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주의(녹색주의)

한때 경제 성장이 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든 때가 있었다. 3%, 은행 이자만큼은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성장 신화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깨졌다. 많은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이 인원을 줄이고 폐업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라가 망해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거나 세계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일은 없었다. 하다못해 20년 전, 아니 10년 전으로 경제가 퇴보하지도 않았다. 배달업이나 마스크 제조업 등 코로나 관련 산업은 오히려 급성장했다. 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30년 동안 다국적기업들이 그 지위를 잃고 국민들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었지만 망하지도 않았고 아직도 국제 사회에서 무시당할 정도로 국력이 쇄약해지지도 않았다.

이런 우려는 우리가 이미 성장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80~90년대에 시골에서 올라온 외할아버지의 말씀이 기억난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일 년에 한 번 자식들이 모여 살던 수원으로 올라와 열흘에서 보름 정도 나들이도 하고 자식들 집에서 지내다 내려가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올라오실 때마다 수원의 모습이 변해서 길을 찾기 힘들다고 하셨다. 수도권 도시에서 80년대 이후 과연 한 번이라도 공사가 끊긴 적이 있었던가? 2000년대에 들어서도, 2010년대에 들어서도 더 이상 아파트나 건물을 지을 때가 없겠지 생각했지만 2020년대가 들어서도 타워크레인이 한 번도 완전히 철거된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나는 2000년을 전후로 사진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 매달 한두 번은 동호회원들과 지방의 사진 찍기 좋은 명소를 찾아다녔다. 2~3년에 한 번은 다시 찾는 곳이 있는데 갈 때마다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새로운 도로, 특히 자동차전용도로가 지방 중소도시들 간에 생겨 알던 길을 찾기 어려워져서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 찍을 시간을 확보하려면 가는 시간을 아껴야 하는데, 이런 도로들은 주말에 더욱 편리했다. 다들 세상 좋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교통량을 보면 굳이 이런 도로들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생필품이 된 가전제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동네의 부자들만 갖고 있었던 흑백텔레비전이나 전화기가 어느 순간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보통 집에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보급되어 있는 정도였다. 요새 젊은이들에게는 동네사람들이 모여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은 물론 지금은 집에 아예 없거나 장식품이 되어 버린 일반 전화기를 돈을 주고 이용했다는 말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다. 흑백텔레비전이나 전화기에서 시작 된 전자제품은 선풍기, 세탁기, 컬러텔레비전, 비디오, 에어컨 등 생각하지도 못했던 제품과 가스레인지와 보일러 등의 등장과 구입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성장과 풍요의 달콤함에 빠져들었고 이를 제대로 즐겼다. 새로운 전자제품의 등장과 구입은 우리를 설레게 했다. 그런데 다들 알고 있듯이 새로운 전자제품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수기, 김치냉장고, 식기세척기, 스타일러, 와인셀러, 핸드폰에 이어 스마트폰까지 굳이 필요할까 싶은 제품까지, 집의 크기를 늘리지 낳으면 더 이상 설치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등장했고, 우리는 더더욱 편리함과 소비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꿈도 못 꾸었던 제품이 지금은 당연히 있어야 할 생필품이 되었을 뿐 아니라 IoT, AI, AR, VR 등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세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미디어에서 분위기를 더욱 조장하였다. 성장의 속도는 우리는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울 만큼 빨라 조금만 방심해도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멈추면 우리는 뒤쳐지고 끝내 소외당하고 거세될 불안함에 떨게 했다. 우리는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처럼 경제를 망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성장 열차는 과연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원자재를 수입해서 가공한 것을 수출해 먹고 사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성장 신화는 수출 신화다. 수출만이 살길이었다. 상품은 물론 사람도 수출해야 했다. 독일로,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굶지 않기 위해서,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낯선 땅에서 땀과 피를 바쳐야 했다. 우리는 또 돈이 되는 산업을 위해 돈이 되지 않는 농업을 기꺼이 희생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는 부족한 에너지를 수입했고, 값싼 농산물과 공산품을 수입해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한때 미국 마트에서 중국 상품 없이 생활할 수 있을까 조사를 해봤더니 마트 상품의 70% 정도가 값싼 중국산이라 서민들은 중국 상품 없이 생활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적이 있다. 미국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임에도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자급할 수 있음에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수입하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별로 없기에 수출로 돈을 벌어 값싼 농산물과 공산품을 수입해 풍요를 누리는 대표적인 나라다.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우리는 돈을 더 벌려고도 하지만 같은 상품을 더 싸게 구입하려고 많은 나라와 자유무역협정도 맺고 있다. 미국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식량과 에너지가 넘쳐 수출하는 나라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어려운 나라다. 생존에 가장 필요한 식량과 에너지의 수입 의존도가 너무 심해 심각할 정도이지만 역대 정부들은 언제든지 수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성장하지 않는다고 우리 생활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15,000달러 이상이면 행복은 소득과 상관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성장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세계 기후 위기와 코로나 같은 전염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전쟁 등과 같은 요인으로 우리는 언제든지 준비되지도 않은 채 급격히 탈성장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바람직한 방향은 우리가 스스로 탈성장 시대를 준비해 자급자족으로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상황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농업 발달은 세계 인구를 늘려 왔다. 과거 한 지역의 인구 증가는 그 지역의 농업 생산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가능했다. 농업 생산력은 다양한 농업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증가했지만 근대에 들어서는 농약, 비료와 농기계에 의존해 증가했고 세계 인구도 그에 따라 급격히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사치품이라고 수 있는 각종 전자제품의 증가로 전기 등 에너지가 생존에 꼭 필요한 양에 훨씬 넘치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다 지금은 농산물을 스스로 생산할 수 없어도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수입할 수 있으면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탈성장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인구와 풍요가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식량과 에너지 자급력은 국민 모두에게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기는커녕 생존시키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탈성장 시대에는 우리가 주력했던 수출 주도의 경제 체계를 바꿔야 한다. 세계가 여러 이유로 급격히 탈성장으로 돌아서면 위기를 극복하기에 희생이 너무 크다. 우리는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자발적으로 탈성장 시대를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식량과 에너지만을 자급자족하기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는 너무 많다. 지금 인구가 줄어들어 인구를 늘리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한다.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다시 인구를 늘리면 20~30년 후에는 나이별 인구가 모래시계 모양으로 분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생산력 있는 인구가 깔때기 모양의 지금 분포보다 늘어난 인구만큼 더 큰 희생을 감당해야 한다. 그만큼 자급자족과도 더 멀어지기 때문에 인구는 우리 국토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만큼 인구를 줄여야 한다. 내수만으로도 성장하기 위해서 인구가 1억 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인구가 가능한 적을수록 좋다고 본다. 자급자족을 위해서 우리나라의 국토 상황으로는 많아도 현재 인구의 1/2은 넘지 않아야 한다.

