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주의(녹색주의)

'실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6.19 전문가에 대한 닐스 보어의 정의
  2. 2017.01.27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요약
  3. 2016.09.17 뇌의 거짓말-요약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는 전문가를 '매우 좁은 영역에서 온갖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 탁월한 결정의 비밀/조나 레러 지음/강미경 옮김/위즈덤하우스 펴냄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

- 조지프 핼리넌 지음/김광수 옮김/문학동네 펴냄/2012.5.7

 

10~11p

  비행기 사고의 70퍼센트, 자동차 사고의 90퍼센트, 직장 내 사고의 90퍼센트가 당사자들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비난받을 대상도 인간이다. 그러나 비난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적절한 해결책에서 멀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비난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의 상당수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인간은 주변 세계를 보고 기억하고 인지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구조적 편향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구조적 편향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예를 들어 오른손잡이는 건물에 들어설 때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길이 가장 가까워서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숫자 7이나 푸른색 계통을 이유 없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의 첫인상에 집착하는 태도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시험을 볼 때도 처음 적은 답을 웬만하면 바꾸려 하지 않는다.

 

15p

  운전자가 대시보드 위의 GPS 기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사고를 냈을 때 사람들은 그 책임을 운전자에게 돌린다. 그러나 같은 사고가 또다시 반복되는 것을 피하려면 운전자를 바꾸기보다 자동차 시스템을 바꾸는 편이 효과적이다.

 

17p

  포드에서 만든 마취약 조절 밸브는 시계 방향으로 돌려야 하는 데 반해 GM의 밸브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의사들이 착각해 밸브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 일이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치를 표준화해야 했다. 이후 두 기업은 밸브 방향을 통일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20p

  충분히 쉬면 행복감도 높아진다. 행복감은 체계적인 사고와 유연한 문제 해결의 밑거름이다. 그뿐만 아니라 행복감은 지나친 낙관주의를 경계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실수를 자초한다. 과신이야말로 실수의 주요 원인이다.

 

26p

  예를 들면 적정 시거리에서 명확히 바라볼 수 있는 시야의 범위는 전체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눈은 1초에 세 번씩 대상을 바라보고 이동하고 정지하면서 범위의 한계에 대응한다.

눈을 움직여 바라보는 대상은, 보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예컨대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도 실제로 남자와 여자가 보는 대상은 다르다. 소매치기가 여자의 지갑을 낚아채는 장명을 포착할 때, 여자는 소매치기 당하는 여자의 외모와 행동을 눈여겨보는 데 비해 남자는 도둑의 인상착의를 더 세밀히 살핀다.

또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에 비해 대상의 방위를 더 정확히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7p

  시선고정 시간이란 인간의 운동 반응을 신체에 정확히 입력하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목표물을 마지막으로 훑어본 순간부터 신경계가 처음으로 가동하기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연구진은 농구의 자유투에서 사격의 격발에 이르기까지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 전문가와 초보자 사이에 시선고정 시간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문가에게는 시선을 오래도록 고정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도 알아냈다.

 

28p

  맹점 중에서도 매우 황당한 것으로 주의맹이라는 것이 있다. 주의맹이란 눈 깜빡이 같은 사소하고 순간적인 시선 혼란으로 인해 그 장면에 나타나는 중대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32p

사이먼스는 인간의 눈이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각도는 겨우 2도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주먹을 쥔 채로 팔을 쭉 뻗어 엄지손가락을 세웠을 때, 엄지손가락의 폭과 눈이 이루는 각도가 약 2도이다.

 

 

33p

  세부 요소들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는가는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문짝 실험에서 사이먼스와 레빈은 상대방이 바뀐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일곱 명의 학생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모두 실험에 등장한 이방인과 비슷한 또래였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이 소속된 사회집단과 성향이 다른 사회집단의 사람들을 대할 때면 행동을 달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흑인은 같은 흑인을 만날 때와 다른 인종집단의 사람을 만날 때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만날 때, 젊은 사람이 노인을 만날 때,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사인먼스와 레빈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확대했을까?

 

36p

  ‘테이블 회전이라고 이름 붙인 이 착시모델은 지각의 왜곡현상이 우리의 신경계에도 깊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왜곡현상이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 결과, 눈앞에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어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서로 달라 보이는 두 테이블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누군가 얘기해 주어도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한다. 착오를 일으키고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39p

  울프 박사는 이 실험에서 얻은 교훈이 다른 상황들에도 적용된다고 말한다. 즉 사람들은 표적을 손에 넣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될 때는 서둘러 중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말한다. “제 생각은 그래요. 가당치도 않은 것을 찾아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일 자체가 어리석은 것 아닌가요?”

 

40p

메이요 의료원(Mayo Clinic) 의사들이, 과거에는 정상으로 판별되었지만 이후 폐암에 걸린 환자들의 X선 사진을 다시 검사했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왔다. 과거에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던 사진들의 90퍼센트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진은 당시의 암이 이미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까지진행된 상태였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방사선 전문의들이 무심코 놓친 것이다.

 

45p

  알다시피 인간의 장기기억력은 완전하지 못하다. 게다가 장기기억은 다분히 의미 중심적이다. 우리가 일상 사건들에 대해 기억을 떠올릴 때 그 사건의 표면적인 세부 요소보다는 의미를 기억한다는 뜻이다.

 

56p

  하지만 훗날 밝혀진 사실은 그 반대다. 특이한 장소는 기억하기 쉽기는커녕 오히려 잊어버리기 쉽다.

 

60p

  신생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성인인 우리도 누군가의 얼굴을 채 1초도 안 될 만큼 잠깐 바라보고도 그 사람에 대해 상당히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 게다가 상대방을 볼 때 항상 신체적 특징만을 보지는 않는다.

 

65p

  최근의 연구 사례들에서도 보듯이 사람을 잘못 알아보는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한 예로 1989년부터 2007년 사이에 미국의 수감자 중 201명이 유전자 증거를 통해 뒤늦게 무죄로 밝혀져 석방되었다. 더욱이 그중 77명은 증인의 잘못된 진술로 투옥된 경우였다.

 

66p

  아름다움을 인식할 때도 마찬가지다.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눈에 더 잘 띈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 300명을 노인과 젊은이, 흑인과 백인, 여성과 남성 집단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학교 졸업앨범을 보여주며 어떤 얼굴이 눈에 잘 띄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자 집단에 상관없이 대다수 피험자들은 미모가 뛰어난 사진을 우선으로 고르는 일관된 경향을 보였다.

범죄자의 얼굴을 규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인간의 이런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범죄의 추악한 얼굴이라는 비유적 표현도 있듯이,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범죄자들의 얼굴이 보통 사람들보다 추악해 보인다는 설을 입증했다.

 

72p

  더 중요한 사실은, 피험자들이 사진 속 인물의 능력을 추측한 시간이 대단히 짧았다는 점이다. 이어진 실험에서 피험자들이 정치인의 사진을 보고 그들의 능력을 추측한 시간은 각각 1초 이내였다. 게다가 연구진은 사진을 보여주는 횟수를 늘리더라도 피험자들의 처음 추측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첫인상이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73p

  여성의 신체가 월경 주기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월경기에는 얼굴 표정과 체형뿐 아니라 체취까지 달라진다. 실험 결과, 여성의 월경 주기 중 배란 직전의 얼굴이 (이성이 보기에는) 가장 매력적으로,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도 가장 멋지게, 체취도 가장 유혹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에서 주목할 사실은 변화의 정도가 눈에 띄게 확연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76p

남자들의 소비 습관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미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예컨대 특정 향기가 남자들의 지갑을 연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 실험에서 어느 소매점에 남성 취향의 방향제를 뿌렸더니 남성 1인당 평균 지출이 55달러였는데 반해, ‘여성 취향의 방향제를 사용했을 때는 그 절반도 안 되는 23달러에 그쳤다.

 

* 설명 가능한 경로로 무희의 목소리를 들 수 있다. 최근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생식주기에서 최고조에 다다른 여성들은 목소리가 더 매력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호르몬의 변화로 후두부의 형태와 크기가 달리지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Pjptone and Gallup(2008) 참조.

 

77p

값비싼 와인을 예로 들어 보자. 스탠포드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기술원의 연구진이 자원한 20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각각 5, 10, 35, 45, 90달러라고 적힌 와인을 맛보게 한 뒤 맛을 평가해달라고 주문했다. 피험자들은 와인 전문가가 아니라 우리처럼 간혹 와인을 마시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시음 후의 반응은 역시 예상대로였다. 가장 비싼 와인이 가장 맛있다는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시음 과정에서 연구진은 가격표와 내용물을 바꿨다. 90달러짜리 와인을 한 번은 90달러 병에, 또 한 번은 10달러 병에 넣었다. 45달러 와인도 한 번은 45달러, 또 한 번은 5달러 병에 넣었다. 이 사실을 밝히지 않고 시음을 계속했더니 피험자들은 예외 없이 높은 가격표가 붙은 왕ᅟᅵᆫ을 선택했다.

 

78p

우리의 판단을 흐르는 것은 가격뿐만이 아니다. 색상도 그중 하나다. 앞의 실험에서 약의 색깔에 따라서도 피험자들이 느끼는 약의 효능에 차이가 있었다. 실제 실험에서 사람들은 검정색과 빨간색 캡슐의 효능에 가장 강한것으로, 흰색이 가장 약한것으로 평가했다.

 

81p

그러나 살아가면서 가끔 경험하듯이,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답 바꾸기를 주제로 지난 70년 이상 진행해 온 연구를 살펴보면, 답을 바꾼 사람들 대다수가 틀린 답을 옳은 다으로 고쳐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객관식이든 양자택일형이든, 혹은 시간이 정해져 있든 없든, 시험의 유형과 상관없이 결과는 동일했다.

그런데도 처음 선택한 답이 정답이라는 신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로 학생들은 이런 연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도 여전히 처음의 답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2p

일반적으로 인간은 행동하지 않을 때보다 행동했을 때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무언가를 실행하다가 일이 어긋나버릴 바에야 차라리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수동적’,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인식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르는 죄책감도 훨씬 적다.

 

83p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사후에 가진 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밝혀졌다. 정답을 오답으로 바꾼 학생들 대부분이 오답을 정답으로 바꿀 시도조차 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훨씬 많이 후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두 경우 모두 정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바꿔서 틀리는 것보다 차라리 틀리더라도 내버려두는 편이 덜 후회스럽다는 뜻이다.

 

84~85p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처음 선택한 답을 고수하는 것이 더 훌륭한 전략이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크루거 교수는 사람들이 처음 선택을 고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게 된 배경에 이런 기억 편향도 한몫을 한다고 설명한다.

선택을 바꿔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반대의 현실을 더 잘 기억합니다. 역설인 셈이지요.”

 

90p

아마도 학생들은 성적이 나빴을 때보다 좋았을 때를 더 잘 기억하는 듯하다. 실제로 A학점을 기억한 비율이 89퍼센트였던 반해 D학점은 29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그래서 연구진은 F학점은 아예 계산도 하지 않았다).

91p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과거의 기억을 긍정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내용으로 재구성한다. 한 예로 부모는 자신들의 양육 방식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보다 전문가가 권유하는 이상적인 모델에 가깝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또 비슷한 예로, 도박꾼도 돈을 잃었을 때보다 땄을 때의 상황을 더 생생히 기억했다.

 

98p

실수를 유발하는 한 가지 중요한 원천이 바로 이 사후해석 편향이다. 사건의 결말을 충분히 알고 나면 과거의 그 사건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이 사후해석 편향의 핵심이다.

 

99p

게티즈버그 전투든 진주만 폭격이든, 사건이 지나고 나서야 역사학자들은 의미 없는 것들로부터 의미 있는 것들을 더 쉽게 추출해낼 수 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그 사건의 결과를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해석은 또 다른 무언가를 대가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른바 점진적 결정론이라고 알려진 과정이다.

 

사후해석 편향을 주제로 한 여러 실험의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사건 당시에 알게 된 것들을 과장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엉뚱하게 기억했다. 특히 사건 당시의 상황을 애초부터 잘못 파악했을 때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101p

그뿐만 아니라 웨슬리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학생 역시 자신들이 실제보다 똑똑해 보일 법한 기억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처음의 예측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 학생들은 처음의 그 예측을 과도하게 강조했다. 예를 들어 처음 예측의 발생 확률이 30퍼센트에 불과했음에도, 그것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는 확률을 50퍼센트 정도로 높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처음의 예측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는 그 반대였다. 즉 처음 예측의 발생 확률이 50퍼센트였더라도 실제로 기억하는 확률은 30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02p

미국 전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남자들이 말한 평생의 섹스 파트너 수치는 일반적으로 여자들에 비해 최대 네 배나 많았다. 한 남자의 새로운 파트너는 결국 한 여자의 새로운 파트너와 수적으로 동일함에도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107p

한 연구에서는, 동료 의사들이 제약회사의 뇌물 공세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의 비율이 84퍼센트에 달했다. 그럼 본인은 어떨까? 자신이 그 뇌물에 영향을 받는다고 대답한 비율은 고작 16퍼센트였다.

 

111p

한 연구진은 실험실 연구 결과, 자신은 부정하지 않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일수록 이후의 잇따른 상황에서 부정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프린스턴 대학교 연구진의 최근 실험에서 이 점이 입증되었다. 자신은 편견이 없다고 당당히 선언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정확하지 않는 견해를 드러내는 경향이 더 많았다.

 

112p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공개해버리면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담배회사들은 경고성 문구 하나를 표기해 놓고 마치 흡연자들을 죽여도 된다는 면허를 받은 것처럼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뢰벤슈타인의 투자 상담사들 역시 정확하게 예측하려 하기보다 자기 이익을 추구해도 좋다는 면허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이봐요, 저는 분명히 경고했어요.”)

 

117p

기술이 계속 혁신되고 있음에도 CFTT(정상 운항 중의 지상 충돌) 사고는 여전히 비행기 운항에서 치명적인 위험으로 분류된다. 비행기 사고의 40퍼센트 이상이, 그리고 비행기 사고 희생자들의 절반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CFTT와 관련되어 있다. 1990년 이후로 발생한 사고 중에는 이처럼 많은 생명을 앗아간 유형도 없었다.

 

사고 원인을 분석한 공군은 대다수 사례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절반 이상의 사고에서 승무원들은 로프트 기장처럼 조종실 내부의 상황에 대한 주의력을 상실했다. 긴급한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비행기를 제어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공군에서 지칭한 업무 포화이다. 업무 포화란 한 번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과도하게 많아진 상황을 말한다.

 

120p

한 실험에서 연구진이 학생들에게 채색된 십자가 형태와 삼각형 같은 도형 형태의 이미지 두 가지를 구분하게 했다. 순간적으로 보여 준다면 충분히 헷갈릴 법한 형태였다. 두 이미지를 동시에 본 학생들이 형태를 구분하는 데 약 1초의 반응 시간이 걸렸고, 그럼에도 실수가 여러 번 있었다. 반면에 이미지를 한 번에 하나씩, 예컨대 처음에는 십자가를 보여 주고 이어서 도형을 보여 주는 식으로 했을 때는 시간이 그 절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121p

직장 내 여러 연구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가지 업무에 집중하다가 전화 등을 이유로 방해를 받았을 때 본래의 집중력을 회복하는 데는 약 15분이 걸린다고 한다.

 

125p

클라워는 운전자의 주의를 빼앗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불과 2초만 눈을 돌려도 사고 위험이 두 배로 증가한다. 따라서 운전하다가 다른 무언가를 2초간 바라보아야 할 상황이라면 짧게 여러 번 나눠 봐야 한다.

 

130p

그는 초록색이라는 단어를 이와 대조적인 색상인 빨간색으로 인쇄해 놓고 실험 참여자들에게 읽게 하자 그들이 약간 머뭇거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트루프 효과(Stroop Effect)로 알려진 이 현상은 두 가지 일이 서로 얽혀 있을 때 주로 나타난다.

 

131p

운전자도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비가동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특히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이것이 더 어렵다. 바뀐 일에 집중하기까지 걸리는 이 시간은 노인들의 경우 젊은이들에 비해 두배까지 길어진다.

 

138p

그 결과, 프랑스 음악을 튼 날은 프랑스 와인의 판매량이 독일 와인을 압도했다. 반면에 독일 음악을 튼 날은 판매량이 그 반대였다(식품점 와인 코너에서는 보통 프랑스 음악을 트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고객들 대부분은 음악이 자신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와인을 선택한 구매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해당 항목에 답하게 했따. 그랬더니 응답자 4명 중 음악이 자신의 와인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고 대답한 사람은 14퍼센트인 6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구성의 위력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구성이란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140p

* 다른 몇몇 실험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암 치료법으로 방사선 요법과 수술 요법 두 가지를 제시했다. 그리고 생존율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자 피험자들은 수술 요법을 더 많이 선택했다. 반대로 사망률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을 때는 방사선 요법을 선택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피험자들의 의학 지식이나 학력 등은 선택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일반 대학생과 의대생,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결과는 모두 비슷했다.

 

141p

인간이 위험을 판단하는 시스템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반사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이고, 둘째는 그보다 깊이 생각하여 판단하는 방법입니다.” 오리건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폴 슬로빅 교수의 말이다. “인간의 위기 인식은 주로 감정과 직결되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합니다.”

 

145p

시간적 압박을 여러 경로로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2001911,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고 나서 많은 미국 사람들의 시간관념이 변했다. 특히 뉴욕과 같은 대도시 사람들일수록 하루살이식의 시간관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다이어트나 운동처럼 많은 시간이 필요한 활동들을 거부한 채 그럭저럭 편하게 지내는 생활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이어트 클럽에 계약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149p

물라이나단은 말했다. “놀랍게도 남자 대신에 여자 직원의 사진을 붙이자 이자율을 5퍼센트 내린 것도 동일한 수요 창출 효과가 있었습니다.”

 

150p

* 앵커링 효과란 누군가가 먼저 제시한 수치를 준거로 삼는 현상을 말한다.

