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주의(녹색주의)

의도적 눈감기

- 마거릿 헤퍼넌 지음/김학영 옮김/푸른숲 펴냄/2013.4.15

 

6p

시메온 레이크 판사는 배심원단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피고인이 다른 상황이라면 명백히 알았을 사실에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배심원 여러분은 피고인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피고인이 사실의 존재에 대해 의도적으로 모른 체한다면, 진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7p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우리 스스로 눈감기를 선택하는 이유이다. 면전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커다란 위험을 부인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과연 어떤 힘이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 세력을 키우고 우리를 이토록 무력하게 만드는가? 도대체 왜 중대한 실패나 참사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했지만 자신들의 경고가 묵살되었다는 목소리들이 들리는가? 도대체 왜 우리는, 기업은, 국가는 번번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어쩌다 그렇게 눈을 감았을까?’ 한탄만 할까?

 

17p

레베카와 로버트가 닮은 점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이 부부의 경우는 지극히 평범하다. , 몸무게, 나이, 자라온 환경, 지능지수, 국적, 민족 등 대부분의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한다. 정반대의 사람에게 매력을 더 느낄 수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수십 년간 이러한 현상을 연구한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이를 동질혼이라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닮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우리의 시야는 넓지 못하다.

 

21p

실험실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도 이와 똑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캐롤은 코카콜라를 마시고, 피트는 펩시를 좋아한다. 레오는 리스테린 구강 청결제를 좋아하고, 캐서린은 콜게이트 치약을 즐겨 쓴다. 이런 선택들은 재미 삼아 그런다고 치고, 좋아하는 머리글자는 삶을 결정하는 중대한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치과의사들은 이름의 첫 글자가 ‘D’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조지아 주에는 의외로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많다.

익숙하면 최소한 멸시하지는 않는다. 또 편안함을 느낀다.

 

86p

웨스터그렌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음악이나 책 혹은 사람의 범위를 좁혀가느라 스스로의 취향을 편협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뇌는 엉뚱하고 색다른 경험으로 우리를 안내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위험 부담이 큰 일에 가산점 따위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 다른 방향은 차단한 채 한 방향에만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유사성이 없는 경험에는 눈을 감아버린다.

 

27p

신입 교향악단 단원을 블라인드 오디션으로 뽑았던 유명한 사례는 고정관념의 오류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과 프린스턴 대학의 세실리아 라우스는 연주자들의 음악성을 평가할 때 성별의 영향을 배제하고자 참가자들에게 칸막이 뒤에서 오디션을 치르게 했다. 1차 오디션에서 여성 참가자들의 합격률은 50퍼센트, 최종 오디션에서는 무려 3백 퍼센트가 높아졌다. 현재 미국에서는 블라인드 오디션이 표준이 되었으며, 그 결과 주요 교향악단의 여성 연주자 비율은 5퍼센트에서 36퍼센트로 증가했다.

 

32p

법학자 카스 선스타인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면 서로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을뿐더러 서로의 견해를 더욱 극대화하는데, 이를 집단 양극화 효과라고 설명했다(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선스타인 역시 하버드 대학 교수인 서맨사 파워와 결혼했다는 사실이나 두 사람 모두 오바마의 행정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 집단 양극화 효과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조차 집단 양극화 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판도라 라디오가 우리의 음악 취향을 협소하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과 똑같은 기능을 한다.

 

45p

행동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같은 크기라면 수익보다 손실이 훨씬 더 크게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을 (주식 투자가 아니라) 사랑에 적용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렵게 사랑을 시작할수록 그 사랑을 잃는다는 두려움은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보다 훨씬 깊게 느껴진다. 관계에서 문제라도 생긴다면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애쓰거나 문제를 축소하면서 관계에 집착한다.

 

49p

불륜의 비율을 정확히 밝히기란 어렵지만, 결혼한 부부의 30~60퍼센트 정도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추산된다. 이혼을 할 때도, 이혼한 부부의 24퍼센트가 이혼의 이유로 배신을 꼽는다.

 

51p

브라운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고 말한다. 이 경우 결혼 생활이 회복되기 어려운 이유는 배신당한 배우자가 상대방에게만 분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분노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몰랐을까?’라고 물으며 스스로를 너무 어리석고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마치 저절로 조립되는 직소퍼즐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조각들의 아귀가 들어맞고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무서운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진실이 드러남과 동시에 사랑을 지속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지켜온 귀중한 자신의 가치와 자존심은 와르르 무너진다.

 

53p

영국 아동학대예방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16세가 되기 전에 성폭력을 당한 어린이의 비율이 16퍼센트나 된다. 숫자도 놀랍지만 가정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학대가 자행되는 것을 어떻게 가족이 모를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영국 아동학대예방협회의 아동보호 프로그램 책임자 크리스 클락은 이렇게 말한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포장하고 있어서 웬만해서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은 거죠.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이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56p

길 박사의 말에 따르면, 부모들이 원치 않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는 몇 가지 두려움이 얽혀 있다고 한다. 아이를 학대하는 아버지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경우, 생계가 위협받고 수입이 끊길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학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끄러움이나 사회적 소외도 눈을 감아버리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두려움의 바탕에는 학대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파괴된다는 보다 현실적인 두려움이 있다.

 

57~58p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사랑을 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밝히고 싶었다. 예상대로, 사랑은 보상과 관련이 있는 뇌를 활성화시켰다. 음식과 술, 돈과 코카인에 반응하는 세포들이 사랑에도 반응한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기분이 좋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실험의 결과를 사랑이 죽음의 공포도 이겨낼 수 있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사랑에 집착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다소 억지스럽지만 우리 삶에 사랑이 필요한 것만은 확실하다.

사랑으로 활성화되는 부분보다 활성화되지 않는 뇌의 부분들이 더 관심을 받고 있다. 피험자들의 아이들이나 부모를 생각하는 동안 MRI 촬영을 했을 때, 특정 두 개 부위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주의, 기억, 부정적 감정을 주관하는 부위, 두 번째로는 부정적 감정, 사회적 판단력,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의도를 구별하는 능력과 관련된 부위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사랑할 때 일어나는 뇌의 화학 작용으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환상은 뇌가 지켜주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 수많은 신경과학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뇌과학은 시인들이 읊었던 사랑 노래에 구체적인 실체를 부여했다.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65p

뉘른베르크 재판(나치 독일의 전범들에 대한 국제군사재판)에서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슈페어는 히틀러 정권이 저지른 범행을 기탄없이 고백했고 자신이 그 정권의 일원으로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면에서 그 결심은 그의 단순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말한 책임이란 집단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개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직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슈페어의 문제점이었다.슈페어는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슈페어의 전기 작가 지타 세레니는 말한다. “그는 그런 능력을 갖기 원했지만 갖지 못했어요. 실제로 슈페어는 굉장히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똑똑했죠. 의도적으로 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방어수단이었습니다. 뭔가 잘못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어가 필요했을 겁니다.”

 

70p

슈페어는 공동 책임은 인정했으나 범죄행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그리고 석방된 후에도 슈페어는 자기 자신과 힘겹게 사투를 벌였다. 스스로 사악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어리석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어서였다. 사랑이라는 환상에서 깬 연인처럼,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71~72p

성폭행 피해자 오고먼이 말했듯, 진실을 외면할 때 우리는 스스로 무력해진다. 우리는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는 순간에조차 안전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의도적 눈감기의 모순이다.

 

75p

그러나 웨스턴의 말에 따르면, 뇌는 불쾌한 반박을 없애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뇌는 좋은 기분을 느끼는 위해, 보상 회로를 가동하여 지지하는 후보에게 자신들의 편향된 추론에 어울리는 긍정적 강화를 보낸다.

 

우리의 뇌는 갈등을 싫어해서 어떻게든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보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을 때 합의점을 찾기가 훨씬 더 쉬운지도 모른다. 쉽게 찾은 만큼 합의점을 마음에 들어 한다. 심지어 무조건 합리적인 합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중요한 신념을 지키려고 할 때는 그 신념의 오류를 입증하는 증거를 외면하는 위험까지도 감수한다는 의미이다.

 

76p

앨리스는 마침내 황달과 빈혈의 원인이 노동자들의 허약한 체질 탓이 아니라 TNT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사염화탄소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이직률이 높은 이유, 광부들이 폐 질환에 잘 걸리는 이유 등을 밝히고자 현장 연구를 자처했던 것은 스튜어트가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 사회의학과 역학 연구가 천직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회의학과 역학은 새롭게 등장한 의학 분야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79p

엑스레이를 찍을 때 방사선 노출량은 극히 적으며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촬영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 정도의 극미량도 어린이의 암 사망률을 거의 두 배로 높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79~80p

3년 동안 그녀의 연구팀은 1953년에서 1955년 사이에 영국에서 암으로 사망한 어린이들의 80퍼센트를 추적 조사했다. 1958,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연구 보고서 전문이 실렸고 마침내 엑스레이에 노출된 태아가 그렇지 않은 태아보다 향후 10년 내에 암에 걸릴 확률이 두 배 가량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81p

하버드 공공보건 대학원의 브라이언 맥매헌도 스튜어트의 논문을 반박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지만, 그의 연구 결과도 스튜어트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했다. 임신 중 엑스레이 촬영을 한 여성의 아이들이 암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40퍼센트나 높았던 것이다.

 

82p

여기에는 엑스레이의 도발적인 매력이 한몫을 담당했다. 1895년 발견된 이래로 엑스레이는 그 위용과 신비로움을 날로 더해갔다. 1890년대에는 우아하고 값비싼 초상화의 한 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심지어 케이크를 구울 때 실수로 빠트린 반지를 찾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발에 꼭 맞는 구두를 만들기 위해 엑스레이 기계를 들여놓았다고 광고하는 구두 가게도 있었다.

 

84p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과 더 아프게 만든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었다. 상화 배타적인 신념에서 생성된 부조화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부조화의 고통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의 신념을 없애는 것이다. 과학자들로서는 한계 이론도 옳고 엑스레이도 효과가 있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다. 의사들은 여전히 권위적이고 똑똑하며 좋은 사람들이어야 했다. 앨리스 스튜어트와 그녀의 발견은 더 큰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되었다. 상반되는 한 명제에 대해 눈을 감을 때 부조하는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84~85p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시골에 사는 평범한 주부 매리언 키치였는데, 그녀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1221일에 지구에 대홍수가 있을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적었다고 믿고 있었다. 특정한 날에 일어나기로 예정된 사건을 믿는 사람들, 이들의 예언이 실패로 드러났을 때의 인지부조화! 페스팅거의 연구를 검증할 완벽한 기회였다. 깊이 신봉하고 있던 믿음이 틀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상의 종말이 몇 년 후도 아니고 몇 달 후에 일어난다니 현실성도 있었다. 페스팅거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으면 키치 부인이 자신의 믿음을 포기할 것인지 궁금했다. 페스팅거의 이론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계속 고수할 뿐 아니라 예전보다 더 강력한 믿음을 가질 터였다.

 

87p

새벽 445, 키치 부인은 새로운 메시지를 받았다. “태초 이래로 이 지구에는 이러한 선과 빛의 세력이 없었나니, 지구에 내재되었던 선한 빛이 속박에서 풀려나 이제 온 지구에 넘치노라.” 그 집단의 선함이 지구를 대홍수에서 구원한 것이다.

 

88p

페스팅거와 그의 뒤를 이은 심리학자들은 우리 모두가 조화롭고 안정적이며 정당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신념은, 자기 자신이나 친구 혹은 동료의 눈에 비친 라는 자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된다. 이러한 자아를 위협하는 사람이나 생각은 굶주림이나 갈증만큼 불쾌하고 위험한 고통을 준다. 우리가 가진 중요한 사상에 대한 도전은 삶을 위협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틀렸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무시하고 지지하는 증거를 확대해석함으로써 고통을 줄이려고 맹렬히 애쓴다.

 

90p

어떤 일을 할 때, 혹은 이론이나 사상을 믿을 때도 혼자라면 상당히 불안하지만 사회적 지지가 뒷받침된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사회적 지지는 주로 큰 생각들을 공유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같이 할 가족, 친구, 동료들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특히 더 매력적인 사회적 지지의 형태는 제도이다. 게다가 엄청난 조직의 중요한 지위에 있거나 정치적 권력자인 경우라면, 신념들을 공유하는 동료들로부터 무한한 확증을 받는다. 그 신념들에 의문을 제기했다가는 직업과 지위, 명성과 경력 등 모든 것을 위협받게 된다.

 

91p

정보나 소셜 네트워크의 부정적 확산처럼 모델화가 가능하지 않아서 빠트린 내용들이, 정작 경제 모델에서 내가 강조한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경제 모델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다른 어떤 정보보다 적합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모델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정보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101p

파트노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린스펀은 두 가지 사실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현대의 통제된 국가에서는 자유 시장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죠. 시장은 늘 부분적으로 통제된 상태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정보의 함정을 이용할 기회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린스펀은 시장에는 규제할 수 없는 한계도 있고, 따라서 무한 경쟁으로 빠져들 심각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던 겁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우리가 공통의 법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이러한 공통의 법률이 없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불공평한 부정뿐 아니라 불안과 변덕이 난무하게 됩니다.”

 

107~108p

화학안전위원회는 존의 평균 수면 시간이 하루 약 5.5시간이었으며 약 한 달 보름 동안 수면 부족이 누적되어 있었다고 추측했다. 이 정도면 단순히 컨디션이 나쁜 정도가 아니다. 화학안전위원회는 보통사람이라면 이 상태에서는 피곤해서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고 상황 변화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반응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확하게 추론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어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배제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를 인지 협착 또는 인지적 터널 시각이라고 하는데, 피로로 인한 전형적인 현상이다.

워런과 그의 상사는 문제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너무 피곤했다. 영국의 보건안전청은 이른 시간에 연속적으로 교대 근무를 함으로써(새벽 6시에 교대가 이루어졌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피로의 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했다. 3일 연속으로 새벽에 교대를 하면, 피로감이 30퍼센트 상승하고 5일 연속 새벽 교대를 할 경우에는 60퍼센트, 7일째에는 첫날에 비해 피로감이 75퍼센트로 상승한다. 30일 동안 쉬지 않고 일했을 때 사람의 정신에 발생하는 변화는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다.

 

111p

일을 시작한 첫 네 시간 동안 가장 생산성이 좋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사람들은 민첩성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저하되며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늘어난다. 1908, 자이스 렌즈 연구소 설립자 중 하나였던 에른스트 아베는 하루 근무 시간을 아홉 시간에서 여덟 시간으로 줄였을 때 실제로 생산량이 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일을 하면 그냥 피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수를 하게 된다.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나머지 노동시간을 모두 허비한다.

 

112p

잠을 못 잔 피험자 그룹에서 뇌의 중요한 두 부분, 두정엽과 후두엽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두정엽은 감각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통합할 뿐만 아니라 숫자에 대한 인식과 물건을 조작하는 기능과 관련이 있다. 후두엽은 시각 정보와 숫자를 처리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두 부분은 시각 정보와 숫자를 처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113p

무엇보다 수면 부족은 뇌를 굶주리게 만든다. 우리가 피곤할 때 달콤한 음식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뇌가 당분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24시간 동안 잠을 못 자면, 뇌에 공급되는 포도당의 6퍼센트 정도가 감소한다. 그러나 뇌의 모든 부분이 포도당 부족을 같은 수준으로 겪는 것은 아니다. 전두엽과 전두피질은 12~14퍼센트의 포도당 손실을 겪는다. 전두엽과 전두피질은 생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사상을 분별하고 사회적 제약을 판단하며 선과 악의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이 이 부분에 달려 있다.

 

114p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퍼센트라는 것은 음주 운전의 법적 한도를 훌쩍 뛰어 넘는 수치이다. 영국의 경우 혈중 알코올 농도 0.08%부터는 법적으로 제한한다. 0.1퍼센트에서는 기분이 죽 끓듯 변하기 쉽고 감정 표현이 과도해지며 주변 시야가 좁아진다. 또한 높이나 거리 감각이 상실되고 추론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차이슬러 연구팀은 병원 인턴들이 24시간 근무를 할 경우 실수로 주사바늘이나 외과용 메스로 자신을 찌를 확률이 61퍼센트나 증가하고, 자동차 추돌 사고의 위험은 168퍼센트, 대형 사고로 이어질 확률도 460퍼센트까지 증가한다고 밝혔다. 자동차 사고의 20퍼센트는 단지 수면 부족 때문에 일어난다.

 

116p

동영상 속에서 한 여학생이 고릴라 복장을 하고 걸어 들어와 한가운데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가슴을 두드리고 유유히 걸어나간다. 그러나 피험자들 절반은 이를 보지 못했다. 이 여학생이 등장한 시간은 약 9초 정도였다.

 

117p

노련한 수화물 검색자들이 댄의 피험자들보다 무기를 발견한 확률은 높지만 아주 현저하게 높은 것은 아니다. 무기의 종류와 상관없이 세 번 중 한 번은 찾지 못한다.

댄은 자신의 실험뿐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의 실험을 10년간 지켜본 후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기대한 것만 보고, 기대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내에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에는 넘기 어려운 절대적인 한계가 있다.

인간 뇌의 주의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한 장소, 한 대상 또는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것에는 주의력이 떨어집니다.”

 

118p

유타 주립 대학에서 심리학과 부교수로 있는 프랭크 드루스가 실시한 재미있는 실험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론을 얻었다. 40명의 학생을 세 그룹으로 나눈 다음, 첫 번째 그룹에게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동차 운전 시뮬레이터를 조작하게 했다. 두 번째 그룹은 통화를 하면서, 세 번째 그룹은 보드카와 오렌지를 먹어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8퍼센트까지 올린 다음에 시뮬레이터를 조작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8은 미국과 영국에서의 법적 한계 수치이다.

세 그룹을 비교한 연구팀은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통화를 하면서 운전한 두 번째 그룹은 후방 충돌 사고를 더 많이 일으켰고 브레이크 밟는 속도가 느렸다. 술에 취한 세 번째 그룹은 공격적으로 운전했으며 전방의 차량과의 거리도 더 짧았고 더욱 힘들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사고는 일으키지 않았다. 이 결과만 보고 운전 중 통화보다 음주 운전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드루스와 그의 동료들은 운전자가 통화를 하면 운전에 충분한 주의력을 기울일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20p

피곤하거나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상태를 심리학자들은 자원 고갈상태라고 하는데, 이 상태가 되면 우리는 자원을 절약하고 보존하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고차원적인 사고는 꿈도 못 꿀 사치다. 의심과 회의, 논증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교수 대니얼 길버트는 자원의 고갈은 특히 정교한 인지적 사고를 방해한다.”고 말한다. “반론이나 의심을 제기하는 행위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 등장할 뿐 아니라 가장 먼저 사라진다. 의심하고 반론하는 것보다 믿을 때 우리 뇌가 덜 힘들기 때문이다. , 피곤하고 주의가 산만할 때 우리는 더 어리숙해진다.” 우리 모두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122p

KPMG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수 및 합병의 83퍼센트는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53퍼센트는 실제로 주가가 하락했다. 경영컨설팅 업체 A. T. 커니의 조사에서도 115개의 국제적인 기업 합병에서 주주에게 돌아온 총수익은 외려 마이너스 58퍼센트였다. 터널 시야는 우리의 결정으로 파생될 폭넓은 결론에 눈을 감게 만든다. 조종실에 앉아 있는 정유사 직원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123p

밀그램의 주장은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왜냐하면 막연하게 손실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 손실을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과잉에 치이면 스스로 사회적 관계나 도덕적 관계를 제한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과잉은, ‘동정심의 범위를 제한해야 다루기 쉬워진다.”

 

125p

선동가들과 세뇌시키는 사람들은 기업의 관리자나 경영자들이 망각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정신은 과부하가 걸리거나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 도덕적으로 눈을 감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이해하면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일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29p

호크 교수는 온갖 주장들을 다 들어보았다. “비타민 D 섭취율을 높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비타민 D는 음식과 생체 항상성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일부러 높일 필요는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태닝을 하면 에도르핀이 생성되어서 진통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모두 터무니없는 주장이지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저는 태닝과 태닝 살롱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증거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환자들을 보면서 애석한 점은 그들도 태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는 겁니다. 황당하죠. 알면서도 알기를 거부하는 겁니다.”

 

130p

에일리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흔한 일이다. 영국에서는 4시간마다 한 명씩 피부암으로 죽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햇빛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유해한 태양광에 맨살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136p

1965년에 실시된 한 연구에서는, 우리의 눈동자가 마음이 끌리는 것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회피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남자, 여자, 학생, 주부, 비서로 구성된 피험자들에게 열 장의 그림을 보여준다. 그림들 중 몇 개는 성행위를 묘사한 야한 그림이었다. 카메라 하나가 피험자들의 눈동자의 움직임을 촬영한 다음, 피험자들의 시선의 이동 경로를 그림으로 나타냈다. 그런 다음 피험자들에게 그림에 대해 떠오르는 바를 물었다. 같은 그림에 대해서도 피험자들의 묘사가 다르다는 점은 놀랄 일도 아니다.

 

139~140p

스튜어트는 이렇게 말한다. “제 생각에,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재정적으로 거의 끝장난 상태입니다.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전형적인 유형도 없습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서 교양이 넘치는 사람까지 별별 사람들이 다 있죠. 하지만 공통점은 타조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일단 곤경에 처하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 달, 내일, 심지어 몇 시간 앞만 보고 그 동안만이라도 파산을 면할 방법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생각한 방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합니다.”

 

148p

이성적으로 문제를 마주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해결책을 쓰든 현상 유지를 깨트려야만 문제가 해결된다. 갈등과 변화냐 아니면 타성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타조의 머리 감추기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156~157p

게일라는 그레이스 측이 리비의 오염 수준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또 하나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엑스레이 검사가 비밀리에 행해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부검도 은밀히 실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의사들은 침묵했고, 정부 당국은 진실을 은폐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충격적인 사실은 게일라의 친구들과 이웃들이 게일라가 발견한 진실을 알기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161p

제 생각엔, 어쩌면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보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아요. 그들은 싸움을 원하지 않죠. 벌거벗은 임금님의 새 옷과 같아요. 모두 멋지다고 말하면 정말 멋진 옷인 양 보이는 것 같죠.”

 

하지만 리비의 이야기를 몇 배로 더 슬프게 만든 것은,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스스로에게 일어난 일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62p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수비오 산에서 멀리 달아나고 있는 와중에 플리니우스는 죽음을 무릎 쓰고 위험한 지역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 생존자들을 찾아서 구했다. 그 과정에서 플리니우스는 죽었다. 그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크라카토아 화산처럼 가장 맹렬한 화산 폭발은 무지를 계몽하려 했던 한 남자의 이름을 기려 울트라플리니안이라고 부른다.

 

166p

살아남은 마컴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었다는 이유로 사고에 대한 책임을 면했다. “마컴 소장이 선회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더라면, 빅토리아 호는 전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해군 소장 두 명은 이렇게 기록했다. “마컴 소장이 군사 법정에서 판결을 받긴 했지만, 그가 그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안타깝게 여기지는 않았다. 복무 중인 군인으로서는 어차피 무조건 복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오늘날 우리 눈에는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지만 빅토리아시대 사람들에게는 비극이었다. 트라이언에게도 틀림없이 그 사건은 비극이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마컴이 주도권을 쥐고 맹목적인 복종을 거부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트라이언의 생각이 옳았다는 사실은 결국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입증되었지만, 그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도 사고와 함께 사라졌다. 어쨌거나 이 사건은 명령 복종에 내재된 긴장과 어려움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167p

발달한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각적이고도 쾌락적인 욕구를 쉽게 채우지만 그렇게 얻은 만족감은 이내 시들해진다. 쉽게 말해서 일단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더 좋은 집, 더 따뜻한 곳, 더 많은 핫도그를 원하게 되고, 그 욕구를 채우더라도 만족감은 차츰 줄어든다. 그때 우리는 자신만의 즉각적인 만족감을 넘어서는 대의에 헌신하기를 갈망한다. 따라서 더 위대한 목적을 발견할수록 더 행복하고 건강해지며, 심지어 더 오래 살기도 한다. 그러나 고립된 상태에서 더 원대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훌륭한 미술관을 짓고 경기장을 건립하거나 스카우트 팀, 정부, 혹은 기업이나 자선단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조직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자신의 자율성을 기꺼이 포기하면서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을 때 더욱 많은 것을 성취하고,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생존할 수 있다. 우리는 대의의 권위에 항복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의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이러한 행위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복종으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종할 때 우리의 행동과 시각은 심각하게 달라진다.

