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주의(녹색주의)

'복종'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10.22 권력이란 무엇인가?
  2. 2017.03.06 의도적 눈감기-요약

"결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

- 한나 아렌트

 

권력이란 말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과적 관계로 이해되고 있다. 에고(Ego)가 권력에 근거하여, 타자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특정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미친다. 권력은 에고에게 타자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을 관철하는 능력을 준다. 따라서 에고의 권력은 타자의 자유를 제한하며, 타자는 자신에게 낯선 에고의 의지를 참고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이런 통상적 이해는 권력이 갖는 복합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권력의 행사는 저항을 분쇄하거나 복종을 강요하려는 시도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이 반드시 강제라는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 권력이란 무엇인가/한병철 지음/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 펴냄/2012.3.20/15쪽

의도적 눈감기

- 마거릿 헤퍼넌 지음/김학영 옮김/푸른숲 펴냄/2013.4.15

 

6p

시메온 레이크 판사는 배심원단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피고인이 다른 상황이라면 명백히 알았을 사실에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배심원 여러분은 피고인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피고인이 사실의 존재에 대해 의도적으로 모른 체한다면, 진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7p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우리 스스로 눈감기를 선택하는 이유이다. 면전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커다란 위험을 부인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과연 어떤 힘이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 세력을 키우고 우리를 이토록 무력하게 만드는가? 도대체 왜 중대한 실패나 참사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했지만 자신들의 경고가 묵살되었다는 목소리들이 들리는가? 도대체 왜 우리는, 기업은, 국가는 번번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어쩌다 그렇게 눈을 감았을까?’ 한탄만 할까?

 

17p

레베카와 로버트가 닮은 점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이 부부의 경우는 지극히 평범하다. , 몸무게, 나이, 자라온 환경, 지능지수, 국적, 민족 등 대부분의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한다. 정반대의 사람에게 매력을 더 느낄 수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수십 년간 이러한 현상을 연구한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이를 동질혼이라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닮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우리의 시야는 넓지 못하다.

 

21p

실험실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도 이와 똑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캐롤은 코카콜라를 마시고, 피트는 펩시를 좋아한다. 레오는 리스테린 구강 청결제를 좋아하고, 캐서린은 콜게이트 치약을 즐겨 쓴다. 이런 선택들은 재미 삼아 그런다고 치고, 좋아하는 머리글자는 삶을 결정하는 중대한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치과의사들은 이름의 첫 글자가 ‘D’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조지아 주에는 의외로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많다.

익숙하면 최소한 멸시하지는 않는다. 또 편안함을 느낀다.

 

86p

웨스터그렌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음악이나 책 혹은 사람의 범위를 좁혀가느라 스스로의 취향을 편협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뇌는 엉뚱하고 색다른 경험으로 우리를 안내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위험 부담이 큰 일에 가산점 따위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 다른 방향은 차단한 채 한 방향에만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유사성이 없는 경험에는 눈을 감아버린다.

 

27p

신입 교향악단 단원을 블라인드 오디션으로 뽑았던 유명한 사례는 고정관념의 오류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과 프린스턴 대학의 세실리아 라우스는 연주자들의 음악성을 평가할 때 성별의 영향을 배제하고자 참가자들에게 칸막이 뒤에서 오디션을 치르게 했다. 1차 오디션에서 여성 참가자들의 합격률은 50퍼센트, 최종 오디션에서는 무려 3백 퍼센트가 높아졌다. 현재 미국에서는 블라인드 오디션이 표준이 되었으며, 그 결과 주요 교향악단의 여성 연주자 비율은 5퍼센트에서 36퍼센트로 증가했다.

 

32p

법학자 카스 선스타인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면 서로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을뿐더러 서로의 견해를 더욱 극대화하는데, 이를 집단 양극화 효과라고 설명했다(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선스타인 역시 하버드 대학 교수인 서맨사 파워와 결혼했다는 사실이나 두 사람 모두 오바마의 행정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 집단 양극화 효과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조차 집단 양극화 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판도라 라디오가 우리의 음악 취향을 협소하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과 똑같은 기능을 한다.

 

45p

행동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같은 크기라면 수익보다 손실이 훨씬 더 크게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을 (주식 투자가 아니라) 사랑에 적용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렵게 사랑을 시작할수록 그 사랑을 잃는다는 두려움은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보다 훨씬 깊게 느껴진다. 관계에서 문제라도 생긴다면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애쓰거나 문제를 축소하면서 관계에 집착한다.

 

49p

불륜의 비율을 정확히 밝히기란 어렵지만, 결혼한 부부의 30~60퍼센트 정도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추산된다. 이혼을 할 때도, 이혼한 부부의 24퍼센트가 이혼의 이유로 배신을 꼽는다.

 

51p

브라운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고 말한다. 이 경우 결혼 생활이 회복되기 어려운 이유는 배신당한 배우자가 상대방에게만 분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분노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몰랐을까?’라고 물으며 스스로를 너무 어리석고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마치 저절로 조립되는 직소퍼즐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조각들의 아귀가 들어맞고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무서운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진실이 드러남과 동시에 사랑을 지속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지켜온 귀중한 자신의 가치와 자존심은 와르르 무너진다.

 

53p

영국 아동학대예방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16세가 되기 전에 성폭력을 당한 어린이의 비율이 16퍼센트나 된다. 숫자도 놀랍지만 가정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학대가 자행되는 것을 어떻게 가족이 모를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영국 아동학대예방협회의 아동보호 프로그램 책임자 크리스 클락은 이렇게 말한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포장하고 있어서 웬만해서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은 거죠.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이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56p

길 박사의 말에 따르면, 부모들이 원치 않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는 몇 가지 두려움이 얽혀 있다고 한다. 아이를 학대하는 아버지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경우, 생계가 위협받고 수입이 끊길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학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끄러움이나 사회적 소외도 눈을 감아버리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두려움의 바탕에는 학대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파괴된다는 보다 현실적인 두려움이 있다.

 

57~58p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사랑을 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밝히고 싶었다. 예상대로, 사랑은 보상과 관련이 있는 뇌를 활성화시켰다. 음식과 술, 돈과 코카인에 반응하는 세포들이 사랑에도 반응한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기분이 좋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실험의 결과를 사랑이 죽음의 공포도 이겨낼 수 있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사랑에 집착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다소 억지스럽지만 우리 삶에 사랑이 필요한 것만은 확실하다.

사랑으로 활성화되는 부분보다 활성화되지 않는 뇌의 부분들이 더 관심을 받고 있다. 피험자들의 아이들이나 부모를 생각하는 동안 MRI 촬영을 했을 때, 특정 두 개 부위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주의, 기억, 부정적 감정을 주관하는 부위, 두 번째로는 부정적 감정, 사회적 판단력,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의도를 구별하는 능력과 관련된 부위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사랑할 때 일어나는 뇌의 화학 작용으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환상은 뇌가 지켜주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 수많은 신경과학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뇌과학은 시인들이 읊었던 사랑 노래에 구체적인 실체를 부여했다.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65p

뉘른베르크 재판(나치 독일의 전범들에 대한 국제군사재판)에서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슈페어는 히틀러 정권이 저지른 범행을 기탄없이 고백했고 자신이 그 정권의 일원으로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면에서 그 결심은 그의 단순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말한 책임이란 집단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개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직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슈페어의 문제점이었다.슈페어는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슈페어의 전기 작가 지타 세레니는 말한다. “그는 그런 능력을 갖기 원했지만 갖지 못했어요. 실제로 슈페어는 굉장히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똑똑했죠. 의도적으로 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방어수단이었습니다. 뭔가 잘못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어가 필요했을 겁니다.”