 

153p

복숭아 통조림의 경우에는 ‘4’라는 숫자가 구매자들에게 준거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구매자들은 네 개라는 것만 보고 별 생각 없이 통조림을 집어 든다. 묶음 가격의 효과는 매우 확실하다. 식품점 86군데에서 실험한 결과, 묶음 가격 방식으로 판매된 제품의 매출이 단일 가격 방식에 비해 32퍼센트나 향상되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앵커링 기법을 이용하는 또 다른 사례가 보로 한정 수량이다. “고객 1인당 12개 이내 한정 판매와 같은 식이다. 이때는 숫자 12가 준거로 작용한다. 수량 한정이 매출을 끌어올린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실제로도 그렇다. 준거의 수치가 올라갈수록 매출도 더 늘어난다.

 

154p

실제도 거대 정당의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후보자들이 3퍼센트 정도 더 많은 표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156~157p

영향력이 매우 큰데다 이러한 심리적 조작은 식품점에서 투표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 소개하는 몇 가지를 참조하면 어느 정도는 예방할 수도 있다.

첫째, 재구성을 해봐야 한다. 한 예로 집을 사기 위해 가격을 절충해야 하는 사람은 전체 가격(25만 달러)이 아니라 면적당 가격(1평방미터당 2,500달러)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다.

둘째, 먼저 제시해야 한다. 물론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압류되었거나 그럴 예정인 부동산이라면 임대인이나 소유주에게 먼저 가격을 제시하는 편이 유리하다. 그러면 이 가격에서 시작하여 앞으로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셋째, ‘할인가격에 유의해야 한다. 판매자는 자신의 정한 가격을 내세워 구매자의 생각을 그 수준에 묶으려 한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도 밝혀졌듯이, 판매자 입장에서 할인가격은 더 이상의 할인을 차단하는 좋은 무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매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여러 곳의 가격을 비교하여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161p

심한 갈증으로 ㅇㅇ이 탄다.” 이 문장을 읽고 굳이 고민하지 않더라도 ㅇㅇ에 들어갈 단어가 입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이처럼 어떤 대상을 대충 훑어보는 성향을 교정자 실수라고 부른다.

 

169p

연구진은 수중에서 외운 피험자들은 수중에서, 지상에서 외운 사람들은 지상에서 단어를 더 잘 기억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예컨대 지상 암기자들은 지상에서 평균 13.5개의 단어를 기억한 데 반해 수주에서는 8.6개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수중 암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수중에서 평균 11.4개를 기억한 데 반해 지상에서는 8.4개밖에 기억해내지 못했다.

 

185p

한 연구진의 실험에서 가격표의 음절이 하나 늘어나면 기억하는 비율은 20퍼센트씩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둥글고 매끄러운 형태의 가격표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했다.

 

188p

몇 년 전에 바버라 트버스키와 듀크 대학교의 동료 교수 엘리자베스 마시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몇 주간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매일 기록하도록 지시했다.

 

몇 주 뒤에 두 교수가 기록을 정리한 결과, 학생들의 이야기 중 절반 이상(58퍼센트)은 정보 전달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주로 사회적 사건과 관련되었으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 횟수는 평균 2.7회였다. 두 사람의 예상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왜곡 수준은 뜻밖이었다, 학생들이 왜곡했다고 인정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지만 실제 왜곡 횟수는 학생들의 생각보다도 더 많았다. 트버스키와 마시가 분석한 바로는 학생들이 이야기를 첨가하거나, 생략하거나, 과장 또는 축소한 경우가 전체의 61퍼센트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인정한 비율은 42퍼센트에 불과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즉 왜곡 현상이 매우 일반적이어서 학생들은 사실을 엉터리로 전달하면서도 스스로 인식조차 못 한다는 것이다.

 

189p

두 교수가 이 실험에서 확인한 사실 중의 일부는 다른 한 실험에서 얻은 결과와도 놀랍도록 흡사했다. 다른 실험에서 두 교수는 피험자들을 낯선 사람과 만나게 하여 10분간 이야기하게 하고는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대화 후에 녹음한 내용을 틀어 주면서 그 내용 중 얼마만큼이 진실인지 본인이 직접 확인하게 했다. 그랬더니 피험자들의 60퍼센트가 대화 도중에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했다.

 

190p

대화가 일종의 행동이라면, 우리는 상대방이 내 위주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움직이도록 행동(대화)하는 셈입니다. 즉 나를 좋아하게 만들거나, 내가 현명하거나 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그녀는, 이런 이유 때문에 대화의 목적은 사실 전달이 아니라 이미지(인상)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대화에서 정확성은 이미지 관리보다 후순위라는 뜻이다.

 

듣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쉽게 속지도, 쉽게 믿지도 않는다. 즉 이야기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바로잡으려 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으로서, 이야기를 들을 때 남성이 여성보다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191p

트버스키와 마시는 앞의 연구에서,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마저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변형된 내용이 말하는 사람의 기억에 자리잡는 바람에 사실이 아닌 것사실처럼 기억되는 것이다. 이 점을 현실에서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통제되는 실험실 환경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입증할 수 있다.

 

198p

바꾸어 말하면, 남성은 자신의 IQ를 과대평가하는 반면에 여성은 과소평가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비단 IQ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은 자신의 매력에 대해서도 실제보다 호의적으로 평가한다.

 

201p

남성이 반드시 위험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위험의 가치를 여성에 비해 더 크게 생각할 뿐이었다(이번에도 사회영역은 제외되었다).

 

로프 끝에 매달린 사람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번지점프는 번지점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베버가 발견한 바로는, 이런 행동의 인식 가치에는 차이가 있으며 여성이 남성에 비해 번지점프를 원치 않는 경우가 더 많은 이유도 바로 이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즉 여성은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번지점프에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202p

한편, 남성과 여성은 거짓말을 하는 방식도 달랐다. 남자 대학생들은 (특히 여성과 이야기할 때) 계획이나 성적을 과장하는 등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많이 했다. 반면에 여대생들은 다른 사람을 치켜세우는 거짓말을 많이 했다.

 

204p

자신에게 회의적인 사람은 잘못된 전략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대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껏 해오던 대로 고수할 뿐이다.

 

205p

남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지리, 게임 등의 분야에 대해 연구했더니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도구를 활용했다. 그에 비해 여학생은 임기응변보다는 분명한 지침에 따른 단계적인 접근 방식을 선호했다.

 

211p

길을 묻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연구한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대니얼 몬텔로 교수의 말이다. 그는 남자들이 이 남성 자아에 얽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드 코넬 실험에서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닌 6세 남자아이들이 그랬듯이, 많은 성인 남자들도 현실에서 이렇게 배회하는 것을 그다지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몬텔로는, 남자들은 경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방향을 상실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했다.

 

217p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고객은 실패하는데 회사는 성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해답은-다른 대기업들이 흔히 그렇듯이-뉴트리시스템이 고객들의 믿음을 최대한 이용하는 데 있다. 즉 고객들이 앞으로 도전할 일이 아니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233p

모든 실험에서 전문보다 요약본이 더 효과적이었다. 학생들에게 20~30분의 시간을 주고 전문과 요약본을 구분하여 읽게 했더니 요약본을 읽은 학생들의 이해도가 더 높았다. 글을 읽은 지 20분 후와 1년 후에 각각 시험을 쳤을 때도 결과는 동일했다. 두 경우 모두 요약본을 읽은 학생들이 내용을 더 잘 기억했다(그러니 요약본이라고 해서 하찮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소용이 있든 없든 정보를 과도하게 축적하려는 욕구가 숨어 있다.

 

정말로 쓸모 있는 정보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지금도 정보를 열망한다.

 

246p

전문가를 진짜전문가답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문제에 대해 남보다 빠르게, 남보다 깊이 생각하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런 능력을 어떻게 계발했을까?

보통은 뛰어난 기억력 덕분이라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의 앤더스 에릭슨 교수는 말한다.

 

그는 분야에 상관없이 이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전문가들은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세계적 권위자들은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부단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248p

이처럼 각 분야 전문가들의 머릿속에는 커다란 도서관들이 하나씩 있기 때문에 이들은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고 문제점도 재빨리 파악할 수 있다.

 

258p

인간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때 그리 창의적인 편은 아닌 것 같다. 특히 현재와 비슷한 상황을 과거에 겪으면서 그 해결책을 이미 학습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262p

실수를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제약이다. 제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가진 다른 대안들을 제한함으로써 정도를 유지하게 도와주는 의식적 도구로 정의된다. 나 역시 제약을, 정해진 코스로 주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범퍼와 같다고 생각한다. 달리 생각하면, 제약은 실수를 막아 주는 차단막이기도 하다.

 

263p

제약과 유사한 개념 중 하나가 유도. 사용방식을 유도하는 것도 결국은 사용방식을 제약하는 것과 비슷하다. 유도의 방식도 다양하다. 제품의 형태, 구조, 크기 등을 통해 사용방식을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은 바닥에 튀기거나 던지기에 좋은 생김새다. 자동차의 운전대도 돌리기 좋게 되어 있고, 현금 투입구는 슬로이 있어 지폐를 밀어 넣기에 편하다. 처음 접한 물건도 유도의 의미만 잘 이해하면 그것의 기능과 작동 방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71p

인간의 실수도 마찬가지다. 실수의 원인을 분석하려면 인간이 가진 동기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가의 행동이 반드시 자기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자신에게 편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과신, 뒤늦은 깨달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의 판단은 왜곡된다.

 

275p

지난 10년 사이에 미국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비행기 사고는 65퍼센트나 줄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1997년에는 이륙한 비행기를 기준으로 거의 200만 대당 한 대의 비율로 치명적 사고가 발생했지만 2007년에는 약 450만 대당 한 대꼴로 줄었다.

 

276p

부검 사례를 연구했더니 의사들이 치명적인 질병을 오진한 비율이 무려 20퍼센트에 달했다. 이는 다섯 번 진단 중 한 번은 오진이라는 뜻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오진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오진 비율이 1930년대 이후로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의학협회저널은 개선 없음!”이라는 제목으로 이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을 요약했다.

291p

사람들은 누구나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결과가 더 좋은 쪽으로 달리질 수 있기를 바란다. 대출할 때 변동금리를 선화하고, 이혼에 대비해 결혼 전에 재산 분할 합의서를 만들고, 물건을 사더라도 자유롭게 반품할 수 있는 판매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92p

뢰벤슈타인은 희망이 적응을 방해한다.”라고 결론지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무언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상황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방법을 빨리 배울수록 행복이 빨리 찾아온다.

 

293p

캘리포니아 대학교 새디에이고 캠퍼스의 데이비드 슈케이드 교수는 사람들의 예상과 실제 미래의 행복 사이의 관계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그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 중에서도 사람들이 특정 용인의 가치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와 동료들은 이런 경향을 매몰 환상'이라고 불렀다. 이 환상도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그르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요인이다.

 

298p

대출자의 관심을 유발한 것은 무엇이었나?

 

여자 직원의 미모가 대출자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그러면 NHL이나 NFL에서 팀에 주어지는 벌칙의 경우는 어떨까? 벌칙을 유발하는 범인은 선수도, 코치도, 심판도 아니었다. 선수들의 유니폼 색깔이 바로 범인이었다.

 

299p

최근에 일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두 가지, 즉 이성적 차원과 본능적 차원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며, 마치 자동차의 전조등으로 아래위를 비출 수 있듯이 이성과 본능이라는 두 가지 차원이 지속적으로 교차한다는 사실에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의 실수 중 상당수는 행동하는 상황과 생각하는 상황의 경차 속에서 일어난다.

304p

실수를 줄이는 또 다른 방법들도 있다. 그중에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것도 있는데, 자기 방식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는 것도 그런 방법 중 하나다. 습관은 우리의 시간과 정신노동을 아껴 주는 좋은 친구다. 하지만 그 습관 때문에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우리 눈에는 애초에 보려 했던 것만 보인다.

 

306p

무언가를 결정할 때 우리는 다이어트 체험기 같은 눈에 보이는 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그릇된 결정을 할 때도 많다. 실제로 미국 중앙정보국은 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내부 정보 분석관들에게 사례 제시를 경계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사례가 사람들을 혼동하게 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결론은 이렇다. “정보 분석가들은 매우 일반적이거나 정보로서 가치가 거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례나 개인적인 상황에 큰 비중을 두지 말아야 한다.” 훌륭한 조언이다. 우리도 누군가의 추천이 아니라 상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310p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사고파는 현실 세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하게 의사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뇌의 거짓말

- 마이클 캐플런, 엘런 캐플런 지음/이지선 옮김/이상 펴냄/2010.7.15

 

10p

  오류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고 평등하다.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의견조차도 단지 소문과 권위와 편견과 정당화가 교묘하게 합쳐진 하나의 집합체일 수 있다. 비논리성과 비합리성은 프로레슬링 경기뿐만 아니라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실험실에도 만연해 있다. 이 같은 일반적인 어리석음(vulgar error)은 단순히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와는 다르다(끈 이론이나 대위법, 혹은 키르케고르의 철학에서는 이를 용서가 되는 무지로 본다). 문제는 날마다 말하고 행동하는 익숙한 것들에서 노골적으로 저지르는 잘못이다.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충동적으로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는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대중매체의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하는 어떤 막연한 대상들이나 사건들에 책임을 전가한다. 심지어 자신을 내세우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혀 관계없는 이유를 끌어다 쓰기도 한다(나는 진실한 신자이기 때문에 내 믿음은 분명 진실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온갖 미사여구(‘진정한 미국인이라면 나를 지지할 것이다’)와 사실이 아닌 통계수치(‘200% 더 싼 가격!’)를 들이댈 때, 우리는 쉽게 현혹되기도 한다.

 

20p

  매우 감정적이거나 정치적인 의미가 함축된 말은 객관성이 필요한 진술에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이 같은 비형식적인 오류들은 교묘하게 논리적 균형을 깨뜨린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유도 심문에서 그렇다. ‘그래서 지금 월마트가 저소득 공동체에 저가 물품을 공급하는 정책이 나쁘다는 겁니까?’ ‘그래서 우리가 줄행랑을 친다면 테러리스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제 아내는 안 때리시나요?’ 화자의 권위도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 화자의 강한 존재감과 드높은 명성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논거의 허점을 지적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그 오률들은 이렇게 속삭인다. ‘내가 더 크니까, 내가 더 좋은 교육을 받았고 더 좋은 차림새이며 더 좋은 지위에 있으니까 내 의견에 찬성해야 하고, 내가, 내가 아는 사람이, 내가 지금 언급하는 사람이 이미 크게 곤혹을 치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 말을 따라야 한다’ ‘당신은 내 영화들을 좋아했으니까 총기 규제에 관한 내 의견도 받아 들여야 한다’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고기를 더 많이 먹어야 한다

 

23p

  그런데 영역 논리를 입돠 더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타당성진실성의 차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적 타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규칙들을 제시했지만, 내용의 진실성까지 따지지는 않았다. 언뜻 다다이즘의 성격을 띠는 듯한 삼단논법을 예로 들어보겠다.

 

1. 모든Xqrspoo.

2. 2VX7Xqr이다.

3. 그러므로 2VX7spoo.

 

이 명제들은 진실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형식논리의 규칙을 착실하게 잘 따르고 있다. , 대전제, 소전체, 결론의 추상적 관계가 잘 성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용이 진실하지 않아도 형식논리의 측면에서 결론은 참이다. 이외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 우리가 믿는 것들,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도 이 삼단논법에 대입해볼 수 있다. 물론 튀어 오르는 원자들혹은 춤추는 천사들도 해당된다.

 

28p

  이마누엘 칸트의 표현대로 그 당시는 미몽에서 벗어나는시대였다. 칸트와 다른 모든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뉴터의 발견이 천문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듯이 독단적인 사고를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는 태도가 계몽주의를 싹트게 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는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여겼다. 계몽주의가 내건 표어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다. “용기 내어 지신의 이성을 사용하라(Sapere aude!)”

 

29p

  베이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기꺼이 믿을 수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이간은 관찰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참을성 있게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배척한다. 진실하고 균형된 것도 마찬가지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적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신에 집착하며 그보다 차원이 높은 것들을 배척한다. 자만에 빠져 경험의 관점도 배척한다. 저속한 자들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일반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것들을 배척한다.

 

38p

  스위스 뇌샤텔 대학의 레두안 비샤리(Redouan Bshary)10여 년 동안 청소 물고기를 관찰한 결과는 궤변과 억지가 판치는 시장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청소 물고기들은 각자 자기만의 작은 공간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오는 고객은 지역 주민들만이 아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매우 다양한 종의 물고기들은 빠른 서비스를 받기 위해 언제 어느 가게로 갈지를 선택한다. 그래서 시장을 둘러보는 관광객처럼 까다로운 물고기를 상대할 때는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다른 고객들에게 어떻게 서비스를 하는지 꼼꼼히 지켜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비스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느껴져야 비로소 자세를 취한다. 그러다가 무슨 속임수를 눈치 채기라도 하면, 당장에 지느러미를 흔들어 그 작은 물고기를 해치우려고 한다.

 

42p

  애덤 스미스가 창시한 고전파 경제학에서 가치란 대체 가능한것을 말한다. , 가치 있는 것이라면 가치 있는 다른 것과 주저 없이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완벽히 대체 가능한 가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50만 달러에 달하는 당신 집을 사겠다면서 은행 수표가 아닌 현금(100달러짜리 지폐 5,000장을 일일이 세면서), 혹은 금 50파운드를, 혹은 앞으로 10년 동안 당신의 십대 자녀 두 명을 무보수로 돌보겠다는 각서를 내민다고 상상해보라. 모두 화폐 액수는 같지만, 어쨌든 당신이 느끼는 가치는 각각 다를 것이다. ‘사용가치개념에서 교환가치개념으로 전환하는 일은, 합리적 경제학이 보장하는 약속의 땅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복잡한 일이다.