 

168p

복종에 관한 저명한 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은 도시 생활의 부담에 대해 매우 조예가 깊은 사회과학자이기도 하다. 유대인 학살 사건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196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심리학 실험을 실시했다. 밀그램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임무를 부여받은 경우, 복종에 대한 보상도 없고 불복종에 대한 질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그 권위에 복종을 할 것인가, 또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밝히고 싶었다. 시쳇말로 그는 복종이 우리 안에 내장된 프로그램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169~170p

실험의 핵심은 참가자들에게 그 어떤 위협이나 두려움도 주지 않는 상태에서 협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모든 참가자들은 언제든 실험을 중단하거나 실험실을 나갈 수 있었다. 실험에서 권위 있는 지시자의 역할을 한 사람은 하얀색 실험복을 입은 노련한 과학자였다. 상사도 아니었고 군대의 사령관도 아니었다. 분명히 연구를 수행하는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참가자를 지원하는 역할만 수행했다.

실험을 계획하기 전에 밀그램은 정신과 의사, 대학생, 중산층의 성인 세 그룹에게 피험자들의 행동을 예측해보게 했다. “이들은 사실상 모든 피험자들이 복종을 거부하리라고 예측했다. 다만 1~2퍼센트 내외의 병리학적으로 정상이 아닌 사람들만이 전기쇼크를 최대 출력까지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비록 대학 실험실에서 실시된 학술적인 실험이었지만, 이 실험은 모든 피험자들에게는 긴장감과 현실감이 넘치는 생생한실험이었다. 밀그램은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이 연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까지 10년이나 고민을 했다. 피험자들 가운데 65퍼센트가 명령에 완전히 복종했던 것이다. “40명의 피험자들 가운데 26명이 실험이 끝날 때까지 지시에 복종했다. 이들은 학습자에게 발전기를 돌려야 할 정도로 최대 출력까지 올라가는 전기쇼크를 주었다. 450볼트 쇼크를 세 번 가하고 나서는 지시자가 실험을 중지시켰다.” 밀그램이 발견한 것은 공격성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관찰을 이렇게 기술했다. “학습자에게 전기쇼크를 지시하는 피험자들에게는 어떤 분노도 없었고, 복수심이나 혐오감도 없었다. 사람들은 분노하면 다른 사람에게 증오 섞인 행동을 하거나 노여움을 표출한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 분노는 없었다. 분노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 밝혀진 셈이다. 바로 인간이 인간미를 포기할 가능성이다. 자신이 가진 고유한 인격보다 더 큰 구조적인 제도를 따를 때는 필연적으로 인간성을 포기할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171p

다시 한 번, 두 사람이 틀렸다. 일단 남자 피험자들의 복종 수준은 밀그램의 본래 실험의 결과와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여자 피험자 전원이 귀여운 강아지에게 최대 수준의 전기쇼크를 가하라는 지시에 복종한 것이다.

 

172p

비록 권위의 지배 하에서 한 사람이 한 행위는 양심의 기준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도덕적 관념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본질적으로 다른 관점을 획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그 사람은 자신이 권위가 자신에게 바라는 기대에 얼마나 잘 부응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도덕적인 관심사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전쟁 중에, 병사들은 한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는 일이 선한 일인지 악한 일인지를 묻지 않는다. 그 병사는 한 마을을 파괴하는 일에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외려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에 따라서 자부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낀다.

 

173p

달리 해석하면, 우리가 더 크고 선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권위에 복종하기로 동의하면, 우리는 그 순간 개인의 자아(양심에 대한 책임감도 함께)와 세상이 우리에게 부과한 사회적 자아를 맞바꾼다. 흔히 이를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말은, 개인의 자아는 집에 두고 사회적 자아는 직장으로 보내라는 말이다.

 

밀그램은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복종의 문제가 심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집단의 일원이라는 측면에서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이다. 개인이 혼자서 일할 때는 자신의 양심에 따른다. 그러나 위계 체계 내에서 일할 때는 권위가 양심을 대신한다. 그러지 않으면 위계 체제가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심의 문제만 지나치게 앞세우면 집단의 이점은 사라진다.

 

174p

오하이오 팀이 실험을 수행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간호사들이 복종했다는 점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에 간호사들이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고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는 최우선의 의무에 대해 완전히 눈을 감았다는 사실이었다.

 

175p

당연히 멈춰야 할 최악의 상황처럼 보이는 순간이 전혀 없었다.” 이 말은 밀그램의 피험자들이 한 말이 아니다. MCI의 중간간부 월트 파블로가 한 말이다. 병원과 달리 장거리 전화 서비스 기업에는 헌신과 복종을 고취시키는 고결한 도덕적 목적 따위는 없다. 오로지 극도의 경쟁 문화와 실적이 높은 직원을 위한 상당한 보상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훌륭한 직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파블로는 말한다.

 

178p

그는 말한다. 문제는 한 방에 나쁜 행위를 하라는 요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아주 서서히 사소하고 미세한 단계로 나쁜 행위가 진행되는 동안 아니오라고 거절할 결정적인 순간이 없다는 것이다.

 

181p

목표를 이루기만 한다면 그 방법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종의 힘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사회적 존재의 눈에는 도덕성이나 적법성, 안전성 같은 그 외의 다른 생각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 아부그라이브 감옥의 미숙한 간수들이 죄수들을 구워삶아보라는 지시를 받을 때도, 구체적인 방식 따위는 지시받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실제로 유익한 일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지시를 따랐다. 포로들을 학대하는 수단을 통했는데도 중요한 군사 정보를 단 하나도 빼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상관이 없었다. 명령이니까 따랐을 뿐이고 다른 어떤 것도 염두에 없었다.

 

기장만이 위기 상황에서 규정을 따르지 않을 권위가 있다. 따라서 이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여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사고 직전의 비행 기록 중 조종실 내부의 대화를 분석했는데, 실수가 발생했을 때 부조종사가 이의를 제기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는 무려 25퍼센트에 달했다.

 

181~182p

이를테면, 일본군의 경우 천황에 대한 사랑으로 무장했으며, 자살 폭탄 테러의 경우 종교적 열정으로 무장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피험자가 익명의 학습자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상해를 입히도록 계획된 훨씬 면밀하고 학술적인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피험자들은 불복종을 하느니 차라리 기꺼이 스스로에게 상해를 입히기를 택한다는 것이다.

 

182p

밀그램의 피험자들 가운데 지시에 불복종했던 한 사람은 군 생활 중에 불법적인 명령을 거절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상관 장교들이나 고위 정치가들이 명령권자로 있었기 때문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범들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에서 있었던 전쟁 범죄와 관련하여 최근에 설립된 특별 국제 재판소에서도 복종을 변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184p

영국이나 미국 육군사관학교에는 사회화 과정이 있습니다. 규모 면에서는 거의 과한 수준입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1년 전에 도입했는데,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반응도 아주 적극적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군인 정신의 가치와 신념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태도를 가르칩니다. 복종이 아니라, 조직의 일원이 되는 법을 가르칩니다. 기업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인증 자격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는 진정성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와 조직의 가치를 동등하게 여기도록 교육하죠.

 

185p

학생들이 배운 교훈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해야 할 일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더 많이 줄수록 더욱 열중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합니다. 단지 버튼을 누르는 일만 시킨다면 신중함을 기대할 수 없지요. 부도덕한 명령은 반드시 거부해야 합니다. 도덕적인 면도 틀림없는 우리의 일부이니까요. 하지만 전, 우리가 늘 백 퍼센트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187p

명령권자를 존경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다면, ‘명령불복종말고도 명령을 무시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건 흑백논리가 아니에요. 제 생각에 군인들은 상당히 성과 지향적입니다. 우리는 임무에 전념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갈등 상황에 대처할 때 독립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얼마나 될까요?

 

188p

밀그램의 실험은 우리가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되뇌어도 결국 대부분이 복종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러한 행동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의무 태만이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반성과 독자적인 생각과는 반대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복종의 일종의 지름길이다. 복종을 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믿는다. 아주 간단하고 쉽다. 특히 지치고 마음이 사란하며 싸우기 싫을 때는 더욱 그렇다. 또한 복종은 우리를 눈감게 만드는 다른 모든 힘들을 증폭시키며 공고하게 한다.

 

193p

순응의 가장 큰 특징은 무조건적이고 자발적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틀린 줄을 고르라고 말한 사람도 없고 그런 선택을 하는 데는 아무런 규칙이나 정해진 이유가 없다. 마치 닮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우리는 무리와 어울리길 바란다. 자신이 튄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우리는 사람들을 바꾸거나 자기 자신을 바꾼다. 순응은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194p

애쉬의 실험과 달리, 1979년 오리건 대학에서 실험을 반복했을 때는 여성보다 남성이 순응할 가능성이 더 컸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순응을 잘 하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행운이나 기회 혹은 운명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들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 인생의 주도권을 자신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틀린 줄을 선택할 가능성이 적었다. 하지만 애쉬가 실시한 최초의 실험과 마찬가지로, 순응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모두가 깜짝 놀란다. “이런, 세상에! 내 눈이 멀었나 봐요! 내가 어떻게 이런 실수를.”

 

202p

수련의 표정이 진짜 당황한 것 같았더군요. 어쨌든 그는 비밀을 누설했던 거죠. 수많은 아이들을 죽일 수는 있지만 동료를 배신할 수 없다는 겁니다.

 

205p

정신약리학 분야를 개척한 자크 팡크세프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적 정서와 사회적 유대는 신경 화학적 측면에서 오피오이드 탐닉의 근본을 이룬다.” 다시 말해,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추구하려는 우리의 소망은 사회적 보상뿐 아니라 신경 화학적 보상을 바라는 데서 시작된다.

 

묵살당하거나 코벤트리로 보내야 할 존재(따돌림 당하는 사람을 빗댄 영국의 속담)’가 되는 것 또는 형벌 체제에 갇히거나 고립되는 것, 이 모든 것은 처벌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법들은 힘과 자존감의 원천이 거세당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해도(혹은 그러길 바라더라도) 우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제외된다는 것은 외롭고 무력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에 합류하면, 우리는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지름길을 배우며 스스로의 정당성을 입증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210~211p

비교 실험을 위해 한 번은 3차원 물체 중에서 똑같은 두 개를 피험자 스스로 찾게 했고, 또 한 번은 동료 피험자가 고른 물체들을 알려준 다음에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실험에서는 컴퓨터가 선택한 물체들을 알려준 다음에 선택하게 했다. 과학자들은 이 실험을 통해 피험자의 순응 여부가 아니라, 이들의 뇌에서 어떠한 활성화가 일어나는지를 밝히고 싶었다. 순응하는 과정에서 전두피질이 가장 왕성하게 활성화된다면, 이는 순응이 의식적인 의사 결정의 결과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후두부나 두정부에서 활성화가 집중적으로 일어난다면, 순응이 지각 활동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 피험자들이 무엇을 보느냐는 사회적 영향이 결정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211p

3차원 테스트는 애쉬의 줄무늬 실험보다 어려웠기 때문에 아무런 압박감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피험자들이 실수를 많이 했다. 그러나 이들의 순응 확률은 똑같았다. 그리고 순응할 때 뇌의 전두피질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순응할 때 의식적인 결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뇌의 활성화는 지각을 담당하는 부분에 집중되었다. 집단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피험자가 보는 것이 달라졌고, 피험자들은 차이에 눈을 감았다.

과학자들은 지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사회적 영향에 따라 바뀐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 실험으로 몇 가지 다른 견해들도 등장했다. 집단의 결정을 아는 것은 피험자들의 정신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았을 때 피험자들의 사고 과정이 줄어드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집단의 결정과 일치한다고 느끼면 사고를 멈춘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들 여럿을 모아서 얻는 집단의 이점은 따지고 보면 개개인의 심사숙고를 줄여준다는 이점인 셈이다.

피험자들에게 컴퓨터나 다른 집단의 실수에 순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 이유를 묻는 질문을 실시했을 때까지도 피험자들은 자신들이 순응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정말로 우연히 같은 선택을 내렸다고 믿고 있었다. 피험자들은 자유의지로 선택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212p

게다가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집단의 결정과 반대로 완전히 독립적인 결정을 내린 한 피험자에게서는 색다른 일이 벌어졌다.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영역인 편도체가 매우 활성화되었다. 고통과 유사한 감정이 발생한 것이다. 집단으로부터의 독립에는 매우 큰 대가가 따른다는 의미이다.

 

물론 어느 선까지는 우리 모두 순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가 기능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에 따르면, 순응의 가장 큰 위험은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속감으로 인해 위험에 눈감을 뿐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려는 용기에도 눈을 감는 것이다.

 

225p

혼자 있던 피험자는 연기가 새어 들어온 지 2분만에 행동을 취했다. 연기가 새어 들어오는 부분을 찾고 온도를 확인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두 명이 함께 있던 방에서는 열 번 중 단 한 번만 연기가 들어온다고 알렸다. 나머지 경우에는 기침을 하고 눈을 비비면서도 끝까지 설문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세 명이 함께 들어간 방의 경우, (달리와 라타네는 한 사람의 반응 속도에 비해 3배 정도는 더 걸릴 것이라고 추측했다) 스물네 명의 피험자들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연기가 난다고 알렸다. 그때는 연기가 난 지 이미 4분이 지났고 방 안은 겨우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달리와 라타네는 방관자 효과라는 말로 자신들의 발견을 설명했다. 두 사람이 이러한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키티 제노비스라는 뉴욕의 젊은 여성의 사망 사건 때문이었다. 이 여성은 뉴욕의 거리 한복판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사건이 발생할 당시, 서른여덟 명의 사람들이 30분 이상 지속된 여성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목사들과 뉴스 해설자들, 정치가들은 뉴욕 시민들의 무관심과 도시 내부의 아노미에 대해 거들먹거리며 떠들었지만, 역시 뉴욕 시민이었던 달리와 라타네는 외려 그러한 사회의 반응에 회의적이었다. 정말 뉴욕 시민들이 유독 타락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긴급 상황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일까? 어떤 쪽이든,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뉴욕 시민들보다 나을 것인가?

 

226p

단순히 다른 사람도 문제를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문제에 대해 누군가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를 모르면서)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다. 연기가 자욱한 방에서라도 일단 집단에 속해 있으면 방관자 행동이 순응으로 인해 악화될 수 있지만, 순응이 방관자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실험을 하든 모든 피험자들은 목격자가 많을수록 사건에 반응할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최초의 명제를 입증했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이타심이 감소한 것이다.

미국과 달리, 영국의 법정에서는 방관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대응을 공식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공동 참가라는 법적 해석에 따라, 치명적인 가격을 날렸다는 증거가 전혀 없는 방관자들에게도 살인에 대해 유죄를 적용할 수 있다.

 

227p

2001년 보안업체 직원이었던 서른 살의 케네스라는 남자가 런던의 한 버스 안에서 다섯 명의 젊은이들에게 과자를 바닥에 던지지 말라고 말했다가 폭력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케네스의 오른쪽 안구를 파내는 동안 버스에는 적어도 열다섯 명의 승객들이 동승하고 있었지만 모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런 사례들은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고한 희생자들이 공격당하는 현장에 수십 명의 목격자들이 있어도 대부분 그저 지켜보거나 눈길을 돌려버리기 일쑤다.

이 목격자들이 유별나게 나쁜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릴 근거는 없다. 라타네와 달리의 실험에서도 이미 입증된 바이다. 우리 모두는 방관자처럼 행동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228p

그 후 4백여 개가 넘는 인터넷 채팅방 회원들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어졌지만 하나같이 방관자 이론을 확증해줄 뿐이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반응은 적었다. 하지만 한 가지 미세한 특징이 드러났다. 도움을 청할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부탁할 경우 도움을 받을 확률이 크다는 점이다.

 

228~229p

방관자 효과가 입증한 것은 사회적 자아와 개인의 자아 사이에 엄청난 긴장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단독으로 있을 경우 옳은 일을 할 확률이 크다. 그러나 집단으로 있을 경우, 우리의 도덕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는 서로 충돌하는데 그 충돌은 고통스럽다. 달리와 라타네의 실험에서 사건에 개입하지 않은 피험자들은 개입하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개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다면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갈등과 망설임으로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이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그들은 더 쉬운 길, 일종의 도덕적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240p

2006년 실시된 조사에서 영국 학생들의 69퍼센트가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자녀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부모는 87퍼센트였다. 그러나 교사의 83퍼센트는 교내에서 괴롭힘을 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많은 경우, 학생 방관자들은 배우를 부추기는 관객처럼 응원자의 역할을 한다. 또는 개입하지 않는 다른 학생들 역시 괴롭히는 가해자에게는 보호막으로 보일 뿐이다. 응원자로든 보호막으로든 모두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괴롭힘을 정당화한다. 괴롭힘을 본 목격자들 가운데 겨우 10~20퍼센트의 학생들만이 피해자에게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가장 애석한 사실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따라 하기 때문에 괴롭힘이 신고되지 않는다는 게 경찰의 말이다.

 

243p

달리는 심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주장을 언급한다. 카너먼은 우리의 사고 체계가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시스템 1은 직관적이며 연상적이고 매우 신속하고 습관에 기인한다. 본질적으로 시스템 1은 지름길 사고라고 할 수 있으며 대부분 만족스럽다. 시스템 2는 더 신중하고 분석적이며 느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수학 문제를 정확하게 풀고자 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시스템 2를 이용하지만, 시스템 2의 또 다른 목적은 시스템 1의 오류를 감독하는 것이다.

 

254~255p

원래 실험에서 65퍼센트의 피험자들이 전기쇼크를 받는 학습지를 볼 수도 없고 비명을 듣지도 못한 채, 최대 한계의 전기쇼크를 학습자에게 가했다. 그 실험에서 피험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밖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정말로 잊어버릴 수 있는지 신기했어요. 한참 동안 저는 오로지 스위치를 올리고 단어를 읽는 데만 집중했어요.” 하지만 두 번째 변형 실험에서 학습자와 피험자는 같은 방안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학습자와의 근접성으로 인해 전기쇼크를 가하라는 지시에 끝까지 복종한 피험자 수는 40퍼센트까지 감소했다. 그리고 피험자에게 학습자의 손을 쇼크 판 위에 직접 올려놓게 했을 때 전기쇼크를 가하라는 지시에 끝까지 감행한 피험자는 3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전기쇼크 피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음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급기야 신체 접촉을 함으로써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자신이 한 행동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필요가 없을 때는 그 행동의 결과들에 눈감기가 훨씬 쉽다.

이와 마찬가지로, 존 달리도 방관자 효과 실험을 변형한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에서 그는 피험자들을 둘씩 짝지어서 한 방에 들어가게 하고, 몇 쌍은 얼굴을 마주보게, 몇 쌍은 등을 돌리고 앉게 했다. 피험자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40분 후에 마룻바닥에 누군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려주고 으악! 내 다리!’ 하는 절규와 신음을 들려주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앉았던 피험자들의 80퍼센트가 사고에 대해 반응을 했다. 반면 등을 돌리고 앉은 피험자들은 20퍼센트만 반응했다. 실질적인 관계, 얼굴을 서로 마주보는 진짜 관계는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255p

알베르트 슈페에는 자신이 감독하던 강제수용소 시찰을 하지 않으려고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현실을 직접 마주치지 않도록 수행원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아돌프 아이히만과 힘러 하인리히도 자신들이 내린 결정의 결과를 확인하고는 병이 났다고 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객관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거리감도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거리감은 보기 싫은 세부적인 사항들에 눈을 감게 만들기도 한다.

 

257p

한 그룹에게는 인턴사원을 선택할 권한을 주었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조언은 할 수 있지만 선택권은 주지 않았다. 권한을 가진 참가자들은 전형적인 틀에 맞는 정보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다시 말하면, 힘을 가진 사람들은 고정관념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후속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의 권위에 대한 욕구를 나타내는 성격 평가를 실시했다. 욕구 수준이 높은 그룹과 낮은 그룹을 분리한 다음 인턴사원에 지원한 학생들을 평가하게 했다. 권력욕을 가진 참가자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정보들을 완전히 무시하진 않았지만 관심도 낮았다. 권위적인 사람들은 그러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고정관념에 따라 쉽게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권력욕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의지하는 고정관념은 도전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동기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권력은 타락한다. 그러나 그 타락은 권력자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다.

 

258p

그녀는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확률이 높았다. 이들은 매우 낙천적이었는데, 험난한 역격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힘을 실제로 자신들이 가졌거나 혹은 가졌다는 생각이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심리적인 거리가 있다는 의미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만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훨씬 더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밀리컨의 연구에서 밝혀진 더 충격적인 사실은 권력과 낙천주의 그리고 추상적인 생각이 결합하면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확신이 더욱 공고해진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면 될수록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더욱 확고부동해진다.

 

270p

BP가 딥워터 호라이즌 호의 폭발 사고 직후에 속죄양을 찾아 비난하기 급급했던 상황에서도 이러한 불명확성이 드러났다. 물론 BP는 시추선을 직접 건조하지 않았다. 딥워터 호라이즌은 텍사스 기업인 R&B 팰컨에서 디자인하고 한국의 현대가 건조했으며 스위스 오퍼레이터 트랜스오션이 사서 BP에 임대를 해주었다. 사망한 사람 대부분이 BP의 직원도 아니었고 따라서 이 영국회사의 책임도 아니었다. 일단 중요한 기능을 외주 업체에 맡기고 나면 그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아웃소싱의 목적이라며 비웃을 수도 있다. 서구 경제에 아웃소싱의 뿌리가 깊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시급하다.

 

274p

왜 우리는, 제대로 돌아가는지 보지도 못하면서 더 크고 더 복잡한 제도나 기업을 만드는 것일까?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간의 교만은 상상할 수 있다면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만들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심어주었다. 우리는 자신의 발명과 지능에 만족하고, 그 만족감에 취해서 스스로 지배력을 갖고 있으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힘은 우리가 만든 것의 실체에서 우리를 더 멀어지게 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미노스를 위해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처럼, 우리는 스스로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교묘한 미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구조가 야기할 수밖에 없는 맹목에도 눈을 감는다. 그렇게 우리는 완전히 잊는다.