 

70p

슈페어는 공동 책임은 인정했으나 범죄행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그리고 석방된 후에도 슈페어는 자기 자신과 힘겹게 사투를 벌였다. 스스로 사악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어리석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어서였다. 사랑이라는 환상에서 깬 연인처럼,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71~72p

성폭행 피해자 오고먼이 말했듯, 진실을 외면할 때 우리는 스스로 무력해진다. 우리는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는 순간에조차 안전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의도적 눈감기의 모순이다.

 

75p

그러나 웨스턴의 말에 따르면, 뇌는 불쾌한 반박을 없애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뇌는 좋은 기분을 느끼는 위해, 보상 회로를 가동하여 지지하는 후보에게 자신들의 편향된 추론에 어울리는 긍정적 강화를 보낸다.

 

우리의 뇌는 갈등을 싫어해서 어떻게든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보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을 때 합의점을 찾기가 훨씬 더 쉬운지도 모른다. 쉽게 찾은 만큼 합의점을 마음에 들어 한다. 심지어 무조건 합리적인 합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중요한 신념을 지키려고 할 때는 그 신념의 오류를 입증하는 증거를 외면하는 위험까지도 감수한다는 의미이다.

 

76p

앨리스는 마침내 황달과 빈혈의 원인이 노동자들의 허약한 체질 탓이 아니라 TNT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사염화탄소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이직률이 높은 이유, 광부들이 폐 질환에 잘 걸리는 이유 등을 밝히고자 현장 연구를 자처했던 것은 스튜어트가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 사회의학과 역학 연구가 천직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회의학과 역학은 새롭게 등장한 의학 분야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79p

엑스레이를 찍을 때 방사선 노출량은 극히 적으며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촬영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 정도의 극미량도 어린이의 암 사망률을 거의 두 배로 높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79~80p

3년 동안 그녀의 연구팀은 1953년에서 1955년 사이에 영국에서 암으로 사망한 어린이들의 80퍼센트를 추적 조사했다. 1958,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연구 보고서 전문이 실렸고 마침내 엑스레이에 노출된 태아가 그렇지 않은 태아보다 향후 10년 내에 암에 걸릴 확률이 두 배 가량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81p

하버드 공공보건 대학원의 브라이언 맥매헌도 스튜어트의 논문을 반박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의 연구 결과도 스튜어트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했다. 임신 중 엑스레이 촬영을 한 여성의 아이들이 암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40퍼센트나 높았던 것이다.

 

82p

여기에는 엑스레이의 도발적인 매력이 한몫을 담당했다. 1895년 발견된 이래로 엑스레이는 그 위용과 신비로움을 날로 더해갔다. 1890년대에는 우아하고 값비싼 초상화의 한 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심지어 케이크를 구울 때 실수로 빠트린 반지를 찾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발에 꼭 맞는 구두를 만들기 위해 엑스레이 기계를 들여놓았다고 광고하는 구두 가게도 있었다.

 

84p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과 더 아프게 만든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었다. 상화 배타적인 신념에서 생성된 부조화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부조화의 고통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의 신념을 없애는 것이다. 과학자들로서는 한계 이론도 옳고 엑스레이도 효과가 있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다. 의사들은 여전히 권위적이고 똑똑하며 좋은 사람들이어야 했다. 앨리스 스튜어트와 그녀의 발견은 더 큰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되었다. 상반되는 한 명제에 대해 눈을 감을 때 부조하는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84~85p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시골에 사는 평범한 주부 매리언 키치였는데, 그녀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1221일에 지구에 대홍수가 있을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적었다고 믿고 있었다. 특정한 날에 일어나기로 예정된 사건을 믿는 사람들, 이들의 예언이 실패로 드러났을 때의 인지부조화! 페스팅거의 연구를 검증할 완벽한 기회였다. 깊이 신봉하고 있던 믿음이 틀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상의 종말이 몇 년 후도 아니고 몇 달 후에 일어난다니 현실성도 있었다. 페스팅거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으면 키치 부인이 자신의 믿음을 포기할 것인지 궁금했다. 페스팅거의 이론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계속 고수할 뿐 아니라 예전보다 더 강력한 믿음을 가질 터였다.

 

87p

새벽 445, 키치 부인은 새로운 메시지를 받았다. “태초 이래로 이 지구에는 이러한 선과 빛의 세력이 없었나니, 지구에 내재되었던 선한 빛이 속박에서 풀려나 이제 온 지구에 넘치노라.” 그 집단의 선함이 지구를 대홍수에서 구원한 것이다.

 

88p

페스팅거와 그의 뒤를 이은 심리학자들은 우리 모두가 조화롭고 안정적이며 정당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신념은, 자기 자신이나 친구 혹은 동료의 눈에 비친 라는 자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된다. 이러한 자아를 위협하는 사람이나 생각은 굶주림이나 갈증만큼 불쾌하고 위험한 고통을 준다. 우리가 가진 중요한 사상에 대한 도전은 삶을 위협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틀렸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무시하고 지지하는 증거를 확대해석함으로써 고통을 줄이려고 맹렬히 애쓴다.

 

90p

어떤 일을 할 때, 혹은 이론이나 사상을 믿을 때도 혼자라면 상당히 불안하지만 사회적 지지가 뒷받침된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사회적 지지는 주로 큰 생각들을 공유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같이 할 가족, 친구, 동료들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특히 더 매력적인 사회적 지지의 형태는 제도이다. 게다가 엄청난 조직의 중요한 지위에 있거나 정치적 권력자인 경우라면, 신념들을 공유하는 동료들로부터 무한한 확증을 받는다. 그 신념들에 의문을 제기했다가는 직업과 지위, 명성과 경력 등 모든 것을 위협받게 된다.

 

91p

정보나 소셜 네트워크의 부정적 확산처럼 모델화가 가능하지 않아서 빠트린 내용들이, 정작 경제 모델에서 내가 강조한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경제 모델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다른 어떤 정보보다 적합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모델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정보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101p

파트노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린스펀은 두 가지 사실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현대의 통제된 국가에서는 자유 시장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죠. 시장은 늘 부분적으로 통제된 상태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정보의 함정을 이용할 기회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린스펀은 시장에는 규제할 수 없는 한계도 있고, 따라서 무한 경쟁으로 빠져들 심각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던 겁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우리가 공통의 법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이러한 공통의 법률이 없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불공평한 부정뿐 아니라 불안과 변덕이 난무하게 됩니다.”

 

107~108p

화학안전위원회는 존의 평균 수면 시간이 하루 약 5.5시간이었으며 약 한 달 보름 동안 수면 부족이 누적되어 있었다고 추측했다. 이 정도면 단순히 컨디션이 나쁜 정도가 아니다. 화학안전위원회는 보통사람이라면 이 상태에서는 피곤해서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고 상황 변화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반응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확하게 추론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어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배제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를 인지 협착 또는 인지적 터널 시각이라고 하는데, 피로로 인한 전형적인 현상이다.

워런과 그의 상사는 문제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너무 피곤했다. 영국의 보건안전청은 이른 시간에 연속적으로 교대 근무를 함으로써(새벽 6시에 교대가 이루어졌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피로의 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했다. 3일 연속으로 새벽에 교대를 하면, 피로감이 30퍼센트 상승하고 5일 연속 새벽 교대를 할 경우에는 60퍼센트, 7일째에는 첫날에 비해 피로감이 75퍼센트로 상승한다. 30일 동안 쉬지 않고 일했을 때 사람의 정신에 발생하는 변화는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다.

 

111p

일을 시작한 첫 네 시간 동안 가장 생산성이 좋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사람들은 민첩성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저하되며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늘어난다. 1908, 자이스 렌즈 연구소 설립자 중 하나였던 에른스트 아베는 하루 근무 시간을 아홉 시간에서 여덟 시간으로 줄였을 때 실제로 생산량이 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일을 하면 그냥 피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수를 하게 된다.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나머지 노동시간을 모두 허비한다.