탈성장 시대에 산업 구조는 자급할 수 있는 에너지로 가능한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산업을 주축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도 자급할 수 있는 천연자원과 자연을 활용한 에너지 생산에 맞춰 자급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미리 준비할수록 희생은 줄어들 것이고, 준비가 늦을수록 희생은 커질 것이다. 몇 만, 몇 십만 명의 문제가 아니라 천만 단위 희생이 발생할 수 있는 일이 당장 눈앞에 펼쳐지지 않는다고 설마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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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 위주로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400평 밭농사를 하고 있는 우리 집의 농가 소득은 얼마나 될까? 먼저 지출로는 퇴비, 모종, 종자, 친환경 농약, 각종 농자재 구입비 및 가공비(고춧가루, 들기름, 참기름) 등으로 1년에 100만 원 정도가 든다. 수입으로는 친척들에게 그냥 나눠주는 것 외에 고춧가루 등은 팔기도 해서 100만 원 내외가 된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겨우 지출 비용을 만회하는 정도가 된다. 물론 우리 집은 쌀과 과일을 제외하고 따로 구입하는 농산물 비용이 거의 들지 않지만 말이다. 경험상 1인이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밭농사의 경우 50평 정도가 필요하니 부모님과 함께 사는 우리 집의 경우 실제 자급자족을 위해서는 150평 정도면 충분하다. 400평이면 동생들과 가족까지 따지면 딱 맞는 정도다.

만일 수익을 위해 고추와 같은 단일 작물 위주의 농사를 우리 집같이 농기계 없이 친환경으로 짓는다면 400평에 2~3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 최저임금만큼 벌기 위해서는 혼자서 농기계 없이 4,000평 정도를 경작해야 하니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농기계를 사용하는 관행농업으로는 400평 기준으로 건고추의 경우 평균 6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얻는다고 한다. 농업 생산성에는 한계가 있어 소득을 늘이려면 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나라 농가의 농지 면적과 수익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농가당 평균 농지 면적은 1.6ha이고 소득은 35,486달러라고 한다. 가구가 아닌 1인당으로 따지면 도시 노동자의 60% 수준이다. 그런데 도시인 농지 소유가 전체 농지의 49%에 이르며, 차명으로 소유하는 농지는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통계청 기준으로 2020년 우리나라 평균 가구 소득은 5,924만 원인데, 농가 평균 가구 소득은 4,502만 원이라고 한다. 이 중 농업 소득이 1,182만 원으로 전체의 26.2%에 달하고, 농업 외 소득이 36.8%, 이전소득(보조금 등)31.7%, 비경상소득(경조수입 등)5.1%라고 한다.네덜란드의 경우 농가당 평균 농지 면적은 33.8ha이고, 소득은 67,676달러로 도시 노동자와 비슷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농가 수가 네덜란드의 2배 수준이므로, 농가 수를 반으로 줄여 경작 면적을 2배로 늘려야 네덜란드 수준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사실상 농지 가격이 세계 1위로 임대 농지가 반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기에 1인당 농지 규모가 영국의 1/3, 산악 지역인 스위스에 비교해도 1/2.5에 불과하다.

미국의 곡창 지대인 아이오와주 옥수수 농장의 경우 평균 크기가 1,000에이커로 사방 2km이다. 이 정도의 대규모 농장을 가족 위주로 운영하기 위해서 농약은 항공기로 액체비료는 비료용 차량을 이용해 뿌린다. 그러면 인건비도 절약이 되어 대단한 부농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직불금이 없으면 운영이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미국의 옥수수 농가 직불금은 농가 소득의 거의 반을 차지한다. 미국과 호주의 농업 보조금은 재배 면적을 기준으로 지급되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한다. 미국이 농장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거대했던 것은 아니다. 산업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농민 수를 줄이고 농장의 크기를 키워 농산물 가격을 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농가당 소득은 2014년 기준 6,000만 원 정도인데, 성인 남성 1인당 수입으로 따지면 4,200만 원이다. 이는 도시 노동자 평균 소득 7,700만 원에 훨씬 못 미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스위스는 농가당 연 6,500만 원 정도를 다양한 형태의 직불금으로 지급한다. 생산성이 약한 고산지대일수록 직불금 비중이 더 높다. 1999년과 2010년을 비교하면, 평야 지대의 농가 소득 중 농업 소득이 37%에서 10%로 줄어들었는데 직접 지불금 비중은 41%에서 62%로 늘었다. 산악 지대의 경우 농가 소득 중 농업 소득이 1999년에 비해 2010년 적자 폭이 3배가 늘었는데, 직접 지불금 비중은 82%에서 98%(2009)으로 늘었다.

식량 위기니 무기화니 하는 이야기를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와 전쟁과 같은 국제 정세의 변화 시기에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 식량은 물론 자원의 자급자족은 위기의 시대일수록 더욱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처는 아직도 미흡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이 21%44%인 스위스 반에도 못 미치는데도 오히려 우리는 반대로 스위스의 반도 안 되는 비율로 직불금을 지급해 주고 있다.