 

42~44p

  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어떤 상황의 결과에 대해 알거나 혹은 적어도 추측한 것을 바탕으로 한다고 가정한다. 이 가설이 과연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은퇴하는 날 다우지수가 어디에 머물지 추측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대효용을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확실한 가능성을 따질 수 있다면 합리적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가설에 대해 1953년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모리스 알레(Mauice Allars)가 제기한 흥미로운 문제가 있다. 다음을 읽고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 보라.

알레는 당신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제안한다.

A) 1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100%

B) 1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89%, 5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10%, 한 푼도 못 받을 확률 1%

선택을 했다면 다음 두 가지 중에서도 하나를 선택해 보자.

C) 1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11%, 한 푼도 못 받을 확률 89%

D) 5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10%, 한 푼도 못 받을 확률 90%

A)D)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림이 아니라 컴퓨터다. 컴퓨터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A)100만 달러를 받을 기회가 있다(이 경우는 확실하다). C)도 그렇다. B)500만 달러를 받을 확률이 10%이고, D)도 그렇다. 따라서 내가 1%라도 높은 확률을 원해서 A)를 선택한다면, 당연히 C)도 선택할 수는 없다. 그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선택한다. 결과가 불확실해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도박보다는 결과가 확실한 것을 선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관적 기대효용이론을 세운 I. J. 새비지(I. J. Savege)조차 A)D)를 선택했다. 그가 자신의 본능이 저지른 실수를 정정할 때까지였지만 말이다.

 

50p

  먼저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과연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가? 우리가 괜찮은 베이컨 샌드위치에 대해 말할 때 그 괜찮은 정도는 괜찮은 트럼펫 연주에 못지않을까?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카밀로 파도 아스키오파(Camillo Padoa-Schioppa)와 존 아사드(John Assad) 교수는 노의 안와전두피질에 있는 뉴런들이 가치에 대한 생각을 부호화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그것은 우리를 비롯한 영장류들이 이를테면 사과와 오렌지를 돈 같은 매개물로 전환하지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선호의 척도가 된다). 게다가 이 뉴런들이 부호환된 선호도는 일관적이고 강력하다. 붉은털원숭이들이 늘 사과주스 세 모금보다 포도주스 한 모금을 더 선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사과주스가 네 모금일 때는 사정이 달라지지만 이 같은 뇌의 선호도는 경험에 따라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노년에 부자가 되어 고급 샴페인을 맛볼 수 있게 되더라도 가난한 젊은 시절에 마시던 맥주보다 더 좋은 맛이 안 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대뇌피질의 외내두정역에 있는 뉴런들은 시각 정보를 안구 운동 지령으로 바꾸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여러 물체를 보면서 기대 이익을 추측할 때에도 활성화한다. 그에 따라 우리 뇌의 일부는 혜택과 가능성을 계산하며 주관적 기대효용에 근거하여 작동하기도 하는데, 그 계산이 꼭 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는 두개골 안에 있는 재정 고문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관심을 보내는 것이다.

 

52~53p

  신고전파의 경제학의 거장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1963년 한 MIT 동료 교수와 점심식사를 했다. 그때 새뮤얼슨이 한 가지 게임을 제안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맞추는 내기에서 이기면 200달러를 따고, 지면 100달러를 잃는 게임이었다. 경제학자인 그 동료는 난색을 표하며 답했다. 만약 그 내기를 한 번에 끝낸다면 사양하겠지만, 연속해서 몇 차례 계속한다면 기꺼이 할 의사가 있노라고, 그렇자 새뮤얼슨이 화를 내며 말했다. “결국에 가서 유리한 내기라면 한 번에 끝내도 유리한 건 마찬가지네. 불리한 내기면 몇 번을 해도 승산이 없을 테고.”

  그러나 그 동료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을 표출했다. “결국에 나한테 승산이 있다 해도 동전을 단 한 번만 던진다면 나는 질 수도 있지. 나는 그게 싫어.” 똑같은 행동이라고 해도 우리가 받는 느낌은 그것에 따르는 위험의 크기와 위험이 다가오는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널따란 널빤지 위를 걸을 때, 그 널빤지가 땅 위에 있는지 20층 위에 있는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유리할 것 같은 내기를 제안하더라도, 당신은 분명 내기에서 질 가능성뿐만 아니라 왠지 불길한 다른 가능성들까지 고려할 것이다. ‘게임은 공정할까?“ ’내가 이기면 돈을 선뜻 줄까?‘ ’내가 모르는 어떤 함정이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잘 속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러한 의심은 유리한 조건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게임이 여러 번 반복된다면 그런 의심은 점점 사라진다. 새뮤얼슨의 동료가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53~55p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r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사람들이 돈 내기를 꺼리는 성향, 손실 회피를 수량화하는 데 성공했다. 기대효용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이 기피 현상에 관한 연구는 행동경제학이 태동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그 결실로 카너먼은 2002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트버스키는 그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연구의 피험자들은 대체로 내기에서 이길 때 얻는 돈이 위험을 감수하며 건 돈보다 적어도 두 배가 되어야만 내기에 응했다. 사실 두 배 이상의 수익은 심지어 사기꾼조차 홍보할 엄두를 못 내는 수준이다.

놀랍게도 예일 대학 키스 첸(Keht Chen) 교수의 꼬리감는원숭이들 또한 거의 같은 계산을 했다. 그들은 확실한 만족감을 얻을 기회와 불확실하지만 더 큰 만족감을 얻을 기회 중 하나를 선택할 때, 불확실한 만족감이 확실한 만족감보다 적어도 두 배 반이 되지 않으면 결코 도박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절대적 관점이 아닌 상대적 관점에서 삼루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를 준거점 의존성이라고 한다. 실험자들이 한 원숭이에게 사과 조각 몇 개를 보여준 다음 거기에 몇 개를 더 추가했을 때(이때 총계를 X라고 하자) 그 원숭이는 기뻐했다. 그러나 실험자들이 처음에 X보다 더 많은 양을 보여준 다음 몇 조각을 빼고 남은 총계인 X를 건넸을 때는 원숭이의 고약한 심술을 상대해야 했다. 우리 영장류는 잃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는 이미 가진 것뿐만 아니라 가질 수도 있었던 것까지 고려하면 손실을 측정한다. ‘나는 구글을 150달러에 살 수도 있었다’ ‘나는 보스턴의 아파트를 팔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록밴드를 해체하지 않았어야 했다우리 내면의 꼬리감는원숭이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준거점 의존성은 단순한 가치판단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의 본질적인 단면이다. 19세기 독일의 심리학자 에른스트 베버(Ernst Weber)는 자극과 지각의 관계가 비대칭적임을 설명한 베버의 법칙을 만들어 명성을 떨쳤다(처음에 강한 자극을 주면 이후의 약한 자극에는 변화를 지각하지 못하고 더 크게 자극해야 지각할 수 있다는 법칙). 우리가 소리나 밝기, 무게와 같은 것이 일정한 비율로 점차 커지고 있다고 느끼려면(예를 들면, 1+1+1+1), 실제로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야 한다(1*3*3*3). 그렇게 때문에 별의 밝기나 데시벨을 측정할 때는 대수 계산자를 사용한다.

 

57~58p

  보유 효과는 놀라운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무엇을 잃고 난 뒤에 그것을 다시 살지 여부를 묻는 문제다. 당신은 기대감에 잔뜩 부푼 채 영화관에 도착한다. 티켓 가력은 10달러다(눈치 챘겠지만 실제 극장이 아닌 실험 속 가장 극장이다). 극장 안에 들어섰을 때, 당신은 A) 주차하는 동안 10달러 지폐를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도 티켓을 살 것인가? 혹은 B) 이미 샀던 티켓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티켓을 다시 살 것인가? 이 질문으로 실험한 결과, A)의 경우 88%의 피험자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한 반면 B)의 경우는 46%만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돈은 오로지 잠재적인 것이지만(아직 실질적 가치를 발휘하지 않았으므로) 티켓은 나의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두 번이나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수익률이 높은 주식을 지나치게 빨리 팔고 수익률이 저조한 주식을 지나치게 오래 끌어안는 경향이 있다. 비록 투자 손실이 과세에서 비롯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판 주식은 팔지 않은 주식보다 다음 해 수익률이 평균 3.4% 높았다. 우리는 좋은 것을 버리고, 나쁜 것을 유지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손실을 끌어안는 것은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원래 보유한 나의돈이 줄어든다. 이와 달리 수익률이 높은 주식을 팔면 분명한 수입인 남의 돈이 내 손에 들어온다. 이것을 바로 도박사의 오류라고 한다. 무언가가 평균 가치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그 가치를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심리다. 이 경우 우리가 평균으로 여기는 것은 주식을 살 때 지불했던 금액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이렇게 다짐한다.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때까지는 꽉 쥐고 있는 거야.” 그러나 1929RCA 주식(주가가 무섭게 치솟다가 192910월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와 함께 곤두박질 쳤음)을 보유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59p

  보유 효과란, 무엇이든 구매해서 자신의 것일 되고 나면 구매하기 전보다 그 물건에 더 애착을 갖는 현상을 뜻한다. 보유 효과는 돈마저도 단순한 돈으로 생각할 수 없게 유도해 우리를 더 큰 재정적 혼란에 빠트린다.

 

62p

  하지만 이런 현상은 개선되기보다는 손실 회피, 보유 효과, 근거 없는 낙관이 더해지면서 방치될 뿐이다. 역사는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에디슨이 백열전구 필라멘트 실험에서 만 번이나 실패했던 이야기 같은 수없는 실패담을 들려줄지 모른다. 하지만 이성은 할리우드의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W. C. 필즈(W. C. Fields)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한다. “처음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한 다음 멈추라. 정신을 차려보면 저주받은 바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덫에 걸린다. 재정 낭비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해서 무리수를 둔다면 세상의 비웃음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재정적 타격을 면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65p

  극단적인 예로,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뇌 영역인 전전두피질이 손상된 사람들은 위험한 판단이 야기할 불행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계산을 정확하게 할 수 있고, 이기는 게임과 지는 게임을 추상적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는 게임이라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언제 그만두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직감이 없거나 설령 있다고 해도 대개 무시한다.

이들보다 덜 극단적인 상태인 위험을 즐기는 도박꾼들은 미래의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 상황이 좋든 나쁘든 간에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잠재적 손실이 증가할 때 점점 큰 고통을 느끼고 잠재적 이익이 증가할 때 점점 큰 쾌감을 느끼는 것과 달리, 이들은 어떤 경우에서도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감각을 느끼기 위해 더 큰 자극을 원한다. 번지점프나 러시안룰렛(총알이 한 발만 들어있는 회전식 연발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방식으로 목숨을 거는 내기) 못지않게 위험한 도박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간단한 카드 게임인 고 피쉬에서 이길 때 느끼는 쾌감은 앞서 말한 도박사들이 전 재산을 걸 때 느끼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67p

  이 압도적인 욕망의 결과를 과도한 가치폄하라고 한다. 물건을 받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 그 중요성이나 가치를 대폭적으로 깎아내리는 심리를 말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 손에 당장 주어지는가 혹은 먼 미래에 주어지는가에 따라 그 가치를 판단한다. 비록 31일 후에 받는 1달러 10센트와 30일 수에 받는 1달러 중에서는 전자를 선호하겠지만, 내일 1달러 10센트를 받는 것보다 오늘 당장 1달러를 받는 편을 서택할 것이다. 즉각적인 보상과 지연되는 보상의 가치를 평가하는 뇌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본능적 욕구와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가 맡지만, 후자는 냉철한 판단을 하게 하는 전전두피질이 맡는다. 경제적 선택이 구매를 동반한다는 사실만 아니라면, 즉각적인 보상을 선호하는 심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본능이다. 만약 우리가 오늘의 1달러를 내일의 1달러 10센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누군가는 우리에게 1달러를 그러한 기준으로 팔려고 할 것이다. 바로 신용카드 발급을 제안하면서.

 

71p

  신용 사기꾼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사람들의 두 가지 비합리적인 본성에 의지한다. 그것은 바로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가용성 간편추론법’, ‘대표성 간편추론법이라고 부른 것이다(간편추론법의 다른 말은 어림짐작이나 주먹구구식으로 헤아리는 방법). 이 중 앞의 것은, 우리가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이상적이고 만족스러운 것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하는 특성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좋아하고, 따분한 숫자들이 나열된 통계표보다 하나의 좋은 사례를 더 환영한다. 그리고 흔히 내가 기억하는 걸 보면 중요한 것이 분명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뒤의 것은, 서로 관련이 없는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때 둘 사이의 관련성을 생각하는 특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값비싼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재계의 실력자들만이 알 법한 금융 비화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면, 그 사람의 존재감을 크게 느끼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스스로 삶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불법 텔레마케터들이 외과 의사를, 이메일 사기꾼들이 성직자를 주로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75p

  오늘날의 시장에서 진정으로 자주적이고 자유로운 해지펀드들은 규제나 감시를 받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돈을 이용해 그리고 가장 예측하기 힘든 파생상품을 통해 주식을 사고팔지만, 여전히 일관되게 절대적인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심지어 시장이 상승세를 탔던 1990녀과 2000년 사이에도 그중 90% 이상이 수익을 내지 못했다. 높은 수수료가 부과되기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77~79p

과학은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아마도 이 가설은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실생활에서 효과적이지 않은 다른 가설들을 낳는다. 실제로 우리는 비합리적 행동에서 비롯된 여러 경제 문제들을 겪고 있으며, 거시 경제는 계속해서 변칙들을 양산한다.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lof, 이 장에서 언급한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처럼 그도 노벨상 수상자다)2007년 미국 경제학회에서 그중 다섯 가지를 설명했다.

첫째,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고전파 경제학은 사람들이 부(현 수입과 할인된 미래 수입의 총계)가 증가할 때만 소비를 늘린다고 가정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중 절반 이상은 현 수입만 증가해도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무모하게 소비를 늘린다. 이 사회에는 검소한 개미가 있는가 하면 무책임한 베짱이도 늘 존재한다.

둘째, 당신과 당신 자녀들이 모니악에 설치된 수조처럼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면, 당신은 죽기 전에 정부 지원금을(이를테면 방탕한 생활을 통해) 모두 써버리려고 할 것이다.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든 결국은 당신 자녀들에게 상속세와 양도세를 부과함으로써 도로 거둬들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본질적으로 빌린 돈을 유산으로 상속하는 것일까?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그리고 말년에는 단지 무언가를 남기는 즐거움을 위해 지나친 절약을 한다.

셋째, 이론상 회사 임원들은 주주들을 위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려고 최상의 투자를 시도한다. 이용 가능한 현금 자금을 활용하든 주식을 되사든 부채를 지든 그 방법은 중요하지 않지만, 올바른 투자라면 융자 옵션들을 균형 있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 역시 개인과 마찬가지로 장기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경상수입만 고려해 투자를 촉진한다. 현금이 갑자기 많이 유입될 때, 그 기업 임원들은 무엇이라도 사야 할 것만 같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

넷째, 필립스 곡선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관계를 매우 간단하게 보여준다. 실업률이 낮을수록 임금 인상률이 높게 나타난다. 후에 이 이론은 자연실업률이 반영되면서 수정되었다. , 실업률이 낮으면 임금 상승 기대로 말미암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실업률이 높으면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로 말미암아 경기침체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1990년대 미국의 상황(역대 최저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동시에 낮은 인플레이션을 보였다)뿐 아니라 불경기에도 임금이 낮아지지 않고 단지 임금을 받는 사람 수만 더 적어진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했다.

다섯째, 고전파 경제학은 합리적 기대를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다음 달 무슨 조치를 내릴지 미리 예측하는 것은 합리적 기대에 속한다. 만약 중앙은행이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통화정책을 완화하기로 결정한다면, 각 경제주체들은 수요를 늘림으로써 이에 미리 대비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만 높아진다. , 통화정책은 이론상 실물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파워가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1970년대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아서번스(Arthur Burns)G. 윌리엄 밀러(G. William Miller)는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과 고물가 상태)을 잡기 위해 애를 썼음에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1990년대에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눈썹을 한 번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80~81p

애틀랜타의 여키스 국립영장류연구소에서 갈색 흰목꼬리감기원숭이 무리는 우리의 오랜 습관처럼 일하고 지불하고 소비하는 행동 패턴을 보였다. 그들은 본래 협력하는 무리로, 먹이를 포함해 무엇이든 공유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보상에 관한 한 그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거래를 주시한다. 포도는 맛이 좋고 오이 조각은 맛이 덜하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한 암컷에게 오이 한 조각을 주고 그 이웃에게도 똑같이 한 조각을 주면, 그 암컷은 오이 조각이 맛이 없어도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이웃에게는 오이가 아닌 포도를 주었다면, 그 암컷은 당신 얼굴에 오이를 던지려고 할 것이다.

단지 오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캐플런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일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거나 적성에 맞아서이거나 존경을 받기 위해서이므로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로는 충분치 않다. 보수만으로는 의미 없이 분주한 노동을 충분히 보상할 수 없다.

 

82~84p

먼저 죄수의 딜레마를 보자. AB는 범죄 혐의를 받고 검거된 후 서로 격리된 채 심문을 받았다. 검사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만약 A가 밀고하고 B가 침묵하면 A는 자유의 몸이 되고 B20년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가 침묵하고 B가 배신할 경우 A20년형을 받게 된다. 만약 서로 상대방을 배신하면 AB10년형을 받는다. 만약 서로 협조적으로 끝까지 함구한다면 몇 달 수에 방면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 개인에게 가장 좋은 전략(,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 형량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기 위한 전략)은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 게임이론을 보면 냉전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핵무기 경쟁이 대표적인 예, 핵무기는 비용이 많이 들고 사회적 불안감을 조장하는 등 이익이 될 것이 없지만,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군사적 우위를 차지할까봐서 계속 핵무기를 만들게 되는 딜레마에 빠졌음).