 

112p

잠을 못 잔 피험자 그룹에서 뇌의 중요한 두 부분, 두정엽과 후두엽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두정엽은 감각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통합할 뿐만 아니라 숫자에 대한 인식과 물건을 조작하는 기능과 관련이 있다. 후두엽은 시각 정보와 숫자를 처리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두 부분은 시각 정보와 숫자를 처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113p

무엇보다 수면 부족은 뇌를 굶주리게 만든다. 우리가 피곤할 때 달콤한 음식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뇌가 당분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24시간 동안 잠을 못 자면, 뇌에 공급되는 포도당의 6퍼센트 정도가 감소한다. 그러나 뇌의 모든 부분이 포도당 부족을 같은 수준으로 겪는 것은 아니다. 전두엽과 전두피질은 12~14퍼센트의 포도당 손실을 겪는다. 전두엽과 전두피질은 생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사상을 분별하고 사회적 제약을 판단하며 선과 악의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이 이 부분에 달려 있다.

 

114p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퍼센트라는 것은 음주 운전의 법적 한도를 훌쩍 뛰어 넘는 수치이다. 영국의 경우 혈중 알코올 농도 0.08%부터는 법적으로 제한한다. 0.1퍼센트에서는 기분이 죽 끓듯 변하기 쉽고 감정 표현이 과도해지며 주변 시야가 좁아진다. 또한 높이나 거리 감각이 상실되고 추론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차이슬러 연구팀은 병원 인턴들이 24시간 근무를 할 경우 실수로 주사바늘이나 외과용 메스로 자신을 찌를 확률이 61퍼센트나 증가하고, 자동차 추돌 사고의 위험은 168퍼센트, 대형 사고로 이어질 확률도 460퍼센트까지 증가한다고 밝혔다. 자동차 사고의 20퍼센트는 단지 수면 부족 때문에 일어난다.

 

116p

동영상 속에서 한 여학생이 고릴라 복장을 하고 걸어 들어와 한가운데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가슴을 두드리고 유유히 걸어나간다. 그러나 피험자들 절반은 이를 보지 못했다. 이 여학생이 등장한 시간은 약 9초 정도였다.

 

117p

노련한 수화물 검색자들이 댄의 피험자들보다 무기를 발견한 확률은 높지만 아주 현저하게 높은 것은 아니다. 무기의 종류와 상관없이 세 번 중 한 번은 찾지 못한다.

댄은 자신의 실험뿐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의 실험을 10년간 지켜본 후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기대한 것만 보고, 기대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내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에는 넘기 어려운 절대적인 한계가 있다.

인간 뇌의 주의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한 장소, 한 대상 또는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것에는 주의력이 떨어집니다.”

 

118p

유타 주립 대학에서 심리학과 부교수로 있는 프랭크 드루스가 실시한 재미있는 실험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론을 얻었다. 40명의 학생을 세 그룹으로 나눈 다음, 첫 번째 그룹에게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동차 운전 시뮬레이터를 조작하게 했다. 두 번째 그룹은 통화를 하면서, 세 번째 그룹은 보드카와 오렌지를 먹어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8퍼센트까지 올린 다음에 시뮬레이터를 조작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8은 미국과 영국에서의 법적 한계 수치이다.

세 그룹을 비교한 연구팀은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통화를 하면서 운전한 두 번째 그룹은 후방 충돌 사고를 더 많이 일으켰고 브레이크 밟는 속도가 느렸다. 술에 취한 세 번째 그룹은 공격적으로 운전했으며 전방의 차량과의 거리도 더 짧았고 더욱 힘들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사고는 일으키지 않았다. 이 결과만 보고 운전 중 통화보다 음주 운전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드루스와 그의 동료들은 운전자가 통화를 하면 운전에 충분한 주의력을 기울일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20p

피곤하거나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상태를 심리학자들은 자원 고갈상태라고 하는데, 이 상태가 되면 우리는 자원을 절약하고 보존하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고차원적인 사고는 꿈도 못 꿀 사치다. 의심과 회의, 논증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교수 대니얼 길버트는 자원의 고갈은 특히 정교한 인지적 사고를 방해한다.”고 말한다. “반론이나 의심을 제기하는 행위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 등장할 뿐 아니라 가장 먼저 사라진다. 의심하고 반론하는 것보다 믿을 때 우리 뇌가 덜 힘들기 때문이다. , 피곤하고 주의가 산만할 때 우리는 더 어리숙해진다.” 우리 모두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122p

KPMG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수 및 합병의 83퍼센트는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53퍼센트는 실제로 주가가 하락했다. 경영컨설팅 업체 A. T. 커니의 조사에서도 115개의 국제적인 기업 합병에서 주주에게 돌아온 총수익은 외려 마이너스 58퍼센트였다. 터널 시야는 우리의 결정으로 파생될 폭넓은 결론에 눈을 감게 만든다. 조종실에 앉아 있는 정유사 직원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123p

밀그램의 주장은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왜냐하면 막연하게 손실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 손실을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과잉에 치이면 스스로 사회적 관계나 도덕적 관계를 제한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과잉은, ‘동정심의 범위를 제한해야 다루기 쉬워진다.”

 

125p

선동가들과 세뇌시키는 사람들은 기업의 관리자나 경영자들이 망각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정신은 과부하가 걸리거나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 도덕적으로 눈을 감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이해하면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일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29p

호크 교수는 온갖 주장들을 다 들어보았다. “비타민 D 섭취율을 높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비타민 D는 음식과 생체 항상성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일부러 높일 필요는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태닝을 하면 에도르핀이 생성되어서 진통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모두 터무니없는 주장이지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저는 태닝과 태닝 살롱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증거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환자들을 보면서 애석한 점은 그들도 태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는 겁니다. 황당하죠. 알면서도 알기를 거부하는 겁니다.”

 

130p

에일리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흔한 일이다. 영국에서는 4시간마다 한 명씩 피부암으로 죽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햇빛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유해한 태양광에 맨살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136p

1965년에 실시된 한 연구에서는, 우리의 눈동자가 마음이 끌리는 것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회피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남자, 여자, 학생, 주부, 비서로 구성된 피험자들에게 열 장의 그림을 보여준다. 그림들 중 몇 개는 성행위를 묘사한 야한 그림이었다. 카메라 하나가 피험자들의 눈동자의 움직임을 촬영한 다음, 피험자들의 시선의 이동 경로를 그림으로 나타냈다. 그런 다음 피험자들에게 그림에 대해 떠오르는 바를 물었다. 같은 그림에 대해서도 피험자들의 묘사가 다르다는 점은 놀랄 일도 아니다.

 

139~140p

스튜어트는 이렇게 말한다. “제 생각에,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재정적으로 거의 끝장난 상태입니다.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전형적인 유형도 없습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서 교양이 넘치는 사람까지 별별 사람들이 다 있죠. 하지만 공통점은 타조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일단 곤경에 처하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 달, 내일, 심지어 몇 시간 앞만 보고 그 동안만이라도 파산을 면할 방법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생각한 방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합니다.”

 

148p

이성적으로 문제를 마주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해결책을 쓰든 현상 유지를 깨트려야만 문제가 해결된다. 갈등과 변화냐 아니면 타성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타조의 머리 감추기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156~157p

게일라는 그레이스 측이 리비의 오염 수준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또 하나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엑스레이 검사가 비밀리에 행해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부검도 은밀히 실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의사들은 침묵했고, 정부 당국은 진실을 은폐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충격적인 사실은 게일라의 친구들과 이웃들이 게일라가 발견한 진실을 알기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161p

제 생각엔, 어쩌면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보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아요. 그들은 싸움을 원하지 않죠. 벌거벗은 임금님의 새 옷과 같아요. 모두 멋지다고 말하면 정말 멋진 옷인 양 보이는 것 같죠.”

