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수확한 농작물은 동부, 단호박, 맷돌호박, 애호박, 긴호박, 가지, 옥수수, 토마토, 방울토마토, 노랑토마토, 대추방울토마토, 여주, 오이, 노각오이, 참외.
별것 아닌 수확물이지만 너무 익어서 딱딱해지거나 터지거나 물러지기 때문에 이삼 일에 한 번씩은 수확은 해 줘야 한다. 400여 평의 밭을 돌아다니며 수확해야 하는데 종류가 많은데다가 밭의 잡초도 조금 정리하고 송충이(집 주위의 가로수에서 송충이가 번식해서 밭이 온통 송중이 투성이다)나 가지와 토마토의 무당벌레도 좀 잡고 하다 보면 최소한 네 시간, 어떤 때는 하루종일이 걸린다.
화성시로 이사 온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집 주위 밭이 외지인들이 사 놓은 땅이라 놀고 있어서 전 집주인이 농사 짓던 땅을 이어서 농사 짓고 있다.
자급자족을 위해서는 우리집과 동생네 가족까지 200~250평이면 쌀 빼고는 거의 자급자족할 수 있다. 그런데 어머니 욕심이 그게 아니라 주변 밭을 모두 농사 짓고 싶다고 해서 결국 광교산에 있는 80~90평 정도와 집 주위 땅까지 합쳐 500평 정도의 밭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중에 고추류(일반 고추 두 종류, 아삭이고추, 청양고추)가 70평, 콩류(완두콩, 강낭콩류, 작두콩, 백태, 서리태, 야생 돌콩)도 그 정도로 많이 차지한다. 그밖에 옥수수류(대학찰옥수수, 보라옥수수, 노랑옥수수, 흰옥수수, 쥐이빨옥수수), 팥류(일반 팥과 동부류), 호박(애호박, 긴호박, 꼬마단호박, 단호박, 맷돌호박), 수수류(붉은수수, 수수), 당근, 해바라기, 참깨, 들깨, 상추류(로매인, 청치마, 적치마, 양상추, 치거리류), 부추, 달래, 도라지, 더덕, 잔대, 아욱, 쑥갓, 갓류(홍갓, 청갓, 돌산갓), 배추류(구억배추, 개성배추, 베타후레쉬배추, 얼가리배추, 양배추), 무류(열무, 알타리무, 일반 무 두 종류), 방풍나물, 참나물, 초롱꽃나물, 머위, 곰취, 양파, 마늘,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고수, 울금, 생강, 토란, 감자, 고구마, 돼지감자, 당귀, 목화, 아주까리, 페퍼민트류, 근대, 적근대, 비트류, 수박류(수박, 미니수박,) 참외류(참외, 개구리참외, 애플참외), 미나리, 바실, 대파, 쪽파, 반하, 아마란스, 가지, 고들빼기, 마, 흰민들레 등.
거기에 유실수와 약초 나무로 대추나무 두 그루(새끼 두 그루도 크고 있는 중), 한 그루는 작은 것으로 예전 집에서 옮겨심은 것이고, 한 그루는 예전 주인이 심었던 것인데 빗자루병이 걸려 가지를 반 이상 자르고 약을 줘서 겨우 살렸음. 감나무 네 그루와 사과나무 한 그루, 엄나무 두 그루, 오갈피 나무 한 그루, 느릅나무로 보이는 것 한 그루, 산초나무 한 그루, 매실나무 한 그루도 예전 주인이 심어 놓은 것. 앵두나무 한 그루 작은 것은 예전 집에서, 치자나무 한 그루는 이사 오기 전에 이웃이 줘서, 청매실 한 그루와 황매실 두 그루, 밤나무 한 그루는 지율스님이 선물해서 심었다.
계절별, 아니 월별로 심고 관리하고 수확하고, 거기다 광교산 텃밭에까지 가야 하니 여간 고된 게 아니다. 물론 광교산 텃밭은 올해만 하고 내년부터는 하지 않을 것이지만. 수확물도 너무 많아서 친척들 오면 주고, 이웃집에도 주고, 냉장고에도 보관하다가 더 이상 넣을 곳이 없어서 어머니께서 그만 수확하라고 하지만 그냥 썩게 둘 수도 없고... 토마토는 다행히 동생이 알려 준대로 갈아서 요구르트나 꿀을 섞어 매일 두세 잔씩 마셔야 하는 고역(?)을 치러서 소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머니와의 갈등도 있다. 자연농을 꿈꾸고 유기농을 지향하는 나와 관행농으로 비료도 주고 약도 치고 해서 부드럽고 크게 키우는 것을 지향하는 어머니와의 갈등. 예전에 당수동시민텃밭에서는 유기농이 의무적이라 순종을 하더니 이제 관행농으로 닦달을 해서 내가 많이 참아야 한다. 물론 지금 고추밭에 탄저병이 돌아 속상해 하는 어머니의 말대로 약을 안 칠 수 없는 상황(그래도 나는 먹을 수 있을 때까지만 수확해 먹고 약을 치고 싶지 않지만)이어서 탄저병 약을 칠 수밖에 없었다.
2007년도 쯤인가 시작해 십 년이 넘게 텃밭 농사를 평균적으로 100평 이상 지어 왔고 2013년에는 양평 양동에서 두물머리 친구들 몇 명과 200여 평 공동 경작하고, 수원 농수산물유통센터 예정 부지 텃밭, 서울 노들섬의 노들 텃밭, 인사동 옥상 텃밭을 만들어 주말에 쉴 틈도 없이 최소 두 군데씩 다니며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500평은 너무 벅차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주는 것만으로도 하루종일이 걸리고, 김매기는 아예 하루만으로 끝내기에는 엄두를 내지 못해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해야 한다. 거기다 벌레 잡는 일도 시간을 보통 잡아먹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들춰 가며 잡아야 해서.
아무튼 텃밭 평수를 반으로 줄이고 싶은데 마음대로 될런지 모르겠다. 지금은 거의 일상의 반을 농사에 매달려야 해서 걱정이다. 어머니께서는 점점 노쇠하셔서 농사일이 벅찬지 도와주는 시간이 줄어들고 아버지께서도 수확한 것 다듬는 일이나 김매기에 좀 도움이 될 뿐 거의 내 일이다. 내년 농사는 좀 더 시간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을까? 남의 땅이라 자연농으로 전환해 가기도 어렵고 시간 내기도 더 어려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