최종제안 게임에서는 A가 게임의 주재자에게서 10만 달러를 받는다. A는 그 돈을 자기 몫과 B의 몫으로 나누는 역할을 한다. A10만 달러를 73으로 나누어도 되고, 5 5로 나누어도 된다. 만약 BA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AB는 그 비율대로 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BA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둘 다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한다면 A10만 달러 중 극히 일부를 B에게 제안해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고, B는 그 제안을 거절해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하는 쪽보다 극히 일부의 돈이라도 받는 쪽을 택할 것이다. 물론 컴퓨터라면(그리고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선택을 쉽게 할 것이다.

그러나 페르 교수의 피험자들은 예상과 다르게 행동했다. 여러 번 실험 한 결과, 그들은 경제성과 합리성보다 공정성과 이타성을 더 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상대 용의자와 협력하고, 계속해서 돈의 공정한 배분을 요구했다. 게다가 배신자나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상대방을 응징하기 위해 기거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결정은 장기적인 안정성을 획득하거나 자신에 대한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실험은 단 한 번에 그쳤고 피험자들은 서로를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훌륭한 도덕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피험자들 중 약 50%는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사회적 기준들을 개인의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평가했다.

당신이 ,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취리히 대학원생들에 한한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전에 페르 교수는 당신의 생각을 읽었다.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금액이 석 달 치 월급에 달하는 진짜돈을 걸고 똑같은 실험을 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네델란드, 미국에서도 같은 실험을 했다. 각 실험 결과,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사회적 응집력은 같은 비율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팀에서는 경제학이나 심리학 이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에 사는 민족들인 탄자니아의 하드자(Hadza), 몽골의 토르구드(Torgoud), 파푸아의 구노우(Gnau), 파라과이의 아체(Achá), 페루의 마치구엥가(Machiguenga)족 등을 상대로 실험을 실시했다. 농부든 양치기든 정착민이든, 유목민이든, 튀르크 어파에 속하든 쿠시 어파에 속하든 매크로파노타칸 어파에 속하든 간에 개인적 이기심보다 공정성을 따지는 사회규범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호호 이코노미쿠스는 사람이 사는 육지에는 살지 않는 모양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사회적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더 사회적인 사람들이 있다. 페루의 키추아(Quichua)족과 인도네시아의 라마레라(Lamalera)족이 각각 최종제안 게임을 했을 때, 평균 제안액은 전자가 훨씬 더 적었다. 라마레라족은 돈의 절반만을 제안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카추아족은 상대가 얼마를 제안하든 기꺼이 수락하는 경향을 보였던 반면 도도한 구노우족은 호의적인 제안을 피츠버그 대학생들보다 더 자주 거절했다. 이렇듯 다양한 양상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상호 거래가 활발하고 협력 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이익을 더 공정하게 분배하며 사회규범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예컨대 라마레라족은 고래잡이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때문에 협력이 중요한 부족이다). 개인별로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은 무의미하다. 집단의 기준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제로 분배 게임이 몇몇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아웃사이더들만이 즐겨 하는 무모한 놀이라고 생각하는 부족은 없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은 재화의 공정한 분배를 결정하는 것이 일상생활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했다(케냐의 오르마(Orma)족은 자신들도 그와 같은 게임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 게임을 하람비(harambee)’라고 불렀다).

 

85p

앞의 시럼들에서는 어떤 목적성도 과감히 배제했다. 남은 것은 페르 교수가 강한 상호성이라고 부른 것뿐이다. ,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타인의 친절을 친절로 갚고 타인의 불친절은 불친절로 응수하는 본능적인 태도다. 이 본능이야말로 비합리적이고 비형식적인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놀랍게도 우리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약을 맺는다. 라고스나 상파울루에서 택시를 잡아탈 때, 운전기사는 우리가 요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지 알기도 전에 우리를 행선지로 데리고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요금을 내지 않고 도망칠 수도 있지만 대개 요금을 지불한다. 강한 상호성은 직장에서도 적용된다. 직원들이 법정 근로 시간을 초과하여 일할 때(물론 심야 비디오 대여점은 예외다), 고용주는 직원에게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발언들은 그 논리정연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비합리적인 계급 평화주의라는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고 만다. 자본가든 노동자든 우리가 같은 장소에서 일할 때, 우리는 서로 함께 일하고 있다고 믿는다.

 

86~87p

캘리포니아 대학의 제프리 골드버그(Jeffrey Goldberg), 리비아 마르코치(Livia Markóczy), 로렌스 잔(Lawrence Zahn)에 따르면 그 욕구는 단순하다. 그들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상대를 배신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대와 협력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가지 특징을 밝혀냈다. 그것은 통제감 착각대칭이다. 우리는 특정한 상황에서 막연히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믿으며, 무언가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지나치게 과신한다. 선거를 생각해 보자. 자신이 뽑은 당이 다수당이 되지 않았을 때 짜증이 나는가?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투표를 하는가?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져본다면, 당신의 표는 수백만 표 중 하나에 불과할 뿐 그다지 큰 의가 없다. 또한 게임이론에 따르면 합리적인 선택은 이기적인 배신자가 되는 것이지만, 대칭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공정한 선택을 하길 바랄 거라고 느끼게 한다. 이와 동시에 통제감 착각은 우리의 공정함이 상황을 올바르게 만들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물론 그런 것들은 사회적 훈련에 따른 습관과 선택일지도 모른다. 몽골의 천막집과 아마존의 오두막, 형광등이 켜진 세미나실에서 모두가 같은 행동을 보일 때, 우리는 사회적 삶에 가해지는 압력(어머니의 훈계 같은)은 놀랍게도 세상 어디에나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몇 가지 실험에서는 그러한 우리의 사회규범들 저변에 더 기본적이고 확고한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준다. 실험의 피험자가 불공정한 제안을 받았을 때, 뇌 영상에서는 사고와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일부인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크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르 교수의 연구진은 이 뇌 영역의 활성화를 억제하기 위해 경두개 자기자극을 가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만족과 관련 있는 뇌 영역인 선조체가 현금을 지급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배신자를 응징할 때도 활성화되었다. 우리는 상대를 응징할 때 경제적 손해를 보더라도 경제적 이익을 얻었을 때와 똑같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민속학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협력, 배신, 복수와 같은 문제들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것은 사실이다.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수치만 보더라도 그 피험자가 불공정한 제안을 얼마나 쉽게 거절할지를 알 수 있다(‘고작 3달러를 주겠다고? 이거나 먹어라!’). 남성의 뇌는 그렇게 경제적 의사결정을 내리고는 바로 스위치를 끈다. 반면 여성의 뇌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미래의 보상을 예측하고 전략을 세우며 불공정성에 분개한다. 그리고 서로가 협력할 때 여성의 뇌는 보상 영역인 선조체와 규칙과 관습을 인지하는 영역인 안와전두피질에 스위치를 켠다. 이렇게 볼 때, 여자들이 이기적인 행동보다 공정한 행동에서 더 큰 만족을 얻으며 그러한 행동을 더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92p

지극히 평범한 물건도 저항하기 힘들 만큼 유혹적인 대상으로 보여야 한다. 따라서 영리한 광고는 그저 필요하기만한 물건을 모두가 갈망하는 물건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암시와 연상 작용을 사용한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상품을 개인적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93~94p

벨기에 루벵 대학의 연구팀은 둘째손가락과 넷째손가락 길이의 차이와 남성들이 섹시한 여성이나 란제리 사진을 본 후 불공정한 제의를 받아들일 확률 사이에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손가락 길이라니? 하지만 사실이다. 둘째손가락이 넷째손가락에 비해 더 짧을수록 태어나기 전부터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남성일수록 최종 제안 게임에서도 대개 속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쉽게 주의가 흐트러질 수 있고 성적인 자극이 가해졌을 때는 불공정한배분을 수락할 가능성이 더 높아간다. 돈보다 즉각적이지만 더 작은 보상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성적 욕망은 과도한 가치폄하가 작용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상인들은 예쁜 여자 점원을 고용했고, 자동차 공구회사들은 섹시한 여성의 사진이 인쇄된 달력의 힘을 일찍부터 발견했다. 불공정한 거래를 분간하지 못하도록 남성들에게 성을 파는 것이다.

 

96~97p

그러나 우리는 막상 선택권이 주어지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심지어 의사가 관절염 처방을 내리기 위해 두 개의 치료약 중 하나를 선택할 때도 그렇다. 버트랜드 연구팀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험을 했을 때도 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은행이 단기 대출 프로그램 안내장을 보낼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자, 월별 이자율을 2.3% 올렸을 때만큼 대출 신청 수가 줄어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는 많은 휴대전화 회사들이 복잡한 요금제를 실시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느니 차라리 가장 비싼 요금제를 선택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생활에서 우리의 이상은 다음과 같은 코닥의 약속 안에 있다. “버튼만 누르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합니다.”

광고가 정보나 경고, 혹은 선택권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앞에서 보내는 수천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전 세계적으로 그 산업에 연간 수천 억 달러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인지, 위신, 연상이다. 먼저 인지부터 살펴보자. 우리의 마음은 효율을 추구한다. 효율은 우리가 선택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무언가가 필요한 순간 인지도 높은 브랜드를 발견하면, 우리는 그 브랜드를 선호하게 된다. 뇌 스캔 실험에서 사람들은 같은 코카콜라라도 브랜드를 몰랐을 때보다 브랜드를 알았을 때 맛이 더 좋다고 느꼈다(흥미롭게도 펩시의 경우에는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듯 편향된 선택은 우리가 일반적인 제품들을 지칭할 때 제록스클리넥스같은 특정 상표명을 언급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위신 역시 선택을 크게 좌우한다. 만약 할리우드 여배우 앤디 맥도웰(Andie MacDowell)이 당신에게 자신의 메이크업 브랜드를 사용할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무례한 일일 것이다. 광고는 그 제품을 사용하면 우리도 동료 영장류가 주스 및 몇 모금을 희생해서라도 보려고 안달이 난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광고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비단 개인의 지위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교묘하고도 의미심장한 계급의식을 심어준다. 랄프로렌(Ralph Lauren)은 부유층 자녀들이 입었던 치노바지와 샴브레이 워크셔츠의 고급화 전략으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그 옷을 입은 빼빼 마른 모델들은 조금 서투르고 어색하면서도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어서 마치 그로턴과 미스 포터즈(미국 명문 사립학교들)의 학생들을 보는 것 같다. 옷이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까지도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신감이 높아서 겉치장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반영한 것이다.

99p

가격처럼 위신도 상대적인 문제다. H. I. 멩컨(H. I. Mencken, 미국의 평론가이자 언론인)부유한 남자란 처형의 남편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비교당하는 것만큼 불쾌한 일도 없다. 하지만 햄프턴, 생트로페, 키웨스트의 쇼핑가들을 거닐다보면, 경쟁적인 과시와 소비의 불안한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단조로운 어촌으로 온 사람들이 또다시 그 틀에 갇히고 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당신은 이번 시즌의 필수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는가? 이 맥락에서 당신의 검정 티셔츠가 J. C. 페니(J. C. Penney)인지 아르마니(Armarii)인지는 실제로 중요하다. 브랜드는 당신이 오이가 아닌 포도를 땄다는 안심을 주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는 수요뿐 아니라 공급도 반영한다. 그래서 제품의 희소성 또한 위신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102p

반면 경험을 구입할 때, 우리는 오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스카이다이빙 레슨을 받거나,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오르거나, 운하용 배에 올라타 루아르 강을 건너거나, 야구장에 갈 때, 각각이 주는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는데다 결코 질리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증명된 바는 없지만 설득력 있는 네 가지 가설이 있다.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영원한 부분이 되지만, 소요물은 분실, 부패, 퇴색 등을 통해 언젠가 버려질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라 경험은 사회적이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해주는 반면, 소유물은 개인적이어서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 경험은 물질만큼 우열을 가르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대성당 안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세인트바트 섬 해변에서 휴식을 취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롤렉스는 나의 타이맥스에 끊임없이 모욕을 준다. 또 경험은 시간을 늦춘다. 신형 메르세데스 벤츠는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일과 속에서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자동차 주행거리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를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한여름에 카타딘 산에서 해돋이를 본 기억은 전혀 다른 교훈을 준다. 짧은 순간도 더없이 충만하고 황홀한 기끔을 담아 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110p

성인의 뇌에는 그 수가 대략 1조에 달하는 뉴런들이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은 다른 1만 개의 뉴런들과 연결되어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또한 1초당 뇌에서 만들어지는 신호는 1년간 전 세계의 국제 전화 통화 중에 오가는 단어 수보다 1,000배 더 많다. “나는 수많은 것을 담고 있다.”라는 휘트먼(Whitman, 미국 시인)의 말은 옳았다.

 

112p

스탠퍼드 대학의 콰비나 보아헨(Kwabena Boahen)은 실리콘으로 뇌의 뉴런 구조들을 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인정한다. “최첨단 컴퓨터는 초당 109개의 명령을 수행하는 데 100와트의 전력을 사용하지만, 뇌는 초당 1016 시냅스 작용을 수행하는 데 겨우 10와트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볼 때 뇌가 109와트로 처리하는 일을 컴퓨터가 하려면 무려 1기가와트(10억 와트)가 필요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수치는 대다수 발전소의 최다 발전량을 초과하는 양이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전력을 50만 가구에 공급하든지 아예 하 인간의 지성에 공급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뇌는 매우 느리기도 하다. 대다수 뉴런들은 5밀리 초(1밀리 초는 1,000분의 1)당 오로지 한 번만 활성화할 수 있다. 우리가 0.5초 사이에 하는 행동(구덩이를 피하기 위해 길을 가로지르거나, 자기방어를 위해 총을 꺼내는 것처럼 인식, 결정, 행동으로 이어지는 패턴)에서 뉴런은 100회에 걸쳐 활성화한다. 하나의 컴퓨터로서 인간의 뇌는 랩톱컴퓨터보다 클록 속도가 50만 배나 느리다.

 

114p

뇌는 병렬 처리를 함에 따라 추가적으로 두 가지 기능을 더 갖는다. 그 때문에 뇌는 범용컴퓨터의 단순한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다. 첫 번째 특징은 모듈성(단원성이라고 한다)이다. 한 가지 문제를 두고 뇌의 다양한 영역에 있는 개별적인 시스템들이 동시에 작용해 그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이때 자극의 위치나 강도 같은 기본적인 감각 정보는 물론 더 고차원적인 문제들도 처리한다. 이 과정은 1초당 200회에 이르는 뉴런의 활성화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롤린슨의 예로 돌아가 보자. 롤린슨이 쓴 혼란스러운 문장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동안 당신의 뇌는 다양한 영역에서 매우 다양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한다. 명암이나 날카로움, 형태 등을 단순히 파악하는 것에서 나아가 문법, 구문론, 의미, 기억 그리고 이게 뭐지?‘ 하는 어리벙벙함까지. 이 다양한 생각의 흐름은 저절로 전개된다. 화사의 경영자 같은 누군가가 나서서 일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로지 이 같은 뇌의 처리에 따라서만 세상을 인식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빈 서판, 인간이 백지 상태에서 태어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은 없다. 인간의 마음은 이미 내부에서 미리 형성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비선형성(반응이 주어진 것에 비례 또는 반비례하지 않는 성질)’이다. 개별적인 뉴런만을 볼 때, 뉴런의 임무는 간단하다. 흥분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뉴런이 흥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집단이다. 이웃 뉴런들로부터 흥분성 또는 억제성 입력을 받는 것이다. 만약 흥분이 뉴런의 시냅스를 거쳐 다른 뉴런의 입구(수상돌기)로 전달된다면, 그 흥분은 그 뉴런 안(축색돌기)에서 전기 신호로 전도된다. 이 연결은 마이크로 회로의 논리적 문들처럼 고정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마치 친구들이 밥을 여기서 먹을지 다른 데서 먹을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개연적이고 순환적이다. 이러한 비선형적 요소는 뇌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에 속한다. 따라서 동일한 자극에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고, 미세한 변화로 인해서도 매우 의외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예측 불능을 낳는 미생물이 늘 존재한다. 뇌 속에 있는 각기 다른 수준의 다양한 모듈들은 하나의 (인지적) 문제를 두고 병행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측 불능성을 띠며 수많은 상황 속에서 오류를 저지르기 쉽게 되다. 따라서 열쇠를 잃어버린다거나, 모임에서 본 낯선 사람을 친구로 착각한 나머지 지나치게 친한 척을 한다거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예측 불능성은 더 나아가 사랑을 할 때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인간이 컴퓨터보다 더 나아 보이게도 한다. 입력은 출력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저마다 다르게 반응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또한 뇌의 활동이 비록 전기화학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하더라도 이 같은 비선형성 덕분에 우리의 경험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즐겁게도 자유의지처럼 느껴질 것이다.

 

117~118p

이 문제의 원천은 우리의 탁월한 능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는 동시에 세 개의 뇌를 사용한다. 바로 뇌의 진화과정에서 발달한 세 가지 층을 말한다. ‘3부 뇌이론을 주창한 매클린(Paul Maclean)은 이 세 개의 뇌를 양손이 두꺼운 모직 장갑을 끼고 주먹을 쥐어 들어 올린 모양으로 묘사했다. 이때 손바닥에 해당하는 뇌간은 원시적인 파충류의 뇌. 트라이아스기에 번성하던 파충류의 뇌와 다를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파충류와 원숭이의 뇌에서 이 구조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담당한다. 사냥하여 먹이를 구하고 구애를 위해 과시하고 잘 곳을 마련하며, 떼를 지어 다니고 영역을 지키고 약자를 겁주고 한곳에서만 배변하는 등의 동물적 본능을 주관한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다.