 

하지만 리비의 이야기를 몇 배로 더 슬프게 만든 것은,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스스로에게 일어난 일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62p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수비오 산에서 멀리 달아나고 있는 와중에 플리니우스는 죽음을 무릎 쓰고 위험한 지역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 생존자들을 찾아서 구했다. 그 과정에서 플리니우스는 죽었다. 그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크라카토아 화산처럼 가장 맹렬한 화산 폭발은 무지를 계몽하려 했던 한 남자의 이름을 기려 울트라플리니안이라고 부른다.

 

166p

살아남은 마컴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었다는 이유로 사고에 대한 책임을 면했다. “마컴 소장이 선회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더라면, 빅토리아 호는 전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해군 소장 두 명은 이렇게 기록했다. “마컴 소장이 군사 법정에서 판결을 받긴 했지만, 그가 그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안타깝게 여기지는 않았다. 복무 중인 군인으로서는 어차피 무조건 복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오늘날 우리 눈에는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지만 빅토리아시대 사람들에게는 비극이었다. 트라이언에게도 틀림없이 그 사건은 비극이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마컴이 주도권을 쥐고 맹목적인 복종을 거부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트라이언의 생각이 옳았다는 사실은 결국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입증되었지만, 그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도 사고와 함께 사라졌다. 어쨌거나 이 사건은 명령 복종에 내재된 긴장과 어려움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167p

발달한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각적이고도 쾌락적인 욕구를 쉽게 채우지만 그렇게 얻은 만족감은 이내 시들해진다. 쉽게 말해서 일단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더 좋은 집, 더 따뜻한 곳, 더 많은 핫도그를 원하게 되고, 그 욕구를 채우더라도 만족감은 차츰 줄어든다. 그때 우리는 자신만의 즉각적인 만족감을 넘어서는 대의에 헌신하기를 갈망한다. 따라서 더 위대한 목적을 발견할수록 더 행복하고 건강해지며, 심지어 더 오래 살기도 한다. 그러나 고립된 상태에서 더 원대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훌륭한 미술관을 짓고 경기장을 건립하거나 스카우트 팀, 정부, 혹은 기업이나 자선단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조직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자신의 자율성을 기꺼이 포기하면서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을 때 더욱 많은 것을 성취하고,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생존할 수 있다. 우리는 대의의 권위에 항복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의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이러한 행위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복종으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종할 때 우리의 행동과 시각은 심각하게 달라진다.

 

168p

복종에 관한 저명한 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은 도시 생활의 부담에 대해 매우 조예가 깊은 사회과학자이기도 하다. 유대인 학살 사건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196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심리학 실험을 실시했다. 밀그램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임무를 부여받은 경우, 복종에 대한 보상도 없고 불복종에 대한 질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그 권위에 복종을 할 것인가, 또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밝히고 싶었다. 시쳇말로 그는 복종이 우리 안에 내장된 프로그램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169~170p

실험의 핵심은 참가자들에게 그 어떤 위협이나 두려움도 주지 않는 상태에서 협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모든 참가자들은 언제든 실험을 중단하거나 실험실을 나갈 수 있었다. 실험에서 권위 있는 지시자의 역할을 한 사람은 하얀색 실험복을 입은 노련한 과학자였다. 상사도 아니었고 군대의 사령관도 아니었다. 분명히 연구를 수행하는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참가자를 지원하는 역할만 수행했다.

실험을 계획하기 전에 밀그램은 정신과 의사, 대학생, 중산층의 성인 세 그룹에게 피험자들의 행동을 예측해보게 했다. “이들은 사실상 모든 피험자들이 복종을 거부하리라고 예측했다. 다만 1~2퍼센트 내외의 병리학적으로 정상이 아닌 사람들만이 전기쇼크를 최대 출력까지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비록 대학 실험실에서 실시된 학술적인 실험이었지만, 이 실험은 모든 피험자들에게는 긴장감과 현실감이 넘치는 생생한실험이었다. 밀그램은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이 연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까지 10년이나 고민을 했다. 피험자들 가운데 65퍼센트가 명령에 완전히 복종했던 것이다. “40명의 피험자들 가운데 26명이 실험이 끝날 때까지 지시에 복종했다. 이들은 학습자에게 발전기를 돌려야 할 정도로 최대 출력까지 올라가는 전기쇼크를 주었다. 450볼트 쇼크를 세 번 가하고 나서는 지시자가 실험을 중지시켰다.” 밀그램이 발견한 것은 공격성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관찰을 이렇게 기술했다. “학습자에게 전기쇼크를 지시하는 피험자들에게는 어떤 분노도 없었고, 복수심이나 혐오감도 없었다. 사람들은 분노하면 다른 사람에게 증오 섞인 행동을 하거나 노여움을 표출한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 분노는 없었다. 분노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 밝혀진 셈이다. 바로 인간이 인간미를 포기할 가능성이다. 자신이 가진 고유한 인격보다 더 큰 구조적인 제도를 따를 때는 필연적으로 인간성을 포기할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171p

다시 한 번, 두 사람이 틀렸다. 일단 남자 피험자들의 복종 수준은 밀그램의 본래 실험의 결과와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여자 피험자 전원이 귀여운 강아지에게 최대 수준의 전기쇼크를 가하라는 지시에 복종한 것이다.

 

172p

비록 권위의 지배 하에서 한 사람이 한 행위는 양심의 기준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도덕적 관념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본질적으로 다른 관점을 획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그 사람은 자신이 권위가 자신에게 바라는 기대에 얼마나 잘 부응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도덕적인 관심사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전쟁 중에, 병사들은 한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는 일이 선한 일인지 악한 일인지를 묻지 않는다. 그 병사는 한 마을을 파괴하는 일에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외려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에 따라서 자부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낀다.

 

173p

달리 해석하면, 우리가 더 크고 선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권위에 복종하기로 동의하면, 우리는 그 순간 개인의 자아(양심에 대한 책임감도 함께)와 세상이 우리에게 부과한 사회적 자아를 맞바꾼다. 흔히 이를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말은, 개인의 자아는 집에 두고 사회적 자아는 직장으로 보내라는 말이다.

 

밀그램은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복종의 문제가 심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집단의 일원이라는 측면에서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이다. 개인이 혼자서 일할 때는 자신의 양심에 따른다. 그러나 위계 체계 내에서 일할 때는 권위가 양심을 대신한다. 그러지 않으면 위계 체제가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심의 문제만 지나치게 앞세우면 집단의 이점은 사라진다.

 

174p

오하이오 팀이 실험을 수행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간호사들이 복종했다는 점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에 간호사들이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고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는 최우선의 의무에 대해 완전히 눈을 감았다는 사실이었다.

 

175p

당연히 멈춰야 할 최악의 상황처럼 보이는 순간이 전혀 없었다.” 이 말은 밀그램의 피험자들이 한 말이 아니다. MCI의 중간간부 월트 파블로가 한 말이다. 병원과 달리 장거리 전화 서비스 기업에는 헌신과 복종을 고취시키는 고결한 도덕적 목적 따위는 없다. 오로지 극도의 경쟁 문화와 실적이 높은 직원을 위한 상당한 보상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훌륭한 직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파블로는 말한다.

 

178p

그는 말한다. 문제는 한 방에 나쁜 행위를 하라는 요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아주 서서히 사소하고 미세한 단계로 나쁜 행위가 진행되는 동안 아니오라고 거절할 결정적인 순간이 없다는 것이다.

 

181p

목표를 이루기만 한다면 그 방법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종의 힘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사회적 존재의 눈에는 도덕성이나 적법성, 안전성 같은 그 외의 다른 생각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 아부그라이브 감옥의 미숙한 간수들이 죄수들을 구워삶아보라는 지시를 받을 때도, 구체적인 방식 따위는 지시받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실제로 유익한 일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지시를 따랐다. 포로들을 학대하는 수단을 통했는데도 중요한 군사 정보를 단 하나도 빼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상관이 없었다. 명령이니까 따랐을 뿐이고 다른 어떤 것도 염두에 없었다.