농민 지원금의 형태가 직불금(가구별, 농지 크기별)이든 기본소득(개인별)이든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이든 농민이 늘어나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제도란 항상 완벽할 수 없으며,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쉽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농지 가격은 세계 1위 수준이며, 농지의 반 이상은 임대농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임대농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직불금이나 기본소득의 지원금을 늘릴수록 임대비는 늘기 마련이다. 지금도 직불금을 임대농이 받는 경우, 소유자가 받는 경우보다 임대비가 비싸다. 지원금이 늘수록 임대비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실제 영세한 농민들에게는 혜택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비싼 농지를 살 여력도 되지 않는다. 농산물 수급이 안정되지 못하고 유통 구조의 문제로 2~3년 밑진 것을 1년 벌어 갚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불규칙한 손실을 보상해 주는 안정적 예산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영세농에게 농지의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농산물 가격을 안정화시키지 않고서는 지원금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바로 농산물 가격이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농민이다.

엥겔이 엥겔계수를 발표할 당시에는 외식비, 식료품 가격인상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 가계의 생활수준을 엥겔계수를 통해 측정하기에는 다소의 무리가 있으나 엥겔계수가 25% 이하이면 소득 최상위, 25~30%이면 상위, 30~50%이면 중위, 50~70%이면 하위, 70% 이상이면 극빈층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엥겔계수가 200013.29%에서 지난해 12.86%21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고 한다. 이는 수입 물가의 상승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소득 최상위에 속한다. 식료품비는 저소득층보다 오히려 고소득층이 유기농 등 고급 식품비로 높아 엥겔계수가 높아지기도 한다. 어쨌든 엥겔계수가 낮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저평가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농산물 가격이 지금의 2~3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당연히 2차 생산물의 가격도 뛰고, 생존에 필요한 농산물 구입비가 늘어나고 소비 심리가 줄어들어 자동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되거나 멈추게 된다. 그리고 적은 농지로도 충분한 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고물가에 취약한 저소득층은 농업에 종사하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거나 농산물을 지원하면 된다. 성장이 멈추면 좀 더 생태적인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제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느냐에 있다. 이 과정으로 가는 길에 직불금이나 기본소득이 소금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농업은 철기 문명과 함께 자연생태를 파괴하고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게 만들었으며,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다시 농지를 늘이는 악순환으로 인간을 노동의 노예로 만든 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수렵채취 시대로 돌아갈 수 없고, 총과 칼의 현대문명으로 수렵채취 사회는 더 위험하다. 지금 우리가 그나마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려면 경제 성장을 멈춰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소농 위주의 친환경 농업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농산물 가격이 제대로 평가되고, 지금 당장은 직불금이나 농민소득 같은 농민 지원금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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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소련 시절에 쿠바는 풍요로웠다. 소련이 쿠바의 사탕수수를 국제 거래 가격의 세 배 가격으로 구입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의 몰락과 미국의 경제 제재에 따라 쿠바는 파국을 맞았다. 쿠바는 자급자족 경제가 아닌 수입과 수출에 의존한 경제였기 때문이다. 쿠바의 원유는 대다수 심해 유전으로 개발이 어려워 미국이 쿠바 해상을 봉쇄 전에는 소련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해 왔다. 사탕수수나 담배 등 환금작물 위주였던 쿠바 농업은 1990년대 이래로 수출이 막히고 비료나 농약 등이 부족해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곧 바로 식량 위기가 닥쳤다.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트랙터 등의 농기계도 가동할 수 없었던 쿠바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유기농 방식의 농사로 먹고 살아야 했다. 정부에서 도시 유기농 정책을 적극적으로 장려해 너나 할 것 없이 화분이나 도심 공터에 농사를 지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지은 농산물의 거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소득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의 경우는 어떠한가. 1995~1998년 동안 북한은 홍수와 우박 등 자연 재해가 계속되어 식량 생산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 소련의 붕괴로 소련으로부터 원조도 받을 수 없었던 북한은 식량 배급을 중단해야 했다. 북한은 국제기구에 식량 원조를 호소하였고 국제사회로부터 수년 간 수백만 톤의 식량 원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북한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3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당시 북한의 식량 자급률은 평균 75% 정도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사료용 제외)45.8%, 곡물 자급률(사료용 포함)21.0%OECD 최저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타격을 입자 한때 곡물 수출국들이 긴급 수출 중단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만약에 이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기후위기로 세계 곡창 지대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어 식량을 수입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북한은 75%의 식량 자급률에 한 해에 평균 70만 명이 넘는 아사자가 발생하였다. 식량 수입이 막히면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에 2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쿠바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도심 유기농업도 옛날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텃밭 상자도 보급하고, 텃밭도 분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텃밭의 경우 개인들이 분양하는 텃밭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텃밭은 친환경 농법을 의무화하는 등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어 경쟁률이 높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시민 텃밭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특히 서울과 같은 경우에는 도심에 텃밭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확보한다고 해도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서울은 양평과 같은 서울 인근에 텃밭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을 위한 텃밭을 마련하려면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사유지는 임대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도시 텃밭은 지자체의 땅보다는 주로 국유지를 임대해 사용한다. 텃밭 분양비를 받기는 하지만 임대비와 관리비, 텃밭 축제 등 행사비를 생각하면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된다.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면 텃밭을 더 늘릴 수 있다. 하지만 텃밭을 원하는 시민들은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 밭이 바로 집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하듯 다니기도 쉽지 않고, 비록 몇 평 되지 않아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텃밭을 가꾸기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또 소규모로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해서 유기농산물을 사 먹는 게 오히려 싸고 편하기 때문이다. 시민 텃밭을 크게 확대하려면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대다수 시민들의 요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자체에서 분양 받은 텃밭에서 키운 작물의 경우 제도적인 문제로 기본적으로는 판매를 할 수 없다. 자신이 소비하거나 이웃이나 친지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몇 평 되지 않는 텃밭이라도 여러 가지 작물을 골고루 심지 않으면 한 가족이 먹기에도 많은 양이 생산된다. 특히 상추 종류가 그렇다. 작물을 많이 가꾸어 보지 못해 수확량을 예상하지 못하거나 한 작물에 조금만 욕심을 내도 먹고 이웃에 나눠주고도 남을 만큼 생산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판매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불만을 해소하고 텃밭 행사도 풍성하게 하기 위해 텃밭 축제 등 행사를 통해 제한적으로 신청을 받아 판매를 허용하기도 한다. 시민 텃밭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쿠바처럼 텃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쉽게 팔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만일 기후 위기 등으로 식량을 수입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굶주림을 피할 수 없다. 주식이 될 수 있는 식량은 생산하는 데 적어도 3개월은 걸린다. 거기다 우리나라는 겨울이 있어서 6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쌀 공공 비축량은 총 80t이다(2021년에는 쌀을 3882t 생산). 이는 쌀 연간 소비량의 약 18% 수준으로 FAO의 적정 식량 비축 권고량이라고 한다. 가공식품을 제외하고 쌀 비축량만으로 두 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1인당 1년 쌀 소비량은 140kg 가까이 되었으나 지금은 그 반도 되지 않는다. 다른 곡물을 수입할 수 없게 되면 쌀 소비량은 두 배 이상 늘어난다는 말이다. 실제 곡물을 수입할 수 없게 된다면 쌀 비축량만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한 달 정도이다. 우리 국민이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밀은 자급률 0.7% 비축량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853t이다. 2019년 밀 비축량 1201t에 비해 91.6% 급감했다. 2019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3.0으로 쌀(59.2) 다음으로 많았다. 연간 밀 소비량이 2128t인데 이 비축량은 국민 하루 소비량의 1/7에도 못 미친다.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쌀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논의 면적을 두 배 늘리거나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두 배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토지의 비율을 보면 논의 면적을 두 배 늘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품종 개량도 한계에 와서 아무리 품종 개량을 하고, 문제가 많은 GMO를 도입한다고 할지라도 두 배의 생산량 증가는 불가능하다. 다행인 것은 기후온난화로 과거에 비해 밀이나 보리를 이모작할 수 있는 농지가 많이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또 거기다가 시설 재배 기술의 발달로 토지를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심에서 쌀을 재배하기는 어려워도 텃밭이나 텃밭 상자에 옥수수나 구황작물인 감자나 고구마는 쉽게 재배할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조합으로 어느 정도 식량 위기는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몇 개월 동안 굶주림은 피할 수 없고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굶어죽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쿠바가 식량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알고 있다. 식량 위기가 닥치기 전에 도시 농업을 활성화해서 미리 식량 자급률을 높이면 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도심에서 가능한 식량 생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많이 보급되지는 않지만 지금도 텃밭 공원, 학교 텃밭, 아파트 단지 텃밭 등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옥상 텃밭, 베란다 텃밭, 화분 등을 이용한 상자 텃밭을 가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공원, 아파트나 학교의 공터, 건물 옥상의 대부분을 텃밭으로 만들도록 법으로 제정하거나 조례 등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일정 비율 공원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공동 텃밭을 만들도록 해야 하고 건물을 지을 때 소방 시설처럼 옥상에 텃밭을 만들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도 가꾸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에 충무로에 있는 CJ제일제당 건물 1층 로비에 벼를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전시용이라 실내 조명으로 벼가 제대로 여물이 들지는 의문이지만 벼는 잘 자랐다. 농사짓기에 필요한 공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지금은 베란다 확장으로 아파트 평수를 늘리지만 식량 위기가 닥치고 식량 가격이 미치듯이 뛰면 베란다를 텃밭으로 바꾸는 공사가 유행할 수도 있다. 굳이 흙을 고집할 필요 없이 수경재배를 이용하면 작은 베란다도 효율적으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경작지가 된다. 도심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주차타워를 텃밭타워로 바꿀 수도 있다. 서울은 한강 고수부지만 하더라도 엄청난 면적의 농지가 될 수 있다. 홍수 시 범람의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지금도 일부 농부들은 하천의 고수부지에 농사를 짓고 있다. 홍수 시기만 피해 얼마든지 작물을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량 위기가 닥쳐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농사로 안정되고 확실한 수입이 보장되면 그만큼 텃밭이나 텃밭 상자 등의 수요도 늘어날 것이고, 농사를 직업으로 하겠다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또 소규모 도심 농업에 관한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실제 식량 위기가 닥친다면 정부나 기업, 개인들이 빠르게 조치를 취하겠지만 부족한 식량 생산에는 수개월이 필요하므로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피해는 피할 수 없다. 단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간을 얼마만큼 빨리 마련하느냐에 따라 피해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식량 문제는 위기가 닥친 후 조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위기가 닥치기 않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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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남의 땅이지만 문전옥답이라고 집 둘레에 400평 정도의 텃밭을 가꾸고 있다. 도시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한테 텃밭이 400평이라고 하면 다들 놀란다. 도시인들에게 텃밭 10평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원시에서 당수동 시민농장을 운영했을 때 10평씩 분양했는데, 장마가 끝나면 농사를 짓는 텃밭과 포기한 텃밭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텃밭들 중간에 풀밭이 무성한 곳들이 있는데, 처음에는 매주 오다가 점차 발길이 끊어지고 장마가 질 무렵부터는 아예 포기하기 때문이다. 물론 친척이나 지인 이름으로 시민텃밭을 몇 개씩 분양 받아 열심히 짓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띈다. 내 경우도 그랬다. 협동조합 공동 텃밭이라고 하지만 결국 내 텃밭이 되고 말았으니.