손가락들(변연계)포유류의 뇌가 된다. 이 역시 의식적이지 않으며, 파충류는 못하지만 포유류는 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한다. 새로운 행동을 배우고 가족들을 돌보며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 같은 것들이다. 이런 행동들은 파충류 노이무조건적인 반사 의식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감정의 소용돌이치는 힘에 따른 것이다. 당신이 개와 함께 산다면 그 감정의 역할이 얼마나 강렬하고 미묘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외로움, 공감, 심술, 모성애. 아마도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다른 동물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느낄 것이다. 느끼는 방식에 관한 한 우리는 그들과 같은 매커니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모직 장갑(신피질 혹은 대뇌피질)은 우리가 영장류로서 특별한 사고를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엄지손가락들(전전두엽)은 우리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한다. ,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접근법을 통해 자신을 조절하는 등 인간다운 정신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엄지손가락은 손이 하는 모든 역할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뇌포유류의 뇌파충류의 뇌를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동시에 모든 층에서 삶을 경험한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 두려움, 욕망, 불쾌감은 신중한 결심과 계획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우울, 향수, 연민은 우리의 결의를 무력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고 자문하고 있다면, 즉 다시는 안 마시겠다던 술을 마시고 있거나, 단골 고객에게 모욕을 주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었다면 그것은 당신이 라고 부르는 정신이 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와 반대인 본능과 감정이 없는 논리도 똑같이 위험할 수 있다.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이 손상된 상태에서 전전두엽이 작용한다면, 위험을 잘 판단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욕과 열의를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120~121p

왼쪽 눈을 감아보라. 채을 들어 눈과 어느 정도 간격을 둔 다음, 옆 페이지 그림 안의 왼쪽 하얀 점을 응시하라. 그 상태에서 책을 가까이 당기면 검정색 십자가 사라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눈에 맹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맹점은 망막에 시신경만 있고 시세포가 없어서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이 실험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당신에게 맹점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사라진 정보를 배경 무늬로 대신 채웠다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당신의 뇌가 구성한 무언가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많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같은 실험을 해볼 수 있다. 막대 모양의 딱딱한 빵 한쪽 끝을 주시하면,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럼 그가 샐러드를 텅 빈 공간 속으로 밀어 넣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123~126p

이 같은 시각적 착각은 바로 착시라고 부르는 것으로, 실제로는 변함이 없는 것에 대한 우리의 타당하지 않은 추측일 뿐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볼 수 있는것을 통제한다.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절뚝거리는 것일까? 왜 자신이 실물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내버려두지 못할까? 왜 우리는 착각의 수렁 속에 빠지는가?

그 답을 얻으려면 다시 자원으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각 눈은 1초 마다 무선 랜 접속 시 데이터 량(10메가비트)만큼의 시각 정보를 대뇌에 공급한다. 그 시각 정보들은 투과된 빛을 감지한 시세포들을 통해 부호화된 신경 신호들이고, 시각 중추는 시신경을 타고 전달된 이 신경 신호들을 바탕으로만 색각(색 식별 감각)을 느낀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보는 현실은 매우 축소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이 빈약한 정보의 흐름이 마치 거침없이 쏟아지는 소방용 호스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우리의 경험들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중 대부분의 것들을 내다 버리고 나머지 것들을 우리의 기대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비록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우리 뇌에는 목적지가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각 경로가 있는 듯하다. ‘북측 경로는 주로 이게 뭐지?’ 하는 물음을 던지기 바쁘다. 이 경로를 따르는 신경 신호들은 날카로움, 방향, 그림자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과 같은 시각적 자극들에 반응한다. 이 북측 경로의 중요한 역할은 분류다. 그러므로 머릿속에서 나는 모른다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이 경로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배측 경로에서는 여기가 어디지?’ 혹은 이걸로 뭘 할 수 있지?’ 하는 의문을 품는다. 이에 따라 우리는 시력이 미치는 범위로 손과 발을 뻗는 등 우리의 신체 활동을 시야와 연결시킨다. 그런데 시각 경로들은 각각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북측 경로는 착시에 의해 조작되어 우리가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로 오인하게 하거나 보이지 않은 것을 봤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배측 경로 착각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다. 사물의 인식과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옆 페이지의 그림을 보자.

왼쪽 그림의 중심 원이 오른쪽 그림의 중심 원보다 더 크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두 원의 지름을 재보면 길이가 같다. 북측 경로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사람은 이 착시현상처럼 크기와 모양을 바르게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것들의 이름을 정확히 대지 못한다. 하지만 모양이 제각각인 모형들을 같은 모양의 구멍에 올바로 넣을 수는 있다. 이에 비해 배측 경로 착각은 증세가 덜 뚜렷하다. 그런데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갑자기 섬광이 번쩍이더니 나는 뒤로 넘어졌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사방이 훤비 보였다. 그때 나는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유체이탈 체험은 이제 죽음만큼이나 판에 박힌 이야기가 되었다(비록 그런 현상은 대개 기절하거나 약에 취하거나 측두정엽에 손상을 입었을 때 나타날 수 있지만, 캐나다 로렌시아 대학의 실험에서는 강한 자기장이 노의 특정 영역을 자극하도록 만든 헬멧을 쓴 피험자들도 똑같은 현상을 경험했다). 최근에 실시된 실험에서는 건강하고 완전히 의식적인 상태의 피험자들이 오로지 착시현상만을 통해 그것을 체험했다. 피험자들은 가상현실 안경을 쓴 다음 뒤에서 몇 미터 떨어진 카메라에서 나오는 영상을 보았다. 그러자 그들 각각은 자신의 의식적 자아가 육체 밖에 존재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한 실험자가 카메라 근처에서 공중에 주먹질을 했을 때는 피험자들의 피부 전기 반응이 고통을 감지하는 것처럼 활발해진 것이다. 비록 그들은 자신들이 앉아 있는 위치가 주먹질을 당하기에는 멀다는 걸 알았지만 말이다.

 

127p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진짜도 가짜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구분하는 것뿐이다. 뇌는 귀중한 자원들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그것들을 분류하고, 자원들을 통해 감각 경험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알아낸 후에야 그 감각 경험에 대한 의식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 ,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은, 사실 대뇌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수들이 간결하게 추려 내고 거기에 설명을 단 요약본이다.

 

130p

현실 세계를 인식하는 데는 청각이 시각보다 많은 점에서 낫다. 시력은 미치는 범위가 한정적이지만 청각은 사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루 알아볼 수 있다. 청각은 자연에서 적외선과 자외선 사이의 근소한 범위보다 더 넓은 영역의 주파수를 감지한다. 시각은 20분의 1초보다 빠른 섬광을 식별할 수 없지만(만약 식별할 수 있었다면 영화나 텔레비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각은 1,000분의 1초 간격으로 들리는 딸깍 소리를 인지한다. 소리는 언어의 풍부한 상징성과 음악의 감동적인 진실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목소리는 우리가 상대의 표정을 보며 읽으려고 애쓰는 성격과 감정에 대한 많은 단서들을 복제한다. 실제로 시력을 잃는 것보다 청력을 잃는 것이 삶에서 더 큰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맹인은 다른 감각기관들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뇌의 시각 회로를 활성화할 수 있다. 마음속에서 소리, 냄새, 감촉을 종합해 그려낸 이미지는 하나의 사진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러나 귀가 멀먼 부족한 감각 정보를 보충하기 우해 주변을 계속 의식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마치 의식적으로 호흡을 해야 하듯이 말이다.

 

132p

우리는 소리를 인지할 때 시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여러 소리 중에서도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듣는다(마이크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듣고 싶은 소리를 선별적으로 듣는 우리의 성향을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한다). 놀랍게도 뇌는 지각을 조절한다. 그래서 빠른 빛과 느린 소리는 그 간격이 최대 30미터까지 함께 도착하는 듯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각은 또한 귀를 속이기도 한다. ‘맥거크 효과(MacGurk effect)’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입모양으로 라고 말하면서 라는 소리를 낸다면, 우리가 실제로 인지하는 소리는 가 융합된 일 것이다. 단순히 음절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He’s got your boots”“He’s gonna shoot”으로 혼동한 것이 한 예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 혼동에 빠진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어도 그 혼동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복화술사와 움직일 입 없이도 말하는 앵무새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며, 콧수염이 있는 사람들과 전화상으로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말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138p

다른 곳을 보다가 시계의 움직이는 초침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 초침이 순간적으로 매달려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초침의 첫 번째 1초가 두 번째 1초보다 10% 더 길게 느껴지면서 말이다. 이는 당신의 뇌가 단속운동이 일어난 약 100밀리 초(1밀리 초는 1,000분의 1)를 당신이 그 에 보았던 것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뇌는 또한 경험을 묶음으로써 단순화한다. 만약 새를 세 마리 보게 된다면 우리는 한 마리씩 각각을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섯 마리로 늘어나고 계속해서 더 큰 무리를 짓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또한 우리는 특정한 얼굴 같은 분명한 것들뿐 아니라 거실에 어울릴 만한 색과 같이 모호한 것들에도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대상들이 눈앞에 있을 때, 우리는 동시에 일곱 가지 정도에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많으면 묶음으로 분류되거나 큰 혼동이 일어난다. 이것은 약자들의 생존 비결이기도 하다. 청어들의 소용돌이치는 공 모양, 떼를 지은 영양들의 V자는 포식자가 어느 한 개체의 잠재적 희생자에 관심을 집중하는 능력을 빼앗는다.

 

139~140p

짧은꼬리원숭이들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뇌의 하측두골 영역(시각적 판독을 담당하는 고차원적인 영역)’에서 전에 본 적이 있는 것들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을 부호화한다. 이 부호화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수백 개)의 뉴런들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발생한다. 시각적 판독은 불과 13밀리 초만에 이루어지는데, 이는 안구의 단속운동 속도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원숭이는 어떤 사물을 눈으로 보기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덜 진화된 피조물들은 윗둔덕(진화적으로 오래된 구조로, 인간의 뇌에서는 뇌간에 있으며 마치 구멍장이버섯류처럼 보인다)을 통해 시선 방향을 통제한다. 물론 우리도 자주 그렇게 한다. 선사시대의 파충류가 그랬듯이 우리도 시각적 패턴들을 무의식적으로 판독한다. 일반적으로 뇌에서 이루어지는 관심 메카니즘의 속도와 확산으로 볼 때, 우리가 스스로 중요한 것을 의식적으로 결정하고 그것에 관심을 집중한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결정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이것을 봐. 그리고 저 그림에서는.” 뇌는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무작위성과 우연의 일치를 믿기 어려워하고 증거가 충분치 않아도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보고 있지 않다.

 

141p

모세는 노아의 방주에 동물을 종류별로 몇 마리씩 실었지?”라고 누가 묻는다면, 당신의 대답은 , 모세?”가 아니라 두 마리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에 순순히 반응한다. 그래서 한 영리한 청소년은 어머니에게 “‘오늘밤 외출할 때청바지를 입을까요, 아니면 카고 바지를 입을까요?”라고 물을 수도 있다. 마치 영리한 투자 설계사가 “‘개설한 투자 계좌에수표나 현금으로 입금하시면 그 배당금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더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의 일부만을 강조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병사 훈련의 핵심은 절차와 명령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해서 적보다 상관을 더 무서운 존재로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병사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압도당하지 않고 마음을 단단히 중무장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는 빈틈없이 잘 짜인 변론이 사건에서 복잡하게 얽힌 실을 유리하게 풀 수 있기 때문에, 변호인은 아무리 소송의 쟁점과 상관없다 해도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일 이슈나 사실을 끌어들이는 데 주력한다. 한 변호인은 많은 증거와 증언이 제시되어 피고인의 살인죄가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일치하지 않으면 무죄입니다.”라는 유명한 말로 인종차별과 혈흔 불일치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어 상황을 역전시켰다(O. J. 심슨 살인 사건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사 조니 코크란(Johnnie Cochran)이 변론 마지막에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했던 말로 큰 효과를 발휘했다).

 

146~147p

1930년대의 대중 관찰 운동은 편견 없이 무작위로 수집한 사실들로만 역동적인 사회학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영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일기 쓰기를 권장했고, 그에 따라 이 운동의 몇몇 참가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특히 독일군이 런던에 폭탄 세례를 퍼부었던 런던 블리츠동안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날마다 정확히 기록했다. 몇 년 후, 그 운동의 창시자였던 톰 해리슨(Tom Harrisson)과 필립 지글러(Philip Ziegler)는 일기들 중 일부를 발표했다. 그리고 일기의 주인공 중 생존자들의 기억과 그들이 일기에 남긴 기록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했다. 지글러는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기억은 두려운 속임수를 쓴다. 우리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 당시의 상황을 다시 이야기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더불어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어떤 기록도 찾아보지 말 것을 요청했다. 예닐곱 명이 우리의 요청에 응했다. 당시의 기록과 30년 후의 회고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잘못 알고 있었다. 시간이며 장소며, 심지어 사건의 순서까지도, 거의 모든 경우에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사건의 중심에 더 가까이 끌어다놓았다. 이웃에게 일어났던 사건이 이제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이 되었다.

 

150~152p

거짓 기억이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면,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도 생생하게. “네가 다섯 살 때쯤인가, 기억나? 우리가 쇼핑을 하러 나갔는데, 네가 길을 잃어버렸잖니?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너를 발견했는데, 네가 그 할아버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잖아. 하지만 그 분은 정말 좋은 분이셨어. 그 분이 아니었으면 너는 계속 길을 헤맸을 거야. 그 할아버지가 무슨 옷을 입었고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니?” 거의 예외 없이 모두가 이 이야기에 친근감을 느낄 것이다. 영국 어빈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 연구실에서 바로 이 효과를 활용했다. 그려는 쇼핑하는 동안 길을 잃은이야기를 실험 수단으로 사용했다. 피험자들은 기꺼이 그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그 할아버지는 플란넬 셔츠를 입었다.” “엄마가 다시는 길을 잃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니가 아닌 언니가 해줘도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로프터스는 또한 피험자들에게 무언가(머리에 분필을 문질렀다든가, 플라스틱 개구리에 입맞춤을 했다든가 하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일)를 했다고, 혹은 디즈니랜드에 가서 벅스 버니(디즈니의 캐릭터가 아니다)를 봤다고 오로지 상상만 하던 거짓 기억을 실제로 겪었던 기억으로 믿도록 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날까? 왜 사람들은 일어난 적이 없는 일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할까? 어째서 거짓 기억을 실제로 일어났던 일처럼 완벽히 떠올리는 걸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다. 첫째, 만약 권위 있고 신뢰할 만한 정보원이 정보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그 정보를 개별적인 카테고리에 저장하기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들로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인 자가 자신을 상상활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기억하는 과정과 위험하게도 매우 유사하다.

 

둘째, 기억을 유지하는 일은 역동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기억을 쌓아올리는 동시에 거기에 광택을 낸다. 진주 혹은 담석처럼 매끄럽고 윤기 있게. 각각을 회상할 때, 우리는 관련이 없는 듯한 요소들을 버리고 관련이 있어 보이는 요소들을 추가한다. 만약 쇼핑하는 동안 길을 잃었던 때를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와 관련된 다른 기억들이 그 기억의 조각이 되어 풍부한 내용의 거짓 기억을 완성한다.

 

마지막으로, 기억은 어떤 중앙 서버에 저장되지 않고 분산된다. 어떤 기억 요소들은 놀라울 정도로 개별적이고 지엽적이다. 피험자들의 뇌를 스캔하는 실험에서는 그들이 할리우드 여배우 할리 베리(Halle Berry(또는 제니퍼 애니스톤 Jennifer Aniston이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의 모습이나 이름을 보자마자 개별적 뉴런들이 활성화되는 걸 볼 수 있다. 기억의 시각적 구성 요소들은 시각 체계에 존재한다. 언어 기억들은 구어나 문어와 관련 있는 영역들을 활성화한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순간에는 흩어져 있던 감각적·추상적 정보들이 재조합되며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의 상황과 관련된 과거가 떠오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이 되살아난다.

 

154p

이런 과정이 원숙기에 접어들면, 우리 뇌에서는 백질(신경 중추부에서 신경 섬유의 집단을 이루며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기능을 함), 즉 전도부의 비율이 높아진다. 어린 시절의 짜릿한 자극은 개별적인 일괄 회로로 안착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 속에 정교하게 만든 경험들은 감각 인상들에 대한 열렬한 반응(아이는 어른보다 감각 뉴런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우리는 초콜릿 케이크를 어렸을 때 더 맛있게 먹었다)에서 속담들, 우화들, 무서운 경고들(우리 어른들이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들)로 전환한다. 하루 일과 속에서 우리는 실로 많은 것들을 획득하기 때문에 우리를 이끌어줄 더 많은 것이 필요치 않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새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은 더 더디게 진행된다. 학자 조지 리틀턴(George Lyttelton)70대의 나이에 지적했듯이, 노쇠의 징후는 잘 잊는 것이 아니라 잘 기억하는 것이다. 노인들은 젊은이들과 식탁에 마주앉아 그들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고릿적 경험담이나 우스개 이야기를 거듭 늘어놓는다. 그 이야기를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자주 했는지를 빼고는 모두 세세하게 기억해낸다.

 

158p

로버트 매클로스키(Robert McCloskey) 미 국무부 대변인은 베트남과 관련해 브리핑하는 동안 즉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제 말을 이해했다고 믿으실 거라는 걸 저는 압니다. 허나 여러분이 들은 것은 제가 의미한 바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을지 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만약 말이 단순히 의미의 전달이라면, 그래서 말할 무언가가 있을 때만 말을 한다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말을 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최근 UCLA에서 실시한 실험이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말을 한 마디 했을 때,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도체에서 스트레스를 높이는 활동이 약해졌다. 연구를 이끈 매튜 리버먼(Matthew Lieberman)말로 감정을 표현하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낮아지기 때문에 몸은 약한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백악관에서 닉슨의 외침과 속삭임은 단순히 말 못할 그 무언가에 대해 말하기 위한 시도만이 아니었다. 궁지에 몰린 하수인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매클로스키(후에 대사직에 임명되었음0의 말은 외교적 중의성의 문제였다. 매클로스키는 한때 좀 더 명확한 표현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명확성을 위해 모호성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179p

당신에게 나오미라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 친구는 학교에서 예술적인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정치 성향이 급진적이며,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서 수학 점수가 매우 낮았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나오미가 은행 직원과 조각가 중 어떤 직업을 택할 것 같은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아마 나처럼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은 틀렸다. ‘것 같은은 확률의 문제다. 나오미의 적성과 무관하게 통계는 우리에게 조각가보다 은행원의 수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오미가 은행 직원과 비영리 조합은행 직원 중 무엇이 될 것 같은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 또한 다른 관점에서 틀렸다. ‘조합은행 직원은행 직원의 부분 집합이다. 이러한 종류의 오류를 인지적 착각이라고 한다. 우리의 준거 틀이 저지르는 실수는 우리가 쉽게 속아 넘어갔던 시각적 착각만큼이나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자연스럽다.