 

기장만이 위기 상황에서 규정을 따르지 않을 권위가 있다. 따라서 이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여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사고 직전의 비행 기록 중 조종실 내부의 대화를 분석했는데, 실수가 발생했을 때 부조종사가 이의를 제기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는 무려 25퍼센트에 달했다.

 

181~182p

이를테면, 일본군의 경우 천황에 대한 사랑으로 무장했으며, 자살 폭탄 테러의 경우 종교적 열정으로 무장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피험자가 익명의 학습자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상해를 입히도록 계획된 훨씬 면밀하고 학술적인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피험자들은 불복종을 하느니 차라리 기꺼이 스스로에게 상해를 입히기를 택한다는 것이다.

 

182p

밀그램의 피험자들 가운데 지시에 불복종했던 한 사람은 군 생활 중에 불법적인 명령을 거절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상관 장교들이나 고위 정치가들이 명령권자로 있었기 때문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범들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에서 있었던 전쟁 범죄와 관련하여 최근에 설립된 특별 국제 재판소에서도 복종을 변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184p

영국이나 미국 육군사관학교에는 사회화 과정이 있습니다. 규모 면에서는 거의 과한 수준입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1년 전에 도입했는데,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반응도 아주 적극적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군인 정신의 가치와 신념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태도를 가르칩니다. 복종이 아니라, 조직의 일원이 되는 법을 가르칩니다. 기업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인증 자격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는 진정성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와 조직의 가치를 동등하게 여기도록 교육하죠.

 

185p

학생들이 배운 교훈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해야 할 일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더 많이 줄수록 더욱 열중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합니다. 단지 버튼을 누르는 일만 시킨다면 신중함을 기대할 수 없지요. 부도덕한 명령은 반드시 거부해야 합니다. 도덕적인 면도 틀림없는 우리의 일부이니까요. 하지만 전, 우리가 늘 백 퍼센트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187p

명령권자를 존경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다면, ‘명령불복종말고도 명령을 무시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건 흑백논리가 아니에요. 제 생각에 군인들은 상당히 성과 지향적입니다. 우리는 임무에 전념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갈등 상황에 대처할 때 독립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얼마나 될까요?

 

188p

밀그램의 실험은 우리가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되뇌어도 결국 대부분이 복종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러한 행동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의무 태만이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반성과 독자적인 생각과는 반대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복종의 일종의 지름길이다. 복종을 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믿는다. 아주 간단하고 쉽다. 특히 지치고 마음이 사란하며 싸우기 싫을 때는 더욱 그렇다. 또한 복종은 우리를 눈감게 만드는 다른 모든 힘들을 증폭시키며 공고하게 한다.

 

193p

순응의 가장 큰 특징은 무조건적이고 자발적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틀린 줄을 고르라고 말한 사람도 없고 그런 선택을 하는 데는 아무런 규칙이나 정해진 이유가 없다. 마치 닮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우리는 무리와 어울리길 바란다. 자신이 튄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우리는 사람들을 바꾸거나 자기 자신을 바꾼다. 순응은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194p

애쉬의 실험과 달리, 1979년 오리건 대학에서 실험을 반복했을 때는 여성보다 남성이 순응할 가능성이 더 컸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순응을 잘 하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행운이나 기회 혹은 운명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들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 인생의 주도권을 자신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틀린 줄을 선택할 가능성이 적었다. 하지만 애쉬가 실시한 최초의 실험과 마찬가지로, 순응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모두가 깜짝 놀란다. “이런, 세상에! 내 눈이 멀었나 봐요! 내가 어떻게 이런 실수를.”

 

202p

수련의 표정이 진짜 당황한 것 같았더군요. 어쨌든 그는 비밀을 누설했던 거죠. 수많은 아이들을 죽일 수는 있지만 동료를 배신할 수 없다는 겁니다.

 

205p

정신약리학 분야를 개척한 자크 팡크세프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적 정서와 사회적 유대는 신경 화학적 측면에서 오피오이드 탐닉의 근본을 이룬다.” 다시 말해,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추구하려는 우리의 소망은 사회적 보상뿐 아니라 신경 화학적 보상을 바라는 데서 시작된다.

 

묵살당하거나 코벤트리로 보내야 할 존재(따돌림 당하는 사람을 빗댄 영국의 속담)’가 되는 것 또는 형벌 체제에 갇히거나 고립되는 것, 이 모든 것은 처벌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법들은 힘과 자존감의 원천이 거세당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해도(혹은 그러길 바라더라도) 우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제외된다는 것은 외롭고 무력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에 합류하면, 우리는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지름길을 배우며 스스로의 정당성을 입증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210~211p

비교 실험을 위해 한 번은 3차원 물체 중에서 똑같은 두 개를 피험자 스스로 찾게 했고, 또 한 번은 동료 피험자가 고른 물체들을 알려준 다음에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실험에서는 컴퓨터가 선택한 물체들을 알려준 다음에 선택하게 했다. 과학자들은 이 실험을 통해 피험자의 순응 여부가 아니라, 이들의 뇌에서 어떠한 활성화가 일어나는지를 밝히고 싶었다. 순응하는 과정에서 전두피질이 가장 왕성하게 활성화된다면, 이는 순응이 의식적인 의사 결정의 결과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후두부나 두정부에서 활성화가 집중적으로 일어난다면, 순응이 지각 활동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 피험자들이 무엇을 보느냐는 사회적 영향이 결정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211p

3차원 테스트는 애쉬의 줄무늬 실험보다 어려웠기 때문에 아무런 압박감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피험자들이 실수를 많이 했다. 그러나 이들의 순응 확률은 똑같았다. 그리고 순응할 때 뇌의 전두피질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순응할 때 의식적인 결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뇌의 활성화는 지각을 담당하는 부분에 집중되었다. 집단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피험자가 보는 것이 달라졌고, 피험자들은 차이에 눈을 감았다.

과학자들은 지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사회적 영향에 따라 바뀐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 실험으로 몇 가지 다른 견해들도 등장했다. 집단의 결정을 아는 것은 피험자들의 정신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았을 때 피험자들의 사고 과정이 줄어드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집단의 결정과 일치한다고 느끼면 사고를 멈춘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들 여럿을 모아서 얻는 집단의 이점은 따지고 보면 개개인의 심사숙고를 줄여준다는 이점인 셈이다.

피험자들에게 컴퓨터나 다른 집단의 실수에 순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 이유를 묻는 질문을 실시했을 때까지도 피험자들은 자신들이 순응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정말로 우연히 같은 선택을 내렸다고 믿고 있었다. 피험자들은 자유의지로 선택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212p

게다가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집단의 결정과 반대로 완전히 독립적인 결정을 내린 한 피험자에게서는 색다른 일이 벌어졌다.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영역인 편도체가 매우 활성화되었다. 고통과 유사한 감정이 발생한 것이다. 집단으로부터의 독립에는 매우 큰 대가가 따른다는 의미이다.

 

물론 어느 선까지는 우리 모두 순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가 기능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에 따르면, 순응의 가장 큰 위험은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속감으로 인해 위험에 눈감을 뿐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려는 용기에도 눈을 감는 것이다.

