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봉사 받으러 다닌다
몇 년 전인가 한 노숙자 쉼터에서 연락이 왔다. 좀 젊은데 90여 명의 노숙자 영정사진을 찍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영정사진이 필요한 곳이면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아 가서 촬영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이 40~50대였지만 그중에는 20대도 있었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한 노숙자가 지하철에서 자다가 방화 셔터가 내려와 참변을 당하게 된 것이 영정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노숙자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정사진조차 없이 장례식을 치루는 서러운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마도 지하철에서 사망한 노숙자는 영정사진도 없이 장례식을 치룬 것 같았다.
영정사진을 나눠 주러 갔을 때 두 노숙자가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야, 이거 어떻게 보관해야 하지."
"가방에 잘 넣고 다녀야지 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영정사진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노숙자분들이 고마워하고 위안이 된 것 같아 내가 더 고마웠다.
한번은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분들만 모시고 있는 재가노인요양센터에서 영정사진을 촬영한 적이 있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어 한 명은 사진을 찍고 두 명이 보조를 해서 어렵게 사진을 찍었다. 영정사진을 보낸 며칠 뒤 그중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나마 영정사진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고맙다고 연락이 왔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옛날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남의 선행 때문에 덕을 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냇가에 누군가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그 덕에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게 되고 그중 한 사람이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선행의 덕에 보답하고자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 활동을 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에서 사진 봉사자를 구한다는 연락을 받고 사진 봉사를 시작했다. 각 사회복지기관이나 시설은 물론 어려운 이웃 등이 필요로 하는 행사사진이나 영정사진, 결혼사진, 가족사진, 증명사진 등을 촬영했다. 남는 게 사진이라고 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한 분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촬영해 소중한 추억을 남겨 줄 때는 당사자도 당사자지만 담당 사회복지사분들이 더 좋아했다.
그렇게 사진 봉사를 하면서 봉사에 대한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여태껏 내가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내가 봉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이 가장 행복해 할 때는 돈이나 권력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주위 사람들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었을 때라고 한다. 그 동안 사진을 찍어 주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때문에 내가 조금이나마 그 사람들의 행복에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의 행복감은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돈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갖고 있는 작은 기술이나 노동력을 나눠 주거나 말벗이 되어 주는 것도 필요한 사람한테는 도움이 된다. 남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 주는 기쁨을 알게 되면 봉사는 결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남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 주는 기쁨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혹시 아직 나눠 주는 기쁨을 모르는 분들이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서 얻는 행복한 봉사를 받아 보기를 바란다.
혹시 저와 같이 봉사 받으러 갈 분 계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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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이지만 나는 녹색당원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단지 집권을 하거나 정책을 통해서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자신의 삶에서 사회 봉사 활동 등 실천이 병행되지 않으면 영원히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녹색당에도 열심히 사회 봉사 활동을 하는 당원분들을 알고 있다. 그런 분들이 몇 명이 아니라 대부분의 녹색당원분들이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녹색당이 현안 대응을 열심히 하거나 좋은 정책 제시하는 것보다도 사회 봉사 활동으로 유명한 정당이 되는 것이 오히려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 우리가 원하는 정책을 실현시킬 수 있는 더 빠른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글을 쓰며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