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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을로

초록 경제 l 2021. 7. 14. 13:43

지금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생산된 것을 먹고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직접 생산한 것보다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것으로 생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생산한 것을 들여오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비하는 물건을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는 다른 지역에 비해 경쟁력 있는 물건을 생산하여 번 돈으로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싸게 물건을 사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지역의 인건비가 오르면 생산비를 아끼기 위해서 인건비가 싼 나라로 생산시설을 옮겨 수출도 하고 수입하기도 한다. 지역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을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수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싸게 생산되는 것에 비해 유통 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산 비용이 싸다고 해도 유통 비용이 그보다 더 비싸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이렇게 무역이 가능한 이유는 교통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저렴한 화석연료 때문이다. 또 생산단가를 낮추려고 다품종을 소량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품종을 대량 생산을 한다. 그래야 가격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옛날에는 그 지역에서 생산 가능한 것은 대부분 마을 단위에서 자급자족했다. 교통 오지인 곳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생활할 수밖에 없다. 옛날은 물론 지금도 가족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식을 자급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나 주식 외에 과일이나 특용 작물 등을 모두 자급자족하는 것은 어렵다. 다품종 소량 생산은 소품종 대량 생산에 비해 훨씬 힘이 든다. 한마디로 노동생산성이 없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서로 생산하지 않은 농산물을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마을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은 장에 나가 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상품들은 생산된 지역에 비해 비쌀 수밖에 없다. 상인들이 바닷가 산 해산물을 내륙에서 팔고, 산간에서 사들인 임산물을 평야 지대에서 팔 수 있었던 것은 희소성으로 인해 유통시키느라 고생한 만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그런 교역은 작게는 마을 단위에서 크게는 동서양 문물이 교류하는 실크로드로 확대되기도 했다. 거리가 멀수록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위험과 고생을 동반했지만 그만큼 비싸게 받을 수 있어 충분한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지금도 지방에는 5일장이 서는 곳이 많다. 어르신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와 팔고, 또 직접 생산할 수 없는 농수산물 등과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기도 한다. 마을에서 자급할 수 있는 농산물을 장에서 사는 일은 없다. 전통적인 5일장은 실제로는 물물교환이나 다름없는 거래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마실 나가고 평소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을 먹는 외식의 장소였으며, 눈요기를 하고 서로 안부를 나누고 여러 가지 정보를 교환하던 곳이기도 하다. 5일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누리고 교류하는 장이다.

마을의 재래시장은 호혜경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었지만 상인들도 자신의 가게에서 팔지 않는 물건은 이웃 가게에서 샀고, 이웃 가게도 내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샀다. 시장 번영회가 있어 일이 생기면 서로 챙기는 그냥 이웃이었다.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마을의 돈은 자연스럽게 지역 내에서 돌고 돌았다. 돈은 원래 유통의 편리를 위해 존재했는데 마을의 재래시장에서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대형 할인 마트가 들어서는 곳이 생겼다. 이웃 가게보다 물건이 다양하고 쌌으며, 시설도 편리하고,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 이웃 가게를 버리고 대형 할인마트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고, 결국 내 가게도 문을 닫게 되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자영업자들은 사장에서 대형 할인마트의 종업원 신세로 전락하거나 외지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조금 더 싸고 조금 더 편리하다고 서로 이웃을 버린 댓가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벌어들인 돈은 지역으로 환원되지 않았다. 본사가 있는 중앙으로 돈은 몰려나갔다. 돈은 더 이상 지역에서 순환되지 않고 이웃끼리의 교류도 사라져 갔다.

이런 문제들이 생기자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생존권을 위해 마을에 대형 할인마트가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도 벌이고 지역화폐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의 돈은 금과 같은 실물화폐가 아니라 신용화폐다. 신용이 확보된다면 신용화폐는 시전상인들이 썼던 어음같이 그냥 종잇조각이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신용을 담보할 방법만 마련할 수 있다면 법정화폐가 아니더라도 지역화폐가 마을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지역화폐가 잘 유통되면 외부에 있는 본사로 지역의 돈이 빠져나가는 대형 할인마트가 자리 잡을 수 없다. 법정화폐와 교환 불가능한 지역화폐로만 거래하게 된다면 대형 할인마트를 세워도 결국 벌어들인 돈은 마을에서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돈이 마을에서 돌고 돌아 마을 경제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지만, 과연 그런 돈을 벌어들이려고 하는 대형 할인마트가 있을까?

농사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농산물의 부산물을 가축이 먹고, 가축이 싼 똥은 물론 인분도 훌륭한 거름이 되었다. 화학비료 때문에 질소가 과다하게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물을 오염시키고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지 않았다. 농사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생산한 농산물로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자연과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농사법으로 다양한 재래종을 적절히 생산했다. 그런 농사가 돈을 벌기 위해 자급자족하기 위한 작물이 아니라 경제성 있는 작물을 재배하는 농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상품성 있는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시설에 투자하고 대단위로 단일 품종을 재배하면서 병충해와 자연재해에 취약해졌다. 작년에 상품성 있는 작물이 올해 과다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병충해와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칠수록 내 농사는 많은 이익을 남겼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농사는 더 이상 농사가 아니라 농업 투기가 되곤 했다. 자의든 타의든 농부들이 주식인 식량을 재배하여 자급자족하지 않고, 더 이익을 볼 수 있는 환금작물을 재배하여 번 돈으로 더 싼 식량을 사먹기 시작했다. 농사의 변질은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는 대기근으로 당시 800만 명이던 아일랜드인 중 100만 명 정도가 굶어죽고, 100만 명 정도가 해외로 이주했다. 당시 감자 중에 수확량이 좋았던 미국산 단일 품종을 대량 심었다가 미국산 감자가 취약한 감자 역병이 전국적으로 발생해 일어난 문제였다. 감자는 그 시기 아일랜드 사람 3분의 1일 의존하고 있던 주식이었다. 영국인들이 아일랜드에서 생산한 밀은 수입하고 대신 값싼 감자를 아일랜드인에게 주식으로 재배하게 한 것이다. 감자 역병으로 주식인 감자가 부족한 와중에 영국은 곡물법을 폐지시키고 밀 수입을 자유화하고, 군대를 동원해 강제로 아일랜드에서 생산한 밀을 본국으로 보냈다. 또 감자 농사를 망쳐 세금을 내지 못한 아일랜드인을 영국인 대지주가 강제로 내쫒아 결국 이들은 빈민가에서 굶어죽거나 전염병으로 죽었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해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으로는 단일 품종을 대량 생산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며, 농사가 자급자족이 아니라 무역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나타난 문제이다.