 

225p

혼자 있던 피험자는 연기가 새어 들어온 지 2분만에 행동을 취했다. 연기가 새어 들어오는 부분을 찾고 온도를 확인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두 명이 함께 있던 방에서는 열 번 중 단 한 번만 연기가 들어온다고 알렸다. 나머지 경우에는 기침을 하고 눈을 비비면서도 끝까지 설문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세 명이 함께 들어간 방의 경우, (달리와 라타네는 한 사람의 반응 속도에 비해 3배 정도는 더 걸릴 것이라고 추측했다) 스물네 명의 피험자들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연기가 난다고 알렸다. 그때는 연기가 난 지 이미 4분이 지났고 방 안은 겨우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달리와 라타네는 방관자 효과라는 말로 자신들의 발견을 설명했다. 두 사람이 이러한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키티 제노비스라는 뉴욕의 젊은 여성의 사망 사건 때문이었다. 이 여성은 뉴욕의 거리 한복판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사건이 발생할 당시, 서른여덟 명의 사람들이 30분 이상 지속된 여성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목사들과 뉴스 해설자들, 정치가들은 뉴욕 시민들의 무관심과 도시 내부의 아노미에 대해 거들먹거리며 떠들었지만, 역시 뉴욕 시민이었던 달리와 라타네는 외려 그러한 사회의 반응에 회의적이었다. 정말 뉴욕 시민들이 유독 타락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긴급 상황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일까? 어떤 쪽이든,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뉴욕 시민들보다 나을 것인가?

 

226p

단순히 다른 사람도 문제를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문제에 대해 누군가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를 모르면서)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다. 연기가 자욱한 방에서라도 일단 집단에 속해 있으면 방관자 행동이 순응으로 인해 악화될 수 있지만, 순응이 방관자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실험을 하든 모든 피험자들은 목격자가 많을수록 사건에 반응할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최초의 명제를 입증했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이타심이 감소한 것이다.

미국과 달리, 영국의 법정에서는 방관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대응을 공식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공동 참가라는 법적 해석에 따라, 치명적인 가격을 날렸다는 증거가 전혀 없는 방관자들에게도 살인에 대해 유죄를 적용할 수 있다.

 

227p

2001년 보안업체 직원이었던 서른 살의 케네스라는 남자가 런던의 한 버스 안에서 다섯 명의 젊은이들에게 과자를 바닥에 던지지 말라고 말했다가 폭력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케네스의 오른쪽 안구를 파내는 동안 버스에는 적어도 열다섯 명의 승객들이 동승하고 있었지만 모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런 사례들은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고한 희생자들이 공격당하는 현장에 수십 명의 목격자들이 있어도 대부분 그저 지켜보거나 눈길을 돌려버리기 일쑤다.

이 목격자들이 유별나게 나쁜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릴 근거는 없다. 라타네와 달리의 실험에서도 이미 입증된 바이다. 우리 모두는 방관자처럼 행동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228p

그 후 4백여 개가 넘는 인터넷 채팅방 회원들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어졌지만 하나같이 방관자 이론을 확증해줄 뿐이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반응은 적었다. 하지만 한 가지 미세한 특징이 드러났다. 도움을 청할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부탁할 경우 도움을 받을 확률이 크다는 점이다.

 

228~229p

방관자 효과가 입증한 것은 사회적 자아와 개인의 자아 사이에 엄청난 긴장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단독으로 있을 경우 옳은 일을 할 확률이 크다. 그러나 집단으로 있을 경우, 우리의 도덕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는 서로 충돌하는데 그 충돌은 고통스럽다. 달리와 라타네의 실험에서 사건에 개입하지 않은 피험자들은 개입하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개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다면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갈등과 망설임으로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이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그들은 더 쉬운 길, 일종의 도덕적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240p

2006년 실시된 조사에서 영국 학생들의 69퍼센트가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자녀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부모는 87퍼센트였다. 그러나 교사의 83퍼센트는 교내에서 괴롭힘을 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많은 경우, 학생 방관자들은 배우를 부추기는 관객처럼 응원자의 역할을 한다. 또는 개입하지 않는 다른 학생들 역시 괴롭히는 가해자에게는 보호막으로 보일 뿐이다. 응원자로든 보호막으로든 모두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괴롭힘을 정당화한다. 괴롭힘을 본 목격자들 가운데 겨우 10~20퍼센트의 학생들만이 피해자에게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가장 애석한 사실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따라 하기 때문에 괴롭힘이 신고되지 않는다는 게 경찰의 말이다.

 

243p

달리는 심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주장을 언급한다. 카너먼은 우리의 사고 체계가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시스템 1은 직관적이며 연상적이고 매우 신속하고 습관에 기인한다. 본질적으로 시스템 1은 지름길 사고라고 할 수 있으며 대부분 만족스럽다. 시스템 2는 더 신중하고 분석적이며 느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수학 문제를 정확하게 풀고자 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시스템 2를 이용하지만, 시스템 2의 또 다른 목적은 시스템 1의 오류를 감독하는 것이다.

 

254~255p

원래 실험에서 65퍼센트의 피험자들이 전기쇼크를 받는 학습지를 볼 수도 없고 비명을 듣지도 못한 채, 최대 한계의 전기쇼크를 학습자에게 가했다. 그 실험에서 피험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밖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정말로 잊어버릴 수 있는지 신기했어요. 한참 동안 저는 오로지 스위치를 올리고 단어를 읽는 데만 집중했어요.” 하지만 두 번째 변형 실험에서 학습자와 피험자는 같은 방안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학습자와의 근접성으로 인해 전기쇼크를 가하라는 지시에 끝까지 복종한 피험자 수는 40퍼센트까지 감소했다. 그리고 피험자에게 학습자의 손을 쇼크 판 위에 직접 올려놓게 했을 때 전기쇼크를 가하라는 지시에 끝까지 감행한 피험자는 3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전기쇼크 피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음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급기야 신체 접촉을 함으로써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자신이 한 행동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필요가 없을 때는 그 행동의 결과들에 눈감기가 훨씬 쉽다.

이와 마찬가지로, 존 달리도 방관자 효과 실험을 변형한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에서 그는 피험자들을 둘씩 짝지어서 한 방에 들어가게 하고, 몇 쌍은 얼굴을 마주보게, 몇 쌍은 등을 돌리고 앉게 했다. 피험자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40분 후에 마룻바닥에 누군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려주고 으악! 내 다리!’ 하는 절규와 신음을 들려주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앉았던 피험자들의 80퍼센트가 사고에 대해 반응을 했다. 반면 등을 돌리고 앉은 피험자들은 20퍼센트만 반응했다. 실질적인 관계, 얼굴을 서로 마주보는 진짜 관계는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255p

알베르트 슈페에는 자신이 감독하던 강제수용소 시찰을 하지 않으려고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현실을 직접 마주치지 않도록 수행원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아돌프 아이히만과 힘러 하인리히도 자신들이 내린 결정의 결과를 확인하고는 병이 났다고 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객관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거리감도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거리감은 보기 싫은 세부적인 사항들에 눈을 감게 만들기도 한다.

 

257p

한 그룹에게는 인턴사원을 선택할 권한을 주었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조언은 할 수 있지만 선택권은 주지 않았다. 권한을 가진 참가자들은 전형적인 틀에 맞는 정보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다시 말하면, 힘을 가진 사람들은 고정관념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후속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의 권위에 대한 욕구를 나타내는 성격 평가를 실시했다. 욕구 수준이 높은 그룹과 낮은 그룹을 분리한 다음 인턴사원에 지원한 학생들을 평가하게 했다. 권력욕을 가진 참가자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정보들을 완전히 무시하진 않았지만 관심도 낮았다. 권위적인 사람들은 그러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고정관념에 따라 쉽게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권력욕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의지하는 고정관념은 도전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동기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권력은 타락한다. 그러나 그 타락은 권력자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다.

 

258p

그녀는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확률이 높았다. 이들은 매우 낙천적이었는데, 험난한 역격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힘을 실제로 자신들이 가졌거나 혹은 가졌다는 생각이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심리적인 거리가 있다는 의미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만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훨씬 더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밀리컨의 연구에서 밝혀진 더 충격적인 사실은 권력과 낙천주의 그리고 추상적인 생각이 결합하면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확신이 더욱 공고해진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면 될수록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더욱 확고부동해진다.