 

276p

정말 그럴까? 거의 폭발 수준으로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천만 원을 호가하는 핸드백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전에 살던 집보다 더 큰 차고가 딸린 새집을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아졌는데 어떻게 돈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미 마틴 샐리그먼과 같은 긍정 심리학자와 리처드 레이어드와 같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그들은 GDP가 증가해도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는 증가하지 않는다는 예를 들었다. 그리고 가장 부자 나라=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276~277p

돈은 동기부여의 원천이다. 1953, 피험자들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철봉에 매달리게 하는 실험이 있었다. 대부분의 피험자들이 약 45초 정도 매달려 있었다. 지시자의 권위에 복종하게 하거나 심지어 최면을 걸었을 때는 75초로 늘어났다. 그러나 5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35천 원 정도)의 포상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참가자들은 110초까지도 매달려 있었다. 150퍼센트까지 수행 능력을 신장시켰으니 상당한 동기부여인 셈이다.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가격이 매겨진 몇 장의 그림들을 보았다. 어떤 그림을 기억하면 5달러, 어떤 그림은 10센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림을 보여준 다음 날 검사했을 때, 피험자들은 비싼 가격이 매겨진 그림을 훨씬 더 잘 기억했다. 피험자들은 자신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는 기대하는 보상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대니얼 핑크와 같은 동기부여 연구가들은 돈이 우리를 열심히 일하게 만들 수 있지만 똑똑하게 일하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대니얼 핑크는 댄 애리얼 리가 했던 실험을 예로 들면서, 돈이 창조성과 문제해결력 같은 경제 발전에 필요한 고차원적인 사고를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돈이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277~278p

중국과 미국 연구원들이 수행했던 흥미로운 일련의 실험들에서 피험자들은 사이버볼 게임을 했는데, 게임 속에서 피험자들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고통스러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돈을 세도록 했더니 피험자들의 기분이 나아졌다. 대조 실험을 위해 피험자들 일부에게는 종이를 세도록 했는데 종이를 세는 반복적인 일은 기분 개선 효과가 없었다. , 종이는 진통제가 아니었지만, 돈은 확실한 진통제였다. 돈을 세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사람들은 더 강해졌다.

 

278p

돈 그 자체가 우리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상하지는 않겠지만 담배나 초콜릿처럼, 우리는 반드시 유익한 것만 원하지는 않는다. 돈으로 얻는 즐거움은 대개 생명력이 짧다. 왜냐하면 늘 새롭고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매력적인 제품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돈으로 사는 물건들은 결코 기대만큼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쾌락의 쳇바퀴라고 부른다. 더 많이 소비할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쳇바퀴에 올라타서 즐거움을 낚으면, 적어도 처음에는 꽤 괜찮다는 기분이 든다.

 

280p

예전의 게임은, 진단을 잘하고 환자들과 소통도 잘하면서 수술도 잘하는 의사가 되는 게임입니다. 새로운 게임은 돈을 버는 겁니다. 그들은 게임이 바뀌었다는 것도 모릅니다. 눈을 감았으니까요. 하지만 게임은 이미 바뀌었죠.

 

282p

연구원들은 또 하나의 의문을 가졌다. 만약 돈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피험자들이 자신들이 잘 못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래서 연구원들은 돈과 관련이 있되 어렵지 않은 실험을 한 가지 고안했다. 대학 학생회 기금에 기부를 하는 것이다. 돈에 집착하는 피험자들은 받은 보상금의 39퍼센트만 학생회에 기부했다. 반면 돈을 별로 의식하지 않은 피험자들은 67퍼센트를 기부했다.

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피험자들은 한결같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몹시 어려운 혹은 완수하기 불가능한 일을 맡겼을 때 그들은 48시간이나 그 일에 매달린 다음에야 도움을 청했다. 주어진 일을 완수하긴 했지만, 전적으로 혼자 해냈다. 연구원들이 내린 결론은 돈이 개개인의 노력을 고무하는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이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부정적인 작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이해가 얽힌 갈등 상황에 돈이 결부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이해에 집중한다. , 우리는 돈 때문에 이기적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285~286p

그 후에 크랜필드 경영대학원과 합작으로 실시한 563명의 위기 관리자들에 대한 연구에서 무어는 금융업계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한 두 가지 원인으로 기업 문화와 보상 제도를 들었다. 비정하리만큼 현실적이고 수학적인 분석가들은 금융업계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규제나 경제 모델 따위는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세계적인 상황때문에 금융이 실패했다는 식의 변명도 완전히 배제했다. 그들이 보기에 잘못된 것은 문화였다. 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윤 추구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효과적으로 대체해버렸다. 한 경제학자는 돈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단적으로 묘사했다. “악당을 위한 구조는 악당을 만들어낸다.”

 

288p

그리고 죽기 3년 전에는 경제계를 뒤흔들 역작을 발표했다. <관계의 능력>에서 그는 돈이 늘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돈이 사람들의 도덕적 동기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헌혈을 예로 들면서, 티트머스는 헌혈의 대가로 돈을 주면 헌혈할 의지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혈액 기부자에게 돈을 지급하면 혈액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의 책은 현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근본적인 견해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두 견해 중 하나는 개개인은 자신의 이해에 따라 동기부여를 받는다는 견해였다. 더 많이 받을 때 일을 덜 한다면, 그것은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289p

두 사람은 1933년 스위스의 중심부에 있는 주 지역을 찾아갔다. 그곳은 핵폐기물을 보관할 지역으로 예정된 곳이었다. 두 사람은 305명의 주민들에게 핵폐기물 시설이 집 근처에 들어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느냐고 물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0.8퍼센트)이 시설 수용에 관한 투표를 한다면 찬성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핵폐기물을 좋아해서 그런 응답을 한 것은 아니다. 거의 40퍼센트의 주민들은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80퍼센트의 사람들은 정기적으로는 핵폐기물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응답한 사람들도 핵폐기물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기꺼이 수용하겠노라고 응답했다. 다시 말해, 공익과 사회적 선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개인적인 거리낌을 압도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두 경제학자가 핵폐기물 시설을 짓는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주민들의 반응이었다. 제안한 금액도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주민들의 매달 평균 수입에 가깝거나 그 이상의 금액을 매년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시설을 수용하겠다는 응답은 절반으로 줄었다. 두 학자는 주민들의 반응에 돈이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보상금을 더 높여보았다. 처음 제안을 거절했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만이 얼마를 더 주든 수용하겠노라고 대답했고, 4.9퍼센트만이 보상금의 액수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응답했다.

 

290p

보육 시설에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게 지각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을 때는 지각하는 부모들이 적었다. 그러나 지각에 대한 벌금을 부과했을 때는 외려 지각을 더 많이 했다. 뿐만 아니라 벌금 제도를 없앤 후에도 시간을 잘 지키던 습관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일단 돈이 개입되면, 사회적으로 잘 성립되었던 관계들도 무너지고 만다.

 

291p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도덕적으로 선택을 내릴 때 뇌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작동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때 작동하는 부분이 자전적 기억(공감을 의미하기도 한다)과 사회적 인식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무도 동기를 좇는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은 무한히 매력적이지만 여전히 모호한, 지성과 감성의 경계에 속한 문제인 듯하다.

 

294p

세상에 BP만 이런다고 볼 수 없다. 포드가 자사의 자동차 모델 핀토의 후미를 보강하는 비용을 산출할 때, A. H. 로빈스 제약회사가 달콘 쉴드라는 피임 기구를 회수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도, 그레이스가 몬태나주 리비의 골칫거리를 떨어내버리려고 파산을 결정할 때도 사람을 돈으로 환산했다. 더블린의 대주교 케빈 맥나마라가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의 피해 보상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었을 때도 사회적 문제보다는 돈을 더 걱정했던 것 아닐까?

 

296p

사람들은 자존감을 구축하는 일에 상당한 의욕을 갖고 있습니다. ,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그 한계를 넘어서지도 못합니다.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지켜야만 하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를 위험한 행동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사회적으로 정당화시키거나, 자기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기거나, 또는 자신들의 조치로 인한 장기적인 결과를 무시하면서 말입니다.”

위험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돈에 관한 논쟁을 들먹이면서 도덕적, 사회적 핵심을 흐리는 것이다. 밴두러는 우리의 행동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유해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또 환경과 인구 증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는 요구에 저항하는 사람들, 환경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주장은 자신들은 그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잘 살기를 원하는 착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299p

돈은 우리가 반드시 집중해야 할 정보와 문제에 눈을 감게 만드는 수많은 권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돈은 의도적 눈감기를 부추기는 다른 모든 요인들을 악화시키고 종종 보상까지도 한다. 익숙한 것에 대한 선호, 개인과 큰 사상에 대한 집착, 분주함에 대한 사랑, 갈등과 변화에 대한 혐오, 복종과 순응하려는 인간적 본능과 책임감을 떠넘기고 분산하는 능력들도 모두 눈감기를 부추기는 요인들이다. 이 모든 요인들은 삶의 다양한 순간에 다양한 강도로 협력하며 작동된다. 이 요인들에는 자존감을 지켜주고 부조화를 없애주며 경계심을 고취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어떤 면에서 이 모든 요인들은 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선 우리가 착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면서 우리의 눈을 가려버린다. 안락함과 편안함이라는 혜택이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눈감지 않을 것이다.

 

304p

세상에는 카산드라가 넘쳐난다.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도록 운명 지어진 개인들, 눈을 감지 못하고 자신들이 아는 불편하고 도발적인 진실들을 알려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바로 카산드라다. 기업이나 조직이 파멸하기 전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사람들, 즉 위기가 올 것을 알고 경고했지만 무시당하고 조롱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카산드라다.

 

305p

모든 카산드라가 옳고 그름을 분명히 인식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한편, 이들이 도덕성을 획득하는 경로는 역사나 개인적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인습적인 신념이 될 수도 있다. 비록 이 진실 전달자들이 때로는 감옥에 갇히거나 정신과 진단을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두 머리가 돈 사람이라는 증거는 없는 것 같다.

 

343p

의도적 눈감기가 매우 은밀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눈감기를 조율할 수도 있고 경계심을 잃지 않도록 결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된 습관은 버리기 어렵다. 강바닥은 깊고 수천 년 진화의 결과인 신경생물학적 구조와 평생 몸담았던 문화의 안락함을 뿌리칠 수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의도적 눈감기는 어떤 조건에서 왕성하게 자라는가? 그 조건들을 다소나마 줄이고 우리 의식의 이면에서 관심을 애원하는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면 얼마나 강해야 할까? 늘 깨어 있기 위해 새로운 습관을 개발할 수 있을까? 분명히 부담이 크겠지만, 열외가 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이들 안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우리 삶, 제도, 이웃, 친구들이 가진 동질성을 깨닫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의회에서 기업의 이사회와 두뇌 집단 그리고 교회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조직들 어느 곳을 보든, 동질성은 순식간에 약점이 되고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다양성이라는 것이 정책적으로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조직을 취약하게 만들고 고립시킬 내부적인 눈감기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은 될 수 있다. 다양성이 있는 집단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이유는 경보기가 울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도 자신의 편견을 인정해야 한다.

 

357p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가 자주 이용한 방식은 소위 ‘1일 일탈자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어 자기 본래의 이미지와 정반대로 행동하고 결과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마에 점을 하나 찍고 하루 종일 다른 사람으로 행세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면 세상의 반응도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자신의 시각도 달라진다.”

짐바르도는 이 방식을 통해 학생들이 친구들의 기대치에 얼마나 유순하게 반응하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기대치에 자기들이 얼마나 쉽게 무심코 순응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남들도 그러니까, 라는 이유로 학생들은 아첨꾼이 되는 데 익숙하다.

 

360p

최근 일어난 수많은 기업들과 기관들의 실패가 강력한 지도자들을 꼭대기에 둔 조직의 내부에서부터 발생한 점을 미루어보면, 잡지 표지를 장식하곤 하는 내로라하는 권위자들이 과연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존재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CEO들을 두고 태양왕”, “미국에서 가장 공격적인 CEO” 혹은 천재 소년등의 호칭으로 부르든 말든, 분명한 것은 CEO들의 권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에게는 아무도 불편한 진실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위는 위험한 거품이자 장벽이다. 현명한 지도자들은 권위가 보상이 아닌 장애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이미 그 주변에는 단절의 골이 깊을 것이다.

 

376p

존 브라운이 떠난 후 BP는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인지 분석했다. 마침내 내린 결론은 회사 전체가 복잡성을 좋아했다는 사실이었다. 지적 교만에 빠진 기업의 지도자는 기업 내부의 복잡성을 잘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이 바로 경쟁 우의를 점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생각했다. 다이달로스가 몰두했던 미궁도 결국 복잡성이었다. 복잡성은 숭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도전해야 할 대상이다.

 

380p

의도적으로 눈을 감을 때, 그곳에는 알 수 있고 또 알아야 하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알기를 꺼려하는 정보가 있다. 신경과학은 지금까지는 완전히 추상적으로만 여겼던 경험에도 명백한 실체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눈감기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쓰는 도중에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과학은 뇌가 독립적인 훌륭한 기관이며 우리는 뇌의 수동적인 매개자라는 사실을 입증해낼 것인가? ‘뇌가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대며 살인자가 무죄를 간청할 날이 과연 올까? 과학이 우리의 눈감기가 이미 내장된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현상일 뿐,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믿게 할 근거를 댈 수 있을까?

신경과학이 제시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죽는 순간까지 우리 인간이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모든 경험, 마주침, 새로운 지식들, 관계와 재평가는 우리 정신의 작동 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똑같은 경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81p

그러나 한편으로 결정론자의 뇌 과학은 우리가 경험을 독자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우리는 뇌 안의 마스터 컴퓨터에 따르도록 자동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능력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알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보겠다고 주장할 때는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이 생긴다. 의도적 눈감기가 의지에 의해 결정된 일이며 경험과 지식, 생각, 뉴런, 신경증 등이 한데 섞인 산물이라는 사실은 의도적 눈감기를 바꿀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리어왕처럼, 우리는 더 잘 보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바꿔야 한다. 모든 지혜가 그렇듯, 보는 것은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내가 알 수 있고, 알아야 함에도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무엇인가? 지금 여기서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가?

생각의 오류

- 토머스 키다 지음/박윤정 옮김/열음사 펴냄/2007.11.30

 

20p

  어떤 책이든 읽다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상세한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이런 나이에는 몇 가지 핵심 내용만 기억해도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정리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다.

 

22p

  총기규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정보를 더 신뢰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대통령 후보의 호의적인 정보에 더 집중하지 않을까? 좋아하는 대통령 후보의 호의적인 정보에 더 집중하지 않을까? 영매에게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영매의 예언이 적중했던 때만 기억하고 예언이 빗나갔던 대다수의 경우는 잊어버리지 않을까? 실제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기존의 믿음이나 결정을 굳건하게 만들어주는전략을 쓰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

 

24~25p

  사람들은 자신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본 것을 난 알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오감은 잘 속아 넘어간다. 게다가 가끔은 세계를 선택적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정신이 다른 데 쏠려 있어서, 분명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없는 것을 보기도 한다. 내가 유령을 봤다고 얘기했을 때처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느 시점에서 환각을 본다고 한다.

이런 부정확한 인식을 사고 과장에 적용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는 특히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바로 기대와 욕망이다.

 

26~27p

  참고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정보들에 일일이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말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이런 분석마비증을 피하기 위해서 단순화 전략을 쓴다.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토대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우리는 스키를 타다가 다칠 수 있는 경우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거나 스키로 인한 부상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하지 않는다. 대신에 친구의 경험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사고 보도를 떠올리고, 단순하게 판단을 내린다. 소니 보노(미국의 가수이자 배우, 정치가)와 마이클 케네디(전 미국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조카)가 같은 해에 스키를 타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스키는 아주 위험한 스포츠라고 결론지어 버린다. 실제로는 보트나 자전거 타기처럼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여가활동이 많은데도 말이다.

 

28~29p

  그러나 기억도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많다. 심지어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요컨대 우리의 기억은 과거의 경험들을 스냅 사진 찍듯 있는 그대로 담아두었다가 앨범을 펴 보듯 다시 불러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다분히 구축적이다. 현재의 믿음과 기대, 환경, 암시적인 질문까지 과거의 경험에 대한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

 

32p

  우리 사회에 위험한 것은 불신이 아니라 믿음이다.

- 조지 버나드 쇼

 

38p

  실제로 갤럽에서 조사한 결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현상들 중에서 최소한 한 가지를 믿는 사람이 73%나 되었다.

 

39p

  (1) 터무니없는 설들을 믿는 사람들의 비율 20056, 갤럽 조사 결과

41% 초감각적 지각력은 가능한 것이다.

37% 집에 귀신이 들 수 있다.

42% 이따금씩 사람도 악마에게 홀린다.

31% 텔레파시, 오감의 작용 없이 마음만으로도 서로 통할 수 있다.

24% 외계의 존재들이 지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

26% 투시, 오감으로는 알 수 없는 사물들도 파악할 수 있다.

21% 산 사람도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다.

25% 점성술

20% 환생

 

42~43p

  한 예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이 두뇌의 10%만 사용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신경과학적으로 이를 뒷받침해 주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맹인들은 흔히 고감도의 청력을 자랑한다는 믿음은 어떤가?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또 미국에서는 이미 범죄자와 마약 복용이 통제 수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자료들을 검토해 보면, 2003년까지 10년간 폭력 범죄율은 33%나 떨어졌으며, 마약 복용 인구도 줄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낮은 자기존중감이 공격성의 원인이라는 대부분의 생각과는 달리, 둘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45~46p

  인간이 달 착륙에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많다. 그런데도 19997월에 실시된 여론 조사를 보면, 11%의 미국인들이 이것을 조작된 사건으로 믿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폭스 사가 음모 이론: 우리는 정말 달에 발을 디뎠나?’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뒤 이 비율이 두 배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주장들만 보고 수백만 명이 생각을 바꾼 것이다.

 

47~48p

  또 미국에서 살인율이 20%나 떨어졌을 때도, 방송의 살인사건 보도는 600%까지 치솟았다. 이런 편향적인 보도는 당연히 우리의 믿음에 영향을 미친다.

 

1994년에는 살을 뜯어먹는 박테리아 이야기가 대중매체의 관심을 집어삼켰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환자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담은 생생한 영상들이 넘쳐났다. 살을 뜯어먹는 박테리아보다 번개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55배는 더 많다고 의학계의 권위자들이 지적했는데도 대중매체는 이런 사실을 무시해버렸다.

 

51p

  그래서 이후 몇 해 동안 다른 연구들을 여러 번 실시했다. 그 결과 유방확대수술이 유방암 같은 주요한 만성 질환의 원인은 아니라는 증거를 확보했다.

 

56p

  그런데 이 실험들은 한 가지 지배적인 경향을 보여주었다. 초감각적 지각력을 지지하는 실험들은 하나 같이 적절한 통제가 부족했고, 적절한 통제 아래 이루어진 실험에서는 초감각적 지각력을 입증해 주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58p

  (2) 사이비과학적인 사고의 특징

(1) 무엇을 믿을지 미리 생각하고 있다.

(2) 기존의 믿음을 뒷받침해 줄 증거를 찾는다.

(3) 자신의 주장이나 믿음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증거는 무시한다.

(4) 다른 설명들은 무시해 버린다.

(5) 터무니없는 믿음도 계속 유지한다.

(6) 근거가 빈약한 증거들을 토대로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친다.

(7) 일화적인 증거에 강하게 의존한다.

(8) 엄격한 통제 실험을 통한 검증이 부족하다.

(9) 비판적인 시각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

61~62p

  사회학자인 배리 글래스너는 <두려움의 문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난폭 운전 같은 가상의 위험요인이나 다른 사람들을 전혀 또는 거의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감방,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위험으로부터 젊은이들을 보호하는 프로그램이나 은유적인 질병의 희생자들에게 보상을 해 주는 일 등에 해마다 수백억 달러를 허비하고 일인당 몇 시간씩을 낭비하고 있다.”

 

67p

  많은 자료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다 보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원하는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비틀스의 노래 수백 곡을 뒤로 돌리거나 느리게 틀면, “폴은 죽은 사람이다.”와 같은 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물론 노래 속에 이런 가사는 없었다. 그러나 수백만까지는 아니어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것을 믿었다.

 

68p

  최근의 연구 결과, 흔히 유령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던 이상한 느낌(등골이 오싹해지거나 몸이 후들거리거나 극도의 불쾌감과 두려움이 이는 것 같은)들이 10~20헤르츠의 저주파 음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귀신 들린집의 이런 초저주파 음은 들리지는 않아도 느낄 수는 있다.

 

78p

  현재 믿을 만한 증거가 없다고 해서 어떤 주장이 거짓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증거가 없다는 것은 연속체상의 왼쪽 끝에서 강한 불신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일 뿐이다.

 

79p

그러므로 어떤 것이든 믿음을 형성할 때는 회의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믿음을 형성할 때는 어떤 접근법이 가장 좋을까? 케오도르 시크와 루이스 본은 다음의 네 단계가 상당히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1) 주장을 분명하게 적는다.

2) 이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를 고찰한다.

3) 다른 가정들을 살펴본다.

4) 가정의 타당성을 평가한다.

 

81p

여러 가설 중에서 어떤 가설이 나은지를 평가할 때는 여러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먼저,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된다.

 

검증이 가능한가?

현상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가설인가?

잘 정립된 다른 학설들과 상충되지는 않는가?

 

83p

불 위를 걷는 사람들의 주장을 믿으려면, 먼저 어떤 신비적이거나 영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신비적인 힘을 믿어야만 불 위를 걷는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리학 법칙을 적용하면 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설명이 가장 간단한 가설을 선택한다는 규칙을 일컬어 오감의 면도날이라고 한다. 과학을 이끌어가는 이 규칙은 14세가 영국의 철학자인 오캄의 윌리엄에서 유래된 것이다.

 

93p

콜드 리딩은 쓸모 있는 정보를 얻을 때까지 심령술사가 망자에 대해서 일반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법이다. 쓸모 있는 정보를 얻으면 심령술사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 주고, 듣는 사람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하던 대로 계속 질문과 이야기를 이어 간다. 반대로 자신의 이야기가 빗나가면, 심령술사는 자신의 말이 옳은 것처럼 들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심장마비 같은 흉부 질환으로 사망한다는 통계자료를 이용하는 것이다. 심령술사들이 쓰는 일반적인 기법은 다음과 같다.

 

심령술사 : 사랑하는 이를 잃었군요.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요. 심장마비였나요?

피상담자 : 폐암이었는데요.

심령술사 : 맞아요. 그래서 가슴이 이렇게 아픈 거예요.

 

95p

많은 자료들을 보면, 실제로 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일반적인 말도 자신에게 직접 적용되는 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연구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인상착의를 아주 모호하게 묘사해도 우리는 자신을 묘사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똑같은 묘사가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포러 효과(Forer Effect)라고 한다.

 

103p

광고 문구가 눈길을 확 잡아끈다. “자신감이 커진다. 일이나 공부, 예술, 스포츠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다. 흡연이나 음주, 마약 복용 같은 악습도 힘들이지 않고 극복한다.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치유 효과는 향상된다. 평생 노력 없이 몸무게를 조절할 수 있다.” ‘대단한 걸!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읽어보니, 해답은 바로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명상음악 테이프에 있었다.

 

* 이 광고는 Pychology Today, April 2001, p91에 실린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광고는 잠재의식을 자극한다는 테이프 대부분이 효과가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이런 테이프의 무용성을 지적한 믿을 만한 연구들에 반격을 가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러나 이어서 새로운 획기적인 기술적 발견 덕분에 이 테이프들은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 혁신이 어떤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고 말이다.

 

107p

치료제를 나눠주는 사람이 누가 진짜 치료제를 복용하고 누가 플라시보를 복용하는지 알면, 피실험자에게 그가 먹는 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암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을 나눠주는 사람이나 복용하는 사람 모두 누가 무엇을 복용하는지 몰라야 한다. 이런 방식을 가리켜 더블블라인드실험이라고 한다.

 

109p

과학과 과학적인 방식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형성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국립과학위원회에서 산출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중 3분의 2는 과학적인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적인 절차를 몰라서, 믿음을 형성할 때 자료의 질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14p

진화론은 인간이 지금과 같이 존재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 누군가 단순하게 추측해 낸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여러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는 하나의 개념체계이다. 그래서 다른 어떤 이론도 우리가 이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진화론만큼 잘 설명해 주지 못한다. 하지만 기억할 것이 있으니, 과학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점이다. 과학적인 사실은 현재로서는 그것을 믿는 게 합당하다고 여겨질 만큼 확신이 가는 하나의 결론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과학에서는 모든 지식을 잠정적인 것으로 본다.