나 같은 경우 주말을 이용해 400평 농사를 짓는 것은 경운기나 텃밭관리기를 사용하지 않고 지을 수 있는 거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수원에서 화성으로 이사를 온 후 1년 동안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크게 힘들이지 않고 텃밭을 가꿀 수 있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주말에 딴일 할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할 정도이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농부라면 농지가 크지 않다면 시설재배를 할 것이고, 수익을 내기 위해선 최대한 재배하는 농작물 수를 줄일 것이다. 한 가지 작물을 가능한 한 넓은 땅에 재배할수록 효율적으로 재배할 수 있어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먹는 거의 모든 농작물을 재배한다. 사과, , 대추, 매실, , 앵두 같은 유실수는 물론 팥, 완두콩, 강낭콩, 서리태 등 콩 종류에다 나물류, 김장에 들어가는 갖은 양념 종류를 포함 100가지 품종이 넘는다. 내가 먹지 않으나 씨를 받기 위해 키우는 작물도 있다. 고수 같은 작물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정말 먹기 쉽지 않다. 키운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냄새까지는 어찌어찌 좋아졌지만 먹기는 아직도 힘들다. 다행히 지인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수확한 것은 그에게 준다. 일부는 토종 종자 보존 차원에서 키운다. 아무튼 집에서 먹는 농산물의 거의 모든 종류를 가꾸다 보니 감자와 완두콩, 상추를 심는 3월부터 배추 수확이 끝나는 11월까지는 주말에 농사에 신경 쓰지 않고 지내기가 쉽지 않다. 비가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힘들고 많이 오면 많이 오는 대로 힘들다.

