먼저 여러 농가가 참여해 농산물을 나눠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계절적으로 꾸준히 일정한 양의 농산물을 보내고 한 농가당 적어도 한두 달의 농한기를 가져 휴식과 함께 관련 농업 기술을 배우고 익힐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구성원의 기호에 맞게 다듬은 농산물이나 가공품까지도 생산해서 구성원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스템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공동체지원센터가 있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 공동체지원농업센터가 있어 농부가 생산한 농산물이 한 곳에 모이고 이곳에서 구성원들이 찾아와 농산물을 구매해 가는 것을 영상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공동체지원농업센터는 없지만 지금 웬만한 지역에는 한 개 이상의 로컬푸드센터나 매장이 있다. 이곳에 지역 농민들이 그날 수확한 농산물을 가져와 직접 포장하고 가격표를 붙인다. 농부에게는 사실 귀찮은 일이지만 싱싱한 농산물을 직접 소비자가 살 수 있고, 농부는 충분한 가격을 받는 이점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공품도 팔고 있으며, 쌀과 같은 일부 농산물은 학교 급식으로도 대량 판매된다. 우리가 따로 공동체지원농업센터를 만들 수 없다면 기존의 로컬푸드센터나 매장을 이용해서 복합 공간으로 이용해 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만으로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부들은 매월 일정한 금액을 급여식으로 공동체지원농업센터로부터 받고 일정 간격으로 각자 할당된 생산물을 기본적으로 보낸다. 소비자들은 매월 일정 금액의 회비만큼 농산물을 선택해 가져가게 할 뿐 아니라 원하면 추가로 돈을 지불하고 더 구매할 수 있게 한다. 센터에서는 소비자를 확보하고 전체 회비만큼 생산할 농부를 섭외해 품목과 생산량을 할당하며, 생산자와 소비자 공동체를 위한 효소 만들기, 장 담그기, 김치 담그기 등의 각종 체험 행사와 축제 등을 기획한다. 이렇게 기존의 꾸러미 상자와 생협의 장점을 합쳐 놓은 형태로 공동체가 운영된다면 이상적인 공동체지원농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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