 

119~120p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이타적이고, 상반되는 것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며, 행복한 고용인은 생산성이 더 높다고 믿는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런 생각들이 틀렸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126p

(3) 과학적인 사고의 특징

(1) 언제나 마음을 열어 두되, 입증되지 않은 주장은 어떤 것이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2) 어떤 주장이든 반드시 검증을 한다.

(3) 증거의 질을 보고 믿음을 결정한다. 실험 시 통제가 엄격했는지를 살피고, 일화적인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다.

(4) 어떤 주장이든 그것이 틀렸음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이 주장의 부당성을 입증해 주는 증거를 찾아보라는 말이다.

(5) 다른 대안적인 설명들을 살펴본다.

(6) 다른 점들이 같다면, 어떤 현상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는 주장을 선택한다. 추측이 가장 적은 주장이나 믿음을 선택하라는 의미이다.

(7) 다른 점들이 같다면, 기존의 과학 지식과 상충되지 않는 주장이나 믿음을 선택한다.

(8)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증거의 양에 따라 믿음의 정도를 결정한다.

 

130p

백만 번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뉴욕에서는 하루에 여덟 번 일어난다.

- 팬 질레트

 

132p

마이클 셔머가 즐겨 말하듯, 인간은 원인을 찾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인간에게는 세계 속에서 일정한 양상을 발견하려는 천부적인 욕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원인을 발견한 이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원인을 찾는 천부적인 성향은 보통 인간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원인을 찾으려는 욕망이 너무 강해서, 아무 이유 없이 우연하게 일어난 일에서까지 원인을 찾기도 한다.

 

143p

여러분은 아마 선수의 실력에 물이 오르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 아니라 가끔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확률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으로 보면, 물오른 손 이론은 거짓임을 증명할 수 없는 이론이다. 또 여러분은 선수가 공을 몇 개 넣은 후에 이따금씩만 일어나고 다른 때는 없는 일이므로,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물오른 손은 검증할 수 없는 가설이다. 이런 가설은 심령술사들의 논리와 비슷하다. 이들은 연구자들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해 내개 때문에 통제실험에서는 영적인 능력을 보여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후 변명에 불과하다.

 

150~151p

우연한 사건들을 계기로 미신적인 생각과 행동 패턴을 갖게 되는 것은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 과정 때문이다. 조작적 조건화 이론의 주창자인자 <비둘기의 미신>이라는 유명 논문의 저자인 심리학자 B. F. 스키너는 우연의 일치가 미신적인 행위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151p

이처럼 조작적 조건화 이론은 미신의 형성 과정을 잘 설명해 준다. 그래도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미신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답은 우리가 불확실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미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을 극복할 방법을 제시해 준다. 미신적인 행위를 하면 흔히 상황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이 들고, 어느 면세서는 이런 행위가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신적인 행위는 불확실하고 무질서하며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쉽게 생겨난다.

 

157p

다른 예를 들어 보자. 검은 색 하트가 세 개 있는 카드를 사람들에게 슬쩍 보여주면, 대부분은 붉은 색 하트나 검은 색 스페이드가 세 개 있는 카드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하트가 검은색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생각에 맞게 그것을 붉은색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듯 실제가 우리 기대와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세계를 잘못 인식한다.

 

161p

심판과 팬들 중에는 검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나오는 비디오를 본 사람도 있고,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나오는 비디오를 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 결과 이들은 흰색보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팀의 선수들에게 가혹한 판정을 내렸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에게는 7.2,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에게는 5.3을 준 것이다. 우리의 기대는 우리의 인식과 판단은 물론이고 우리의 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예로, 연구자들은 개복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수술이 얼마나 걸리고 어떤 통증이 생기며, 언제 의식이 돌아올지 등 수술 후 나타나는 반응들을 미리 알려주었다. 반면에 다른 그룹의 환자들에게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그러자 의사에게서 미리 설명을 들은 환자들은 통증도 덜 호소하고, 약물치료도 덜 필요로 했으며, 회복도 더 빨랐다. 그 결과 이들은 실제로 평균 3일 일찍 퇴원했다.

 

* 프랭크와 길로비치 또한 “The Dark Side of Self and Social Perception”에서 검은 옷이 실제로 부정적인 행위를 유발시킬 수도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162p

연구자들은 이번엔 다른 학생들에게 이 경기의 필름을 보여주고, 그들이 본 반칙을 기록하게 했다. 그 결과 다트마우스 학생들은 양편에서 비슷한 수의 반칙을 확인한 반면(평균 4.3개와 4.4), 프린스턴 학생들은 다트마우스 팀에게는 9.8개의 반칙을, 프린스턴 팀에게서는 4.2개의 반칙을 확인했다.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게임을 보았는데, 이들이 실제로 본 것은 아주 달랐다.

 

165p

아메리카 사람들은 달 속에서 남자를 보고, 사모아 사람들은 베 짜는 여인을, 동인도 사람들은 토끼를, 중국 사람들은 방아 찧는 원숭이를 보는데? 요컨대 화성과 달 위의 형상은 모호해서 마음대로 해석하기가 쉽다. 달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고 있었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166p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호한 자극들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것은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하는 아주 일반적인 인식 현상이다. 화창한 여름날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볼 때 구름 속에서 온갖 형상의 이미지 보이는 것도 한 예다.

 

168p

몇 해 전, 신경생리학자 와일더 펜필드는 두뇌의 다양한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하면 생생한 환각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싱거는 전자석이 들어 있는 헬멧을 머리에 쓰면 유체이탈을 경험하거나 누군가 방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강렬한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다고 보고 했다.

 

* 조 니켈은 이런 환각들이 자기력의 자극이 아니라 피실험자의 암시감응성 때문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도 있다고 보고했다.

 

169p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암시에 아주 잘 걸려든다. 실제로 우리 중 5~10%는 쉽게 최면에 빠진다고 한다. 강한 암시가 우리의 인식과 믿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3p

예를 들어 보자. 두뇌에는 약 30개의 서로 다른 시각 영역이 존재하는데, 이 영역들은 깊이나 운동, 색채 등 서로 다른 특징을 지각해 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두뇌의 중측두 영역에 손상을 입으면, ‘동작맹으로 고통을 받는다. 이런 사람은 사물이나 사람은 알아보고 책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차가 질주하는 모습을 봐도, 연속적인 움직임 대신에 정적인 순간촬영 사진 같은 일련의 장면들만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커피도 잘 따르지 못한다. 커피잔 속에서 카피가 얼마나 빨리 차오르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74p

시각경로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찰스버넷증후군(Charles Bonner syndrome)으로 고통 받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완전하게 또는 부분적으로 시각을 상실한다. 하지만 실제보다도 더 생생한 환영을 본다.

 

175p

우리의 전두엽은 얼굴과 사물을 인식하게 해 준다. 그래서 이 부분에 손상을 입으면 부모의 얼굴도 못 알아본다. 그런가 하면 카그라스중후군(Capgras Syndrome)에 걸린 환자는 가까운 친지를 사기꾼으로 오인한다.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지만, 상대가 자신의 부모를 형제자매로 가장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176p

과거의 경험도 우리가 보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생의 대부분을 눈이 먼 상태로 지내다가 시력을 회복했다고 하자. 이런 사람은 새로운 사물을 손으로 먼저 만져보아야 인식할 수 있다. 과거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물을 접하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사물을 손으로 만져보아야 비로소 이것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 예로, 수직선만 보이는 환경에서 자란 고양이는 수평의 사물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반면, 수평적인 환경에서 자란 고양이는 수직의 사물들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 새끼 때 수직선만 보고 자란 고양이를 나중에 보통의 환경 속에 데려다놓으면, 탁자의 평평한 가장자리를 볼 수 없어서 탁자 끝에서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를 인식할 때 생기는 문제가 시각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환각지를 생각해 보자. 팔이나 다리를 잃은 환자는 때로 팔다리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환각지가 엄청난 통증을 일으켜서,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한 예로, 어느 의사가 버거병(Buerger’s disease)에 걸렸다. 이 병으로 다리에 경련이 일자. 그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다리를 절단해 버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의 환각지에서 통증이 계속되었다!

 

177p

태어날 때 우리의 두뇌 속에는 1000억 개도 넘는 뉴런이 있다. 이 각각의 뉴런은 축색돌기와 수지상돌기를 갖고 있는데, 축색돌기는 다른 뉴런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수지상돌기는 다른 뉴런들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을 한다. 또 뉴런들은 시냅스에서 다른 뉴런들과 접촉하는데, 모든 뉴런은 1000~1만 개의 시냅스를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래 한 알 크기의 두뇌 속에는 약 10만 개의 뉴런과 200만 개의 축색돌기, 10억 개의 시냅스가 있으며, 이것들 모두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이 신경조직들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외부의 실제를 실제와는 전혀 다르게 인식한다.

 

191p

이처럼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데 연관성이 있다고 인식하는 현상을 일컬어 착각성 상관(illusory correlation)이라고 한다. 로르샤흐 잉크 테스트에 대한 다른 반응들도 비슷한 문제를 보여준다. 환자가 고양이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보여요.”와 같은 반사반응을 보이면, 임상의들은 보통 환자에게 자기도취적인 성향이 있다고 해석한다. 반사반응과 자기도취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도 말이다.

 

210~211p

그런데 나중에 피실험자들에게 이 학생이 꾼 꿈 중에서 기억나는 것을 묻자, 현실로 실현된 꿈들을 더 많이 기억했다. 예언도 마찬가지다. 적중한 것만 기억하고 빗나간 것은 잊어버린다.

 

213p

이미 설명한 것처럼, 포러 효과는 아주 일반적인 묘사 속에서 자신의 성격적 특성들의 일부를 확인하는 현상이다. 사실은 애매모호하고 일반적인 설명인데도, 이것이 특별히 자신을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포러 효과 예로 내가 즐겨 쓰는 것이 있다. 어느 과학자가 무료로 천궁도를 해석해 주겠다고 파리 신문에 광고를 냈다. 그리고 응모자 150명에게 전부 똑같은 천궁도 해석을 보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해석을 읽은 사람들 중 94%가 이 해석이 맞는다고 답했다. 이 천궁도가 실은 프랑스인 연쇄발인범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로 궁금하다!

 

215~216p

누군가 부엌에 앉아서 전화번호부를 보고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2000통의 편지를 보냈을 수도 있다. 이 편지들 중 반은 매크로테크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적고, 나머지 반은 주가가 내릴 것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그 달에 매크로테크 주가가 오르자, 매크로테크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편지를 보낸 1000명의 사람들에게만 다시 편지를 보낸다. 역시 이중 반은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내용을 보내고, 나머지 반은 주가가 내릴 것이라는 편지를 보낸 500명의 사람들에게만 다시 편지를 보낸다. 역시 반은 다음 달에 주가가 내릴 것이라고, 나머지 반은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적어 보낸다. 역시 이 중 반은 다음 달에 주가가 내릴 것이라고, 나머지 반은 다음 달에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적어 보낸다. 그런데 어쩌다 당신이 네 번 연속 정확한 예측 편지를 받은 125명 중에 들었다고 하자. 당신은 당연히 이런 적중률을 보고, 이 회보가 400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결국 정기구독을 신청한다. 다른 124명도 똑같이 생각한다면, 편지를 보낸 사람은 아마 부엌에 앉아서 엉터리 편지들을 보낸 대가로 단번에 5만 달러를 긁어모을 것이다.

 

231p

요컨대 아무리 정교한 모델로도 미래를 분명하게 예측하지는 못한다. 한 예로, 1995년 이코노미스트가 1985년에 실시했던 아주 흥미로운 콘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콘테스트에서 주최자들은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10년 후 영국의 경제상을 정확히 예측해 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이겼을까? 환경미화원들이 네 명의 다국적기업 회장과 똑같이 1등을 차지했다. 본질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사안일 경우에는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의 양도 미래를 예측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231~232p

보통 경제학자의 특정한 믿음이나 가설이 경기예측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가설들은 경제의 미래를 상당히 다르게 예측하도록 만든다. 사실 두 명의 학자가 정 반대의 학설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학문은 경제학뿐인 것 같다. 사람들이 경제학의 첫 번째 법칙을 믿게 된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경제학의 첫 번째 법칙은, 모든 경제학자에게는 반대를 가진 동등한 경제학자가 있다는 것이다.”

 

232p

한 가지 이유는, 경제학자들이 경제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해서 가설을 검증하는 것 같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들은 흔히 정교한 이론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런 이론들은 논리적으로는 일관성이 있을지 모릐만, 대개 비실제적인 개념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한 예로, 사람들이 언제나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기본 가정의 하나다.

 

234p

기상이 대단히 혼돈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장기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하고 있다. 조사 결과, 기상과는 12~44시간 이후의 날씨를 예보할 때만 기온이나 구름의 양, 강수의 확률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실제로 미국기상학회도 10일에서 14일 이후는 날씨를 예측하기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해도, 그렇게 멀리 내다보는 것은 경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236p

최근 몇 년 사이 기상학자들은 폭풍우를 감지해 내고 하루나 이틀 후의 단기적인 기상상태를 예측하는 일에서는 장족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셰든도 기상학만이 유일하게 향상의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예측은 여전히 믿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왜 장기적인 예측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것일까? 의아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앞날을 내다보고 싶은 바람 때문인 것 같다.

 

244p

우리에게는 확인을 받으려는 타고난 성향이 있다. 기존의 믿음과 기대를 지지해 주는 정보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 간담회를 볼 때도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에 부합되는 정보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또 초감각적 지각력을 믿는 이들에게 초감각적 지각력에 대한 연구 자료를 보여준 결과, 상반되는 자료들보다는 초감각적 지각력을 지지해 주는 자료들을 더 많이 기억했다.

 

245p

*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선호하는 성향은 우리가 보는 자료는 물론이고 우리가 찾는 자료의 양에도 영향을 미친다. 처음에 본 자료가 우리가 믿고 싶은 것과 일치하면, 우리는 흔히 만족해서 조사를 멈추어버린다. 그러나 처음에 본 자료가 우리 믿음과 일치하지 않으면, 흔히 믿음을 지지해 주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자료를 찾는다.

 

246p

마이클 셔머가 지적한 것처럼, 대개의 경우 우리는 무언가를 믿을 때 실험에서 입증된 증거나 논리적인 추론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보다 부모나 형제자매의 영향, 동료들의 압박, 교육, 삶의 경험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원인들로 인해 특별히 선호하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고는 이런 믿음을 지지해 줄 증거들을 찾아 나선다. 실제로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들을 믿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과정에 있다. 셔머의 말처럼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들을 믿는 이유는, 이들이 바보 같은 연유로 갖게 된 믿음을 방어하는 데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다.”

 

250p

확인받으려는 성향도 정보를 구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배리를 모르는 상황에서 다음 중 두 개의 질문을 던져서 그가 외향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하자.

 

1) 어떤 상황에서 말이 가장 많아지는가?

2)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3) 파티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어떻게 하나?

4)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어떤 점들이 마음에 안 드나?

 

당신은 네 가지 중 어떤 질문을 던지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1번과 3번 질문을 선택한다. 그러나 배리가 내향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질 때 2번과 4번 질문을 던지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1번과 3번 질문은 외향적인 행위와 더 관련이 있는 반면, 2번과 4번 은 내향성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253p

요컨대 배심원들은 가혹한 판결을 먼저 접했을 때 가혹한 판결을 내리고, 관대한 판결을 먼저 접하면 덜 가혹한 평결을 내린다. 그러므로 재판장이 혐의 사항만 알려주고, 심의 순서는 정하지 않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또는 무죄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가장 관대한 판결을 먼저 심의하는 것이 우리의 법철학과 더 잘 부합될 수도 있다.

 

256p

서로 다른 카드들 위에 아래의 글자와 숫자들이 적혀 있다고 하자. 카드의 한 면에는 숫자가, 다른 면에는 글자가 적혀 있다. 그런데 누군가 카드 한 면에 모음 글자가 적혀 있으면, 이 카드의 다른 면에는 짝수가 적혀 있다.”고 말한다. 이 사람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어느 카드를 뒤집어보아야 할까?

 

E K 4 7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다면, 당신은 E4가 적힌 카드 또는 E만 적힌 카드라고 답할 것이다. 실제로 128명 중에서 E4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으며(59), 그 다음이 E(42) 순이었다. 왜 이렇게 답한 것일까? 확인시켜주는 증거가 들어 있는 카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답은 E7이 적힌 카드다.

 

258p

확인 전략도 올바른 답을 얻게 해주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 전략을 폭넓게 적용해서 정확한 판단을 많이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전략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총체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왜 그럴까? 검증하려는 가설을 지지해 주는 증거도 많지만, 상충되는 증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 가설과 상충되는 자료들이 더 확실할 때도, 이 가설을 받아들이기 쉽다. 요컨대 확인 전략을 쓰면, 잘못된 판단으로 인도하는 불완전한 정보에 의존하기 쉽다.

 

* 물론 언제나 모든 자료들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모든 관련 자료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회사의 고용실태를 평가할 때, 취직에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지만 입사에 실패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259p

단적인 예로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는 말을 들어도, 이들 중 70%는 여전히 자신의 가설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들을 구했다. 이런 성향을 해결하는 방법은, 가설의 부당성을 입증해 주는 증거를 더욱 강화시키는 쪽으로 질문을 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급 투자 분석가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자신의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해 주는 증거들을 특별히 구한다.

 

264~265p

이처럼 우리는 흔히 유사성을 근거로 판단을 내린다. AB와 유사하면, AB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같은 것끼리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을 일컬어 대표성 간편추론법(representativeness heuristic)”이라고 한다. AB를 대표하는 정도를 토대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 대표성 간편추론법은 많은 경우에 아주 효과적이다. 하지만 다른 관련 자료들을 간과해서 결국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도 한다. 예컨대 스티브의 직업을 판단할 때, 어느 마을이든 도서관보다는 가계가 더 많으므로 도서관 사서보다 세일즈맨이 더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세일즈맨은 보통 소심하고 내성적이지 않다고 해도, 세일즈맨의 수가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심하고 내성적인 세일즈맨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도서관 사서보다 소심한 세일즈맨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말이다.

 

같은 것은 같은 것끼리 어울린다는 믿음은 하나가 다른 것의 원인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왜 그럴까? 결과는 원인과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아주 기이한 의학적 관행이 오랜 세월 지속되기도 했다. 예컨대 중국에서는 시력에 문제가 생기면 다 자란 박쥐를 처방했다. 박쥐는 시력이 좋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유럽에서는 천식에 여우 폐를 이용하기도 했었다. 여우는 원기가 강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몇몇 대체 의학에서는 정신 질환에 가공하지 않은 뇌를 처방한다. 정신부석도 상당 부분 우리의 사고에 대해서 비슷한 접근법을 취한다. 예컨대 정신분석가들은 어린 시절 구강기에 고착되어 있으면, 어른이 되서도 입에 집착해서 흡연과 입맞춤,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한다고 주장한다.

 

266~267p

의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면, 당신은 어느 정도나 걱정을 해야 할까?

 

· 실제로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경우, 이 검사는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100%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 실제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데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올 가능성은 5%.

· 500명 중에 1명은 이 바이러스의 보균자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은 95% 정도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는가? 정답은 4%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런 답이 나올 수 있을까? 야간의 논리를 적용해서 계산을 해 보자.

500명 중에 1명이 이 바이러스 보균자라면 다른 499명에게는 이 바이러스 감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데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올 가능성이 5%라고 한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데 감염 진단을 받은 사람은 이 검사에서 25(0.05X499)이나 나올 수 있다. 5%를 일컬어 가양성률(false positive rates)이라고 한다. 사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데, 검사 결과 감염된 것으로 잘못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267p

하지만 대략 95%라고 답했어도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 소속 의사 60명과 의대생, 사회복지시설 근무자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 결과, 대부분이 95%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의료 종사자들 중 절반이 95%라고 답한 반면, 정답을 말한 숫자는 11명밖에 안 됐다.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문제에서도 의료전문가들 역시 판단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적인 사람들도 대개는 이런 문제들을 올바로 푸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268~269p

검사 결과를 토대로 판단을 내릴 경우, 진단가는 아주 중요하다. 한 예로,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탐지기에 의존하고 있다. 경찰은 물론 변호사들도 죄인을 신문할 때 이것을 이용한다. 또 미국 연방수사국에서도 고용인들을 조사할 때 이것을 쓴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의 진단가는 2%밖에 안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앞의 바이러스 검사에서 살펴보았듯이, 실제로 감염이 일어나는 기준율이 아주 낮고 진단가가 20이었을 때,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어도 실제로 감염이 됐을 가능성은 4%밖에 안 됐다.

 

270p

예를 들어 회계감사원은 회계감사 결과를 판단할 때 파산예측 모델을 이용한다. 그런데 어느 연구에서 회계감사원에게 파산예측 모델의 실양성률은 90%인 반면 가양성률은 5%이고, 모든 회사 중에서 약 2%는 파산한다고 말해 주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파산예측 모델상에서 파산이 예측됐을 경우 회사가 정말로 파산할 가능성은 27%일 것이다. 그러나 회계감사원이 내놓은 평균 파산가능성은 66%였으며, 이들이 가장 많이 한 대답은 80%였다. 초보자보다 더 잘 알 것 같은 전문가도 가능성을 판단할 때 기준율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271p

어떤 경우든 극단가(extreme value) 뒤에는 대개 극단가보다 못한 값이 온다. 부모의 키가 크면 아이도 키가 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개는 부모만큼 키가 크지 못하고, 일반적인 평균 신장에 더 가까워진다. 사람들의 평균 신장으로 회귀하는것이다. 마찬가지로 듀발이 지금은 평소보다 더 많은 버디를 기록해도, 다시 그의 평균기록으로 돌아가, 이 게임에서 버디를 다시 못 낚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그가 드디어 불이 붙었다고 생각한다.

 

* 대표성 간편추론법은 평균회귀 현상을 무시하게 만든다. 어떤 것의 미래를 예측할 때, 흔히 비슷한 기준을 근거로 예측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생이 첫 번째 시험에서 예외적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하면, 다음 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으리라고 예측한다.

 

272p

평균회귀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교육에서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 예로, 연구자들은 이례적으로 이륙이 부드럽게 이루어졌을 때 교관이 학생을 칭찬해 주면, 학생들이 다음 비행에서는 제대로 이륙을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에 이륙이 거칠었을 때 꾸짖어주면, 다음번 시도에서는 대부분이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교관들은 언어적인 칭찬은 해로운 반면, 징벌은 유익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교육에서 정말로 징벌이 칭찬보다 효과적인 것일까? 학생들이 이런 결과를 보인 것은 평균회귀 현상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273~274p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동전을 아무 생각 없이 여섯 번 던지면, 다음의 (A)(B) 중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더 클까? (A)? (B)? 아니면 둘 다 가능성이 똑같을까?

 

(A) H T H T T H

(B) H H H T T T

 

대부분은 (A)라고 답한다. 그러나 사실은 둘의 가능성이 똑같다. 왜 그런 걸까? 동전던지기는 다음번 동전던지기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확률은 매번 2분의 1이 된다. 그러므로 (A)(B)의 확률을 구하려며, 2분의 1을 여섯 번(동전을 던지는 횟수) 곱하면 된다. 그러므로 두 개의 연속 모두 64분의 1, 1.5%가 나온다.

 

276p

고정화의 오류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갖고 타인을 판단한다. 이것은 단순화 전략의 하나다. 이 기법을 쓰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지 짐작할 수 있다. 상대방을 특정한 유형으로 분류한 다음, 상대의 다양한 특성들을 이 유형에 꿰맞추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고정관념은 계속 유지된다. 자신의 생각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만을 찾는 성향으로 인해 자신의 고정관념에 들어맞는 면만을 보기 때문이다.