 

182~184p

낙관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단순한 인류학적 환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삶과 행복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한 여성 환자가 의사인 당신에게 암 검진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그녀 나이 또래의 여성들 중 0.8%가 암에 걸린다고 당신은 알고 있다. 그리고 암에 걸린 사람이 양성으로 진단될 확률이 90%. 그리고 검사 결과 거짓양성, 즉 실제로 양성이 아닌데도 양성으로 나올 확률은 7%. 그녀의 경우,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암에 걸린 걸까? 독일의 한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대다수 의사들은 그런 문제가 자신들에게 주어졌을 때 그렇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몇몇 의사는 진단 결과가 음성으로 나온 경우 정확도를 그 반대로 90%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 판정은 정확하고 양성이다. 그밖에 뭐가 더 필요한 걸까?

사실 그 환자가 암에 걸릴 확률은 겨우 9%에 불과하다.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그 문제를 재구성한다면, 당신도 아마 이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1,000명의 여성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8명은 암에 걸릴 것이고, 암 검진은 그들 중 7명에게서 암을 발견할 것이다. 한편 암 검진은 70명의 여성에게서 암을 잘못발견하는 오류를 범할 것이다. 당신의 환자는 양성 판정을 받은 77명의 여성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고 그중 7명은 실제로 암이다.’ 확률에 서툰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자연스럽게 확고히 해줄 수 있는 낙관적인 증거들을 선호하고 신뢰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이것은 과학적 실험이나 실기 시험의 기본적 형태로, 본질적으로 매우 형식적인 문제다. 만약 이것이 쉽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세상의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해낼 수 있다. 반대로 쉽지 않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대다수 사람들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당신 앞에 카드 네 장이 있다. 한쪽에는 알파벳이, 다른 한쪽에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D

K

3

7

 

188p

한편 아무도 졸속이라고 부르지 못할 최전방 전투기의 기술 개발에서도 말썽이 있었다. 그 기술을 책임지는 조직에서 잘못된 가설을 참으로 여기는 허점을 드러냈다. 2007211일 최신예 전투기 F-22 랩터 여섯 대가 하와이의 히캄 공군기지를 더나 일본 오키나와로 향했다. 그런데 여섯 대 모두 비행 도중 완전히 방향을 잃었다. 그 연료 제어 시스템과 통신 시스템은 125백만 달러의 가격표를 무색할 정도로, 농약 살포 비행기 같은 아둔한 모습을 보였다. 그 당시는 날씨가 쾌청했고, 전투기들은 결함이 생길 경우 안전 모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동반하는 공중 급유기(많은 연료를 싣고 연료를 보급하기 위한 특수 장치를 갖춘 대형 수송기) 뒤를 순한 양처럼 따라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려던 숨은 적은 대체 무엇일까? 문제는 바로 국제 날짜변경선이었다. 랩터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천 개 이상의 기업들 중 아무도 태평양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할 때 날짜가 앞당겨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기체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는 시간을 뛰어 넘었을 때 이상 징후를 보인다. 미국의 풍자 시인 오그던 내시(Ogden Nash)가 지적했듯이, 때때로 지나친 영리함은 멍청함이다.”.

 

206~208p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하려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그 답이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상쇄효과가 늘 우리 앞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몰입 상태를 추구하면 새로운 안전장치가 막아주지 못하는 위험을 무릅쓸 가능성이 높아진다. 잠금 방지 브레이크 장치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그것을 장착한 자동차들이 오히려 더 많은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그 안전장치는 운전자들에게 안전성에 대한 지나친 과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헬멧을 쓴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더 위험한 산길을 달리려고 하고, 물에 빠지지 않도록 설계된 유아용 목욕 의자 때문에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기가 많아진다. 완전히 안전하거나 완전히 위험한 것은 없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화 <포고(Pogo)>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적을 만났다. 그 적은 바로 우리다.”.

 

학술 자료에서 인적 과실에 관해 찾아본다면, 이것을 대신하는 용어로 인적 신뢰도가 자주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실수는 인간이 수행하는 일들의 불가피한 부분집합이라는 깨달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인류가 갖는 완전함에는 한계가 있다. 한결같이 탁월할 것이라는 전제로 당신의 시스템을 설계했다가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불완전성에 저당 잡힐 수 있다. 또한 실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모든 실수에 책임이 따르지는 않는다. “비극적 삶에는 악인이 필요치 않다!” 오류가 늘 죄는 아니다. 가벼운 실수는 큰 실수와 다르며, 착오는 혼동과 구분된다. 같은 맥락에서 인적 신뢰도 평가는 단순히 경고로 비난하고 금지하지 않고, 위험성이 높은 행동들을 성질에 따라 몇 단계로 분류하고 각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문제들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과실을 줄이고 과실이 불러올 충격의 강도를 낮추기 위해 필요한 행동 수정을 제안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인 제임스 리슨(James Reason)은 이를 스위스 치즈 모델이라고 부른다. 치즈 조각에 난 구멍들이 한 줄로 늘어서지만 않는다면 커다란 재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오류는 인지 오류다. 상황이 잘못돼가고 있다는 증거가 존재하는데도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자동차 사고와 항공 사고들은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났다와 같은 인식 오류의 결과로 발생한다. 타이밍 역시 문제를 일으키는 큰 요인이다. 우리는 연달아 일어나는 사건들을 인과관계로 쉽게 단정 짓는 경향이 있듯이, 순차적이지 않은 사건들 사이의 관련성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 접속 상태가 느릴 때, 우리는 반복적으로 마우스 버튼을 누르다가 의도하지 않게 올랜드 행 티켓을 네 번 이상 구입하고 만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10p

제임스 리슨은 실수의 유형을 다음의 세 단계로 분류했다. 첫째, 능력을 적절히 발휘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실수’, 둘째, ‘올바른반응이 잘못된 상황에 적용된 규칙 기반 실수’, 셋째, 상황을 전반적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기로 결정하는 지식 기반 실수’. 리슨은 우리가 이 오료의 굴레에 강하게 속박 당할수록 오류에서 벗어나 사물을 제대로 인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평범함에 대해 무심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리슨의 분류는 또한 어째서 전문가들이, 특히 자신감이 넘치는 전문가들이 마찬가지로 쉽게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내가 할 수 있다’(혹은 더 위험한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개인적인 전부함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나에게는 정상적이라는 가정이다. 이때 그 예상치 못한 상황 자체는 스스로를 신중하게 점검하는 과정을 방해한다. ‘차르52’의 조종사들이 깨달았던 바처럼 말이다.

 

213~214p

니벨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하겠지만, 시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다만 병에 걸렸을 뿐이다. 그의 병은 가장 지적인 사람이 쉽게 걸리는 동기에 따른 추론이었다. 이 병은 지성보다 더 깊은 차원의 정신 구조인 인식력 자체를 약화시킨다. 프린스턴 대학의 지바 쿤다(Ziva Kunda) 심리학 교수는 이러한 주제의 연구 대다수를 다룬 한 논문에서 특정한 결과를 바라는 욕망인 동기는 관찰, 기억, 계획과 같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대개 정보를 선택하고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어떤 특정한 의견을 가진다. 그래서 확실한 증거가 부족할 때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안성맞춤인 동전 던지기를 택하면서 그 결과가 우리의 바람대로 32승인지를 본다.

 

216~217p

세계 최초로 음속 장벽을 돌파하는 비행을 한 척 이거(Chuck Yeager)는 애처롭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대로 말한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 해도 말이다. 이보다 더 큰 진실은 없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진실이 있다. 추상적인 신앙의 가르침인 교의, 공인 본문(성서 연구에서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원전),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믿음 등이 그렇다. 신학교, 마드라사(이슬람 국가의 고등교육 기관) 혹은 예시바(정통파 유대교도를 위한 학교)의 졸업생들이 느끼는 충만한 만족이란, 많은 지식을 탐구한 끝에 자신의 가설들을 입증해 줄 증거를 발견한 사람들이 느끼는 만족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들의 이성에도 반드시 동기가 있기 때문에 자원들을 취사선택할 때 이미 객관성은 그들의 착각이 된다. 그들의 마음은 오로지 자신에게 이로운 홈게임만 한다. 신앙이 그들의 이성에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에, 신앙과 관련이 없는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218p

자신의 입장 설명하기, 다른 가능성 인정하기, 타인처럼 생각하기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는 몰입 경험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세상을 더 안전한 곳으로 끌어다 놓을 수 있다. 어느 산부인과 의사에게 자연 분만이 아닌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할 때마다 그 이유를 자발적으로 설명하도록 요구했을 때, 제왕절개 수술 비율은 4 1에서 10 1로 줄어들었다. 그 절차는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무리한 수술을 하지 않도록 하여 산모와 태아가 위험해지는 확률을 줄인 것이다. 표본이 된 동성애자들에게 성관계에서 콘돔을 사용하지 않을 때마다 그 이유를 기록하도록 했을 때는(비록 그 이유가 그 순간의 뜨거움때문이라고 해도) 콘돔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실수는 죄악에서 태어난 인간의 적이 아니다. 실수는 우리 사고 과정의 일부로서 인격이 없다.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동맹자다. 비록 위험한 동맹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무의식적 실수에서 동기화된 이성에 이르는 다양한 실수의 유형을 안다면, 실수를 어느 정도 모면할 수 있다.

 

228~229p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언어 선택이었다. ‘때때로’ ‘대개의 경우’ ‘자주’ ‘잠시’ ‘더 명확히 말하면’ ‘어느 정도’ ‘의심스러운’ ‘다른 한편으로는등과 같이 상대성과 개연성을 암시하는 말을 주로 사용한 관리자들은 실제로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반면 언제나’ ‘절대로’ ‘예외 없이’ ‘확실히’ ‘결코’ ‘오로지’ ‘당연히와 같이 절대성을 암시하는 말들을 주로 사용한 관리자들은 성공을 얻지 못했다. 이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리더십 과정에서 제시하는 어휘 목록에 반드시 들어 있는 확고하고 강한 느낌의 말들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설령 그런 말들을 자주 쓰는 이유가 상황을 단순화하기 위한 좁은 소견 때문이었든, 자신 있는 행동과 유능함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했기 때문이었든 말이다. 만약 능력 있는 사람은 성격이 단호할 거라고 믿는다면, 그리고 과단성 있는 행동이 효과적인 리더십을 부여해 줄 거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앞서 언급했던 기본적 귀인 오류의 희생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진짜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잊고 있다. 그것은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에 초점을 맞춘 가치인 개방성, 왕성한 호기심, 변화를 보는 눈,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배려심 등 같은 것들이다.

 

233~234p

4주 후,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v Petrov) 중령은 소련 모스크바 위성 통제 센터인 세르푸호프-15의 비림 감시 벙커에서 사령관의 위치에 있었다. 그가 위성 활동을 점검할 무렵 컴퓨터 시스템에서는 군사 위성이 보내는 요란한 조기 경보가 울렸다. 미국이 핵미사일 1기를 소련에 발사했다는 신호였다. 매우 급박한 순간이었다. 불과 몇 주 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 발생했기도 하거니와,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소련의 선제공격에 대비해 엑서사이즈 에이블 아처 83’이라는 시뮬레이션 훈련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소련은 이제 KGB(구소련의 국가 보안 위원회) 전 의장 유리 아드로포프(Yuri Andropov)가 이끌고 있었다. 그는 냉전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편집증적인 증세를 강하게 나타냈기 때문에,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한다면 즈각적인 보복 공격을 지시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페트로프는 보복 공격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미국의 선제공격이 타이밍과 세부 사항을 기준으로 볼 때 과연 적절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페트로프가 상황 파악을 위해 애쓰는 동안 경보음이 또 다시 울렸다. 위성은 미국이 두 번째 핵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핵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보고가 뒤를 이었다. 경보음은 귀청이 떨어질 정도였다고 페트로프 중령은 당시를 회상했다. “15초 동안 우리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우리는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이미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페트로프 중령 앞에는 빨간색 개시버튼이 깜박이고 있었다. 상황을 어서 보고하라는 상부의 독촉 명령이 떨어졌다. 페트로프는 말했다. “예감이 이상했다. 나는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라면 핵미사일 5기로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련의 반격이 불가능하도록 핵미사일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발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페트로프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상관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된 경보라고 보고했다.

그의 순간적 판단은 적중했다. 위성 시스템은 높은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적의 미사일로 오인했던 것이다. 실제로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그 위성 시스템은 버그가 제거되지 않은 채 풀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신중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우리는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라면.”)을 갖춘 페트로프는 표준 절차들과 명령 계통에 따라 위임 받은 책임을 준수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세상이 핵전쟁으로 초토화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240p

모든 것은 전형적이고, 보편적이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모호한 사회주의적 형제애를 명분으로, 압제자에 의해 거부당했던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동시에 축배를 들었다. 군중이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이유는 그 자체는 행동과 거의 관련이 없다. 역사는 일시적인 집단적 광기의 사례들로 가득하다. 그 순간이 지난 후 가담자들은 이런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241~242p

셰리프 교수는 그 소년들을 아무 기준 없이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소년들은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며 잘 지냈다. 반 이름을 정하고(한 반은 독수리이고 다른 한 반은 방울뱀’), 깃발의 도안을 그리는 등 집단적인 여러 활동을 했다. 그들은 서로 친밀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실험자들은 두 집단 사이에 경쟁심을 부추기는 일련의 게임들을 준비했다. 게임에서 이기면 (날이 네 개 달린 야영용 칼을 비롯하여) 소년들이 탐낼 만한 상을 주기로 했다. 즉시 독수리 반과 방울뱀 반 모두 심술 맞은 경쟁 심리가 발동했다. 그들은 서로 속이고 비방하면서 뒤에서 몰래 밀기도 했으며,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급기야 독수리 반이 방울뱀 반의 깃발을 불태우고, 방울뱀 반이 독수리 반의 오두막집을 급습해서 상들을 훔쳐가자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셰리프 교수는 두 집단을 떨어뜨려 냉각기간을 준 후 다시 함께 즐기며 어울릴 수 있도록 바비큐 파티와 불꽃놀이를 마련했지만 그들이 화해하기는 좀처럼 어려워 보였다. 오히려 더 심하게 서로를 경멸하고 모욕했으며, 심지어 음식을 던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화해를 할 수 있었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은 함께 해결하고 성취해야 할 공동의 목표였다. ‘반달(공공 기물 파손자)로 인해 캠프에 물 공급이 차단되었을 때, 독수리 반과 방울뱀 반은 한 집단으로 뭉쳐서 함께 파이프라인을 점검하고 해결책들을 제시했다. 물자 공급 트럭이 정문 바로 밖에서 시의 적절하게 고장 났을 때는 함께 힘을 합쳐 트럭을 정문 안으로 밀었다. 그리고 마침내 캠프 일정을 마칠 무렵에는 한때 갈등을 빚었던 두 집단이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함께기기로 약속했다.

5학년생들이 인간의 모든 유형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버스 케이브의 경험은 익숙한 역사적 사건들과 많이 닮아 있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그들 자신들을 우리그들로 구분하며, 근거 없이 전장에 우호적인 반면 후자에 적대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과 적개심은 오로지 함께 헤쳐 나가야 할 더 큰 도전 과제가 주어질 때에 극복된다. 어떤 보상을 얻기 위한 과제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진실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남는다. 대체 왜일까?

