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주의(녹색주의)


[기자회견문] 

진실 왜곡, 편파 수사

검찰의 사망을 선언한다!


‘경찰 무죄, 철거민 유죄’ 아니 ‘공권력 무죄, 생존권 유죄’ 아니 ‘살인자 무죄, 희생자 유죄’라는 21세기 들어 가장 편파적인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했던 사람들에 대해 수천명의 경찰과 경찰특공대가 살인진압, 강제진압으로 5명의 철거민과 경관 1명이 죽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모든 책임이 철거민들에게 있고 경찰과 용역, 건설자본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발표를 했다.


오늘 발표된 검찰의 수사결과는 거짓말로 가득 차있다. 진상조사단에서 사건 전날 상황이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마치 도심테러라도 있었던양 현장 상황을 확대, 과장, 왜곡하였다. 새총을 발사했더니 160미터나 나간다, 물 위에 시너를 뿌리니까 불이 붙는다는 둥, 초등학생 과학 실험에나 어울릴 법한 결과들을 가지고 철거민들을 테러범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철거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체인 전철연을 불법․폭력 시위를 일삼는 배후세력으로 지목하고 온갖 마녀사냥을 자행했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경찰의 무리한 공권력 투입과 살인진압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화재원인에 대해서도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주장’만을 되풀이 했다. 누가 뿌리는지 어떤 액체인지도 모를 동영상을 제시하며 철거민이 시너를 뿌리는 장면이라며 증거로 들이 밀었다. 화염병에 불이 났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시너에 불을 붙이니 불이 났다는 하나마나한 실험을 해 놓고 이것을 증거라고 들이 밀고 있다. 그 결과 누가 던진 화염병인지 모르지만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불이 났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경찰과 용역깡패에 대해서는 당일 사건에 대해 아무 죄가 없다고 발표했다. 수천명의 경찰과 경찰특공대가 단 하루만에 전격투입되어 강제진압한 결과 6명이나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이것을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라고 발표했다. 진압작전 계획서를 직접 결재하고 당일 작전 시작과 마무리 보고까지 받은 김석기 청장 내정자가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또 경찰 무전 기록에도 남아 있는 용역깡패의 실체에 대해서 ‘진압 현장에 용역은 없었고 다만 지휘관이 착오일 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경찰의 변명을 그대로 수용했다.


이렇듯 사건의 진실을 은폐 왜곡하고 어느 한 편의 주장에만 귀 기울이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누가 믿을 것인가? 검찰 수사결과는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철거민들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짜맞추기 수사로 경찰과 용역, 건설자본에게 살인면죄부를 주는 21세기 들어 가장 편파적인 수사결과를 조작하여 발표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 1월30일로 예정되었던 수사결과발표를 2월 5일로 한 차례 연기하였다. 그러더니 다시 2월6일로 연기했고 또 2월9일로 연기하는 등 세 차례나 발표를 연기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수사기간 내내 증거가 제시되면 마지못해 진행하는 ‘뒷북수사’와 그나마 죄가 없다는 식의 ‘면죄부 주기’에 급급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경관 1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철거민들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상의 혐의를 적용했다. 반면 철거민 5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진압 공동정범 경찰과 용역반원들에게는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 경찰과 용역, 그 누구에게도 죄가 없다면 철거민들이 자살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엄정한 법집행을 운운하며 검찰과 경찰을 두둔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철거민과 유가족을 더 죽여야 한단 말인가? 고인들과 유가족들의 피맺힌 원한이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


우리는 권력의 하수인,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의 발표가 검찰 스스로 사망신고를 한 것으로 간주한다.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한 수사결과발표로 살인진압 희생자인 철거민을 살인자로 몰아갔으며, 진실을 호도하고 살인자를 두둔하였다. 진상규명을 위해 우리는 정치권에 국정조사와 특검을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대표자 비상시국농성에 돌입하고 투쟁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며, 검찰 수사결과의 무효화를 선언하고 전면 재수사 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각계의 시국선언을 필두로 모든 양심적 세력과 함께 비상시국회의를 개최할 것이다. 그리고 제 4차 범국민추모대회를 희생된 철거민들에 대한 추모 뿐 아니라 검찰 수사 무효화를 위한 국민적 선언의 장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 철거민을 살인자로 만드는 검찰 수사 중단하고 전면 재수사 하라!

- 대통령은 유족앞에 사죄하고 김석기, 원세훈을 구속 처벌하라!

- 용역과 건설자본 비리 즉각 수사하라!

- 구속된 철거민을 즉각 석방하라!


2009. 2. 9


용산철거민 희생자 유가족 일동 /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대표자 일동

직장인 장일순

- '좁쌀 한알' 발제문


‘좁쌀 한알’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 사회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무위당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가이다. 바로 당신이 무위당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아니, 무위당이 지금의 당신과 같은 환경 속에서도 무위당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이다.