 

* 대표성 간편추론법을 쓸 때처럼, 일반화시킬 때도 유사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일반화하면, 개인을 집단의 일부로 생각하고, 이 집단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따라 집단의 여러 특성이 개인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277~278p

미국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을 가능성과 상어에게 먹혀 죽을 가능성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클까? 대부분은 상어에게 죽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답한다. 하지만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을 가능성이 30배는 더 높다. 또 다른 예로 다음과 같은 죽음의 원인들을 생각해 보자. (1)독살이나 결핵 (2)백혈병이나 폐기종 (3)살인이나 자살 (4)온갖 사고나 뇌졸중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가? 두 번째가 더 일반적인 원인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를 고른다. 실제로 뇌졸중으로 죽을 확률이 40배는 더 높은데도, 사고로 죽을 확률이 뇌졸중보다 두 배는 더 높다고 생각한다.

 

278p

예를 들어 k로 시작하는 단어가 더 많을 것 같은가? 아니면 k가 세 번째로 오는 단어가 더 많을 것 같은가? 대부분은 k가 처음에 오는 단어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k가 세 번째로 오는 단어가 두 배는 더 많다.

이렇게 오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k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기는 쉽지만, k가 세 번째로 오는 단어는 생각해 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가용성 간편추론법을 쓰기가 쉽다. 보통 특별한 것보다 일반적인 일을 더 쉽게 기억하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가용성 간편추론법을 쓰면 이런 사건들을 과대평가하게 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피실험자들에게 명단을 주고 이들 중에 남자가 더 많은지 어떤지를 판단해 보라고 했다. 하나의 그룹에는 잘 알려진 남자들 이름이 들어 있는 명단을 주고, 다른 그룹에는 잘 알려진 여자들 이름이 포함된 명단을 주었다. 그러자 두 그룹 모두 잘 알려진 인물이 남자(여자)일 때는 남자들(여자들)이 더 많다고 오판했다.

 

278~279p

비행기로 750마일을 여행해야 한다고 하자. 그런데 친구가 공항까지 20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차로 태워다 주었다. 친구는 당신을 터미널에 내려주고 이렇게 말한다. “안전한 여행되길 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친구에게 집까지 안전하게 돌아가라고 당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신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사고로 죽을 가능성보다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동차 사고로 죽을 가능성이 세 배는 더 높다.

 

279p

부모에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걱정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유괴라고 답했다. 실제로 아이가 유괴당할 가능성은 70만 분의 1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반면에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을까 봐 걱정하는 부모는 훨씬 적었다. 교통사고로 죽을 가능성이 유괴당할 가능성보다 100배는 더 높은데도 말이다. 부모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유괴사건이 일어나면 대중매체에서 크게 다루지만 교통사고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280p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권이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생각에 복권을 사러 24시간 편의점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심리학자 데이비드 메이어가 지적하듯, 복권을 사기 위해 10마일을 운전해서 갈 경우,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이 16배는 더 높다.

 

281p

이렇게 일을 억지로 밀고 나간 이유는, 농축코카인을 포함한 마약매매를 심각한 국내 문제로 대중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실제로는 지난 10년간 미국인의 마약 사용량이 줄어든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대중매체는 농축코카인이 인간에게 알려진 약물 중에서 중독성이 가장 강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공중위생국 장관의 보고에 따르면, 농축코카인 사용자 중에서 중독자는 33%가 채 안 되지만, 일정 기간 담배를 피운 사람들 중에서 담배에 중독되는 비율은 80%나 된다.

 

282p

1980년대 말, 미국 국회는 코카인 가루보다 농축코카인을 소지했을 때 더 과중한 형량을 부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까지 코카인 가루는 주로 백인들이 사용하고 농축코카인은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마약 관련 수감자 중에서 네 명 중 셋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실제로는 백인이 코카인을 더 많이 사용했는데도 말이다.

 

283~284p

10이나 200이라는 숫자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숫자를 높여서 질문하자, 전문가들이 추정한 회사의 수는 거의 세 배나 증가했다. 왜 그런 것일까? 이들이 정박과 조정(anchoring and adjustment)이라는 간편추론법을 썼기 때문이다. 이 추론법에서는 먼저 추산(, 정박)을 한 다음, 새로운 정보가 얻어질 때마다 이것을 조정한다. 그러나 처음에 추정을 잘못하거나 새로운 정보가 생겼을 때 조정을 충분히 안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284p

또 다른 예로 다음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어떤 식으로든 계산은 하지 말고, 5초 동안 추산해 본다.

 

8X7X6X5X4X3X2X1=?

 

답이 어떻게 나오는가? 사람들은 평균 2250이라고 답했다. 그럼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다음의 문제를 물으면 어떻게 답할까?

 

1X2X3X4X5X6X7X8=?

 

숫자는 똑같은데, 평균 512라고 답했다. 이유가 뭘까? 사람들은 처음의 숫자들을 정박시켜둔다. 그런데 첫 문제의 경우 이 숫자들이 더 높으므로, 사람들이 답으로 내놓은 숫자도 더 높아졌다.

 

287p

실제로 단순화 전략이 도움이 되는 경우들은 많다. 가용성 추론법을 쓰면, 관련 정보들을 힘들게 전부 조사하는 대신에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자료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면 된다. 이런 방법이 효과적인 이유는, 우리가 흔히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큰 일반적인 일들을 가장 쉽게 떠올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린 사람들을 더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암보다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우리를 올바른 판단으로 인도한다.

 

290p

컵에 물이 반이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컵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 조지 칼린

 

292p

요컨대 이 두 쌍의 시나리오가 제시하는 선택은 똑같지만, 우리는 아주 다르게 반응한다. 왜 그럴까? 질문의 (frame)’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질문은 목숨을 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도 이득이라는 틀 속에서 생각하게 된다. 반면에 두 번째 질문은 목숨을 잃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상실의 틀 속에서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문제를 이득의 틀에서 보느냐 상실의 틀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단적인 예로 그 유명한 컵을 반이나 찬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반밖에 차지 않은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판단은 정말로 달라진다!

 

293p

한 예로, 71명의 노련한 경영자들에게 비슷한 상황에서 사업적인 결정을 내리게 했다. 이 경우 경영자들은 처음의 대안을 선택하면 40만 달러를 잃거나 20만 달러를 얻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40만 달러를 잃는 것으로 질문의 틀을 잡자, 이 대안을 선택한 경영자는 25%밖에 안 됐다. 반면에 20만 달러를 얻는 것으로 틀을 잡았을 때는 63%가 이 대안을 선택했다.

 

이들 중 일부는 문제를 삶의 틀에서 보게 하고, 다른 이들은 죽음의 틀에서 생각하게 했다. 예컨대 이중 약 반에게는 수술을 받으면 1년 이상 살 가능성이 68%라고 말해 주고, 나머지 반에게는 수술을 받으면 1년 안에 죽을 확률이 32%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전자의 경우에는 75%가 수술을 선택한 반면, 후자는 58%만 수술을 선택했다.

 

295p

방금 1000달러를 잃었다고 하자. 기분이 어떨까? 그럼 이제 1000달러를 벌였다고 생각해 보자. 대부분이 1000달러를 벌었다며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1000달러를 잃었을 때다. 1000달러를 번 것보다 1000달러 잃은 것을 더욱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손실혐오(loss aversion)라고 부른다.

 

296p

이번에는 이 운동 경기를 보고 싶은데 표가 없다고 생각해 보자. 이 표를 사는 데 얼마까지 기꺼이 지불할 수 있겠는가? 갖고 있던 표를 팔 때는 대개 표를 살 때 지불했던 금액의 두 배를 요구한다. 왜 그럴까? 자신의 것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소유물은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타인의 소유물은 과소평가한다.

 

297p

이것을 소유효과라 부르는 이유는 어떤 물건이 우리의 소유물일 때 그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299p

심적회계가 일어나면, 우리는 돈을 서로 다른 범주나 계좌 속에 집어넣고, 이 계좌의 성격에 따라 돈을 다르게 다룬다. 그러나 사실 이런 심적 회계로 인해 돈을 낭비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모든 돈을 대용 가능성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월급이든 선물로 받은 돈이든 도박에서 딴 돈이든, 다르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돈들은 모두 똑같이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

 

대부분이 세금환급금을 거저 얻은 돈으로 생각해서 마구 써버린다. 세금환급금이 사실은 월급의 일정액을 강제로 저축해 두었다가 나중에 지불받을 돈인데도 말이다. 자발적으로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어 저축했을 때는 나중에 이 돈을 어떻게 쓸지 신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세금환급금은 전혀 이렇게 다루지 않는다. 왜 그럴까? 마음속으로 세금환급금을 별도의 계좌 속에 집어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 Why Smart People Make Big Money Mistaken, p.36. 환급액의 크기도 영향을 미치는 한 가지 요인이다. 적은 금액은 대개 써버리지만, 큰 금액은 은행에 숨겨둔다. 환급액이 많으면 쓸 돈도 많을 텐데 이렇게 하다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301p

마찬가지로 F. Leclerc, B. Schmitt, and L. Dube, “Waiting Time and Decision Making: Is Time Like Money?”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22(1995)를 본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표를 사려고 40분 동안 기다리는 일을 면하는 것에 얼마를 쓰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표 값이 45달러일 경우 15달러일 때보다 두 배는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답했다.

 

304~305p

흑인이 농구계를 주름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전적 자질을 포함한 온갖 이유들이 제시되었다. 어떤 이는 흑인이 더 높이 도약하고 더 빨리 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흑인이 농구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사실 다른 식으로는 설명이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사후확산편향(hindsight bias)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사람들은 그 일을 처음부터 분명했던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인과적 설명을 찾아낸다. 그래서 흑인이 유전적 특질 덕분에 프로 농구계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말도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다음의 사실을 기억해 보라.

한때는 유대인 농구계를 지배했었다. 1920~1940년대까지 농구는 주로 이스트 코스트의 도시빈민 지역에서 행해졌다. 당시 농구를 했던 사람들은 대개 억압받던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르포 기자인 존 엔티네의 말에 따르면, 유대인이 농구계를 장악하자 당시 스포츠 기자들도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했다고 한다. “기자들은 유대인이 유전적·문화적으로 농구 경기의 긴장과 체력을 잘 견디게끔 되어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또 키가 작은 사람은 균형도 잘 잡고 뛰는 속도도 더 빠르기 때문에 유대인이 농구를 하기에 유리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한편 유대인이 주의력도 더 뛰어나고 더 영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306p

어떤 일의 결과를 알게 되면,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1)결과를 불가피한 것처럼 여긴다. (2)일이 그렇게 되어버린 이유를 쉽게 결론지어 버린다. 요컨대 어떤 일의 결과를 알면, 우리는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한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엄연히 존재했던 불확실성들은 잊어버리고, 실제로 벌어진 일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과거를 재국성하는 것이다. 지식의 저주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사후확신편향이 있으면, 경험을 통해 배우기도 힘들어진다. 결과를 보고 스스로를 일깨우지 않으면, 결과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307p

의사나 변호사, 증권분석가, 기술자 등과 같은 전문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예로, 의사들은 폐렴 진단을 내리고 나서 자신의 진단을 88% 확신했다. 그러나 실제로 폐렴에 걸린 환자는 20%에 불과했다. 또 변호사들 중에서 68%가 승소를 확신했지만, 실제로 이긴 경우는 50%에 지나지 않았다. 도 주가의 상승과 하락을 전망한 예측들 중에서 정확한 것은 47&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예측에 대해서 평균 65%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뿐인가? 우리 중에서 85%는 자신이 보통 사람들보다 운전을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우리는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일관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

 

309p

그런데 실패를 기억해도,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이 실패를 해석한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 에일린 랭거는 이것을 가리켜 앞면 승리 뒷면 승리 가능성(Heads I win, tails its chance)’ 현상이라고 부른다. 도박사들의 행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결과가 좋으면 우리의 지식과 능력 때문에 그런 긍정적인 결과가 생겨났다고 믿는다. 반면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실패도 우리의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깨뜨리지 않는 쪽으로 재해석한다.

 

311p

어느 연구에서는 휴스턴에 있는 텍사스 대학교 의과 대학생들의 성적을 비교해 보았다. 텍사스 주 의회는 대학 당국에 입학 정원을 늘리라고 권고했다. 그래서 대학 당국은 입학사정위원들의 면담 결과, 지원학생들 중에서 하위에 드는 학생들도 입학시켰다. 그런데 입학사정위원들이 상위 그룹으로 평가한 학생들과 이 학생들은 대학 성적에 별 차이가 없었다.

 

315p

실제로 전문가들의 직관적 판단이 통계학적 자료에만 의자한 판단보다 별로 정확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직관적 판단이 더 부정확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직관적 판단을 여전히 확신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판단이 이처럼 부정확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 형편없어서 예측을 하기가 어려울 경우들도 있다. 예컨대 믿을 만한 진단법이 없어서, 환자의 병이 심리적인 것인지 신체적인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 때도 있다. 반면에 유용한 정보가 있는데, 이것들을 잘못 해석하거나 오용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정보는 무시하면서 덜 중요한 정보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또 입학심사위원들처럼 판단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판단 전략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326p

19861월 챌린저호 추락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 연구자들은 여러 명의 학생에게 이 소식을 처음 어떻게 들었는지 물었다. 그리고 2년 반이 지난 뒤 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거의 모든 학생이 2년 반이 지났어도 자신의 기억은 정확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억 중에서 완벽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완전히 틀린 기억도 3분의 1을 넘었다.

 

실제로 이들은 챌린저호가 추락했을 때보다 지금 기억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심리학자 울릭 나이서가 지적한 것처럼, 최초의 기억은 우리 두뇌 속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새롭게 재구성된 실재들이 이 기억들을 대체한다.

 

332p

거짓 자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하게 일어난다. 연구자들은 대학생들에게 자신들이 불러주는 글자를 입력하게 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망가질 수 있으므로 Alt 키를 누르지 말라고 했다. 학생들 중에서 이 키를 누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연구자들은 이 키를 눌렀다고 학생들을 비난했다. 처음에는 학생들도 이를 부정했다. 그러나 연구자들과 공모한 증인들이 학생들이 Alt 키를 누르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자, 70%의 학생들이 거짓자술서에 서명했다.

 

333p

1692년 세일럼의 마녀사냥으로 19명이 교수형을 당했으며, 한 명이 죽음을 강요당하고 수백 명이 수감되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한 예로, 우리는 이미 억압된 기억을 빌려 우리만의 마녀사냥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학대 같은 범죄행위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데도, 되살아난 거짓 기억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썩고 있다.

 

336p

귀인오류 머릿속이 뒤범벅이야!

어느 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친구 딕이 그의 아내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전부 그의 아내가 처했던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런데 그때 식탁에 있던 한 동료가 이렇게 소리쳤다. “그거, 지난주 심슨네 가족들에 나왔던 이야기 아냐?” 사실인즉, 딕이 심슨네 가족들이라는 텔레비전 쇼에서 본 내용을 그날 아내가 들려준 경험담과 혼동한 것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런 귀인오류(misattribution)는 아주 흔하게 일어난다.

 

340p

증인의 잘못된 증언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자료는 있다. 목격자 증언을 근거로 판결을 내리는 건수는 미국에서 해마다 75000건이 넘는다. DNA 분석 결과 엉뚱한 사람을 수감한 것으로 밝혀진 40건의 사례들을 최근에 분석해 보았는데, 이 중 36, 90%가 증인의 잘못된 증언과 연관되어 있었다.

 

* 연구자들은 또 거짓 확인도 보고했다. 한 예로, 연구자들은 학생들로 이루어진 증인들에게 일정 시간 동안 범죄자들을 보게 했다. 증인들은 잠재적인 범죄자들에게 면밀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다. 연구자들은 2~3일 후 이들에게 범인들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이후 4~5일 뒤에는 줄지어 서 있는 용의자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용의자 열에 서 있던 무고한사람들 중에서 18%를 범인으로 잘못 지목했으며, 얼굴 사진첩 중에서는 29%를 잘못 지적했다.

 

341p

몇몇 기억의 문제들이 두뇌의 특정 부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해마상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기억 결합 오류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점을 밝혀냈다. 게다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데도 해마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5년 전에 해마상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그 후의 기억은 전혀 못해도 그 전의 일들은 기억했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두뇌가 특별한 회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 해마상에 기억이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기록하는 데 해마상이 필요한 것이다. 한 예로,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은 수학과 철학을 논할 수 있는 지적인 환자를 만났다. 그런데 라마찬드란이 잠시 방을 나갔다 돌아오자, 환자는 자신이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349p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복종에 대한 고전적인 실험을 했다. 밀그램은 먼저 40명의 정신의학자들에게 사람들이 전기 충격을 어느 정도까지 가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희생자가 나가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시점, 150볼트 정도의 전압에서 거의 대부분이 멈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에서 약 62%가 끝까지 전기 충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었을까? 천만에! 이들 역시 희생자에게 가학적이거나 무감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격을 가할 때 땀을 흘리거나 몸을 떨거나 말을 더듬었다. 그러면서도 멈추지는 않았다. 게다가 남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교육 배경을 막론하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했다. 또 오스트레일리아와 요르단, 스페인, 서독 등과 같은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왜 이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한 걸까? 권위적인 인물에게 복종하는 성향이 우리의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350p

이처럼 우리에게는 권위자의 주장을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권위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그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계획을 관철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354p

애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럴 때 피실험자가 틀린 판단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약 3분의 1 정도였으며, 피실험자들 중에서 4분의 3이 적어도 한 번은 틀린 견해를 받아들였다. 요컨대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판단을 내리면, 우리는 답이 분명한 문제도 틀리게 판단할 수 있다.

 

355p

우리의 행위 모델인 부모를 모방함으로써 믿음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나 다른 권위적인 인물이 우리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천사와 악마, 지옥이 존재한다고 말하면, 이들과 같아지기 위해서 우리도 이것들을 강하게 믿는다. 실제로 어른이 된 후에도 이것들을 믿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여긴다. 반면에 환생 같은 다른 종교의 주장은 괴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가 환생이 사실이라고 가르쳐주면,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믿음을 쉽게 뒤집어버린다.

 

357p

또 다른 연구에서는 한 사람에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부러 연필을 떨어뜨려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연필을 집어주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연필을 집어주는 경우는 적었다. 실제로 56건의 실험 중 48건에서 똑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대체로 혼자일 때는 도움을 주는 경우가 평균 75%에 달했지만, 여럿이 있을 때는 53%밖에 안 됐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집단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아홉 살 미만의 아이들이었다.

또 우리는 무리에 섞여 있을 경우 혼자일 때만큼 열심히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사람들은 여덟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 속에 있을 때보다 혼자일 때 밧줄을 47%나 더 세게 잡아당겼다. 그 뿐만 아니다. 간단한 일이냐 복잡한 일이냐에 따라, 타인의 존재는 우리의 행위에 다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평균 이상의 당구 선수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 공을 더 잘 치는 반면, 평균 이하의 선수들은 공을 더 못 쳤다. 실제로 200가지도 넘는 연구 결과를 분석해 본 결과, 복잡한 일의 경우에는 보는 사람이 있을 때 일의 정확도가 떨어진 반면, 간단한 일의 경우에는 정확도가 약간 높아졌다.

 

360p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믿음을 공유하는 정도를 실제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거짓합치성 효과(false-consensus effect)라 한다. 한 예로, 학생들에게 회개합니다.”라는 글을 큭 쓰인 옷을 입고 교정 안을 돌아다닐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럴 수도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60%의 다른 학생들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그럴 수 없다고 답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 중에서 약 27%만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367p

다른 견해로부터 차단되어 있을 경우,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은 다른 궁극적인 사태에 적절한 대비책을 세워놓지도 않고 위험한 행동을 무릅쓰기 쉽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집단사고의 문제를 줄일 수 있을까? 최선 중 하나는 집단 지도자들이 반대 견해들을 확실하게 이끌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아예 구성원 중 한 명을 전략적인 트집쟁이 의론이나 견해의 타당성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 로 임명한 다음, 그 사람 말을 진지하게 숙고하라고 못 박아 두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

일본 기업체들도 이런 사항들을 준수한다. 그래서 회의 때는 직급이 가장 낮은 직원에게 먼저 의견을 말하게 한다.

 

368p

집단극화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네 생각을 좀 듣고 싶어. 의사가 그러는데, 내 심장병이 심각해서 수술을 안 하면 일을 그만두고 식단도 바꾸고 내가 좋아하던 스포츠도 거의 다 그만두어야 한 대. 네 생각은 어떠니? 수술을 하는 게 좋을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심장병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의사가 성공 확률이 90%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또 성공 확률이 80%70, 60, 50%라고 한다면? 최소한 몇 %가 돼야 수술을 권유하겠는가?

369p

그러나 구성원들 대다수가 처음부터 이쪽이나 저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집단 전체의 판단은 이 방향으로 더욱 분명하게 기운다. 왜 그럴까? 대다수의 견해를 뒷받침해 주는 주장을 더 많이 고려하게 되고, 그러면 집단결정에 대한 개인의 책임감은 약해지기 때문이다. 집단 린치만 생각해 봐도, 집단극화가 불러오는 이런 끔찍한 결과들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370~371p

리더가 가만히 앉아서 개입을 안 할 경우에는 정답을 맞히는 비율이 72%, 리더가 구성원 전원에게 참여를 부추길 때는 84%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적극적인 리더는 처음부터 정답을 맞힌 구성원이 한 명뿐일 때, 특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구성원들 중 처음부터 정답을 맞힌 사람이 한 명뿐일 경우, 소극적인 리더를 둔 집단에서는 36%, 적극적인 리더를 둔 집단에서는 76%가 정답에 도달한 것이다. 요컨대 집단사고의 경우처럼, 리더가 반대 의견을 북돋워주는 것이 집단결정의 정확성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이다.

 

372p

우리의 지식은 유한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무지는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 칼 포퍼

 

오늘날 이 세계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리석은 자들은 확신에 차 있는 반면 지적인 사람들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버트런드 러셀

 

377p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의 말처럼, “우리를 곤란에 빠뜨리는 것은, 흔히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인 것이다.

<엔트로피요약

제레미 리프킨 지음/세종연구원 발행/2005.12.15.(200.5.25 초판/미국 출판 1980)

 

102~103p

11세기가 되자 오늘날 볼 수 있는 마구와 편자가 고안되었고말 두 마리를 앞뒤로 부리는 방법이 완성되었다.

9세기부터 12세기가지 농작물의 잉여분이 생겼고 이에 따라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기존 농경지의 지력이 끊임없이 소진되었고더 많은 경작지를 얻기 위해 대대적인 벌목이 행해졌다.

14세기 중엽이 되자 유럽인들은 엔트로피 분수령에 도달했다인구가 에너지의 기반을 갉아먹었고 지력이 쇠퇴했으며나무는 부족해서 서유럽과 북유럽 사람들은 위기에 직면했다. 12세기 유럽 일부에서는 풍차(더 많은 경우 수차)를 이용해서 과거에는 불모지였던 땅을 경작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그들은 산림파괴와 인구증가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네일William McNeil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북유럽 대부분은 14세기 중엽에 일종의 인구 포화점에 도달했다서기 900년쯤 시작된 개발 붐으로 인해 거대한 장원과 농경지가 계속 들어섰고이로 인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숲이 드물어졌다숲은 연료와 건축자재의 원천으로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목재의 부족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105p

1700년경 영국에서 석탄은 에너지원으로서 나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그로부터 150년 사이에 서유럽 대부분이 같은 길을 걸었다.