 

270p

BP가 딥워터 호라이즌 호의 폭발 사고 직후에 속죄양을 찾아 비난하기 급급했던 상황에서도 이러한 불명확성이 드러났다. 물론 BP는 시추선을 직접 건조하지 않았다. 딥워터 호라이즌은 텍사스 기업인 R&B 팰컨에서 디자인하고 한국의 현대가 건조했으며 스위스 오퍼레이터 트랜스오션이 사서 BP에 임대를 해주었다. 사망한 사람 대부분이 BP의 직원도 아니었고 따라서 이 영국회사의 책임도 아니었다. 일단 중요한 기능을 외주 업체에 맡기고 나면 그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아웃소싱의 목적이라며 비웃을 수도 있다. 서구 경제에 아웃소싱의 뿌리가 깊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시급하다.

 

274p

왜 우리는, 제대로 돌아가는지 보지도 못하면서 더 크고 더 복잡한 제도나 기업을 만드는 것일까?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간의 교만은 상상할 수 있다면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만들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심어주었다. 우리는 자신의 발명과 지능에 만족하고, 그 만족감에 취해서 스스로 지배력을 갖고 있으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힘은 우리가 만든 것의 실체에서 우리를 더 멀어지게 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미노스를 위해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처럼, 우리는 스스로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교묘한 미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구조가 야기할 수밖에 없는 맹목에도 눈을 감는다. 그렇게 우리는 완전히 잊는다.

 

276p

정말 그럴까? 거의 폭발 수준으로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천만 원을 호가하는 핸드백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전에 살던 집보다 더 큰 차고가 딸린 새집을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아졌는데 어떻게 돈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미 마틴 샐리그먼과 같은 긍정 심리학자와 리처드 레이어드와 같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그들은 GDP가 증가해도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는 증가하지 않는다는 예를 들었다. 그리고 가장 부자 나라=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276~277p

돈은 동기부여의 원천이다. 1953, 피험자들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철봉에 매달리게 하는 실험이 있었다. 대부분의 피험자들이 약 45초 정도 매달려 있었다. 지시자의 권위에 복종하게 하거나 심지어 최면을 걸었을 때는 75초로 늘어났다. 그러나 5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35천 원 정도)의 포상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참가자들은 110초까지도 매달려 있었다. 150퍼센트까지 수행 능력을 신장시켰으니 상당한 동기부여인 셈이다.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가격이 매겨진 몇 장의 그림들을 보았다. 어떤 그림을 기억하면 5달러, 어떤 그림은 10센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림을 보여준 다음 날 검사했을 때, 피험자들은 비싼 가격이 매겨진 그림을 훨씬 더 잘 기억했다. 피험자들은 자신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는 기대하는 보상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대니얼 핑크와 같은 동기부여 연구가들은 돈이 우리를 열심히 일하게 만들 수 있지만 똑똑하게 일하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대니얼 핑크는 댄 애리얼 리가 했던 실험을 예로 들면서, 돈이 창조성과 문제해결력 같은 경제 발전에 필요한 고차원적인 사고를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돈이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277~278p

중국과 미국 연구원들이 수행했던 흥미로운 일련의 실험들에서 피험자들은 사이버볼 게임을 했는데, 게임 속에서 피험자들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고통스러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돈을 세도록 했더니 피험자들의 기분이 나아졌다. 대조 실험을 위해 피험자들 일부에게는 종이를 세도록 했는데 종이를 세는 반복적인 일은 기분 개선 효과가 없었다. , 종이는 진통제가 아니었지만, 돈은 확실한 진통제였다. 돈을 세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사람들은 더 강해졌다.

 

278p

돈 그 자체가 우리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상하지는 않겠지만 담배나 초콜릿처럼, 우리는 반드시 유익한 것만 원하지는 않는다. 돈으로 얻는 즐거움은 대개 생명력이 짧다. 왜냐하면 늘 새롭고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매력적인 제품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돈으로 사는 물건들은 결코 기대만큼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쾌락의 쳇바퀴라고 부른다. 더 많이 소비할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쳇바퀴에 올라타서 즐거움을 낚으면, 적어도 처음에는 꽤 괜찮다는 기분이 든다.

 

280p

예전의 게임은, 진단을 잘하고 환자들과 소통도 잘하면서 수술도 잘하는 의사가 되는 게임입니다. 새로운 게임은 돈을 버는 겁니다. 그들은 게임이 바뀌었다는 것도 모릅니다. 눈을 감았으니까요. 하지만 게임은 이미 바뀌었죠.

 

282p

연구원들은 또 하나의 의문을 가졌다. 만약 돈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피험자들이 자신들이 잘 못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래서 연구원들은 돈과 관련이 있되 어렵지 않은 실험을 한 가지 고안했다. 대학 학생회 기금에 기부를 하는 것이다. 돈에 집착하는 피험자들은 받은 보상금의 39퍼센트만 학생회에 기부했다. 반면 돈을 별로 의식하지 않은 피험자들은 67퍼센트를 기부했다.

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피험자들은 한결같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몹시 어려운 혹은 완수하기 불가능한 일을 맡겼을 때 그들은 48시간이나 그 일에 매달린 다음에야 도움을 청했다. 주어진 일을 완수하긴 했지만, 전적으로 혼자 해냈다. 연구원들이 내린 결론은 돈이 개개인의 노력을 고무하는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이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부정적인 작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이해가 얽힌 갈등 상황에 돈이 결부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이해에 집중한다. , 우리는 돈 때문에 이기적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285~286p

그 후에 크랜필드 경영대학원과 합작으로 실시한 563명의 위기 관리자들에 대한 연구에서 무어는 금융업계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한 두 가지 원인으로 기업 문화와 보상 제도를 들었다. 비정하리만큼 현실적이고 수학적인 분석가들은 금융업계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규제나 경제 모델 따위는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세계적인 상황때문에 금융이 실패했다는 식의 변명도 완전히 배제했다. 그들이 보기에 잘못된 것은 문화였다. 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윤 추구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효과적으로 대체해버렸다. 한 경제학자는 돈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단적으로 묘사했다. “악당을 위한 구조는 악당을 만들어낸다.”

 

288p

그리고 죽기 3년 전에는 경제계를 뒤흔들 역작을 발표했다. <관계의 능력>에서 그는 돈이 늘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돈이 사람들의 도덕적 동기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헌혈을 예로 들면서, 티트머스는 헌혈의 대가로 돈을 주면 헌혈할 의지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혈액 기부자에게 돈을 지급하면 혈액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의 책은 현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근본적인 견해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두 견해 중 하나는 개개인은 자신의 이해에 따라 동기부여를 받는다는 견해였다. 더 많이 받을 때 일을 덜 한다면, 그것은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289p

두 사람은 1933년 스위스의 중심부에 있는 주 지역을 찾아갔다. 그곳은 핵폐기물을 보관할 지역으로 예정된 곳이었다. 두 사람은 305명의 주민들에게 핵폐기물 시설이 집 근처에 들어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느냐고 물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0.8퍼센트)이 시설 수용에 관한 투표를 한다면 찬성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핵폐기물을 좋아해서 그런 응답을 한 것은 아니다. 거의 40퍼센트의 주민들은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80퍼센트의 사람들은 정기적으로는 핵폐기물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응답한 사람들도 핵폐기물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기꺼이 수용하겠노라고 응답했다. 다시 말해, 공익과 사회적 선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개인적인 거리낌을 압도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두 경제학자가 핵폐기물 시설을 짓는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주민들의 반응이었다. 제안한 금액도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주민들의 매달 평균 수입에 가깝거나 그 이상의 금액을 매년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시설을 수용하겠다는 응답은 절반으로 줄었다. 두 학자는 주민들의 반응에 돈이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보상금을 더 높여보았다. 처음 제안을 거절했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만이 얼마를 더 주든 수용하겠노라고 대답했고, 4.9퍼센트만이 보상금의 액수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응답했다.