아무리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차라리 그만한 노동을 할 것이라면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더 쉽고 돈도 많이 번다. 그 돈으로 유기농산물을 사 먹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 자급자족 중심의 농사는 생산한 농작물을 먹지 않고 전부 팔아도 인건비를 건지지 못한다. 아니, 날씨가 받쳐주지 않거나 병충해가 크게 오면 종자 값과 거름 값도 못 건질 때가 있다. 농사로 돈을 벌려면 가능한 넓은 땅에 한 가지 작물을 각종 농약과 비료, 기계를 사용해서 재배해야 한다. 물론 유기농업을 오래해서 땅이 살아나고, 기술이 축척되어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고서도 관행농 못지않은 수확을 하는 농부도 일부 있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가 먹을 것이라도 가족이 먹는 거의 모든 농산물을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키우는 미친 짓을 하는 농부는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미친 짓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집에서 먹는 모든 농산물을 키우지 않는다. 동네에서 자기가 키운 농산물을 서로 나눠 먹거나 사 먹는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조금씩 많이 키울수록 효율성도 없지만 신경도 많이 써야 하고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텃밭 작물은 가능하면 씨를 계속 받아 재배하려고 한다. 그래야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세대를 거듭할수록 적응해 새로운 토종으로 토착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씨를 사거나 모종을 사서 키우는 경우도 있다. 씨를 직접 받아서 모종을 만들어 키우면 종자 값이나 모종 값이 덜 든다. 그러나 씨앗을 받기 위해서 잎채소의 경우 수확을 포기하고 꽃이 피고 씨가 여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수확한 씨에서 좋은 씨를 골라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손이 많이 가서 경제성만을 따진다면 멍청한 짓이다.

고추 같은 경우 오래 전 종자회사의 씨를 얻어 놓은 것이 있어 이것으로 모종을 만든 적이 있다. 또 영양댐 반대 연대를 위해 영양에서 고추를 심는 농활을 해 주고 얻은 토종 고추 모종을 키워 씨를 받아 키운 적이 있다. 고추 모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찍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수원에 살 때 야외에서 모종을 만들 수가 없었다. 모종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양지 바른 베란다에 2월부터 키친타월에 물을 적셔 오래 되어서 발아율이 낮은 고추씨를 넣어 싹을 틔웠다. 어느 정도 싹이 튼 씨를 골라 포트에 옮겨 심어 모종을 가꿨다. 포트에 모종을 만들 경우에는 자주 물을 줘야 해서 신경도 많이 쓰인다. 그럼에도 시중에 파는 모종보다도 훨씬 늦게 자라 수확도 늦었다. 품과 시간을 너무 많이 들여야 했다. 거기다 토종 고추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너무 다양해 하나로 특징을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가지가 쉽게 부러지는 것이 많았다. 수확량도 많지 않았다.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어머니의 반대도 심해 결국 한 번은 종묘회사 씨로 한 번은 토종으로 모종을 만드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상추는 그나마 씨를 받아 키우기가 쉽지만 배추는 고추와 같이 쉽지 않았다. 아마도 포트에 모종을 키울 때 상토 말고 따로 비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종에는 거의 매일 물을 줘야 한다. 그런 것은 다 괜찮았지만 결정적으로 시중에 판매하는 모종보다 늦게 커서 속이 차지 않는 배추가 많았다. 결국 배추 모종도 포기하고 말았다. 배추의 경우 개성배추와 구억배추 두 토종 씨를 얻어 키웠지만 토종은 결구가 되지 않거나 반결구이기에 어머니가 수확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방치된 채 스스로 씨를 퍼트려 텃밭 구석에서 자라고 있다. 배추씨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여름에 심은 배추를 수확하지 않고 겨울을 버틴 후 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자리를 남겨 놓은 것도 텃밭 관리하는데 편한 것은 아니다.

, 가지, 호박, 들깨, 참깨, 상추, 아욱, 토마토, 참외, 수박, 더덕, 도라지 등 그나마 종자를 받기가 쉽다. 덩이줄기 농작물인 감자, 생강, 토란 등도 수확하기가 쉽다. 하지만 키우는 농작물의 종자를 계속 받아 지역에 맞는 품종으로 토착화시키겠다는 욕심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옆집에는 우리 텃밭과 비슷한 크기로 텃밭을 가꾸는 분이 있다. 동탄에서 동장인 그는 나보다 더 부지런하다. 직장이 가깝지는 하지만 내가 출근하러 나갈 시간이면 농약도 치고 텃밭을 돌보느라 한여름이 되기도 전에 얼굴이 새까맣게 탔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정말 농부 같다. 그가 나를 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퇴비는 밑거름이고 비료를 줘야 한다. 나는 한 파레트(퇴비 80~90포 정도)의 퇴비를 2년 정도 사용한다. 거기에 유박을 첨가하고 가끔 복합비료를 준다. 그는 우리 텃밭보다 작은데도 한 파레트를 1년 정도만 사용하고 비료 및 농약도 듬뿍 준다. 어머니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옆집을 봐라. 얼마나 잘 되냐. 우리 집은 왜 노냥 그러냐.“ 정말 그는 화초 가꾸듯이 작물을 재배한다. 크기도 크고 빛깔도 좋다. 그는 텃밭을 갈아엎기도 쉽게 한다. 내 경우에는 농작물이 죽을 때까지 수확한다. 물론 그러면 수확물이 왜소하고 제대로 여물이 들지 않기도 하지만 나는 통째로 먹는 작물이 아니면 작물이 다 죽을 때까지 키운다. 그런데 그는 가장 효율적일 때까지만 키우고 다른 작물로 갈아탄다. 그는 경운기가 있기에 경운기로 밭을 갈지만 경운기로도 부족해 가끔 트랙터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야 땅을 깊게 갈아엎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로터리를 자주 친 그의 텃밭 흙은 정말 부드럽다.