 

109p

17세기와 18세기가 되자 인구증가로 인해 농경지 수요가 늘어 양의 방목은 경제성이 없어졌다(“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당시의 유명한 슬로건이다). 사람들은 목초지를 경작지로 바꿀 것을 요구했고이렇게 되자 양털을 대체할 재료가 필요해졌다여기에 대한 답이 바로 면이었다면화는 해외 식민지에서 값싸게 재배하여 본국으로 수입하여 의복으로 가공하면 되었다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영국 근로계층의 생활조건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로자들은 양모로 된 옷은 어떤 것이든 거의 입지 못한다그들이 입는 무거운 면은 양모보다 두껍고뻣뻣하고무겁기만 하지 양모처럼 추위와 습기를 막아주지는 못한다반면 신사들은 양모로 만든 옷을 입었다브로드클로스broad cloth(폭이 넓고 질이 좋은 모직 천)라는 말은 중류계급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139p

미국 인구는 세계 총인구의 6%에 불과하지만 전세계 에너지 총소비량의 1/3을 차지한다스웨덴과 서독(통일 이전)의 경우미국과 비슷한 생활수준이지만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미국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1970년 미국은 석유천연가스석탄원자력 발전소에서 1조 7,0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생산했다이것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 4대 소비국가(소련일본서독영국)의 발전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아이티 같은 나라는 1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이 석탄 환산 68파운드(석탄으로 환산할 경우)이다미국은 이 수치가 2만 3,000파운드이다.

 

140p

세계의 에너지 수요는 2000년이 되면 현재의 네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이것은 주로 인구의 폭발적 증가 때문이다인구통계를 보면 매일 33만 3,000명의 아기가 지구상에 태어나는데, 1일 사망자 13만 4,000명을 빼면 24시간 동안 20만 명의 인구가 증가는 셈이다. 1년이면 7,300만 명이 증가하게 되고이들은 살기 위해 유용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세계 인구가 10억 명에 도달하는 데는 200만 년이 걸렸고, 20억이 되는 데는 1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그리고 1930년에서 1960년 사이 30년 동안 이 숫자는 30억으로 늘어났다그로부터 15년 후에는 40억에 도달했다현재의 세계 인구증가율 1.7%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2015년에는 현재의 두 배인 80억이 될 것이고, 2055년에는 다시 그 두 배인 160억이 될 것이다.

 

158~160p

1967년 이래 세계의 산림 생산성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어업은 1970년 정점에 달했으나 이제 긴 역사를 자랑하던 많은 어장에 고기의 씨가 말라버렸다.’ 연간 1인당 곡물생산을 kg단위로 계산해서 얻는 경작지 생산성도 1976년에 최고에 달했다. 1인당 양모양고기쇠고기(모두 풀밭에 의존한다생산량은 모두 감소하고 있다.

10대 주요 광물의 수요가 현재처럼 매년 3%씩 성장하면수백 년 후면 우리는 지구 전체를 파먹어버릴 것이다인류의 역사는 350만 년쯤 되고 지구의 역사는 40억 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것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현 추세로 소비가 증가한다면 1백 년 후의 구리수요는 현재의 90니켈은 28망간은 17배가 되어 바다에서 얼마쯤 건져올린다고 해야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버틸 수 있을 뿐그 이후에는 모든 광물이 완전 고갈될 것이다.

 

179~180p

미국은 매년 1,100만 톤의 철, 80만 톤의 알루미늄, 40만 톤의 기타 금속, 1,300만 톤의 유리, 6,000만 톤의 종이를 버린다이외에도 170억 개의 깡통, 380억 개의 병, 760만 대의 TV, 700만 대의 자동차가 매년 폐기된다.

1인당으로 봐도 엄청나다. 1974년에 미국 사람들은 1인당 10톤의 광물자원(1,340파운드의 금속 및 1만 8,900파운드의 비금속 광물 포함)을 소비했다일생 동안 미국인 한 사람은 평균 700톤의 광물자원을 소비하는 셈이고이 중에는 약 50톤의 금속이 포함되어 있다화석연료와 목재까지 포함하면 1인당 사용량은 두 배로 늘어나 1,400톤이 된다물로 이 수치는 물과 식품을 뺀 수치이다.

중류층 미국인 한 사람은 200명의 인간노예가 생산하는 것만큼의 일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보통 사람의 1일 식사는 2,000칼로리쯤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그러나 자동차전기 등을 쓰고 가공식품을 먹기도 하면서 소비하는 에너지는 20만 칼로리쯤 된다생존을 위해 필요한 칼로리의 100배 정도를 쓰는 셈이다에너지 소비의 측면에서 볼 때미국 인구는 2억 2,5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의 사용량은 220억 명의 사용량과 같다는 이야기이다.

 

183p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세계 인구의 1/3 가까운 15억 명의 사람들이 오늘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든다.

수십 년 후면 세계 인구가 현재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되므로식량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압력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커질 것이다미국 농업은 이미 세계의 밀과 사료곡물의 20%를 생산하고 있으며이 중 절반 이상을 각국에 수출하고 있다.

구식’ 농부는 자신이 투입한 에너지 1칼로리당 10칼로리의 에너지를 생산한다물론 아이오와 주의 농부는 자신이 투입한 에너지 1칼로리당 6,000칼로리를 생산할 수 있다그러나 그의 체력 이외에 여기에 투입된 모든 에너지를 합산하면 이것은 엄청난 환상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270칼로리짜리 옥수수 깡통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이 농부는 무려 2,790칼로리를 소비한다이 중 대부분은 영농기계를 가동하는 데 들어가며그가 사용하는 화학비료와 농약도 에너지를 투입하여 생산된 것이다그러므로 그는 에너지 1칼로리를 생산하는 데는 10칼로리를 소비한 것이 된다.

오늘날 농업은 미국 경제 전체 에너지 소비의 12%를 차지한다.

 

184p

같은 기간 동안 무기질소비료의 사용량은 1950년 100만 톤에서 1970년 700만 톤으로 일곱 배가 되었다농약 사용량은 이보다 더 늘어났다.

어떤 권위있는 연구보고에 따르면 1968년에 같은 수준의 수확량을 유지하기 위해 1949년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질소비료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185p

1950년 20만 파운드이던 농약 사용량은 1976년 16억 파운드로 늘었다.

엄청난 양의 농약을 뿌려대도 병충해에 의한 작물손실은 지난 30년간 전체 수확량의 1/3에 달했기 때문이다이것은 간단히 설명된다해충들이 농약에 대해 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환경의 질에 관한 정부위원회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305종의 곤충진드기 등이 하나 이상의 농약에 대해 내성을 발휘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1~192p

미국에서는 자동차 사고로 매년 5만 5,000명이 사망하고 500만 여명이 불구가 된다미국 안전위원회는 지난 200년간 미국이 개입된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 수보다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의 수가 더 많다고 추정한다겨우 지난 30년간 1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차에 치어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교통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 및 재산상의 손실은 다른 모든 범죄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의 10배이다. 1969년에 교통사고로 인한 손실은 130억 달러로 집계되었다. 1975년에 자동차 사고와 관련된 손실의 사회적 비용은 370억 달러에 달했다.

 

197p

고대 아테네의 인구는 5만 명 정도였고바빌론은 10만 명이 약간 넘었다수백 년이 지난 르네상스 시대에도 도시의 크기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오히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활동한 피렌체의 인구는 5만 명 정도였고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정화를 그릴 당시 로마의 인구는 5만 5,000명 선이었다. 16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유럽 도시인구는 2만 명도 되지 않았다독립전쟁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는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였는데둘 다 인구가 5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198p

19세기 초에 산업혁명이 각지로 퍼져감에 따라 이 모든 것은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1820년 런던은 세계 최초로 인국 100만 명을 돌파했다. 1900년이 되자 인구 100만 명을 넘는 도시는 11개가 되었다. 1950년에는 75개였고 1976년에는 191개로 늘어났다현재의 세계적인 성장추세로 보아 1985년에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273개로 증가할 것이고이들 중 대부분은 제3세계 국가의 도시일 것이다.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아도 도시의 주민수는 이제 절대다수에 육박하고 있다. 1800년 세계 총인구는 10억이었던 것으로 추산되는데이 중 2.5%에 불과한 2,500만 명만이 도시에 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러나 1900년에는 세계 인구의 15%, 1960년에는 1/3이 도시에 살았다현재처럼 증가추세가 지속될 경우 서기 2000년이 되면 인구 십만 명 이상의 도시에 사는 사람수가 1960년도 세계 총인구보다 많을 것이다.

 

199p

고대의 대도시 바빌론은 면적이 3.2평방마일에 불과했다성곽으로 둘러싸인 중세의 런던 면적은 현재의 1/150에 불과했다.

전성기의 로마 인구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그러나 로마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식민화해야만 했다무수한 노예집중적 경작방식대규모 수도교의 건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력한 군대가 없었더라면 로마는 그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었다로마는 태양에 의존하는 농업 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이러한 기반이 가하는 근본적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로마는 온 세상을 약탈해야 했던 것이다.

 

200p

결국 팽창할 대로 팽창한 이 거대도시는 안팎으로 와해되기 시작했고게르만 정복 후에야 에너지 평형을 회복할 수 있었다그 후의 로마인구는 3만 명에 불과했다.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는 보통 하루에 400만 파운드의 식량을 필요로 한다톤으로 환산하면 2,000톤에 달하는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는 전적으로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농업시스템에 의존한다.

 

201p

100만 명의 도시는 하루에 9,500톤의 연료와 62만 5,000톤의 물을 필요로 한다.

 

256p

300만 가구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하려면 20만 명의 사림이 8억 평방피트의 집열판을 만들고 설치하는 데 매달려야 하며그 비용도 200억 달러가 넘는다.

 

259~260p

60%의 태양 에너지 전환효율을 가진 장치를 250만 가구에 건설하려면 현재 미국의 구리 총소비량 중 1/3을 써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반을 태양연료전지(현재 알려진 태양 에너지 전환장치 중 가장 효율적인 것)로 발전시키려면 매년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백금의 총량보다 더 많은 백금이 연료전지 제작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대규모 태양 에너지인프라를 건설하려면 앞서 말한 것들 외에도 엄청난 양의 재생불가능한 자원이 소요된다카드뮴규소게르마늄셀레늄갈륨비소황뿐만이 아니라 수백만 톤의 유리플라스틱고무 그리고 대량의 에틸렌글리콜액체금속프레온 등이 필요하다어떤 자료에 의하면 태양광을 직접 전기로 전환하기 위해 황화카드뮴 셀을 사용할 경우 18만 메가와트만 발전하려 해도 1978년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생산되 카드뮴을 모두 써야 할 것이다.”

 

278p

유기농법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퇴비나 천적을 이용한다두 가지를 비교한 연구결과를 보면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거의 비슷하지만 유기농법은 화학농법보다 에너지를 2/3 정도 덜 쓴다유기농법은 소출 1달러당 6,800BTU의 에너지를 쓰는 반면 재래식 농법은 1만 8,400BTU의 에너지를 쓴다고도로 기계화된 영농기계와 대량의 화학비료 및 농약에 의존하는 재래식 농법의 비용은 1에이커당 평균 47달러가 드는 반면 유기농법의 경우는 31달러에 불과하다.

 

283p

미래학자이며 작가인 샘 러브Sam Love는 적정기술을 지역 단위로 만들어지고노동집약적으로 활용되고탈집중적이고수리가 가능하고재생가능한 에너지로 가동되고생태적으로 안전하며 공동체 건설에 기여하는 기술로 정의하고 있다중급기술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진 E. F. 슈마허는 이렇게 말한다. “중급기술은 저엔트로피의 형태의 기술로 옛날의 원시적인 기술보다는 훨씬 뛰어나지만 오늘날의 최첨단 기술보다는 단순하고 값싸며더 자유로운 기술이다이것을 스스로 돕는 기술’, ‘민주적인 기술’, ‘대중의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이 기술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고 따라서 부유하고 권력있는 사람들이 독점하는 기술이 아니다.”

 

284p

인류역사의 거의 전부인 수백만 년이 지난 1800년 경이 되어서야 세계 인구는 10억 명이 넘어섰다.

재생불가능한 자원에 의존한 산업시대는 인류역사의 0.02%밖에 되지 않지만 인구증가의 80%가 이 기간 중에 이루어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구증가에 관한 열역학적 시각이 갖는 의미는 놀라운 것이다산업혁명 이전의 태양 에너지 시대에 지구가 인간을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은 10억 명에 불과했다그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도 지구의 자원은 크게 착취당했다재생불가능한 자원으로부터 고에너지 흐름이 시작되자 그 직접적인 결과인 35억 명의 사람들은 지구에 부담이 되었다.

 

285p

세계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줄이냐이다. 여기에 의해 많은 의견이 나와 있다. 둘만 낳기, 둘 이상 낳을 경우 하나가 태어날 때마다 무거운 세금을 부담시키는 방법, 간디 시절 인도에서 1,100만 명에게 강제로 불임시술을 시키는 것과 비슷한 조치를 취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기껏해야 혐오스럽다는 얘기만 들을 뿐이다. 왜냐하면 사회에 의해 강제되기 때문이다. 유일한 대안은 엔트로피 패러다임을 완전히 내재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 스스로 아이를 갖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여 인구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이 태어날 때마다 결국 그 다음에 올 세계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써야 할 자원을 우리의 아이들이 미리 써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고 나면 좀더 인도적인 인구통계를 향해가는 가치관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

- 조지프 핼리넌 지음/김광수 옮김/문학동네 펴냄/2012.5.7

 

10~11p

  비행기 사고의 70퍼센트, 자동차 사고의 90퍼센트, 직장 내 사고의 90퍼센트가 당사자들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비난받을 대상도 인간이다. 그러나 비난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적절한 해결책에서 멀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비난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의 상당수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인간은 주변 세계를 보고 기억하고 인지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구조적 편향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구조적 편향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예를 들어 오른손잡이는 건물에 들어설 때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길이 가장 가까워서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숫자 7이나 푸른색 계통을 이유 없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의 첫인상에 집착하는 태도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시험을 볼 때도 처음 적은 답을 웬만하면 바꾸려 하지 않는다.

 

15p

  운전자가 대시보드 위의 GPS 기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사고를 냈을 때 사람들은 그 책임을 운전자에게 돌린다. 그러나 같은 사고가 또다시 반복되는 것을 피하려면 운전자를 바꾸기보다 자동차 시스템을 바꾸는 편이 효과적이다.

 

17p

  포드에서 만든 마취약 조절 밸브는 시계 방향으로 돌려야 하는 데 반해 GM의 밸브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의사들이 착각해 밸브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 일이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치를 표준화해야 했다. 이후 두 기업은 밸브 방향을 통일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20p

  충분히 쉬면 행복감도 높아진다. 행복감은 체계적인 사고와 유연한 문제 해결의 밑거름이다. 그뿐만 아니라 행복감은 지나친 낙관주의를 경계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실수를 자초한다. 과신이야말로 실수의 주요 원인이다.

 

26p

  예를 들면 적정 시거리에서 명확히 바라볼 수 있는 시야의 범위는 전체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눈은 1초에 세 번씩 대상을 바라보고 이동하고 정지하면서 범위의 한계에 대응한다.

눈을 움직여 바라보는 대상은, 보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예컨대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도 실제로 남자와 여자가 보는 대상은 다르다. 소매치기가 여자의 지갑을 낚아채는 장명을 포착할 때, 여자는 소매치기 당하는 여자의 외모와 행동을 눈여겨보는 데 비해 남자는 도둑의 인상착의를 더 세밀히 살핀다.

또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에 비해 대상의 방위를 더 정확히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7p

  시선고정 시간이란 인간의 운동 반응을 신체에 정확히 입력하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목표물을 마지막으로 훑어본 순간부터 신경계가 처음으로 가동하기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연구진은 농구의 자유투에서 사격의 격발에 이르기까지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 전문가와 초보자 사이에 시선고정 시간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문가에게는 시선을 오래도록 고정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도 알아냈다.

 

28p

  맹점 중에서도 매우 황당한 것으로 주의맹이라는 것이 있다. 주의맹이란 눈 깜빡이 같은 사소하고 순간적인 시선 혼란으로 인해 그 장면에 나타나는 중대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32p

사이먼스는 인간의 눈이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각도는 겨우 2도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주먹을 쥔 채로 팔을 쭉 뻗어 엄지손가락을 세웠을 때, 엄지손가락의 폭과 눈이 이루는 각도가 약 2도이다.

 

 

33p

  세부 요소들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는가는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문짝 실험에서 사이먼스와 레빈은 상대방이 바뀐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일곱 명의 학생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모두 실험에 등장한 이방인과 비슷한 또래였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이 소속된 사회집단과 성향이 다른 사회집단의 사람들을 대할 때면 행동을 달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흑인은 같은 흑인을 만날 때와 다른 인종집단의 사람을 만날 때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만날 때, 젊은 사람이 노인을 만날 때,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사인먼스와 레빈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확대했을까?

 

36p

  ‘테이블 회전이라고 이름 붙인 이 착시모델은 지각의 왜곡현상이 우리의 신경계에도 깊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왜곡현상이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 결과, 눈앞에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어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서로 달라 보이는 두 테이블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누군가 얘기해 주어도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한다. 착오를 일으키고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39p

  울프 박사는 이 실험에서 얻은 교훈이 다른 상황들에도 적용된다고 말한다. 즉 사람들은 표적을 손에 넣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될 때는 서둘러 중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말한다. “제 생각은 그래요. 가당치도 않은 것을 찾아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일 자체가 어리석은 것 아닌가요?”

 

40p

메이요 의료원(Mayo Clinic) 의사들이, 과거에는 정상으로 판별되었지만 이후 폐암에 걸린 환자들의 X선 사진을 다시 검사했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왔다. 과거에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던 사진들의 90퍼센트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진은 당시의 암이 이미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까지진행된 상태였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방사선 전문의들이 무심코 놓친 것이다.

 

45p

  알다시피 인간의 장기기억력은 완전하지 못하다. 게다가 장기기억은 다분히 의미 중심적이다. 우리가 일상 사건들에 대해 기억을 떠올릴 때 그 사건의 표면적인 세부 요소보다는 의미를 기억한다는 뜻이다.

 

56p

  하지만 훗날 밝혀진 사실은 그 반대다. 특이한 장소는 기억하기 쉽기는커녕 오히려 잊어버리기 쉽다.

 

60p

  신생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성인인 우리도 누군가의 얼굴을 채 1초도 안 될 만큼 잠깐 바라보고도 그 사람에 대해 상당히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 게다가 상대방을 볼 때 항상 신체적 특징만을 보지는 않는다.

 

65p

  최근의 연구 사례들에서도 보듯이 사람을 잘못 알아보는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한 예로 1989년부터 2007년 사이에 미국의 수감자 중 201명이 유전자 증거를 통해 뒤늦게 무죄로 밝혀져 석방되었다. 더욱이 그중 77명은 증인의 잘못된 진술로 투옥된 경우였다.

 

66p

  아름다움을 인식할 때도 마찬가지다.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눈에 더 잘 띈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 300명을 노인과 젊은이, 흑인과 백인, 여성과 남성 집단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학교 졸업앨범을 보여주며 어떤 얼굴이 눈에 잘 띄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자 집단에 상관없이 대다수 피험자들은 미모가 뛰어난 사진을 우선으로 고르는 일관된 경향을 보였다.

범죄자의 얼굴을 규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인간의 이런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범죄의 추악한 얼굴이라는 비유적 표현도 있듯이,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범죄자들의 얼굴이 보통 사람들보다 추악해 보인다는 설을 입증했다.

 

72p

  더 중요한 사실은, 피험자들이 사진 속 인물의 능력을 추측한 시간이 대단히 짧았다는 점이다. 이어진 실험에서 피험자들이 정치인의 사진을 보고 그들의 능력을 추측한 시간은 각각 1초 이내였다. 게다가 연구진은 사진을 보여주는 횟수를 늘리더라도 피험자들의 처음 추측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첫인상이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73p

  여성의 신체가 월경 주기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월경기에는 얼굴 표정과 체형뿐 아니라 체취까지 달라진다. 실험 결과, 여성의 월경 주기 중 배란 직전의 얼굴이 (이성이 보기에는) 가장 매력적으로,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도 가장 멋지게, 체취도 가장 유혹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에서 주목할 사실은 변화의 정도가 눈에 띄게 확연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76p

남자들의 소비 습관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미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예컨대 특정 향기가 남자들의 지갑을 연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 실험에서 어느 소매점에 남성 취향의 방향제를 뿌렸더니 남성 1인당 평균 지출이 55달러였는데 반해, ‘여성 취향의 방향제를 사용했을 때는 그 절반도 안 되는 23달러에 그쳤다.

 

* 설명 가능한 경로로 무희의 목소리를 들 수 있다. 최근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생식주기에서 최고조에 다다른 여성들은 목소리가 더 매력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호르몬의 변화로 후두부의 형태와 크기가 달리지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Pjptone and Gallup(2008) 참조.

 

77p

값비싼 와인을 예로 들어 보자. 스탠포드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기술원의 연구진이 자원한 20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각각 5, 10, 35, 45, 90달러라고 적힌 와인을 맛보게 한 뒤 맛을 평가해달라고 주문했다. 피험자들은 와인 전문가가 아니라 우리처럼 간혹 와인을 마시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시음 후의 반응은 역시 예상대로였다. 가장 비싼 와인이 가장 맛있다는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시음 과정에서 연구진은 가격표와 내용물을 바꿨다. 90달러짜리 와인을 한 번은 90달러 병에, 또 한 번은 10달러 병에 넣었다. 45달러 와인도 한 번은 45달러, 또 한 번은 5달러 병에 넣었다. 이 사실을 밝히지 않고 시음을 계속했더니 피험자들은 예외 없이 높은 가격표가 붙은 왕ᅟᅵᆫ을 선택했다.

 

78p

우리의 판단을 흐르는 것은 가격뿐만이 아니다. 색상도 그중 하나다. 앞의 실험에서 약의 색깔에 따라서도 피험자들이 느끼는 약의 효능에 차이가 있었다. 실제 실험에서 사람들은 검정색과 빨간색 캡슐의 효능에 가장 강한것으로, 흰색이 가장 약한것으로 평가했다.

 

81p

그러나 살아가면서 가끔 경험하듯이,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답 바꾸기를 주제로 지난 70년 이상 진행해 온 연구를 살펴보면, 답을 바꾼 사람들 대다수가 틀린 답을 옳은 다으로 고쳐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객관식이든 양자택일형이든, 혹은 시간이 정해져 있든 없든, 시험의 유형과 상관없이 결과는 동일했다.

그런데도 처음 선택한 답이 정답이라는 신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로 학생들은 이런 연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도 여전히 처음의 답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2p

일반적으로 인간은 행동하지 않을 때보다 행동했을 때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무언가를 실행하다가 일이 어긋나버릴 바에야 차라리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수동적’,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인식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르는 죄책감도 훨씬 적다.

 

83p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사후에 가진 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밝혀졌다. 정답을 오답으로 바꾼 학생들 대부분이 오답을 정답으로 바꿀 시도조차 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훨씬 많이 후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두 경우 모두 정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바꿔서 틀리는 것보다 차라리 틀리더라도 내버려두는 편이 덜 후회스럽다는 뜻이다.

 

84~85p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처음 선택한 답을 고수하는 것이 더 훌륭한 전략이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크루거 교수는 사람들이 처음 선택을 고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게 된 배경에 이런 기억 편향도 한몫을 한다고 설명한다.

선택을 바꿔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반대의 현실을 더 잘 기억합니다. 역설인 셈이지요.”

 

90p

아마도 학생들은 성적이 나빴을 때보다 좋았을 때를 더 잘 기억하는 듯하다. 실제로 A학점을 기억한 비율이 89퍼센트였던 반해 D학점은 29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그래서 연구진은 F학점은 아예 계산도 하지 않았다).

91p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과거의 기억을 긍정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내용으로 재구성한다. 한 예로 부모는 자신들의 양육 방식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보다 전문가가 권유하는 이상적인 모델에 가깝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또 비슷한 예로, 도박꾼도 돈을 잃었을 때보다 땄을 때의 상황을 더 생생히 기억했다.