또 비교적 최근에는 세계적인 쌀 대란이 일어나자 필리핀이 국민들에게 쌀을 배급한 일이 있었다. 필리핀은 1960년대만 하더라도 농부 1인당 쌀 생산성이 아시아 평균의 6배나 높았다고 한다. 1년에 3모작까지 가능해 쌀을 수출을 하기도 했고 우리나라는 한때 필리핀 쌀을 무상으로 지원받기도 했다. 그런 필리핀이 어떻게 매년 100~200만 톤 정도의 쌀을 수입하는 세계 최대 쌀 수입국 중 하나가 되고 쌀을 배급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1970년대 필리핀은 수입하는 쌀에 엄청난 관세를 물려 쌀 가격 유지하여 농민을 보호했었다. 그러다가 필리핀 정부는 자국 내의 쌀 생산성을 높이는 것보다 쌀을 싸게 수입해 먹는 것이 낫다고 정책을 바꾸게 된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쌀이 부족해지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필리핀에 쌀을 수출하던 국가들이 수출을 거부하면서 필리핀 쌀 가격이 폭등하게 되었다. 거기다 필리핀 전역을 태풍이 강타하면서 홍수 피해로 쌀 부족은 더 심각해졌다. 배고픈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기도 하였다. 식량안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필리핀의 쌀 파동을 통해 알 수 있다. 다행히 당시 우리나라는 쌀은 자급자족할 수 있어서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는 1인당 쌀의 수요가 70년대에 비해 반으로 줄고 대신 다른 수입 곡물의 소비가 늘었기 때문으로 근본적으로는 식량안보의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도 생협에서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로컬푸드를 지향하고 있지만 생협은 물론 대부분의 유통시스템은 지역적이지 않다.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바로 배달하면 시간도 줄이고, 훨씬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유통 비용이 많이 든다. 거리가 멀더라도 대량 유통이 거리가 가까운 소량 유통보다 경제적이다. 여기서도 값싼 화석연료가 톡톡히 역할을 한다. 식량 1칼로리를 생산하는데 기계를 사용하는 관행농업으로는 화석연료 10칼로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람의 힘만으로 농사를 지으면 1칼리를 사용해 10칼로리의 식량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칼로리의 효율성만으로 따진다면 한마디로 인력은 기계에 비해 100배나 효율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기계농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화석연료가 싸다는 것이며, 이는 화석연료의 소비를 부추길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공장 생산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값싼 화석연료로 인해 인류는 심각한 기후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마트에서 중국산 수입품을 뺀다면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사라져 현실적으로 중국산 수입품 금지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아무리 값싸게 생산되었다 하더라도 값싼 화석연료를 이용한 유통이 아니라 걸어서나, 가축을 이용하거나, 범선을 이용했다면 미국에서 중국 제품은 결코 지금처럼 싼 제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외진 곳에 위치한 작은 식당에 들어가 보니, 국내산 외에 소고기는 호주산과 미국산, 돼지고기는 미국산, 등갈비는 스페인산, 갈치는 세네갈산, 낙지는 중국산, 고등어는 노르웨이산, 가자미는 러시아산, 찌개김치는 중국산이었다. 감탄(?)스럽기까지 한 세계화 무대였다.

지금은 마을에서도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구멍가게는 다국적 기업들의 편의점과 게임 상대가 되지 못한다. 요샛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본래 교역은 자급할 수 없는 물건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점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들였는데, 이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행태로 바뀌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다양성은 소멸되고, 문화는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생태적으로 아주 건강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계화를 예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아주 잘나고 운이 좋은 극소수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돈이 행복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5,000달러를 넘어서면 돈은 더 이상 행복을 좌우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벌써 1인당 국민소득이 30,000달러를 넘어선지 오래다. 우리가 돈을 벌려는 목적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돈을 더 벌기 위해 행복을 버리려 하고 있다. 이웃은 호혜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을 때라고 한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웃과 경쟁 대상이 아니라 서로가 필요한 존재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호혜의 경제를 회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지역화폐를 기반으로 한 자급자족 위주의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 교환이 불가능하거나 교환하면 손해를 보는 방식이어야 한다. 돈이 돈을 버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우리가 외부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아야 외부에 착취당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도 돈의 노예로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돈이 유통의 편리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의 축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갈 때, 우리는 돈의 노예로 전락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돈의 축적은 공동체의 결속을 와해시키므로, 지역화폐는 돈의 축적을 제한하고 유통의 기능에 충실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개성과 특기에 맞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하며, 이웃의 물품이나 서비스와 교환하는 순환의 경제를 마련해야 한다. 또 마을과 마을이 교류하면서 서로 부족한 것을 나누는 호혜경제가 우리를 더 행복한 삶으로 이끌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많은 것을 희생하며 돈만 버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돈이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그 기회는 우리가 마을에서 지역순환 호혜경제를 만들 의지와 실천력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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