나는 한 마디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무위당이 물려받은 재산도 별로 없고 특별한 재주도 없고 교육도 특별히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모두 당장 끼니를 굶어야 할 처지라면 무위당이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특별한 재주도, 물려받은 재산도, 지식도, 인맥도 없는 무위당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결국 평범한 직장을 구해야 한다. 그가 속한 집단의 이익이 다른 집단의 손해에 의한 것이고, 다른 집단의 이익이 그가 속한 집단의 손해를 의미하는 경제 활동 속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는 무위당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인의 생활이란 모든 게 분리되어 있어서 어느 한 부분이 모든 부분을 의미하는 농경생활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가족과 이웃과 농사 등 모든 관계 분리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농사일이 가족의 일이며 이웃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다. 가족, 이웃(취미 모임 등), 일이 분리되어 있어서 일에 열중하면 가족에 소홀해지고 가족에 열중하면 이웃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도 물론 자신을 낮출 수는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나 어린이 앞에서도 당장 땅바닥에 엎드려 절할 수 있고, 오지랖 넓게 여기 저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일까. 며칠을 집을 직장을 비우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알아보러 다닐 수 있을까? 누군가 자신을 찔렀을 때 칼을 닦아주며, 찌르느냐고 수고 많았다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아니 가족을 위해서라도 찔리기 전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찔린 후에도 살아나려고 발버둥 쳐야 하지 않을까.

직장인 장일순이라면 이 시대에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갔을까. 나는 직장인 장일순이 무척 궁금하다. 내가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가 궁금하다. 분명 무위당은 존경받아 마땅한 이 시대의 선생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벽을 느낀다. 평범한 집안과 평범한 능력을 갖고 이 시대의 훌륭한 인격체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미 무위당이 보여준 것을 무지한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완전해 보이는 인격만이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진정한 개혁은 실천에서부터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분리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서로 모순되는 모든 것을 실천할 수 없다. 불완전한 실천으로 우리는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무위당의 반만이라도 닮으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우리는 모순된 현실을 개혁할 수 있지 않을까? 실천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완전한 하나의 실천이 아니라 불완전한 실천들이 모여 완전한 개혁을 이루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인격은 실천이며, 불완전한 것들로 이루어진 완전함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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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18일 책읽기모임 발제문입니다. ^^



플러그를 꼽는 사람들


- '플러그를 뽑는 사람들' 발제글


모든 사회가 아미쉬 공동체와 같은 공동체 사회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아미쉬 공동체는 지금과 같은 물질 문명의 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지금의 문명 안에서 보장된 하나의 탈출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미래 사회의 대안은 될 수 없다고 본다.

우선 근본적인 생태 관점에서 농업 역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농업이 인간을 굶주림으로부터 해방시키기보다는 인간을 노동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수렵채취 시기 인간은 하루 4시간의 노동력으로 먹을 것을 해결했으며, 남는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예술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류의 수가 자연이 주는 대로 먹고 살 정도로 충분히 적었기에 가능했던 시기이다.

농사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고 또 많은 아이를 먹이기 위해 땅을 개간해야 하는 생태파괴적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고 한다. 생태적인 관점에서 인간이 노동 집약적인 농사를 통해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 각각이나 가족 단위의 소집단이 이동하며, 자연을 인공적으로 개간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 내에서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만일 아미쉬 공동체처럼 물질 문명의 기본인 전기를 사용하는 제품을 거부한다면 전기나 환경 파괴적인 에너지를 통해 만들어진 물건 역시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단지 현재의 물질 문명 안에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고 선택한 친환경적(발재봉틀 등) 제품이나 마차 등의 친환경적 교통 수단을 사용한다고 해서 물질 문명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마차의 발명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지도 않고 더 문명화 된 교통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완전한 바느질이 아니라 발재봉틀을 이용하는 것은,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것으로 어찌 보면 기회주의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 수위의 문명 공동체 사회는 커다란 자연 재해를 받는 지역이 아닌 곳이기에, 국가가 그들의 사회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

다양성을 지향하는 생태적 관점에서도 모든 사회가 아미쉬 같은 가족 제도나 공동체처럼 획일화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되며 공동체만 존재해서도 안 된다. 또한 인간의 다양한 창의성과 지적 호기심도 금지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다양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성이 보장되듯이 과학이나 수학은 물론 인류학 등에 대한 지적인 탐구도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 세계는 달을 왕복할 수도 있으며 지구를 5개나 필요로 하는 미국 같은 나라가 있는가 하면 환경의 변화가 없는 곳에서는 아직도 구석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종족도 있다. 그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문명이란 어떤 것일까. 어느 것이 더 생태적인 삶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 모든 생명은 어느 한 순간에 머물러 있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모든 생명은 다양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 남으려는 역동적인 존재인 것이다.

만일 아미쉬 공동체의 기회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양극단 즉, 생활방식은 수렵채취의 구석기적이면서도 첨단 과학을 이용할 줄 안다면, 인류는 가장 생태적이면서도 어떤 환경의 변화(빙하기나 운석 충돌 등)에도 계속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물질 문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는 인류가 종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이다. 물질 문명의 발전이 거꾸로 우리 생존을 위협하게 해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다시 플러그를 꼽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을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하면서까지 우리의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자정 능력 안에서 문명을 추구하며, 앞으로 다가올, 다가올지도 모르는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우리의 생존을 지켜나가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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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22일 책읽기모임 발제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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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셨네요, 블질. 축하해요. 함께 즐겁게 블로깅합시다. 차근차근 읽어볼께요.

    2009.02.0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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