 

98p

실수를 유발하는 한 가지 중요한 원천이 바로 이 사후해석 편향이다. 사건의 결말을 충분히 알고 나면 과거의 그 사건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이 사후해석 편향의 핵심이다.

 

99p

게티즈버그 전투든 진주만 폭격이든, 사건이 지나고 나서야 역사학자들은 의미 없는 것들로부터 의미 있는 것들을 더 쉽게 추출해낼 수 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그 사건의 결과를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해석은 또 다른 무언가를 대가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른바 점진적 결정론이라고 알려진 과정이다.

 

사후해석 편향을 주제로 한 여러 실험의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사건 당시에 알게 된 것들을 과장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엉뚱하게 기억했다. 특히 사건 당시의 상황을 애초부터 잘못 파악했을 때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101p

그뿐만 아니라 웨슬리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학생 역시 자신들이 실제보다 똑똑해 보일 법한 기억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처음의 예측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 학생들은 처음의 그 예측을 과도하게 강조했다. 예를 들어 처음 예측의 발생 확률이 30퍼센트에 불과했음에도, 그것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는 확률을 50퍼센트 정도로 높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처음의 예측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는 그 반대였다. 즉 처음 예측의 발생 확률이 50퍼센트였더라도 실제로 기억하는 확률은 30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02p

미국 전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남자들이 말한 평생의 섹스 파트너 수치는 일반적으로 여자들에 비해 최대 네 배나 많았다. 한 남자의 새로운 파트너는 결국 한 여자의 새로운 파트너와 수적으로 동일함에도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107p

한 연구에서는, 동료 의사들이 제약회사의 뇌물 공세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의 비율이 84퍼센트에 달했다. 그럼 본인은 어떨까? 자신이 그 뇌물에 영향을 받는다고 대답한 비율은 고작 16퍼센트였다.

 

111p

한 연구진은 실험실 연구 결과, 자신은 부정하지 않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일수록 이후의 잇따른 상황에서 부정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프린스턴 대학교 연구진의 최근 실험에서 이 점이 입증되었다. 자신은 편견이 없다고 당당히 선언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정확하지 않는 견해를 드러내는 경향이 더 많았다.

 

112p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공개해버리면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담배회사들은 경고성 문구 하나를 표기해 놓고 마치 흡연자들을 죽여도 된다는 면허를 받은 것처럼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뢰벤슈타인의 투자 상담사들 역시 정확하게 예측하려 하기보다 자기 이익을 추구해도 좋다는 면허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이봐요, 저는 분명히 경고했어요.”)

 

117p

기술이 계속 혁신되고 있음에도 CFTT(정상 운항 중의 지상 충돌) 사고는 여전히 비행기 운항에서 치명적인 위험으로 분류된다. 비행기 사고의 40퍼센트 이상이, 그리고 비행기 사고 희생자들의 절반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CFTT와 관련되어 있다. 1990년 이후로 발생한 사고 중에는 이처럼 많은 생명을 앗아간 유형도 없었다.

 

사고 원인을 분석한 공군은 대다수 사례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절반 이상의 사고에서 승무원들은 로프트 기장처럼 조종실 내부의 상황에 대한 주의력을 상실했다. 긴급한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비행기를 제어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공군에서 지칭한 업무 포화이다. 업무 포화란 한 번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과도하게 많아진 상황을 말한다.

 

120p

한 실험에서 연구진이 학생들에게 채색된 십자가 형태와 삼각형 같은 도형 형태의 이미지 두 가지를 구분하게 했다. 순간적으로 보여 준다면 충분히 헷갈릴 법한 형태였다. 두 이미지를 동시에 본 학생들이 형태를 구분하는 데 약 1초의 반응 시간이 걸렸고, 그럼에도 실수가 여러 번 있었다. 반면에 이미지를 한 번에 하나씩, 예컨대 처음에는 십자가를 보여 주고 이어서 도형을 보여 주는 식으로 했을 때는 시간이 그 절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121p

직장 내 여러 연구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가지 업무에 집중하다가 전화 등을 이유로 방해를 받았을 때 본래의 집중력을 회복하는 데는 약 15분이 걸린다고 한다.

 

125p

클라워는 운전자의 주의를 빼앗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불과 2초만 눈을 돌려도 사고 위험이 두 배로 증가한다. 따라서 운전하다가 다른 무언가를 2초간 바라보아야 할 상황이라면 짧게 여러 번 나눠 봐야 한다.

 

130p

그는 초록색이라는 단어를 이와 대조적인 색상인 빨간색으로 인쇄해 놓고 실험 참여자들에게 읽게 하자 그들이 약간 머뭇거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트루프 효과(Stroop Effect)로 알려진 이 현상은 두 가지 일이 서로 얽혀 있을 때 주로 나타난다.

 

131p

운전자도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비가동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특히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이것이 더 어렵다. 바뀐 일에 집중하기까지 걸리는 이 시간은 노인들의 경우 젊은이들에 비해 두배까지 길어진다.

 

138p

그 결과, 프랑스 음악을 튼 날은 프랑스 와인의 판매량이 독일 와인을 압도했다. 반면에 독일 음악을 튼 날은 판매량이 그 반대였다(식품점 와인 코너에서는 보통 프랑스 음악을 트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고객들 대부분은 음악이 자신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와인을 선택한 구매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해당 항목에 답하게 했따. 그랬더니 응답자 4명 중 음악이 자신의 와인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고 대답한 사람은 14퍼센트인 6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구성의 위력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구성이란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140p

* 다른 몇몇 실험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암 치료법으로 방사선 요법과 수술 요법 두 가지를 제시했다. 그리고 생존율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자 피험자들은 수술 요법을 더 많이 선택했다. 반대로 사망률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을 때는 방사선 요법을 선택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피험자들의 의학 지식이나 학력 등은 선택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일반 대학생과 의대생,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결과는 모두 비슷했다.

 

141p

인간이 위험을 판단하는 시스템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반사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이고, 둘째는 그보다 깊이 생각하여 판단하는 방법입니다.” 오리건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폴 슬로빅 교수의 말이다. “인간의 위기 인식은 주로 감정과 직결되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합니다.”

 

145p

시간적 압박을 여러 경로로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2001911,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고 나서 많은 미국 사람들의 시간관념이 변했다. 특히 뉴욕과 같은 대도시 사람들일수록 하루살이식의 시간관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다이어트나 운동처럼 많은 시간이 필요한 활동들을 거부한 채 그럭저럭 편하게 지내는 생활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이어트 클럽에 계약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149p

물라이나단은 말했다. “놀랍게도 남자 대신에 여자 직원의 사진을 붙이자 이자율을 5퍼센트 내린 것도 동일한 수요 창출 효과가 있었습니다.”

 

150p

* 앵커링 효과란 누군가가 먼저 제시한 수치를 준거로 삼는 현상을 말한다.

 

153p

복숭아 통조림의 경우에는 ‘4’라는 숫자가 구매자들에게 준거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구매자들은 네 개라는 것만 보고 별 생각 없이 통조림을 집어 든다. 묶음 가격의 효과는 매우 확실하다. 식품점 86군데에서 실험한 결과, 묶음 가격 방식으로 판매된 제품의 매출이 단일 가격 방식에 비해 32퍼센트나 향상되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앵커링 기법을 이용하는 또 다른 사례가 보로 한정 수량이다. “고객 1인당 12개 이내 한정 판매와 같은 식이다. 이때는 숫자 12가 준거로 작용한다. 수량 한정이 매출을 끌어올린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실제로도 그렇다. 준거의 수치가 올라갈수록 매출도 더 늘어난다.

 

154p

실제도 거대 정당의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후보자들이 3퍼센트 정도 더 많은 표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156~157p

영향력이 매우 큰데다 이러한 심리적 조작은 식품점에서 투표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 소개하는 몇 가지를 참조하면 어느 정도는 예방할 수도 있다.

첫째, 재구성을 해봐야 한다. 한 예로 집을 사기 위해 가격을 절충해야 하는 사람은 전체 가격(25만 달러)이 아니라 면적당 가격(1평방미터당 2,500달러)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다.

둘째, 먼저 제시해야 한다. 물론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압류되었거나 그럴 예정인 부동산이라면 임대인이나 소유주에게 먼저 가격을 제시하는 편이 유리하다. 그러면 이 가격에서 시작하여 앞으로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셋째, ‘할인가격에 유의해야 한다. 판매자는 자신의 정한 가격을 내세워 구매자의 생각을 그 수준에 묶으려 한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도 밝혀졌듯이, 판매자 입장에서 할인가격은 더 이상의 할인을 차단하는 좋은 무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매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여러 곳의 가격을 비교하여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161p

심한 갈증으로 ㅇㅇ이 탄다.” 이 문장을 읽고 굳이 고민하지 않더라도 ㅇㅇ에 들어갈 단어가 입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이처럼 어떤 대상을 대충 훑어보는 성향을 교정자 실수라고 부른다.

 

169p

연구진은 수중에서 외운 피험자들은 수중에서, 지상에서 외운 사람들은 지상에서 단어를 더 잘 기억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예컨대 지상 암기자들은 지상에서 평균 13.5개의 단어를 기억한 데 반해 수주에서는 8.6개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수중 암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수중에서 평균 11.4개를 기억한 데 반해 지상에서는 8.4개밖에 기억해내지 못했다.

 

185p

한 연구진의 실험에서 가격표의 음절이 하나 늘어나면 기억하는 비율은 20퍼센트씩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둥글고 매끄러운 형태의 가격표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했다.

 

188p

몇 년 전에 바버라 트버스키와 듀크 대학교의 동료 교수 엘리자베스 마시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몇 주간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매일 기록하도록 지시했다.

 

몇 주 뒤에 두 교수가 기록을 정리한 결과, 학생들의 이야기 중 절반 이상(58퍼센트)은 정보 전달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주로 사회적 사건과 관련되었으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 횟수는 평균 2.7회였다. 두 사람의 예상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왜곡 수준은 뜻밖이었다, 학생들이 왜곡했다고 인정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지만 실제 왜곡 횟수는 학생들의 생각보다도 더 많았다. 트버스키와 마시가 분석한 바로는 학생들이 이야기를 첨가하거나, 생략하거나, 과장 또는 축소한 경우가 전체의 61퍼센트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인정한 비율은 42퍼센트에 불과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즉 왜곡 현상이 매우 일반적이어서 학생들은 사실을 엉터리로 전달하면서도 스스로 인식조차 못 한다는 것이다.

 

189p

두 교수가 이 실험에서 확인한 사실 중의 일부는 다른 한 실험에서 얻은 결과와도 놀랍도록 흡사했다. 다른 실험에서 두 교수는 피험자들을 낯선 사람과 만나게 하여 10분간 이야기하게 하고는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대화 후에 녹음한 내용을 틀어 주면서 그 내용 중 얼마만큼이 진실인지 본인이 직접 확인하게 했다. 그랬더니 피험자들의 60퍼센트가 대화 도중에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했다.

 

190p

대화가 일종의 행동이라면, 우리는 상대방이 내 위주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움직이도록 행동(대화)하는 셈입니다. 즉 나를 좋아하게 만들거나, 내가 현명하거나 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그녀는, 이런 이유 때문에 대화의 목적은 사실 전달이 아니라 이미지(인상)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대화에서 정확성은 이미지 관리보다 후순위라는 뜻이다.

 

듣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쉽게 속지도, 쉽게 믿지도 않는다. 즉 이야기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바로잡으려 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으로서, 이야기를 들을 때 남성이 여성보다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191p

트버스키와 마시는 앞의 연구에서,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마저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변형된 내용이 말하는 사람의 기억에 자리잡는 바람에 사실이 아닌 것사실처럼 기억되는 것이다. 이 점을 현실에서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통제되는 실험실 환경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입증할 수 있다.

 

198p

바꾸어 말하면, 남성은 자신의 IQ를 과대평가하는 반면에 여성은 과소평가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비단 IQ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은 자신의 매력에 대해서도 실제보다 호의적으로 평가한다.

 

201p

남성이 반드시 위험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위험의 가치를 여성에 비해 더 크게 생각할 뿐이었다(이번에도 사회영역은 제외되었다).

 

로프 끝에 매달린 사람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번지점프는 번지점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베버가 발견한 바로는, 이런 행동의 인식 가치에는 차이가 있으며 여성이 남성에 비해 번지점프를 원치 않는 경우가 더 많은 이유도 바로 이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즉 여성은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번지점프에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202p

한편, 남성과 여성은 거짓말을 하는 방식도 달랐다. 남자 대학생들은 (특히 여성과 이야기할 때) 계획이나 성적을 과장하는 등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많이 했다. 반면에 여대생들은 다른 사람을 치켜세우는 거짓말을 많이 했다.

 

204p

자신에게 회의적인 사람은 잘못된 전략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대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껏 해오던 대로 고수할 뿐이다.

 

205p

남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지리, 게임 등의 분야에 대해 연구했더니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도구를 활용했다. 그에 비해 여학생은 임기응변보다는 분명한 지침에 따른 단계적인 접근 방식을 선호했다.

 

211p

길을 묻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연구한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대니얼 몬텔로 교수의 말이다. 그는 남자들이 이 남성 자아에 얽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드 코넬 실험에서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닌 6세 남자아이들이 그랬듯이, 많은 성인 남자들도 현실에서 이렇게 배회하는 것을 그다지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몬텔로는, 남자들은 경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방향을 상실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했다.

 

217p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고객은 실패하는데 회사는 성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해답은-다른 대기업들이 흔히 그렇듯이-뉴트리시스템이 고객들의 믿음을 최대한 이용하는 데 있다. 즉 고객들이 앞으로 도전할 일이 아니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233p

모든 실험에서 전문보다 요약본이 더 효과적이었다. 학생들에게 20~30분의 시간을 주고 전문과 요약본을 구분하여 읽게 했더니 요약본을 읽은 학생들의 이해도가 더 높았다. 글을 읽은 지 20분 후와 1년 후에 각각 시험을 쳤을 때도 결과는 동일했다. 두 경우 모두 요약본을 읽은 학생들이 내용을 더 잘 기억했다(그러니 요약본이라고 해서 하찮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소용이 있든 없든 정보를 과도하게 축적하려는 욕구가 숨어 있다.

 

정말로 쓸모 있는 정보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지금도 정보를 열망한다.

 

246p

전문가를 진짜전문가답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문제에 대해 남보다 빠르게, 남보다 깊이 생각하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런 능력을 어떻게 계발했을까?

보통은 뛰어난 기억력 덕분이라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의 앤더스 에릭슨 교수는 말한다.

 

그는 분야에 상관없이 이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전문가들은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세계적 권위자들은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부단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248p

이처럼 각 분야 전문가들의 머릿속에는 커다란 도서관들이 하나씩 있기 때문에 이들은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고 문제점도 재빨리 파악할 수 있다.

 

258p

인간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때 그리 창의적인 편은 아닌 것 같다. 특히 현재와 비슷한 상황을 과거에 겪으면서 그 해결책을 이미 학습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262p

실수를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제약이다. 제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가진 다른 대안들을 제한함으로써 정도를 유지하게 도와주는 의식적 도구로 정의된다. 나 역시 제약을, 정해진 코스로 주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범퍼와 같다고 생각한다. 달리 생각하면, 제약은 실수를 막아 주는 차단막이기도 하다.

 

263p

제약과 유사한 개념 중 하나가 유도. 사용방식을 유도하는 것도 결국은 사용방식을 제약하는 것과 비슷하다. 유도의 방식도 다양하다. 제품의 형태, 구조, 크기 등을 통해 사용방식을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은 바닥에 튀기거나 던지기에 좋은 생김새다. 자동차의 운전대도 돌리기 좋게 되어 있고, 현금 투입구는 슬로이 있어 지폐를 밀어 넣기에 편하다. 처음 접한 물건도 유도의 의미만 잘 이해하면 그것의 기능과 작동 방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71p

인간의 실수도 마찬가지다. 실수의 원인을 분석하려면 인간이 가진 동기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가의 행동이 반드시 자기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자신에게 편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과신, 뒤늦은 깨달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의 판단은 왜곡된다.

 

275p

지난 10년 사이에 미국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비행기 사고는 65퍼센트나 줄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1997년에는 이륙한 비행기를 기준으로 거의 200만 대당 한 대의 비율로 치명적 사고가 발생했지만 2007년에는 약 450만 대당 한 대꼴로 줄었다.

 

276p

부검 사례를 연구했더니 의사들이 치명적인 질병을 오진한 비율이 무려 20퍼센트에 달했다. 이는 다섯 번 진단 중 한 번은 오진이라는 뜻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오진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오진 비율이 1930년대 이후로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의학협회저널은 개선 없음!”이라는 제목으로 이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을 요약했다.

291p

사람들은 누구나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결과가 더 좋은 쪽으로 달리질 수 있기를 바란다. 대출할 때 변동금리를 선화하고, 이혼에 대비해 결혼 전에 재산 분할 합의서를 만들고, 물건을 사더라도 자유롭게 반품할 수 있는 판매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92p

뢰벤슈타인은 희망이 적응을 방해한다.”라고 결론지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무언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상황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방법을 빨리 배울수록 행복이 빨리 찾아온다.

 

293p

캘리포니아 대학교 새디에이고 캠퍼스의 데이비드 슈케이드 교수는 사람들의 예상과 실제 미래의 행복 사이의 관계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그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 중에서도 사람들이 특정 용인의 가치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와 동료들은 이런 경향을 매몰 환상'이라고 불렀다. 이 환상도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그르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요인이다.

 

298p

대출자의 관심을 유발한 것은 무엇이었나?

 

여자 직원의 미모가 대출자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그러면 NHL이나 NFL에서 팀에 주어지는 벌칙의 경우는 어떨까? 벌칙을 유발하는 범인은 선수도, 코치도, 심판도 아니었다. 선수들의 유니폼 색깔이 바로 범인이었다.

 

299p

최근에 일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두 가지, 즉 이성적 차원과 본능적 차원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며, 마치 자동차의 전조등으로 아래위를 비출 수 있듯이 이성과 본능이라는 두 가지 차원이 지속적으로 교차한다는 사실에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의 실수 중 상당수는 행동하는 상황과 생각하는 상황의 경차 속에서 일어난다.

304p

실수를 줄이는 또 다른 방법들도 있다. 그중에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것도 있는데, 자기 방식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는 것도 그런 방법 중 하나다. 습관은 우리의 시간과 정신노동을 아껴 주는 좋은 친구다. 하지만 그 습관 때문에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우리 눈에는 애초에 보려 했던 것만 보인다.

 

306p

무언가를 결정할 때 우리는 다이어트 체험기 같은 눈에 보이는 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그릇된 결정을 할 때도 많다. 실제로 미국 중앙정보국은 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내부 정보 분석관들에게 사례 제시를 경계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사례가 사람들을 혼동하게 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결론은 이렇다. “정보 분석가들은 매우 일반적이거나 정보로서 가치가 거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례나 개인적인 상황에 큰 비중을 두지 말아야 한다.” 훌륭한 조언이다. 우리도 누군가의 추천이 아니라 상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310p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사고파는 현실 세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하게 의사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경쟁에 반대한다

- 알피 콘 지음/이영도 옮김/산눈출판사/2009.11.17

 

당신이 실패해야 내가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경쟁의 본질이다.

 

경쟁은 사랑과 관심마저도 승리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어떤 희소한 상품처럼 만들어 버린다.”

 

50p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 9~10세 남자 아이들의 2/3와 모든 여자 아이들은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놀이보다 모두지지 않는 놀이를 택했다.” 또한 6학년 아이들의 65%가 교실에서 협력을 배우는 것이 더 좋다고 얘기했다.

 

56p

뉴기니의 탕구 족은 경쟁적인 게임보다는 두 팀이 팽이를 돌리는 타케탁(taketak)이라는 경기를 좋아하는데 이 게임의 목적은 두 팀이 정확히 무승부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67p

이기심을 본능으로 하는 경쟁은 에너지 낭비의 또 다른 표현이며, 협동은 생산성을 효율적으로 하는 비결이다.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y) <과거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

80p

동료들과 맞서서 일하는 것은 생산적이기보다 오히려 파괴적이다.

 

86p

즉 그들은 스스로 외적 동기 때문에 경쟁적인 행동을 한다고 말한다.

 

91p

실패를 피하기 위해 애쓰는 것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97p

죄수의 딜레마게임

둘 다 협력하는 경우 : 당신-3, 타인-3

당신은 협력하고 타인은 배신하는 경우 : 당신-0, 타인-5

당신은 배신하고 타인은 협력하는 경우 : 당신-5, 타인-0

둘 다 배신하는 경우 : 당신-1, 타인-1

확실히 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느 경우든 자신은 배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두 명이 서로 협력하는 경우에 최선의 결과를 얻는다.

 

101p

폴 워첼(Paul Wachtel)<풍요의 빈곤(The poverty of Affluence)>라는 책에서 무조건적인 경제성장이 어떻게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며, 노동을 불행한 것으로 만들고(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 같지만,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잃게 된다). 경제적 공정성을 없애는지를 살핀다. 또한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심리적, 사회적인 결핍을 보상하기 위한 필사적이고 헛된 노력일 뿐임을 보여준다.

 

102p

예를 들어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는 미국이 왜 지구 자원의 40%를 소비하는가?

 

107p

거대한 두 대기업 간의 가격 경쟁은 오히려 중소기업을 시장에서 추방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도 이것이 별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님을 안다. 거의 모든 경제 부문에서 이러한 집중화가 벌어진다는 것은 경재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즉 불공정은 잘못된 경쟁 때문이 아니라, 경쟁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결과인 것이다.

 

109p

마지막으로 경쟁적 경제체제가 불러오는 비경제적 손실, 즉 공동체 의식과 사회성의 상실, 이기주의의 증가, 그리고 불안감, 적대심, 강박관념, 개성의 억압 등의 손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주장(경쟁은 동기를 부여하고 생산성을 높인다에 대해, 그와 반대되는 많은 증거들을 제시한 것이다.

 

130~131p

테리 올릭은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의자를 하나씩 빼면서 참여자들은 모두 남은 의자에 앉아야 하는 새로운 방식의 놀이를 실시했다. 마지막엔 낄낄거리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하나 남은 의자 주위에 모여든다.

 

협력하는 볼링 게임 역시 비슷한 목적으로 참여한 사람 모두가 한 번씩 공을 굴려 10개의 핀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인데, 참가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범프 앤드 스쿳(Bump and Scoot)이라고 이름 붙인 배구는 상대방 진영으로 공을 넘긴 사람은 즉시 그쪽으로 건너가는 것인데 양 팀의 공동 목표는 공을 최소한으로 떨어뜨리도록 노력하면서 팀의 진영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132p

경쟁적 문화는 인간성을 해쳐가면서 존속한다.

줄스 헨리, <사람과 맞서는 문화(Culture Against Man)>

 

135p

자존심은 스스로의 한계를 정확히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잘 인지하며,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더욱 확고해진다. 자신은 잘못할리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존심이 낮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자존심은 인격의 성장에 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는 성장을 저해하는 소위 자기만족과는 전혀 다르다.

