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소련 시절에 쿠바는 풍요로웠다. 소련이 쿠바의 사탕수수를 국제 거래 가격의 세 배 가격으로 구입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의 몰락과 미국의 경제 제재에 따라 쿠바는 파국을 맞았다. 쿠바는 자급자족 경제가 아닌 수입과 수출에 의존한 경제였기 때문이다. 쿠바의 원유는 대다수 심해 유전으로 개발이 어려워 미국이 쿠바 해상을 봉쇄 전에는 소련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해 왔다. 사탕수수나 담배 등 환금작물 위주였던 쿠바 농업은 1990년대 이래로 수출이 막히고 비료나 농약 등이 부족해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곧 바로 식량 위기가 닥쳤다.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트랙터 등의 농기계도 가동할 수 없었던 쿠바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유기농 방식의 농사로 먹고 살아야 했다. 정부에서 도시 유기농 정책을 적극적으로 장려해 너나 할 것 없이 화분이나 도심 공터에 농사를 지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지은 농산물의 거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소득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의 경우는 어떠한가. 1995~1998년 동안 북한은 홍수와 우박 등 자연 재해가 계속되어 식량 생산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 소련의 붕괴로 소련으로부터 원조도 받을 수 없었던 북한은 식량 배급을 중단해야 했다. 북한은 국제기구에 식량 원조를 호소하였고 국제사회로부터 수년 간 수백만 톤의 식량 원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북한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3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당시 북한의 식량 자급률은 평균 75% 정도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사료용 제외)이 45.8%, 곡물 자급률(사료용 포함)이 21.0%로 OECD 최저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타격을 입자 한때 곡물 수출국들이 긴급 수출 중단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만약에 이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기후위기로 세계 곡창 지대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어 식량을 수입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북한은 75%의 식량 자급률에 한 해에 평균 70만 명이 넘는 아사자가 발생하였다. 식량 수입이 막히면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에 2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쿠바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도심 유기농업도 옛날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텃밭 상자도 보급하고, 텃밭도 분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텃밭의 경우 개인들이 분양하는 텃밭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텃밭은 친환경 농법을 의무화하는 등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어 경쟁률이 높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시민 텃밭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특히 서울과 같은 경우에는 도심에 텃밭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확보한다고 해도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서울은 양평과 같은 서울 인근에 텃밭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을 위한 텃밭을 마련하려면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사유지는 임대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도시 텃밭은 지자체의 땅보다는 주로 국유지를 임대해 사용한다. 텃밭 분양비를 받기는 하지만 임대비와 관리비, 텃밭 축제 등 행사비를 생각하면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된다.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면 텃밭을 더 늘릴 수 있다. 하지만 텃밭을 원하는 시민들은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 밭이 바로 집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하듯 다니기도 쉽지 않고, 비록 몇 평 되지 않아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텃밭을 가꾸기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또 소규모로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해서 유기농산물을 사 먹는 게 오히려 싸고 편하기 때문이다. 시민 텃밭을 크게 확대하려면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대다수 시민들의 요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자체에서 분양 받은 텃밭에서 키운 작물의 경우 제도적인 문제로 기본적으로는 판매를 할 수 없다. 자신이 소비하거나 이웃이나 친지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몇 평 되지 않는 텃밭이라도 여러 가지 작물을 골고루 심지 않으면 한 가족이 먹기에도 많은 양이 생산된다. 특히 상추 종류가 그렇다. 작물을 많이 가꾸어 보지 못해 수확량을 예상하지 못하거나 한 작물에 조금만 욕심을 내도 먹고 이웃에 나눠주고도 남을 만큼 생산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판매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불만을 해소하고 텃밭 행사도 풍성하게 하기 위해 텃밭 축제 등 행사를 통해 제한적으로 신청을 받아 판매를 허용하기도 한다. 