 

243~244p

최근 하이파 대학에서 실시한 한 흥미로운 연구에서도 표정이 유전된다는 점을 입증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본 아이들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지은 표정이 그들 친족들의 표정과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 한 맹인 남성은 18세가 될 때까지 만난 적도 없는 생모와 표정이 닮았다. 우리가 친족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단순히 눈, , 입만이 아니다. 히죽 웃는 표정과 찌푸린 표정, 흘기는 표정도 함께 물려받는다. 혈족 관계를 드러내는 그런 징표들은 행동에도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류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많은 문화권에서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어머니의 친족들은 아이 아버지에게 그 아이가 아버지를 얼마나 쏙 빼닮았는지를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 충동은 사실상 아이가 가장 중요한 잠재적 보호자의 보호르 받아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본능적인 시도라고 한다. 한 실험에서 실험자들은 피험자들에게 얼굴 사진을 각각 두 장씩 보여주었다. 그중 한 장은 그들 자신의 얼굴과 닮아 보이도록 교묘하게 조작된 것이었다. 사진을 본 피험자들은 자신과 관련 있는얼굴에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성적인 매력은 덜 느꼈다. 그러한 성향은 친족들끼리 근치상간을 하지 않고 함께 협력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들처럼 오이디푸스도 얼굴들을 좀 더 예민하게 보았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246p

그런데 일방통행 도로인 경우, 다시 말해 자신이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결정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다는 걸 알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뇌영상학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보다 거울 신경이 더 적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미 직관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눈치나 재치는 단순히 성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그런 면이 부족하다면 사회성 부족을 의심해볼 수 있다. 신경과학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기 하지만, 거울 신경 시스템과 관련된 피질 영역이 얇을수록 자폐증의 정도가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앞에서 언급한 성별에 따른 차이와 함께 이 연구 결과는, 심리학자 사이먼 배런 코언(Simon Baron-Cohen)의 이론인 자폐성을 보이는 사람은 사회적 배려가 없는 극단적인 남성 뇌이 소유자라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248~249p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타인의 욕구를 예측하고 숨은 의도를 추론하는 현상들을 정리해 마음 이론이라는 하나의 완전한 가설을 세웠다. 이 이론의 핵심은 우리 인간만이 타인의 믿음, 특히 잘못된 믿음을 추측할 수 있으므로 인간의 지성은 짐승들의 지성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갖춘 독특한 특성이 한 개인에게서 나타나는 시기는 꽤 늦다. 이에 대한 한 고전적인 실험이 있다. 아이들은 한 방에서 두 사람(혹은 두 개의 인형이나 만화 캐릭터)이 장난감 한 개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관찰한다. 둘은 상자 안에 그 장난감을 넣는다. 그 후 둘 중 한 명인 샐리(Sally)가 방을 나간다. 그러자 방에 혼자 남은 앤(Anne)은 상자에서 그 장난감을 꺼내 다른 곳에 숨겨둔다. 조금 후에 샐 리가 돌아온다. 그때 그 장면을 지켜본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진다. “샐리는 그 장난감이 어디 있다고 생각할까?” 3~4세 아이들 대다수는 자기들이 아는 것처럼 샐리도 장난감이 어디 있는지를 알 거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5세 아이들은 샐 리가 알지 할 거라는 걸 추측해낸다. , 앤이 장난감을 숨긴 걸 샐리는 알지 못하므로 장난감을 상자 안에서 찾을 거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다. 샐리의 잘못된 믿음을 추측한 것이다. 이렇듯 일정한 연령이 지나면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등 상상하는 능력이 갑자기 생겨난다(이때가 되면 거짓말도 훨씬 능숙하게 할 수 있다). 한편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욕구나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과 상대의 입장을 같다고 본다. 그래서 익히지 않은 브로콜리와 크래커가 앞에 놓여 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크래커만 주려고 한다. 심지어 실험자들이 크래커를 싫어하고 브로콜리를 좋아하는 척해도 소용이 없다. ‘모두가 자기처럼 브로콜리 맛이 끔찍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51p

그렇다면 실질적 공동체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배가 고플 때 서로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은 모두 얼마나 될까? 배가 고플 때 서로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은 모두 얼마나 될까? 대략 150명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중에서 최대한 12명을 자기 자신만큼이나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추산을 한 사람은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 지난 20년 동안, 그와 그의 동료들은 인간과 다른 영장류 동물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관찰한 다음 흥미로운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영장류 동물의 뇌에서 신피질의 크기가 클수록 그 종의 전형적인 사회집단도 컸던 것이다(이 상관관계는 다른 육식동물들에게도 적용되는 듯하다). 지위를 얻고, 짝짓기를 하고, 음식을 나누고, 몸단장을 하는 등 복잡한 사회적 관계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전된 두뇌 자원들이 매우 많이 소비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획득하는 사회적 정보들은 자신이 이 친구들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 이 상황에서 어떤 친구들 믿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할 때 유용하다.

 

252p

150명의 공동체는 보통 수렵 집단이나 전통문화를 보유한 작은 마을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보다 복잡하다. 던바는 이 점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낼 사람들의 명단이 필요하다고 하자. 적어도 1년에 한 번 연락할 필요가 있을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그러니까 친척들, 오랜 친구들, 회사 동료들 그리고 왠지 싫긴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보통 130명에서 최대 153명 정도다. 그 한도는 확고하다. 150명 이상에게 개인적으로신경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천재이며, 외교관이 되어야 할 사람이다.

 

259~261p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와 그의 동료들은 다양한 문화 속에서 혐오감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들은 혐오감의 물리적원천들(배설물, 시체 등)은 어디에서나 같지만, 도덕적이고 지걱인 차원의 원천들은 누에 띄게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미국 사람들은 무분별한 폭력과 인종차별적인 태도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일본 사람들은 무례한 행동과 개인적 결점들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정치인과 뚱뚱하며서 해변을 나체로 활보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인들은 뻔뻔스러움에, 호피(Hoppi(적어도 하이트가 인터뷰했던 6명의 경우))은 우주와의 부조화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원천은 다양하지만 반응은 오직 하나, 혐오감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여러 문화가 충동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코 가하는 도덕적인 모욕은 거의 용서할 수 없을 정도다. 도덕적인 모욕감이 일으키는 반응은 도덕적이 아니라 물리적이기 때문이다.

이 혐오감은 뇌의 인슐라가 주관한다. 인슐라는 영장류의 뇌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채 오랫동안 일관되게 제 기능을 발휘해 온 것으로, 우리의 직감과 본능적 감정들(두려움, 분노)을 제어한다. 혐오감은 가시 돋친 말(“저런 사람들은 어딜 가도 꼭 있다니까.” “넌 네 여동생이 그런 사람하고 결혼했으면 좋겠니?”)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관습이나 야만적인 의식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등장한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경멸 혹은 연민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타인을 어리석고 무능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영국 사람들은 아일랜드 사람과 인도 사람을 그렇게 여겼다). 당신은 부러움을 느끼는가? 그렇다고 당신은 타인을 더없이 냉랭하고 몰인정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아일랜드 사람들과 인도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을 그렇게 여겼다). 우리는 이 근본적 감정들 위에 복잡한 문화를 세운다. 거기에서 우리는 인슐라의 즉각적인 편견을 이끌어낼 만한 행동을 경계한다.

그래서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국인들은 인종차별적 태도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감정이 뿌리 박혀 있다. 그 감정은 아주 깊숙이 숨어 있다. 알렉산드라 골비(Alexandra Golby)가 발표한 뇌영상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는 자신의 인종과 낯선 인종의 얼굴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경웨 우리 머릿속에서는 사람을 식별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추상회에서 특히 얼굴에 관한 정보를 처리하는 방추형 얼굴 영역이 더 활성화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국에서 이 혀상은 흑인들보다 백이들 사이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흑인들은 인구수에서 소수로 밀려나기 때문에 다수인 백인들을 식별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백인들은 인종에 대해 비교적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다. 물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인식은 그들의 감정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비록 백인 미국인들을 상대로 뇌 영상 촬영 및 심리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에서는 인종차별주의를 명백하게 입증할 증거를 거의 찾지 못했지만(표준적인 질문들에 답변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오히려 흑인들에 대해 우호적이다), 백인 얼굴과 흑인 얼굴을 제시하고 연상되는 단어를 분류하도록 했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반 흑인 성향을 보였다. 좋은 의미의 단어들을 보며 흑인 얼굴을 연상하는 데 걸린 시간은 백인 얼굴보다 오래 걸렸다. 내재적 인종 편견을 측정하는 이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피험자들은 흑인 얼굴을 볼 때 더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불쾌한 자극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주관하는 영역인 편도체가 더 크게 활성화된 것이다. 그러나 인종에 상관없이 낯익은 얼굴인 경우에는 이 신경 반응들이 사라졌다. 이때 그는 흑인이 아니다. 그는 존스다.”라고 고리타분한 농담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자신도 모르게 숨어 있다는 의미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 테스트가 보여주는 바는 단순한 지적 노력만으로는 이 수치스러운 절뚝거림을 교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편견이 우리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따져보고, 그 결과에 따라 의지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263~264p

이처럼 범죄로까지 발전하는 부정적 차별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은연중에 흔들어 놓기도 한다. 현재 스탠퍼드 대학에 재직 중인 클로드 스틸(Claude Steele)의 실험들이 대표적이다. 스틸 교수는 서로 인종이 다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인종의 정체성에는 단순한 피부색보다 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1980년대 후반(정치적·사회적으로 자유롭지만 많은 학구적 노력을 요하는 학교인) 미시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할 당시, 그는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백인 학생들과 같은 성적을 받고 입학한 흑인 학생들 중 상당수가 학기 중에 낙제를 받아 중퇴를 하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것이 내면화된 편견, , 그가 고정관념 위협이라고 부른 자신감 결핍의 소산인지를 궁금하게 여겼다. 그래서 한 상황을 연출했다. 학업 성적이 비슷한 흑인 학생들과 백인 학생들에게 GRE(대학원 자격시험)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도록 했다. 피험자들에게 이것이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말하자 흑인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보다 눈에 띄게 낮은 성적을 받았다. 다음번에는 학습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어진 상황 해결 능력을 보기 위한 시험이라고 말하자, 흑인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성적을 받았다. 같은 시험인데도 불구하고 흑인 학생들이 앞의 시험에서 더 낮은 성적을 받은 이유는 뭘까? 그는 단순한 열등감보다는 어떤 특정 집단이 어떤 걸 잘하고 어떤 걸 못할 거라는 고정관념 위협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스틸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시험 문제와 피험자의 범위를 확대했다. 그 실험 결과는 무의식적인 편견들의 촘촘한 망을 보여주었다. 어려운 수학 시험에서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성적이 더 낮았다. 그러나 피험자들에게 과거의 시험에서는 남녀 간의 성적 차이가 없었다는 말을 하자 여학생들은 남학생들과 비슷한 성적을 받았다. 백인 남학생들은 아시아계 학생들보다 수학 성적이 더 낮았는데, 이 또한 개인적 열등감보다는 아시아인들이 수학을 더 잘할 거라는 고정관념 위협에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백인 골퍼들은 전략적 사고를 평가하기 위한 게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보다, ‘타고난 육상 실력을 평가하기 위한 게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더 저조한 실력을 보였다. 그리고 백인 학생들은 흑인 코치에게 평가받았을 때 점프 실력이 훨씬 더 저조했다.

최악의 상황은 한 집단의 고정관념 위협이 다른 집단의 이기적인 편견과 만날 때다. 이럴 때 두 집단은 끔찍한 상호 의존에 빠진다. 학대하는 남편과 학대당하는 부인의 관계처럼 파괴적이며 쉽게 벗어날 수도 없다. 여러 문화에서 세습적 신분제도가 지속되었던 주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러한 제도는 정복(인도에 침입한 아리아인이 인도 원주민이었던 드라비다인을 정복, 에티오피아인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투치족이 원주민인 후투족을 정복하고 왕국 건설)이나 무력 사용(러시아 농노제, ‘인자한식민주의)의 결과로 나타났지만, 굳이 역사적 근거까지 댈 필요 없이 실험실에서도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266~267p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충격적이고도 우울했다. 실험이 진행되면서 교도관들과 죄수들은 이상하게 변해갔다. 일주일 동안 협박, 폭행, 배반, 복종, 심지각한 정신장애가 모두 나타났다. 그리하여 실험은 예상보다 훨씬 일찍 종결되었다. 하지만 교도관들은 죄수들을 통제하는 자신들의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실험이 끝나는 걸 원치 않았다. 실은 교도소장도 그랬따. 필립 짐바르도는 실험이 시작되고 뎌칠 후부터 죄수들의 저항을 더 이상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아닌 모의 감옥의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그 역시 진짜 교도관이 되어 있었다.

이 실험을 통해 권력 관계가 본질적으로 사악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더 많은 것을 내포한다. 우리는 폭정에 대해서는 지배당하기를 거부하지만 정당한 권력에는 순순히 따른다. ‘여기서 누가 책임자일까?’ ‘성공한 경영자는 기업을 어떻게 운영할까?’ ‘엄마는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지도자와 추종자, 계획자와 실행자로 분류된다. 그리고 지위는 우리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는 감정으로 나타난다(만약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걸리기 쉽고,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1984년 마이클 J.(Michael J.) 롤리(Raleigh) 교수는 긴꼬리원숭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혈액 내 세로토닌 수치와 권력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실험을 실시했다. 지배자(수컷) 원숭이는 지배당하는 다른 원숭이들의 두 배에 달하는 세로토닌 수치를 보였다(마찬가지로 그 교수의 세로토닌 수치도 그의 지도를 받는 대학원생들의 두 배에 달했다). 지배자의 위치에 있으면 그만큼 큰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세로토닌이 활발히 분비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배자의 역할을 맡게 된사람들의 세로토닌 수치도 증가한다. 심지어 지배자의 위치를 과시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과 의례들도 세로토닌 분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정당성이 결여된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세로토닌 수치가 급격히 낮아졌다(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타솔의 수치가 높아졌다). 짐바르도의 죄수들 중에서 많은 수가 극단적인 심리 반응을 보인 이유도 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의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수치스러운 두 가지 감정을 분출한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죄책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모욕을 주고 학대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다.

 

271~272p

알트마이어의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동조를 더 많이 한 사람들)합법적인 사회 권위에 순종하기 쉬울 뿐 아니라, 권위라는 명목의 공격을 감수하고 사회 인습에 구애 받을 가능성이 높은사람들일 것이다. 알트마이어는 그들을 우파 권위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케인스 경제학이나 총기 소지자에 대해 어떤 특별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대다수가 지지하는 생각과 믿음을 유지하려는 강한 성향을 보인다는 의미다.

실제로 권위주의자들은 권위가 그들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든 간에 순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나치스 돌격대(반 나치스 세력에 무력행사를 하고 나치즘을 선전하는 데 앞장섰떤 준군사 조직)와 스탈린 정권의 특별 작업대(정량 이상의 작업을 이행하는 노동 특공대)는 거의 다를 바가 없다. RWA는 스스로 다수 집단의 일원이 되어 위험하고 분방한 급진주의자들로부터 정치적 통일체를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비난의 화살을 소수 집단(약탈자들, 밀렵자들, 도시의 청년 패거리, 지르박 춤꾼들, 이탈자들)에게 돌린다. 알트마이어는 나아가 RWA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피험자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만약, 연방 정부가 특정 종교 단체들의 활동을 불법화하는 법언을 통과했다면, 당신은 그 단체 구성원들을 색출해서 체포하는 일을 기꺼이 도울 것인가?” 그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알트마이어는 이 가상의 금지 법안 적용 대상을 바꾸어보았다. “공산주의자라면?” “물론이다.” “동성애자나 애국심이 없는저널리스트라면?” “당연하다.” “KKK(사회 변화와 흑인의 동등한 권리를 반대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미국 테러 단체)이라면?” “, 그렇다.” “‘RWA;라면?” “그렇다.” 비록 그들의 어조는 처음보다 덜 단호했지만, 대다수 RWA들은 권력의 편에 서는 데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기꺼이 그들 자신을 박해하는 집단의 일원이 되었다. 그들이 파이러스에게 어떻게 대할지는 상상만으로도 짐작이 갈 것이다.

 

275p

놀랍게도 16개월짜리 아이는 어른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를 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경우에 그렇다. 세 살 무렵이 되면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기는 어른들이 한 말은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신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어른들이 한 말은 믿을 만한 정보의 원천으로 점점 더 확고히 자리 잡는다. 그래서 만약 마리아 이모가 다정하고 정직하며 언제나 맛있는 쿠키를 구워준다면, 비록 약간 제 정신이 아닌 듯한 의견이라고 해도, 이때 마리아 이모의 의견들은 그 아이의 정체성을 휘감으며 아이와 함께 머물게 된다. 그 의견들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배운 물리적 사실들만큼이나 진실한 것으로 여겨진다.

 

277~278p

엉성한 추리와 극단적 가설이 불러일으키는 재앙을 다룬 <주술 과학>의 저자이자 무신론적 물리학자인 밥 파크(Bob Park)는 사실 과거에 감리교 청년회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파크가 신앙을 버리게 된 이유는 창세기에 대한 그의 순진한 질문에 대해 목사가 네가 의심한다면 도둑질을 했을 때만큼 빨리 지옥에 떨어질 게다.”라고 답한 일 때문이었다. 그 집단은 그 의 믿음을 저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이유가 그 사람의 믿음 때문일 때는 그 이유가 피부색이나 낮은 지위일 때와 다소 다르다는 가정에서 이 글을 시작했지만 사실 실질적 차이는 없다. 믿음 역시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집단적 특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믿음은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고 외부인을 집단 구성원과 구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람들이 비록 베네수엘라의 수도 이름이나 1파인트가 몇 온스인지와 같은 질문들에는 쉽게 확신을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279p

대다수 공개 토론들은 사람들의 대뇌변연계(본능적 욕구와 감정을 주관함)를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인간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휘장과도 같은 전전두피질(이성적인 사고를 주관함)은 그동안 잠을 잔다. 또한 음모론들도 판을 친다. “부시는 911 사태의 배후 인물이었다(심지어 프랑스 주택부 장관도 그 가능성을 시사했다).” “에이즈를 유발한 주범은 CIA이며, 소아마비 백신은 이슬람교도들을 불임케 하기 위한 서양의 음모로 탄생했다(그래서 소아마비가 거의 근절되다시피 했다가 다시 발병률이 높아졌다).” 합리적 사고의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러한 이론들은 완전히 터무니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실험을 고려해 볼 때, ‘우리그들에게 느끼는 편견을 확고히 해주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허튼소리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들의 피에는 맥주가 섞여 있다고 믿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들, 덜 먹고 더 운동하겠다고 결심하는 것만큼이나 그다지 효과가 없다. 그보다는 그 문제의 근본 원인인 변연계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빠르다.

 

287p

1,000년 전 세계 인구는 오늘날 미국의 인구와 같았다. DNA 증거에 기반을 둔 추론에 따르면, 7만 년 전에는 인구가 고작 2,000명에 불과했는데, 그들 중 약 150명의 용감한 무리가 동아프리카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는 그 몇 안 되는 이주자들의 후손이다. 우리의 혈통을 추적해 그 시기까지 이르면, 근친상간을 자연스럽게 목격하게 된다. 바로 연산을 통해서 말이다. 만약 당신의 조상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서 과거 인류의 총 인구와 비교해본다면 30세대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약 1,000년 전까지만 해도 당신의 잠재적 조상은 230명에 달한다. 이는 세계 인구의 3배를 넘어서는 수다. 따라서 통계적으로 볼 때, 그 시대에 살았던 어떤 한 사람을 지목할 경우 그 사람이 당신의 조상일 확률은 매우 높다. 만약 당신이 파란 눈의 소유자라면, 당신과 이 채의 필자들은 1만 년 전 흑해 근처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의 같은 후손들이다. “반가워요, 사촌!”