하지만 우리 텃밭에는 그의 텃밭에 없는 것이 많다. 삽질을 하려면 지렁이들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일부 땅은 척박했다. 그래서 텃밭 전체에 퇴비를 뿌리고 이장님한테 부탁해 로터리를 친 후 만든 이랑을 그대로 유지하며 삽으로 밭을 가꾸고 있다. 그래서인지 굼벵이도 많고 흙을 자세히 보면 별의별 벌레들이 다 있다. 여기저기 땅을 파고 다니는 두더지가 한참 크려는 작물의 뿌리를 들쑤셔 말라 죽게 하는 경우도 많지만 밭에는 온갖 생명체들의 생기가 넘친다. 하지만 그의 텃밭은 흙이 곱지만 생명체가 다양하고 많지도 않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더 농작물을 이웃들에게 나눠준다. 나도 그에게서 우리가 수확하지 못하고 있는 농작물을 얻기도 했다.

내 꿈은 자연농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자연농은 꿈일 뿐이다. 어머니는 우리 식구만 먹는 것이라도 항상 옆집과 비교한다. 또 어머니는 이모, 외삼촌들에게도 농산물을 나눠주고 일부는 돈을 받기 때문에 남들보다 잘 키우기를 원한다. 시원찮게 키운 것은 그냥 주고도 욕먹는다. 어느 정도 시중에 나오는 농산물과 비슷하긴 해야 한다. 농약은 기본적으로 친환경을 만들어 뿌리지만 정말 병충해가 심할 땐 어쩔 수 없이 화학농약을 뿌려야 한다. 수확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식량을 자급자족하려면 인구에 비해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다. 이 마당에 자연농, 유기농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연농과 유기농을 육성할 필요는 있다. 농약의 독성 지속 시간도 예전에 비해 많이 짧아졌고, 화학비료를 계속 뿌려 땅이 나빠지는 것을 막는 방법도 많이 발전했다. 다른 생명체가 살기 좀 힘들더라도 도로나 공장이나 아파트가 건설되는 것보다는 그런 농지라도 늘어났으면 좋겠다. 다른 생명체들과 그나마 어느 정도 공존을 모색할 수 있으니. 그리고 도시 텃밭도 많이 늘어났으면 한다.

텃밭 열풍이 불면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정원 대신 텃밭을 가꾸는 경우도 늘어났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파트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기는 쉽지 않다. 대신 베란다에 텃밭 상자를 갖다 놓고 상추나 고추, 토마토 등을 화초 가꾸듯이 가꾸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비바람도 없고 햇볕이 잘 들지도 않아 잘못하면 진딧물 등이 끼고 물을 너무 많이 줘 썩기도 해 이마저 쉽지만은 않다. 단독 주택가에서는 손바닥만한 공터만 있어도 텃밭을 가꾼다. 예전 수원에 살던 동네에서도 오래된 집을 허물어 재건축을 하지 않자 동네 사람들이 집터와 마당의 콘크리트를 일일이 철거하며 텃밭을 가꾸기도 했다. 길가가 모두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덮여 있는 경우에도 스티로폼 상자나 못 쓰는 고무 대야에 흙을 담아 텃밭을 가꾼다. 오래된 단독 주택가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은데 한 집에서 시작하면 너도나도 따라 만들어 온 동네가 텃밭 상자로 가득해 장관을 이루는 곳도 있다. 이런 장관은 서울에서 벗어난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텃밭을 가꾸려 하는 것일까? 인건비도 안 나오지만 분명히 아예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텃밭을 가꾸면 취미 생활을 하면서도 돈을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자신이 직접 먹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의 기준에서 건강하게 키운다. 살림살이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몸과 마음도 건강해진다. 농작물을 심고 자라는 것을 보는 만족감은 크다. 어머니 같은 경우도 잘 자라는 농작물을 아침이면 쭉 둘러보는 것이 하나의 낙이다. 정말 자식 키우는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수확할 때는 오죽할까,

은퇴 후 할 일이 별로 없는 어르신들의 경우 우울하게 지내는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이 텃밭을 가꾸면서 무척 건강해진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두물머리 농사 투쟁을 할 때 녹색연합 회원 분들이 와서 배추 수확 체험을 원해서 시도한 적이 있다. 일부러 배추를 늦게까지 놔뒀는데, 하필 그날 눈이 왔다. 그때 아이들도 몇 명이 왔다. 할머니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하며 놀려고 했는데 끌려와 처음엔 불만인 아이들이 눈밭에서 배추를 수확하며 신나게 놀았다. 게임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한참 크는 아이들도 그렇지만 젊은이나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단순히 운동을 해도 좋지만 텃밭은 몸과 마음을 모두 살린다. 채소를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자신이 잘 먹는 채소는 잘 먹어 교육적인 차원에서 텃밭을 가꾸는 유치원도 있다. 수원에서 장애아동과 부모가 함께하는 텃밭 치유 프로그램 강사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자연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보였다. 거기다 농작물을 키우고 수확해 행복해 하는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텃밭을 가꾸고 식량을 자급자족하려 마음먹은 것은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식량을 너무 수입에 의존해 수입이 막히면 쿠바가 겪었던 식량난의 몇 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 특히, 돈이 없는 약자들이 굶어죽게 될까 걱정이다. 어려서 교과서에서 배운 것 중에 충격적이어서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것이 있다. 1970년대 영국은 선진국 중 최저에 해당하는 식량자급률을 보였고 우리나라는 그보다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이 50%도 안 되고, 영국은 70%가 넘는다. 주요 에너지원인 곡물의 경우는 훨씬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20%를 겨우 넘지만 영국은 100%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수출해서 번 돈으로 식량을 수입해 먹는다. 수출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에 대부분 의존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급률은 더 심각하다. 몇 년 전 국제 쌀 파동으로 한때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이 쌀을 배급한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 수출되는 곡물은 전 세계 생산량의 1/10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국제 쌀 파동처럼 기후 이상으로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는 양이다. 에너지 수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세계적 이상 기후로 주요 곡물 생산국의 식량 생산이 줄어든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어떤 나라가 자국민도 먹기 부족한 식량을 수출할까.