시민 텃밭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쿠바처럼 텃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쉽게 팔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만일 기후 위기 등으로 식량을 수입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굶주림을 피할 수 없다. 주식이 될 수 있는 식량은 생산하는 데 적어도 3개월은 걸린다. 거기다 우리나라는 겨울이 있어서 6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쌀 공공 비축량은 총 80만t이다(2021년에는 쌀을 388만 2천t 생산). 이는 쌀 연간 소비량의 약 18% 수준으로 FAO의 적정 식량 비축 권고량이라고 한다. 가공식품을 제외하고 쌀 비축량만으로 두 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1인당 1년 쌀 소비량은 140kg 가까이 되었으나 지금은 그 반도 되지 않는다. 다른 곡물을 수입할 수 없게 되면 쌀 소비량은 두 배 이상 늘어난다는 말이다. 실제 곡물을 수입할 수 없게 된다면 쌀 비축량만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한 달 정도이다. 우리 국민이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밀은 자급률 0.7%로 비축량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853t이다. 2019년 밀 비축량 1만201t에 비해 91.6% 급감했다. 2019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3.0㎏으로 쌀(59.2㎏) 다음으로 많았다. 연간 밀 소비량이 212만 8천t인데 이 비축량은 국민 하루 소비량의 1/7에도 못 미친다.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쌀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논의 면적을 두 배 늘리거나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두 배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토지의 비율을 보면 논의 면적을 두 배 늘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품종 개량도 한계에 와서 아무리 품종 개량을 하고, 문제가 많은 GMO를 도입한다고 할지라도 두 배의 생산량 증가는 불가능하다. 다행인 것은 기후온난화로 과거에 비해 밀이나 보리를 이모작할 수 있는 농지가 많이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또 거기다가 시설 재배 기술의 발달로 토지를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심에서 쌀을 재배하기는 어려워도 텃밭이나 텃밭 상자에 옥수수나 구황작물인 감자나 고구마는 쉽게 재배할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조합으로 어느 정도 식량 위기는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몇 개월 동안 굶주림은 피할 수 없고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굶어죽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쿠바가 식량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알고 있다. 식량 위기가 닥치기 전에 도시 농업을 활성화해서 미리 식량 자급률을 높이면 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도심에서 가능한 식량 생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많이 보급되지는 않지만 지금도 텃밭 공원, 학교 텃밭, 아파트 단지 텃밭 등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옥상 텃밭, 베란다 텃밭, 화분 등을 이용한 상자 텃밭을 가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공원, 아파트나 학교의 공터, 건물 옥상의 대부분을 텃밭으로 만들도록 법으로 제정하거나 조례 등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일정 비율 공원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공동 텃밭을 만들도록 해야 하고 건물을 지을 때 소방 시설처럼 옥상에 텃밭을 만들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도 가꾸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에 충무로에 있는 CJ제일제당 건물 1층 로비에 벼를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전시용이라 실내 조명으로 벼가 제대로 여물이 들지는 의문이지만 벼는 잘 자랐다. 농사짓기에 필요한 공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지금은 베란다 확장으로 아파트 평수를 늘리지만 식량 위기가 닥치고 식량 가격이 미치듯이 뛰면 베란다를 텃밭으로 바꾸는 공사가 유행할 수도 있다. 굳이 흙을 고집할 필요 없이 수경재배를 이용하면 작은 베란다도 효율적으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경작지가 된다. 도심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주차타워를 텃밭타워로 바꿀 수도 있다. 서울은 한강 고수부지만 하더라도 엄청난 면적의 농지가 될 수 있다. 홍수 시 범람의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지금도 일부 농부들은 하천의 고수부지에 농사를 짓고 있다. 홍수 시기만 피해 얼마든지 작물을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량 위기가 닥쳐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농사로 안정되고 확실한 수입이 보장되면 그만큼 텃밭이나 텃밭 상자 등의 수요도 늘어날 것이고, 농사를 직업으로 하겠다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또 소규모 도심 농업에 관한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실제 식량 위기가 닥친다면 정부나 기업, 개인들이 빠르게 조치를 취하겠지만 부족한 식량 생산에는 수개월이 필요하므로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피해는 피할 수 없다. 단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간을 얼마만큼 빨리 마련하느냐에 따라 피해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식량 문제는 위기가 닥친 후 조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위기가 닥치기 않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