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
- 초록주의(조상우)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고 하니까 어떤 분은 재테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인 줄 안다. 그런데 동네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어떤 면에서 재테크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전국적으로 동네 시장 여기저기에 대형 마트가 입주하려 하고 있고 이 때문에 동네 상인들의 반발이 거센 곳이 많다. 수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역에 살지만 서울이나 다른 곳에 직장이나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이야 이왕이면 더 싸고 좋은 물건이 많은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니 당연히 찬성할 만하다. 단순히 물건이 싸고 한꺼번에 구입하기 편한 곳을 따지자면 당연히 홈플러스나 이마트 같은 대형 할인점일 것이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은 동네 상점을 이용하느니 차를 타고서라도 대형 할인점을 이용하려고 한다. 결국 대형 할인점과 경쟁 상대에 있던 동네 상점들이 하나둘 줄어들고 동네 거리의 풍경은 스산해진다. 상점뿐만 아니라 임대료로 먹고 살던 동네 건물주까지 생활이 어렵게 된다.
우리 동네 시장에 대형 마트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나마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이 불편해 먼 곳에 있는 대형 할인점 대신 동네 시장을 이용하던 사람들까지 대형 마트를 이용할 것이고 상점들은 더 문을 닫을 것이고 동네는 더 스산해질 것이다. 필요한 물건을 서로 사 주던 동네 시장에서 그나마 돌던 돈들은 대형 할인점뿐만 아니라 대형 마트를 통해서도 본사가 있는 서울로 흘러들어가고 그나마 다행히도 대형 마트나 대형 할인점의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상점주들도 삶은 더 고달파진다. 나라의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돈도 없으니 동네의 분위기가 스산해져 가도 나야 뭐 싸고 편하게 사서 더 좋다고 하는 주민들이야 정말(?) 혼자 더 잘 먹고 잘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대형 할인점이나 마트에 맞서 동네 상점들이 문을 닫지 않고 동네 시장들이 없어지지 않고 동네 건물주들까지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또 돈이 없어 필요한 물건을 사지도 못하고 필요한 서비스도 받을 수 없을 때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팔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팔아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동네에서 구입할 수는 없을까?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 달리 지역(동네)에서 발행하고 지역에서 쓸 수 있는 화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므로 만일 지역화폐가 활발히 이용되는 지역이라면 대형 할인점이나 마트가 들어설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지역화폐를 받아 봐야 다른 곳에서 쓸 수 없는 종잇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쓴다고 해도 결국 동네에서 써야 하기 때문에 동네에서 번 돈을 다시 동네에서 쓸 수밖에 없고 대형 할인점과 마트가 동네에서 번 돈을 다 쓸 일이 없기 때문에 번 돈을 모두 자선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 한 지역에 들어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지역화폐는 잠시 혼자 외출을 해야 해서 아이를 맡기거나 멀리 여행을 가서 반려동물을 맡길 때,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지역화폐로 물품과 서비스가 거래되는 벼룩시장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초석이 될 수 있고, 또 이렇게 해서 번 지역화폐로 동네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그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품과 몰라주던 재능을 이웃들과 물물교환하거나 무료 제공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물물교환은 서로 가치를 측정하기가 막막하고 팔고 싶은 물건 주인과 사고 싶은 물건 주인이 다를 때 교환 과정에서 불편한 점이 있기 때문에 이런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다. 지역화폐는 기존의 화폐처럼 이런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다. 거기다 지역화폐가 제대로 유통되면 서로 돌볼 수 있는 지역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초석이 되어 그야 말로 동네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수원에서는 시민화폐라는 지역화폐가 시험 운영되고 있다. 100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이 사용하고 있고 20여 개의 가맹점이 시민화폐를 받고 있다. 수원 시민화폐는 12월 15일까지 시험 운영되지만 현재 더 시험 운영 기간을 연장한 후 내년에 본격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수원 시민화폐는 돈이 돈을 낳아 불평등이 심화되고, 지역의 돈이 외부로 유출되는 ‘밑 빠진 독’의 악순환이 되는 현 화폐 제도의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시작하게 되었다. 수원 시민화폐는 사람과 지역사회를 중심에 놓고 설계했으며, 신뢰를 토대로 하는 이웃공동체와 지역순환경제를 형성하는 기존 지역화폐의 장점을 온라인상에서 유통하도록 설계해 운영된다. 수원 시민화폐는 휴대폰에 앱을 깔고 각자 전자지갑을 개설하면 QR코드를 찍어서 송금과 수금을 할 수 있는 전자화폐이다.
수원 시민들이 수원 시민화폐 같은 지역화폐에 관심을 갖고 많이 참여해 주길 바란다. 그것이 지금 같은 시대에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원 시민화폐 사용자나 가맹점이 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은 네이버 카페 ‘수원 시민화폐(http://cafe.naver.com/suwoncoin)’를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