사람이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활동은 먹는 것이다. 가정은 물론 국가의 살림살이에서 가장 기본인 것은 식량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지만 먹기 위해 살기도 한다. 가끔 우리나라 정부와 사람들이 식량 생산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모든 사람이 농업에 종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찾아보면 조그만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곳도 많고 지자체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시민농장을 확대할 수 있다, 그것도 어려우면 무료 텃밭 상자라도 몇 개라도 가꾸는 것이 집안과 나라의 살림을 지키는 일이고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은 물론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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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을로

초록 경제 l 2021. 7. 14. 13:43

지금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생산된 것을 먹고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직접 생산한 것보다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것으로 생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생산한 것을 들여오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비하는 물건을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는 다른 지역에 비해 경쟁력 있는 물건을 생산하여 번 돈으로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싸게 물건을 사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지역의 인건비가 오르면 생산비를 아끼기 위해서 인건비가 싼 나라로 생산시설을 옮겨 수출도 하고 수입하기도 한다. 지역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을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수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싸게 생산되는 것에 비해 유통 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산 비용이 싸다고 해도 유통 비용이 그보다 더 비싸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이렇게 무역이 가능한 이유는 교통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저렴한 화석연료 때문이다. 또 생산단가를 낮추려고 다품종을 소량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품종을 대량 생산을 한다. 그래야 가격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옛날에는 그 지역에서 생산 가능한 것은 대부분 마을 단위에서 자급자족했다. 교통 오지인 곳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생활할 수밖에 없다. 옛날은 물론 지금도 가족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식을 자급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나 주식 외에 과일이나 특용 작물 등을 모두 자급자족하는 것은 어렵다. 다품종 소량 생산은 소품종 대량 생산에 비해 훨씬 힘이 든다. 한마디로 노동생산성이 없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서로 생산하지 않은 농산물을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마을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은 장에 나가 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상품들은 생산된 지역에 비해 비쌀 수밖에 없다. 상인들이 바닷가 산 해산물을 내륙에서 팔고, 산간에서 사들인 임산물을 평야 지대에서 팔 수 있었던 것은 희소성으로 인해 유통시키느라 고생한 만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그런 교역은 작게는 마을 단위에서 크게는 동서양 문물이 교류하는 실크로드로 확대되기도 했다. 거리가 멀수록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위험과 고생을 동반했지만 그만큼 비싸게 받을 수 있어 충분한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지금도 지방에는 5일장이 서는 곳이 많다. 어르신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와 팔고, 또 직접 생산할 수 없는 농수산물 등과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기도 한다. 마을에서 자급할 수 있는 농산물을 장에서 사는 일은 없다. 전통적인 5일장은 실제로는 물물교환이나 다름없는 거래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마실 나가고 평소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을 먹는 외식의 장소였으며, 눈요기를 하고 서로 안부를 나누고 여러 가지 정보를 교환하던 곳이기도 하다. 5일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누리고 교류하는 장이다.

마을의 재래시장은 호혜경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었지만 상인들도 자신의 가게에서 팔지 않는 물건은 이웃 가게에서 샀고, 이웃 가게도 내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샀다. 시장 번영회가 있어 일이 생기면 서로 챙기는 그냥 이웃이었다.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마을의 돈은 자연스럽게 지역 내에서 돌고 돌았다. 돈은 원래 유통의 편리를 위해 존재했는데 마을의 재래시장에서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대형 할인 마트가 들어서는 곳이 생겼다. 이웃 가게보다 물건이 다양하고 쌌으며, 시설도 편리하고,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 이웃 가게를 버리고 대형 할인마트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고, 결국 내 가게도 문을 닫게 되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자영업자들은 사장에서 대형 할인마트의 종업원 신세로 전락하거나 외지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조금 더 싸고 조금 더 편리하다고 서로 이웃을 버린 댓가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벌어들인 돈은 지역으로 환원되지 않았다. 본사가 있는 중앙으로 돈은 몰려나갔다. 돈은 더 이상 지역에서 순환되지 않고 이웃끼리의 교류도 사라져 갔다.

이런 문제들이 생기자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생존권을 위해 마을에 대형 할인마트가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도 벌이고 지역화폐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의 돈은 금과 같은 실물화폐가 아니라 신용화폐다. 신용이 확보된다면 신용화폐는 시전상인들이 썼던 어음같이 그냥 종잇조각이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신용을 담보할 방법만 마련할 수 있다면 법정화폐가 아니더라도 지역화폐가 마을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지역화폐가 잘 유통되면 외부에 있는 본사로 지역의 돈이 빠져나가는 대형 할인마트가 자리 잡을 수 없다. 법정화폐와 교환 불가능한 지역화폐로만 거래하게 된다면 대형 할인마트를 세워도 결국 벌어들인 돈은 마을에서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돈이 마을에서 돌고 돌아 마을 경제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지만, 과연 그런 돈을 벌어들이려고 하는 대형 할인마트가 있을까?