 

290p

보육 시설에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게 지각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을 때는 지각하는 부모들이 적었다. 그러나 지각에 대한 벌금을 부과했을 때는 외려 지각을 더 많이 했다. 뿐만 아니라 벌금 제도를 없앤 후에도 시간을 잘 지키던 습관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일단 돈이 개입되면, 사회적으로 잘 성립되었던 관계들도 무너지고 만다.

 

291p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도덕적으로 선택을 내릴 때 뇌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작동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때 작동하는 부분이 자전적 기억(공감을 의미하기도 한다)과 사회적 인식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무도 동기를 좇는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은 무한히 매력적이지만 여전히 모호한, 지성과 감성의 경계에 속한 문제인 듯하다.

 

294p

세상에 BP만 이런다고 볼 수 없다. 포드가 자사의 자동차 모델 핀토의 후미를 보강하는 비용을 산출할 때, A. H. 로빈스 제약회사가 달콘 쉴드라는 피임 기구를 회수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도, 그레이스가 몬태나주 리비의 골칫거리를 떨어내버리려고 파산을 결정할 때도 사람을 돈으로 환산했다. 더블린의 대주교 케빈 맥나마라가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의 피해 보상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었을 때도 사회적 문제보다는 돈을 더 걱정했던 것 아닐까?

 

296p

사람들은 자존감을 구축하는 일에 상당한 의욕을 갖고 있습니다. ,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그 한계를 넘어서지도 못합니다.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지켜야만 하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를 위험한 행동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사회적으로 정당화시키거나, 자기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기거나, 또는 자신들의 조치로 인한 장기적인 결과를 무시하면서 말입니다.”

위험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돈에 관한 논쟁을 들먹이면서 도덕적, 사회적 핵심을 흐리는 것이다. 밴두러는 우리의 행동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유해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또 환경과 인구 증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요구에 저항하는 사람들, 환경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주장은 자신들은 그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잘 살기를 원하는 착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299p

돈은 우리가 반드시 집중해야 할 정보와 문제에 눈을 감게 만드는 수많은 권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돈은 의도적 눈감기를 부추기는 다른 모든 요인들을 악화시키고 종종 보상까지도 한다. 익숙한 것에 대한 선호, 개인과 큰 사상에 대한 집착, 분주함에 대한 사랑, 갈등과 변화에 대한 혐오, 복종과 순응하려는 인간적 본능과 책임감을 떠넘기고 분산하는 능력들도 모두 눈감기를 부추기는 요인들이다. 이 모든 요인들은 삶의 다양한 순간에 다양한 강도로 협력하며 작동된다. 이 요인들에는 자존감을 지켜주고 부조화를 없애주며 경계심을 고취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어떤 면에서 이 모든 요인들은 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선 우리가 착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면서 우리의 눈을 가려버린다. 안락함과 편안함이라는 혜택이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눈감지 않을 것이다.

 

304p

세상에는 카산드라가 넘쳐난다.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도록 운명 지어진 개인들, 눈을 감지 못하고 자신들이 아는 불편하고 도발적인 진실들을 알려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바로 카산드라다. 기업이나 조직이 파멸하기 전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사람들, 즉 위기가 올 것을 알고 경고했지만 무시당하고 조롱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카산드라다.

 

305p

모든 카산드라가 옳고 그름을 분명히 인식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한편, 이들이 도덕성을 획득하는 경로는 역사나 개인적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인습적인 신념이 될 수도 있다. 비록 이 진실 전달자들이 때로는 감옥에 갇히거나 정신과 진단을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두 머리가 돈 사람이라는 증거는 없는 것 같다.

 

343p

의도적 눈감기가 매우 은밀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눈감기를 조율할 수도 있고 경계심을 잃지 않도록 결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된 습관은 버리기 어렵다. 강바닥은 깊고 수천 년 진화의 결과인 신경생물학적 구조와 평생 몸담았던 문화의 안락함을 뿌리칠 수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의도적 눈감기는 어떤 조건에서 왕성하게 자라는가? 그 조건들을 다소나마 줄이고 우리 의식의 이면에서 관심을 애원하는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면 얼마나 강해야 할까? 늘 깨어 있기 위해 새로운 습관을 개발할 수 있을까? 분명히 부담이 크겠지만, 열외가 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이들 안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우리 삶, 제도, 이웃, 친구들이 가진 동질성을 깨닫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의회에서 기업의 이사회와 두뇌 집단 그리고 교회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조직들 어느 곳을 보든, 동질성은 순식간에 약점이 되고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다양성이라는 것이 정책적으로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조직을 취약하게 만들고 고립시킬 내부적인 눈감기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은 될 수 있다. 다양성이 있는 집단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이유는 경보기가 울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도 자신의 편견을 인정해야 한다.

 

357p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가 자주 이용한 방식은 소위 ‘1일 일탈자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어 자기 본래의 이미지와 정반대로 행동하고 결과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마에 점을 하나 찍고 하루 종일 다른 사람으로 행세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면 세상의 반응도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자신의 시각도 달라진다.”

짐바르도는 이 방식을 통해 학생들이 친구들의 기대치에 얼마나 유순하게 반응하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기대치에 자기들이 얼마나 쉽게 무심코 순응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남들도 그러니까, 라는 이유로 학생들은 아첨꾼이 되는 데 익숙하다.

 

360p

최근 일어난 수많은 기업들과 기관들의 실패가 강력한 지도자들을 꼭대기에 둔 조직의 내부에서부터 발생한 점을 미루어보면, 잡지 표지를 장식하곤 하는 내로라하는 권위자들이 과연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존재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CEO들을 두고 태양왕”, “미국에서 가장 공격적인 CEO” 혹은 천재 소년등의 호칭으로 부르든 말든, 분명한 것은 CEO들의 권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에게는 아무도 불편한 진실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위는 위험한 거품이자 장벽이다. 현명한 지도자들은 권위가 보상이 아닌 장애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이미 그 주변에는 단절의 골이 깊을 것이다.

 

376p

존 브라운이 떠난 후 BP는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인지 분석했다. 마침내 내린 결론은 회사 전체가 복잡성을 좋아했다는 사실이었다. 지적 교만에 빠진 기업의 지도자는 기업 내부의 복잡성을 잘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이 바로 경쟁 우의를 점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생각했다. 다이달로스가 몰두했던 미궁도 결국 복잡성이었다. 복잡성은 숭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도전해야 할 대상이다.

 

380p

의도적으로 눈을 감을 때, 그곳에는 알 수 있고 또 알아야 하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알기를 꺼려하는 정보가 있다. 신경과학은 지금까지는 완전히 추상적으로만 여겼던 경험에도 명백한 실체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눈감기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쓰는 도중에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과학은 뇌가 독립적인 훌륭한 기관이며 우리는 뇌의 수동적인 매개자라는 사실을 입증해낼 것인가? ‘뇌가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대며 살인자가 무죄를 간청할 날이 과연 올까? 과학이 우리의 눈감기가 이미 내장된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현상일 뿐,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믿게 할 근거를 댈 수 있을까?

신경과학이 제시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죽는 순간까지 우리 인간이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모든 경험, 마주침, 새로운 지식들, 관계와 재평가는 우리 정신의 작동 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똑같은 경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81p

그러나 한편으로 결정론자의 뇌 과학은 우리가 경험을 독자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우리는 뇌 안의 마스터 컴퓨터에 따르도록 자동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능력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알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보겠다고 주장할 때는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이 생긴다. 의도적 눈감기가 의지에 의해 결정된 일이며 경험과 지식, 생각, 뉴런, 신경증 등이 한데 섞인 산물이라는 사실은 의도적 눈감기를 바꿀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리어왕처럼, 우리는 더 잘 보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바꿔야 한다. 모든 지혜가 그렇듯, 보는 것은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내가 알 수 있고, 알아야 함에도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무엇인가? 지금 여기서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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