 

289p

공동으로 상속받은 이 집단 무의식에 대해 또 다른 단서가 있다. 바로 전 세계의 7천 개 가량 언어 중 어떤 언어를 쓰는 아기라도 음조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모든 언어에는 음조가 같으면서 의미도 같은 표현들이 있다(“잘했어!” “왜 그래?” “안 돼, 안 돼, 안 돼, 조심해.” “, 가엾은 것”). 욕설의 경우에도 단어는 다르지만 음조는 동일하다.

장소에 대한 취향에서도 집단 무의식이 작용한다. 미시간 대학의 스티븐 캐플런(Stephan Kaplan)교수(모든 캐플런들은 제사장 아론(Aaron)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그도 피자들의 친척인 셈이다)는 풍경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을 비교적 정확히 알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캐나다, 한국, 이집트에 이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을 상대로 총 30회에 걸친 실험을 했다. 모두가 인문환경보다는 자연환경을 선호했고, 특히 나무가 우거지고 깨끗한 강이 흐르며 꽃이 활짝 핀 초원에 열렬히 반응했다. 그 풍경은 대다수 문화권에서 천국을 떠올릴 때 쉽게 연상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대다수 사람들이 포식자들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한 은신처와 주변을 정찰하기 위한 조망을 강하게 선호했다.

 

292p

당신이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의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족(Kung)이라고 해보자. 당신의 일과는 당신과 자식들이 먹을 약 4,000칼로리의 음식을 구하는 것이다. 이때 연장은 거의 필요없다. 대신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54종에 이르는 동물들의 습성을 꿰뚫고 있어야 하고, 85종에 이르는 무독 식물들을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식물들 대부분은 땅속에 줄기가 들어 있는 덩이줄기여서 웬만한 지식 없이는 절대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당신은 또한 음식 섭취로 얻은 에너지르 가지고 동물 쫓기나 땅 파기와 같은 일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정확히 감지해야 한다. 이러한 지식들이 있다면 생계를 유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의 4분의 1에 불과하게 된다. 나머지 시간은 연장을 수리하고 춤추고 노래하는가 하면, 겨드랑이에 태양을 끼고 있던 한 게으른 사내를 아이들이 하늘로 던져 세상이 밝아졌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을 지어내며 보낼 수 있다. 이곳의 삶은 참으로 단순하고도 편안하다. 현대인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값비싼 은신처만 해도 여기서는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뭇잎을 재료로 오두막을 완성하는 데는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원뿔형 천막집이나 이글루나 유르트(몽골 유목민의 천막집)도 오래 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296p

규모의 경제(하나의 치약, 하나의 타바스코 소스, 하나의 집)로 보나 노동의 분배(“나는 식료품점에 갈 테니 당신은 아이들을 데려와요.”)로 보나 그렇다. 게다가 결혼이 부여하는 책임감과 자긍심 덕분에 직장에서도 예전 같으면 농땡이를 부리거나 사직서를 내려고 생각할 시간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그래서 남자들은 결혼 후에 10~40% 정도 더 많이 번다. 그들이 갑자기 더 똑똑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반면, 이혼을 하면 여자들은 소득이 27%까지 줄고 남자들은 오른다 해도 겨우 10%에 그친다. 그래서 이혼은 사회 전반적으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편부모 가정은 아동 빈곤과 소득 불균형이 주된 원인이 되므로 정부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혼 한 건당 복지 지원 및 청소년 범죄 예방에 추가로 드는 평균 비용이 3만 달러에 이른다. 2002년 미국에서 140만 건의 이혼이 발생했을 때는 납세자들이 400억 달러 이상(그해 연방 적자액의 4분의 1에 달함)의 세금을 더 부담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재정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환경적 손실도 이에 못지않다. 2005년 미국의 이혼 가정들은 자원을 이혼 전보다 1인당 41~62% 더 많이 소비했다. 그 현상은 38백만 개 이상의 빈 방들, 730억 킬로와트시의 전력 소모 6,270억 갤런의 물 소비로 나타났다. 모두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욕구인 사랑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299p

만약 신체 건강한 남자가 하루에 수억 단위로 배출하는 자신의 정자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면, 시간당 약 1,20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 반면 여자는 초경에서 폐경에 이르기까지 총 400개 정도의 난자를 배란하며, 평생 최대 20회까지 자녀를 낳을 수 있다. 번식의 관점에서 남녀의 본질적인 차이는 성욕에서도 드러난다. 남자들은 순간의 쾌락을 탐닉하며 그 순간이 얼마든지 반복되기를 갈망하지만, 여자들은 이 순간이 지나면 일어나게 될 일들, 즉 임신과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지는 어색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상상한다.

 

302p

여자가 남자를 고를 때는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다. 그들은 키 큰 남자를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외모를 중시한다. 남자의 외모는 신체 건강을 말해주는 좋은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저음의 목소리를 들으면 큰 키와 많은 털, 강인함을 비롯한 여러 바람직한 남성성을 연상하면서 그러한 목소리에 매력을 느낀다. 사실 목소리는 높은 수치의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보다는 균형을 측정하는 데 좋은 척도가 된다. 그래서 당신이 전화 목소리와 달리 외모가 그리 남자답지 않다 해도 아예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리고 여자들이 남자들을 처음 평가할 때는 제일 먼저 세 가지 기준을 고려한다. 바로 눈, 손가락, 엉덩이인데, 모두 나름의 적절한 이유가 있다. 먼저 눈의 경우, 여자들은 안륜근이 자연스럽게 수축되는 모습을 좋아한다. 그 모습은 눈꼬리에 주름이 생길 만큼 진심으로 짓는 미소인 이른바 뒤셴 미소(Duchenne Smile)“를 말하는데, 만약 당신이 이 표정을 지을 줄 모른다면 아무리 이를 드러내고 열심히 웃어도 여자들에게 당신이 좋은 남자라는 확신을 심어주기는 어렵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야말로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아내와 자식들에게 양식을 제공해야 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손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알 수 있는 좋은 척도일 뿐 아니라 그 잠재적 부양자의 영양 공급 상태도 보여준다. 강하고 긴 손가락과 민첩한 손놀림은 좋은 신호다. 마지막으로 엉덩이는 우리를 다른 유인원들과 구별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특징이 된다.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리버먼(Daniel Lieberman) 교수의 말에 따르면, 생활환경이 숲에서 대초원으로 변하면서 진화 인류의 모체가 된 조상들의 몸은 위로 약 60센티미터 올라갔다고 한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무들 사이에서 매복했다가 급습하는 대신 먹이를 추적하기 위해 몇 마일이고 계속해서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달리기를 하면서 엉덩이 근육은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303p

여자들은 단순히 남자의 얼굴 사진만 봐도 그 남자의 전반적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파악할 수 있다. ‘지배자의 얼굴인 강한 턱뼈와 돌출된 코, 길쭉하게 솟은 눈썹은 군대나 프로스포츠 팀처럼 남자가 대부분인 환경에서 성공을 예언한다. 그러나 여자들이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성격이 차갑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닌지,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지도 주의 깊게 본다. 호르몬을 읽어내는 여자들의 신비로운 능력을 증명한 실험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은 남자들일수록 자신이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높았고 여자들은 장기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상대로 그러한 남자들을 선택했다.

 

304~305p

유성생식이 한 사람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방식이라면, 적절히 잘 숨긴 간통은 하나의 이기적인 전략으로 꽤 합리적일 수도 있다. 아마존의 카넬라(Canela), 아체(Ache), 바리(Bari), 야노마모(Yanomamo)족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이 생각은 타당하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들은 난자가 마치 진주처럼 정액에 겹겹이 에워싸이면서 아이가 생겨난다는 이론을 믿기 때문이다. 여자가 괜찮은 조건의 여러 남자들과 자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며, 아이를 낳으면 남자들은 모두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70년간 핀란드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란을 비롯한 전 세계 37개 문화권에서 실시된 실험에 따르면, 배우자르 선택할 때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그 점을 두 배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애인을 구하는 광고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경제력에 대한 언급을 11배 더 많이 한다. 미국의 대졸 여성들은 소득이 상위 30%에 들지 못하는 남성과 살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면 남성이 억만장자라면 다른 많은 결점들이 용서된다. <오만과 편견>이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도 남자 주인공의 결점은 재산으로 만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306p

훌륭한 사냥꾼이 되려면 뇌 전문의가 되는 것보다 더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아마존, 파푸아, 칼라하리의 소년들은 5세 때부터 작은 활과 화살로 훈련을 시작하지만, 30세가 되어도 사냥 기술의 정점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물론 30대에 이르면 체력은 떨어지겠지만 전문 기술과 지식, 지략과 같은 노하우가 이를 충분히 보완해준다. 그 시기에는 고기에 대한 가장의 초대 공급 능려과 가족의 최대 수요가 일치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대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를 선택한다. 많은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보농 4~5세 연상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티위(Tiwi)족처럼 노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26세 연상까지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307~308p

행동 조건에서 볼 때, 남자들은 자신이 자녀의 아버지임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여성의 순결에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들은 결혼에 있어서 순결의 징표를 신뢰성의 척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여성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자유분방한 사회에서도 남자들은 잠재적 배우자의 신뢰성에 비합리적으로 민감하다. 관대한 네델란드 사람들이나 민주적인 스웨덴 사람들 사이에서도 질투와 애착이 낳는 분노의 감정은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들은 배우자의 성에 대해서는 이처럼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에게는 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실제로 남자들은 상대가 바뀔 때 성적 욕망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쿨리지 효과 Coolidge effect’라고 한다). 여자들은 마치 남자들의 그런 성향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듯, 성적인 배신보다는 오히려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약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정부가 아닌 자신이라면, 결혼 생활은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의 마음까지도 침대를 떠났다면 복수를 꿈꾼다.

외모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깨끗하고 굵고 윤기 있는 모발이다. 사람들이 각종 헤어 제품들에 소비하는 금액이 연간 50억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을 볼 때, 모발은 단순히 일시적인 인상이 아닌 근본적인 매력을 좌우하는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토록 많은 금욕주의적 청교도 문화들에서 머리에 무언가 쓰도록 의무화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분명 좋은 모발은 건강뿐 아니라 기생충으로부터의 자유도 말해준다. 거세된 남자의 가는 머리카락과 성병 환자의 벗겨진 머리를 보면 남자의 바람직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314p

음식에는 우리 모두가 자제심을 잃고 탐닉에 빠지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대뇌변연계가 전두피질을 압도한다. 욕망의 울부짖음은 이성의 목소리를 몰아낸다. 미식가와 대식가 사이에는 이론적으로 분명히 차이가 있겠지만, 호박 파스타가 담긴 접시 앞에서 자제심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은 같다. 영국의 시인 콜리지(Coleridge)가 말했듯이, 아무도 사과 경단을 진심으로 거절할 수는 없다.

 

317p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의 문화에는 하라 하치 부의 개념이 있는데, 여기에는 5분의 4 정도 부를 정도로만 먹자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오키나와는 100만 명당 100살 이상인 사람의 수가 미국보다 4배 더 많다. 배고플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은 지각력을 예리하게 하고 학습 능력을 촉진하며 움직임을 민첩하게 한다(그래서 냉장고 안을 뒤지는 것보다 더 분투적인 무언가를 하게 된다). 그래서 배고플 때 운동하는 것이 좋다는 트레이너의 말은 맞다. 다만 문제는 트레드밀(회전식 벨트 위를 걷거나 달리는 기구) 위에서 목적 없이 무작정 달릴 때는 사냥감을 쫒으면서 맛보는 스릴을 똑같이 느끼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만약 약해빠진 영양 한 마리가 달아나는 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한다면 아마도 더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319~320p

그런 강력한 욕구는 단순히 지적인 동물의 본능에 관한 문제로만 남지 않는다. 사랑이 섹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듯이, 음식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단순히 채우고 비우는 것 이상의 무언가다. 다이어트를 하는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무척 그립다. 음식은 지난 몇 년간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안정제가 되어주었고, 고독감을 완화해주었다. 그렇게 막다 보면 어느새 잠의 무의식에 빠졌다. 음식은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자기 조절에 실패한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과식은 다른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바로 감정 말이다. 배고픈 사람은 우울한 소식을 들었을 때 더 많이 먹는다. 스트레스와 걱정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주방으로 향한다. 원시적인 공동체에서 그러한 반응은 꽤 유용하게 작용했다.

 

326~327p

사회화는 유아기의 본능이다. 새끼 사자가 와락 덤벼들고 무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는 주장하고 제안하고 협상하며 감정이입을 하고 농담하는 법을 배운다. 유아들은 가장 권력이 센 남자 어른이 언제 너그러워지고, 언제 무서워지는지를 곧 알게 된다. 어떤 일의 목적이나 언제 시끄럽게 떠들어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느낌으로 구별할 줄 알게 된다. 부모에게서 전해지는 따뜻한 무언가(나중에 자기 자녀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어떤 것)도 느끼게 된다.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인 존경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희망을 자기 자신의 희망 목록에 포함하기도 한다. 그런 세세하고 집중적인 훈련 없다면, 그 공동체는 계속 이어질 수 없다. 인간이 올바르게 자라기 위해 필요한 자양분은 우유와 채소만으로 충분치 않다. 공유하는 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한다.

문화와 환경은 나라와 인종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뇌는 다양한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있다. 인간은 편견 없이 태어난다. 우리 뇌는 신경 네트워크를 가능한 한 폭 넓게 확장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탄생한다. 그러나 사춘기에 이르면 불필요한 뉴런들을 버리고 가장 자주 사용하는 피질 경로들만을 수초로 감싸 전도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절연시키기 시작한다. 피질의 영향 아래 진행되는 이 과정은 정신적 활동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고 예측과 반응을 빠르게 하지만 그 범위를 제한한다. 한편, 추상적 판단을 주관하는 전두엽은 뇌의 주인이 20세가 될 때까지 활동이 잠잠하다. 따라서 비록 덩치 크고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란 아들이 이번 주말에 차를 빌려야 하는 몇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한다 해도 안 돼.”라고 잘라 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329p

젊음이 알기만 한다면, 늙음이 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말이 나타내는 것처럼 아이들과 노인들은 서로 잘 어울린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 동물들과 달리 독특하게도 갱년기를, 특히 여성의 경우 폐경기를 겪는다. 이론상 공동 육아를 위한 좋은 조건이다. 자녀 양육의 짐에서 벗어난 능력 있는 노년층 여성은 자신보다 더 젊지만 식견이 부족한 친족의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다. 어쩌면 노인들은 거만할 수 있다. 풍부한 경험을 쌓아왔으므로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에 대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사춘기 아이들이 제일 나중에 습득하는 자기 조절력을 제일 먼저 상실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는 것들은 당신이 위키피디아에서도 얻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진실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거듭 회상하는 과정에서 정제되고 다듬어져서 보석처럼 빛나며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를 잘 반영한다. 속담, 우화, 계보, 시와 노래가 저장된 할머니의 창고는 갖가지 경험 법칙이 축적된 곳이다. 그들은 크고 작은 어려움이 생기고 부보들의 근심이 늘어나도 여전히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젊은 세대에게 말해준다.

 

331~332p

그런데 엄밀히 다수의 수렵채집 사회 구성원들이 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그 균형은 결코 그들이 처음부터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북아메리카 대륙은 원래 매머드나 메가테리움(나무 위가 아닌 땅 위에서 지내는 거대한 나무늘보)처럼 몸집이 거대하지만 행동이 굼뜬 동물들의 주요 서식처였다. 그러나 그 동물들은 초기 인류의 출현으로 결국 멸종되었다. 마찬가지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도 유대목 동물들과 날개 없는 새들을 멸종시켰다. 그리고 두 문화권 모두 사냥에 용이하도록 정기적으로 황무지를 불태웠다. 결국 사회가 수렵채집 중심에서 농경 중심으로 변한 실질적 이유는 (12천 년 전 예리코 근처에서 무화과 재배를 시작하면서) 식용되는 야생동식물의 공급이 이렇듯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사냥꾼들은 마지못해 농사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인류가 어떤 문화를 더 선호하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바비큐 파티를 위해서는 친구들을 초대해도, 오트밀이 담긴 단지들을 나누려고 일부러 초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해도 우리 조상들은 현대인에 비해서는 자연과의 균형을 더 중시했다. 그들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우리 현대인은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자연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렛 하단(Garnett Hardin)1968년 발표한 논문에 실리면서 유명해진 이 용어는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이 일치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에서 암소는 남자들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지위를 얻고 신부를 사들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암소다. 그런데 소와 달리 그 소들을 방목할 수 있는 목초지는 모두가 사용하도록 개방된 공유지다. 따라서 개인들은 자신의 소들을 키우는 데 이 공유지를 가능한 한 많이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 가축 수를 늘리는 일에 혈안이 되어 공유지는 가축들로 붐비게 되고, 그 결과 공유지는 소들이 먹을 풀이 더 이상 남지 않은 황무지로 변하게 된다. 사적인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려는 이기심이 앞선 나머지 모두가 소해를 보는 비극이 초래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소 주인들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그들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생선회 수요가 높아지면서 참치 수가 30년 만에 거의 80%까지 줄어든 사례에서 그러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참치가 앞으로 20~30년 안에 다른 상업용 물고기 종들처럼 멸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정부들은 참치 어획을 제한하는 데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다는 전 세계에 개방된 공유지이기 때문이다.

 

347~348p

인사란 곧 친근한 감정이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신호다. 이 메시지는 기호논리학의 관점에서 부호화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갯과 동물이라면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싸움 놀이를 할 때, 두 마리의 개는 서로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행동을 조정한다. 그레이트 데인은 작은 애완용 개를 누르지 않는다. 스코티쉬 테리어는 세인트 버나드의 부드러운 살을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격 본능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고전적 도덕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요구했던 방식처럼 말이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선을 넘으면 그에 대한 반응은 단순한 고통이나 분노를 넘어선다. 으르렁거림에 고스란히 담긴 격분에는 너는 행동하는 방식을 몰라.”라는 실망감이 내포되어 있다.

 

348~350p

물론 공원이나 라크로스(하키와 비슷한 경기) 경기장을 마련하는 일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나아가 완전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