농사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농산물의 부산물을 가축이 먹고, 가축이 싼 똥은 물론 인분도 훌륭한 거름이 되었다. 화학비료 때문에 질소가 과다하게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물을 오염시키고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지 않았다. 농사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생산한 농산물로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자연과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농사법으로 다양한 재래종을 적절히 생산했다. 그런 농사가 돈을 벌기 위해 자급자족하기 위한 작물이 아니라 경제성 있는 작물을 재배하는 농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상품성 있는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시설에 투자하고 대단위로 단일 품종을 재배하면서 병충해와 자연재해에 취약해졌다. 작년에 상품성 있는 작물이 올해 과다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병충해와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칠수록 내 농사는 많은 이익을 남겼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농사는 더 이상 농사가 아니라 농업 투기가 되곤 했다. 자의든 타의든 농부들이 주식인 식량을 재배하여 자급자족하지 않고, 더 이익을 볼 수 있는 환금작물을 재배하여 번 돈으로 더 싼 식량을 사먹기 시작했다. 농사의 변질은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는 대기근으로 당시 800만 명이던 아일랜드인 중 100만 명 정도가 굶어죽고, 100만 명 정도가 해외로 이주했다. 당시 감자 중에 수확량이 좋았던 미국산 단일 품종을 대량 심었다가 미국산 감자가 취약한 감자 역병이 전국적으로 발생해 일어난 문제였다. 감자는 그 시기 아일랜드 사람 3분의 1일 의존하고 있던 주식이었다. 영국인들이 아일랜드에서 생산한 밀은 수입하고 대신 값싼 감자를 아일랜드인에게 주식으로 재배하게 한 것이다. 감자 역병으로 주식인 감자가 부족한 와중에 영국은 곡물법을 폐지시키고 밀 수입을 자유화하고, 군대를 동원해 강제로 아일랜드에서 생산한 밀을 본국으로 보냈다. 또 감자 농사를 망쳐 세금을 내지 못한 아일랜드인을 영국인 대지주가 강제로 내쫒아 결국 이들은 빈민가에서 굶어죽거나 전염병으로 죽었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해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으로는 단일 품종을 대량 생산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며, 농사가 자급자족이 아니라 무역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나타난 문제이다.

또 비교적 최근에는 세계적인 쌀 대란이 일어나자 필리핀이 국민들에게 쌀을 배급한 일이 있었다. 필리핀은 1960년대만 하더라도 농부 1인당 쌀 생산성이 아시아 평균의 6배나 높았다고 한다. 1년에 3모작까지 가능해 쌀을 수출을 하기도 했고 우리나라는 한때 필리핀 쌀을 무상으로 지원받기도 했다. 그런 필리핀이 어떻게 매년 100~200만 톤 정도의 쌀을 수입하는 세계 최대 쌀 수입국 중 하나가 되고 쌀을 배급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1970년대 필리핀은 수입하는 쌀에 엄청난 관세를 물려 쌀 가격 유지하여 농민을 보호했었다. 그러다가 필리핀 정부는 자국 내의 쌀 생산성을 높이는 것보다 쌀을 싸게 수입해 먹는 것이 낫다고 정책을 바꾸게 된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쌀이 부족해지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필리핀에 쌀을 수출하던 국가들이 수출을 거부하면서 필리핀 쌀 가격이 폭등하게 되었다. 거기다 필리핀 전역을 태풍이 강타하면서 홍수 피해로 쌀 부족은 더 심각해졌다. 배고픈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기도 하였다. 식량안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필리핀의 쌀 파동을 통해 알 수 있다. 다행히 당시 우리나라는 쌀은 자급자족할 수 있어서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는 1인당 쌀의 수요가 70년대에 비해 반으로 줄고 대신 다른 수입 곡물의 소비가 늘었기 때문으로 근본적으로는 식량안보의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도 생협에서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로컬푸드를 지향하고 있지만 생협은 물론 대부분의 유통시스템은 지역적이지 않다.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바로 배달하면 시간도 줄이고, 훨씬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유통 비용이 많이 든다. 거리가 멀더라도 대량 유통이 거리가 가까운 소량 유통보다 경제적이다. 여기서도 값싼 화석연료가 톡톡히 역할을 한다. 식량 1칼로리를 생산하는데 기계를 사용하는 관행농업으로는 화석연료 10칼로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람의 힘만으로 농사를 지으면 1칼리를 사용해 10칼로리의 식량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칼로리의 효율성만으로 따진다면 한마디로 인력은 기계에 비해 100배나 효율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기계농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화석연료가 싸다는 것이며, 이는 화석연료의 소비를 부추길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공장 생산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값싼 화석연료로 인해 인류는 심각한 기후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마트에서 중국산 수입품을 뺀다면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사라져 현실적으로 중국산 수입품 금지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아무리 값싸게 생산되었다 하더라도 값싼 화석연료를 이용한 유통이 아니라 걸어서나, 가축을 이용하거나, 범선을 이용했다면 미국에서 중국 제품은 결코 지금처럼 싼 제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외진 곳에 위치한 작은 식당에 들어가 보니, 국내산 외에 소고기는 호주산과 미국산, 돼지고기는 미국산, 등갈비는 스페인산, 갈치는 세네갈산, 낙지는 중국산, 고등어는 노르웨이산, 가자미는 러시아산, 찌개김치는 중국산이었다. 감탄(?)스럽기까지 한 세계화 무대였다.

지금은 마을에서도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구멍가게는 다국적 기업들의 편의점과 게임 상대가 되지 못한다. 요샛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본래 교역은 자급할 수 없는 물건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점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들였는데, 이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행태로 바뀌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다양성은 소멸되고, 문화는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생태적으로 아주 건강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계화를 예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아주 잘나고 운이 좋은 극소수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돈이 행복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5,000달러를 넘어서면 돈은 더 이상 행복을 좌우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벌써 1인당 국민소득이 30,000달러를 넘어선지 오래다. 우리가 돈을 벌려는 목적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돈을 더 벌기 위해 행복을 버리려 하고 있다. 이웃은 호혜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을 때라고 한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웃과 경쟁 대상이 아니라 서로가 필요한 존재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호혜의 경제를 회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지역화폐를 기반으로 한 자급자족 위주의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 교환이 불가능하거나 교환하면 손해를 보는 방식이어야 한다. 돈이 돈을 버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우리가 외부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아야 외부에 착취당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도 돈의 노예로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돈이 유통의 편리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의 축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갈 때, 우리는 돈의 노예로 전락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돈의 축적은 공동체의 결속을 와해시키므로, 지역화폐는 돈의 축적을 제한하고 유통의 기능에 충실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개성과 특기에 맞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하며, 이웃의 물품이나 서비스와 교환하는 순환의 경제를 마련해야 한다. 또 마을과 마을이 교류하면서 서로 부족한 것을 나누는 호혜경제가 우리를 더 행복한 삶으로 이끌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많은 것을 희생하며 돈만 버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돈이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그 기회는 우리가 마을에서 지역순환 호혜경제를 만들 의지와 실천력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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