 

136p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기 때문에 경쟁을 하며, 결국 낮은 자존심에 대한 보상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141p

반면 우리 문화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주장 역시 맞는 말이지만, 앞의 주장과는 반대로 개인의 심리적 문제는 완전히 배제한 채, 모든 것을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고자 하는 의도가 보인다. 물론 사회적 규범은 개인의 심리 상태를 조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문제에 대해 그것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개인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회구조를 무시하면 안 되는 것처럼, 경쟁에 있어서 개인의 심리적 영향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사회구조의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143p

우리가 강박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경쟁적인 우리 사회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것들이 좀 더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라고 호나이는 말했다. 말하자면 탈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에는 분노를 터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147p

협력은 높은 자존심을 가져다주지만, 경쟁은 그 반대의 효과를 불러온다고 할 수 있다. 왜일까? 이미 살펴본 것처럼 우선 협력은 서로의 능력을 공유함으로써 보다 생산성을 높인다. 좀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더욱 확신을 갖는다. 또한 협력하면 서로에게 인간적 유대를 갖는다. 자신의 성공이 타인의 성광과 긍정의 관계에 있을 때(반면 경쟁은 부정의 관계로 맺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 있으며, 존중받는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협력이 심리적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것은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와 비교해서 경쟁이 성과와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불행한 심리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0~151p

미식축구 슈퍼볼에서 우승한 댈러스 카우보이의 감독 톰 랜드리(Tom Landry)는 그 후에도 계속 공포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심지어는 슈퍼볼에서 우승한 바로 그 순간-특히 승리한 그 직후부터-에 항상 그 다음 해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만약 승리는 모든 것이 아니라 유일한 것이라면, 유일한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인생에 있어 별 의미가 없는 악몽이며 공허함이다.

 

154p

몬티 파이튼(Monty Python)의 영화 <브라이언의 삶(The Life of Brian)>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언제나 인생의 밝은 면을 보자는 노래를 즐겁게 부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한-볼테르의 희곡 캉디드와 같은-낙관주의를 풍자하는 것처럼 보인다.

 

157p

경쟁의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상호배타적인 방식으로만 목표를 달성하게끔 만드는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참가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성격을 모른다고 해도, 그중 오직 한 사람만이 승리하는 구조에서는 나머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타격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모리스 로젠버그(Morris Rosenberg)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지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정이 널리 퍼질 것이다.”

 

163~165p

우리가 경쟁에서 불안과 걱정을 느끼는 이유 세 가지

첫 번째, 가장 명확한 이유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두 번째, 승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고전적으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이지만 저자의 분석은 첫째 타인들을 이기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느껴 승리에 대한 기회 날려버려 스스로를 벌하는 것이다. 둘째 패배한 상대방이 자신을 적대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세 번째,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혹은 긴장 관계의 예상)에 대한 불안감은 신경증 환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승리에 대한 두려움으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불안함은 경쟁의 역학, 그 자체에 이미 내재되어 있으며, 이것이 경쟁이 걱정과 불안을 가져오는 이유가 된다.

 

165p

심리학자 롤로 메이(Rollo May)는 이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핵심적인 사실을 제시했다. 즉 경쟁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함 역시 악순환을 한다는 것이다. 경쟁은 타인과의 관계를 악화시킴으로써 불안을 느끼게 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경쟁에 뛰어드는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 낸다.

 

개인적인 경쟁적 투쟁->사회내부의 적대감 증가->개인의 고립->불안감->더 높은 경쟁적 투쟁

 

167~173p

지금까지 살펴본 것 외에 경쟁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 몇 가지

첫째로 결과 지향성을 둘 수 있다. 4장에서 보았듯 놀이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과정 지향의 경향을 보인다.

둘째는 양자택일의 사고이다. 이는 어떤 상황이든 두 가지의 선택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흑백논리의 오류이다.

셋째로 살펴볼 것은 현실 순응적 태도와 획일성이다. 우리 사회는 매우 경쟁적이며 개인주의가 널리 퍼져 있다. 윌 크러치필드는 피아노 경연대회의 참가자들이 모두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참가자들은 승리를 위해 실수하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며 새로운 연주 기법이나 진짜 놀랄만한 시도는 피하려 한다’.

 

175p

사무실 안에 떠도는 병균은 그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집까지 그 병균들을 가져갈 것이다. 직장에서 시작된 병은 가정의 거실과 침실로 옮겨져서 가족들 모두에게 퍼진다. 이는 경쟁이란 병이다. 회사의 동료들을 경쟁자로 보도록 훈련하는 사회에서는 사적 영역이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는다. “산업화 시대의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업상의 라이벌뿐만 아니라 배우자, 형제자매, 이웃 그리고 사무실 동료들까지 경쟁상대로 생각한다.”고 이미 35년 전에 월터 바이스코프(Wallter Weisskof)는 말했다.

 

180p

경쟁적 문화에서는 어느 것에서든 누군가가 성공한다는 것은 자신의 실패를 의미하며, 심지어 자신과 직접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는 경우에도 그러하다.”고 줄스 헨리는 말했다.

 

180~181p

1920, 이제 고전이 된 존 왓슨(John B. Watson)의 실험에서, 그는 알버트라는 아기에게 흰쥐를 볼 때마다 큰 소리가 들리도록 했다. 아이는 쥐에 대한 공포를 학습했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털이 달린 모근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즉 경쟁적으로 인간관계를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을 경쟁상대로 생각하게 된다.

 

185p

관대함이란 경쟁심이 적은 행동양식처럼 보인다.” 몇 년 후에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는 볼링 게임을 한 후, 받은 상품들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하도록 유도했다. 그때 승리한 아이들이 비기거나 패배한 아이들보다 더 많이 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경쟁적이지 않은 게임을 한 아이들의 기부가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실험자들은 기부나 돕는 행동은 경쟁적인 행동과는 반대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실험의 핵심은 경쟁적인 사람이 자선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승리를 통해 잠시 관대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경쟁 자체는 관대함을 억제한다.

 

189~190p

적대감은 의도적 경쟁과 뚜렷이 구분할 수 없으며, 적대심이 큰 사람일수록 경쟁을 추구한다. 즉 적대심으로 인해 경쟁이 더 심각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거꾸로 경쟁을 통해 적대심을 해소하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인다. 학자들은 인간의 공격성을 적절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쟁적 스포츠나 공격적인 활동에 어느 정도 노출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효과(비극을 감상함으로써 감정을 정화한다는 이론라는 용어를 빌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사람들로 프로이트, 그리고 동물행동학자인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은 공격성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며, 사회적 반응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타고난 본성인 공격성을 배출해야 하며, 스포츠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을 방법으로 배출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므로 경쟁을 통한 대리만족은 공격성을 줄인다고 주장한다.

별 증거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믿어온 이 이론은 그렇게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로렌츠조차 1974년의 한 인터뷰에서 비록 스포츠로 대체되었다고 해도 공격적인 행동에 도대체 어떤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신분석학자인 브루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 역시 스포츠에 참여하거나 관전하는 것은 경쟁에서 오는 공격성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196~197p

인간관계에 있어서 친밀감은 많은 긍정적 효과를 불러오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격려하기

격려받기

민감한 반응 : 질리안 킹(Gillian King)과 리처드 소렌티노(Richard Sorrentino)는 협력하는 사람들이 타인의 욕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경쟁보다 협력이 훨씬 즐거웠다고 말했다.

배려

타인의 관점에서 보기

의사소통

신뢰

 

213p

괸더 뢰센은 경기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보통 운동 경기는 제로섬 게임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경쟁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대체적으로 반칙이 발생한다.” 모든 경쟁엔 제로섬(상화 배타적인 목표달성)의 요소가 있으므로 반칙의 유혹은 항상 존재한다. 조지 오웰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심각한 스포츠는 사실 페어플레이와 아무런 상관없다. 그것은 증오, 질투, 과시, 모든 규칙의 위반 등의 폭력을 목격하려는 가학적인 즐거움(sadistic pleasure)과 관련되어 있다.” 어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운동선수이든 일반인이든 스포츠에 대해 말할 때엔 그 외의 기준보다 더 낮은 수준의 도덕성을 적용했다, 이 결과는 경쟁을 할 때엔 평균적으로 도덕적 규범이 사리지고, 그보다 낮은 자기중심 도덕관이 자리 잡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214~215p

더욱 중요한 것은 스포츠맨십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위적이라는 것이다. 경쟁이 없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쟁을 품위 있게, 또는 고결하게 행하라는 요구는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체제에서만 의미 있는 말이다.

 

215p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개념 중에선 현대 사회제도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절도는 사유재산제도가 없는 곳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개념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소외되지 않거나, 욕구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면 레저라는 문화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겐 신성모독이라는 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217~218p

사회학자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의 말을 살펴보자.

 

사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범인들은, 성공을 강조하고,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불안한 상태를 더 깊고 포괄적으로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 고위 관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미식축구 감독인 롬바디의 승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칠레 정부를 전복시키려한 IT&T(국제전화전신회사)의 임원들, 마약 밀매를 하는 마피아들, 자신들이 제작한 음반을 음악 순위에 넣기 위해 뇌물을 주는 음반회사 간부들, 시청의 부정행위를 다 그런 거지라고 무시하고 넘어가는 시민들, 그 모두가 이러한 태도를 공유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워터게이트의 주역들은 규칙을 어겼지만, 이 범죄는 규모가 크다는 것이 다를 뿐 기본적으로는 승리를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행위의 연장에 있다.

 

235~236p

경쟁과 비교하여 협력 체제에서 보상의 분배는 개인과 집단의 생산성, 개인의 학습 능력, 인간관계, 자존심, 일에 대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책임감 등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 결론은 많은 연구자들의 수백 건에 달하는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경쟁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온다는 일반화된 사회적 관념과는 맞지 않지만, 충분히 연구된, 믿을만한 결과이다.

 

240~241p

인간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환경이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매우 유명한 심리실험이 있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와 그의 동료들은 교도소의 간수와 죄수 역할을 할 남자대학생 21명을 선발하였다. 학생들은 교도소와 똑같이 꾸며진 세트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 실험에 지원한 75명의 학생 중 21명의 선발 기준은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는가에 맞추어졌다. 또한 간수와 죄수 역할은 무작위로 선택되었다. 실험이 시작되자마자 각각의 역할을 맡은 피험자들은 그 역할에서 자주 보이는 특유의 병리 현상을 드러냈다. 즉 간수들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어떤 일이나 불합리한 규칙, 그리고 절대복종을 죄수들에게 강요했으며, 서로에게 모욕을 주도록 유도했다. 죄수들 역시 매우 수동적이고 복종적이 되어 갔으며, 욕구불만을 같은 죄수에게 터뜨리거나, 그 불만의 희생양이 되었다. 간수들의 학대가 심해질수록 죄수들은 더욱 무력하고 수동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두려움을 느낀 짐바도르는 2주 동안 예정되어 있던 실험을 6일 만에 중단한다.

이 실험의 설계를 보면 그 결과가 피험자 개인의 심리 상태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자들 역시 어떤 특정한 행동을 개인의 인성 때문이라고 해석하는경향이 있다. 따라서 개인의 행동을 지배하고 형성하는 사회구조나 환경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게 오해를 함으로써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거나, 또는 잘못한 사람들을 따로 고립시키는 것으로해결하고자 한다. 짐바도르는 이런 잘못들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개인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하게끔 조장하는 제도를 찾아내고, 그 제도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결론은 그 무엇보다도 경쟁의 문제에 있어서 진실이다. 우리는 1등이 되도록 끊임없이 요구받는데, 그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구조가 승패만을 중요시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성향, 즉 경쟁심의 정도를 줄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승패 구조의 해체, 즉 경쟁의 참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242~243p

로버트 액셀로드는 구조적 협력에 대한 극적인 예를 제시했다. ‘죄수의 딜레마에 관한 논의 중에, 그는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을 소개한다. 1차 세계대전 중 서로의 생존을 위해양쪽 참호 속의 군인들이 총격을 하지 않기로 양해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령부에서는 이런 행동에 매우 분노했지만, 병사들은 끝까지 서로를 죽이지 않았다. 서로를 미워하도록 훈련된 병사들이 협력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협력은 구조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새로운 체제가 군인들의 행동을 바꾼 것이다. 액셀로드는 어느 날 실수로 총을 발사한 독일 군인이 외친 말을 인용했는데, “매우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죠?”라고 했다고 한다. 액셀로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행동은 상대방의 보복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적인 노력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다. 서로의 협력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행동이 변화한 것이다. 이와 같이 협력은 서로의 복지나 이익을 배려하게 만들어준다.” 개인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는 구조에서 영향을 받는다.

 

243~245p

어떻게 하면 구조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유용할 듯하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영속시키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5가지의 간단한 방법이 있다.

 

1. 세상을 좁게 보라 : 개인의 심리적 불안은 사회구조-개인의 성격 발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면, 사회의 변화를 막을 수 있다.

2. 적응하라 :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각 개인이 현상에 스스로 순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3. 자신만을 생각하라 : 현실 구조에 적응하면서 성공하라는 말은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4. 현실적이 되라 : 우리를 둘러 싼 사회구조를 옹호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그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공감을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미 정해진 사회제도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어쩔 수 없잖아.”, 혹은 그게 바로 현실이다.”라고 말하면 된다. 이렇게 개인의 무력함을 내세우는 것은 실제로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249p

벤야민 바버(Benjamin Barber)는 적대적인 정치 행태와 개인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쟁적 정치제도의 대안으로 합의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consensus-based system)’을 제안했는데, 이는 분쟁에 대한 협력적인 해결과 비슷한 개념이다. 또한 전 세계적인 적대감에 대해 모턴 도이치는 국가안보라는 낡은 개념을 상호안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자.”고 강조했다.

 

252p

이미 승자의 위에 있는 사람은 다음번에도 이길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 있다. 에드거 프리덴버그(Edgar Friedenberg)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분배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방법이 바로 경쟁이다. 경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규칙이 적용되는데, 일괄적으로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사회의 지위 체제는 보호받을 수 있으며, 정당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사회 구성원은 스스로를 승자와 패자로 구분하며, 패자들도 승리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타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54p

면접자 : 네 명이 짝을 이루어 공부하면 무엇이 좋을까?

저스틴(10) : 네 개의 뇌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

 

254~255p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수학은 숫자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심각한 도덕 강의를 할 필요는 없다. 무엇인가를 가르칠 때 무슨 이야기를 선택해서 해줄지, 어떤 사람에 대해 설명할 때 목소리 톤을 어떻게 할지, 수업 시간에 발언을 하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손을 들어야 하며, 교실 벽에는 무엇을 붙이고, 그것은 누가 결정하는지, 그리고 아이들의 성적은 어떻게(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평가되는지 등등 학교의 수많은 일상들이 우리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이미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가치관을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기존의 가치관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도록 가르쳐도 되느냐이다.

 

259~261p

협력 학습 효과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자.

자존심 :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을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경쟁과 자존심의 관계는 말하자면 설탕과 이의 관계와 같다.

사회적 상호작용 : 긍정적 상호의존 구조(당신의 성공은 나의 성공)가 부정적 상호의존 구조(당신의 성공은 나의 실패)보다 타인을 호의적으로 보게 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

성취 : 협력 학습의 가장 기쁘고도 놀라운 효과는 서로를 더 좋게 생각함으로써 더욱 능률적인 학업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262~269p

협력 학습은 아이들의 경쟁을 막으며, 이로 인해 비생산적인 결과가 일어나지 않게 한다.

1. 불안감 : 경쟁은 작업수행력을 떨어뜨리는 불안감을 조장하며, 그 정도를 높인다.

2. 외적 보상 : 외적 동기에 의한 경쟁은 공부를 하는 데 있어 과정에 대한 관심을 없애고, 그 결과만을 중요시하게 만들어서 결국 학습 능력을 저해한다.

3. 책임 회피 : 경쟁에서는 승패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은 경쟁의 결과를 보통 운이나 각자에게 이미 정해진 능력의 탓으로 돌린다. 그 결과 학습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감이 줄어든다.

4. 예측하기 : 만약 배움이라는 것을 경쟁에서의 승리하고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기 초에 이미 누가 1등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승리가 예상되는 학생들은 그 승리를 위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지며, 자신이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업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제부터 설명할 내용들은 적극적인 이유에 해당된다. 즉 협력 학습은 협력 그 자체의 이익 때문에 효과가 있다.

5. 정서적 안정 : 협력 학습은 자존심과 인간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일의 성취에 도움을 준다.

6. 적극적인 참여 :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공부할 경우 적극적인 참여는 다른 학생들에게 존중된다. 즉 협력 학습은 학생들로 하여금,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움 그 자체를 중요시하도록 만들어 준다.

7. 과제에 대한 관심 : 함께 공부하는 것은 타인과 맞서거나 혼자서 학습하는 것보다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과제에 더 열중할 수 있게 해준다.

8. 지적인 상화 작용 : 협력 학습이 중요한 이유는 그 누구도 우리 전체보다는 똑똑하지 못하기때문이다.

끝으로 협력 학습은 의견의 대립을 막지 않으며, 어떤 면에선 그것에 의존하면서 더 풍성한 배움의 터전을 마련한다. 똑같은 이야기를 듣더라도 사람들은 이야기 속 인물의 행동과 그 동기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

 

264p

협력 학습을 하는 경우,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난 뒤에도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에 계속집중하며 함께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교사들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으로 한 연구자에 의하면 협력 학습은 때때로 공부 자체를 아주 재미있게 만들어서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도 밖으로 나가는 대신 교실에 남아 계속 공부하려고 한다.”

 

266p

여기엔 조건이 있다. 첫째, 학생들이 학교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데에 꼭 협력 학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협력 없는 교실에서도 수업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학생들이 있다. 둘째, 협력 학습이 지루한 학교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많은 학생들이 친구들과 만나는 것 외에, 학교란 그저 지겨운 과제만 잔뜩 내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협력 학습 하나로 모두 바꿀 수는 없다. 게다가 아이들의 머릿속에 억지로 단편적인 지식을 넣어주려는 목적으로 협력 학습을 이용한다든지, 경쟁과 똑같이 어떤 보상을 제공(개인에게 하던 것을 그룹으로 바꾼 것뿐인)한다면 협력 학습의 효과는 사라지며, 배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기존의 방식에 협력 학습을 양념처럼 사용한다면 협력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도 부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269p

또한 나는 다음과 같은 로버트 벨라의 말에 찬성한다.

 

배움이란 고립된 개인이 경쟁을 통해 승리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 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약화된 공동체 의식에 있다. 교육의 목적은 결코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만 있지 않다. 교육은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경쟁에서 승리했든, 패배했든 교육은 모두에게 실패한 것이 된다.

 

298p

물론 각 기업들 간의 경쟁이 요즘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경쟁력 강화라는 말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각종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최근에 항공업계에서 규제 철폐로 인해 나타난 현상들은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들은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초래하는 결과이다. 공기업, 제조업체, 엔지니어 회사 등 많은 기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협력은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지만, 경쟁은 직원들의 협동심을 저해한다’(흥미로운 것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원숭이들도 경쟁으로 인해 작업 능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보였다는 점이다). 매우 유명한 경영 지도자 에드워드 데밍(Edwards Deming)은 직원들을 서로 경쟁시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부당하고 파괴적이다. 이러한 어리석은 짓은 그만 두어야 한다. 공동의 문제에 대해선 협력해야 하며, 인센티브나 보너스는 팀워크에 해로울 뿐이다. 공부에서든, 다른 무엇이든 우리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1등이 되고자 애쓰는 것이다.

 

313p

28 jonson and Johnson, “Crisis”, p. 149. 사실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이는 다음과 같은 추측,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 공부해야 더 잘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수백 건의 연구들 살펴보면 심지어 아주 높은 수준의 학생들끼리 모여 있는 교실에서도 위와 같은 추측을 입증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Jeannie Oakes, Keeping Track : How Schools Structure Inequality, p.7)

 

315p

63 Edward L. Deci, “Effects of Externally Mediated Rewards on Intrinsic Motivation.” p. 114. 그는 또 다른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사원들, 학생들의 내적 동기를 증진하려면 어떤 일을 행할 때 금전적 보상 등의 직접적인 외적 통제 제도에 의존하지 말고, 본질적으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서로 돕고 보상을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Intrinsic Motivation, Extrinsic Reinforcement, and Inequity”, p. 119~20))

 

316p

96 “전지국적으로 보았을 때 식량은 모든 인류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 있다. 또한 세계의 경작을 할 수 있는 땅 중 60% 이하에서만 농작물이 생산되고 있다.” (Frances Moore Lappé and Joseph Collins, Food First, pp.13~14)

 

321p

32 Ruben, p. 147 경쟁에 대해 연구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예는 다음과 같다. Lawrence Frank, “경쟁은 소위 마지막 자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경쟁하는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목표를 만들지만 그것을 달성하면 보다 큰 목표를 위해 자신이 이룬 것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p. 320) 스포츠 심리학자 TutkoBruns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수준에서의 경재이든, 혹은 어떤 스포츠에서든, 목표를 이루고 나면 손에 닿지 않는 더 높은 목표를 만들어 더 완벽함을 추구한다. 승리란 말하자면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절대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 경쟁의 추구는 만족을 모르는 탐욕과 같다. 승리는 여러 명이 나눌 수 없다. 프로이트라면 이러한 행동을 반복되는 강박이라고 정의했을 것이다. 승리자가 이제 됐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없다.”(pp. 2~3)

 

327p

72 Johnson, Johnson, and Maruyama, “그룹 간의 경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룹 내부의 협력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살펴본 결과 80% 이상의 사례에서 그룹 간 경쟁이 없는 경우 사람들은 더욱 호감을 갖고 협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p.22)

 

329p

10 ZuckermanWheeler성공을 회피하는 일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빈번히 발생한다는 Homor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ibid, p. 935)라고 했으며, David Trensemer100건이 넘는 연구들을 분석하여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에서 행해진 연구에서도 이 주제에 대해 남녀 간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Hirotsugu Yamauchi, “Sex Differences in Motive to Avoid Success Competitive and Cooperative Action”)

 

341p

23 원숭이들에게 간단한 비디오 게임을 시킨 이 실험에서는 혼자서 한 경우와 다른 원숭이와 경쟁을 한 경우를 비교했다. 다른 원숭이가 옆에서 같이 게임을 하자 게임기 스틱을 움직이는 속도는 빨라졌으나, 정확성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David A. Washburn et al., “Effects of Competition on Video-Task Performance in Monkeys”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이진순, 와글 지음/문학동네/2016.9.5)

- 20161221일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및 책 내용 요약

 

1. 강의 내용

(1) 직접민주주의의 확대

핀란드의 오픈 미니스트리는 5만 명 이상의 유권자가 지지한 안건은 자동으로 국회에 상정되게 함. 600만 명이 세월호 서명은 어디로?

에스토니아 민회는 전국에서 지역, 성별, 연령별로 안배해 추첨으로 뽑힌 시민 500명으로 이루어짐.

 

(2) 아래로부터의 의사 결정

5개의 군소정당과 시민사회단체와 시민이 함께 만든 바로셀로나 엔 꼬뮤는 동네모임과 주제별 분과위원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 정당은 코디만 하고 중요 결정은 총회에서 결정함.

 

(3)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열린 플랫폼

오픈 미니스트리 : 주민 5만 명 이상 동의한 안건 자동으로 국회에 상정됨.

디사이드 마드리드 : 시민 참여 포털 사이트, 주민참여 예산, 정책 등 한 사이트에 다 있고 질문에 바로 답이 옴. 가용 예산의 25%를 주민참여 예산으로 결정함.

루미오 : 전 세계 93개국에서 32개 언어로 사용됨. 20154월 현재 8만 여명의 이용자가 18천 개의 그룹을 만들어 26천 건의 의사결정을 하는 데 사용됨.

바르셀로나 엔 꼬뮤 : 제안(최초 44+새로운 제안)->검토(수정된 초기 제안 44+가장 많은 표 받은 새로운 제안 16)->투표(검토된 60개 중 우선 순위 40개 정함)->결과로 선정된 40개 제안을 정당의 당론으로 채택됨.

 

2. 와글(www.wagl.net/)의 작업

(1) 필리버스터닷미(http://filibuster.me/) : 필리버스터 시작 후 10시간 만에 개발, 11일 동안 38,000여 개 시민 원고, 방문자 수 30만 명, 7명의 국회의원들이 본 회의장에서 시민 의견 낭독, 로그인 없이 닉네임으로 그냥 쓰기 가능함.

 

(2) 국민의 편지(http;//assembly.email/) : 국회의장에게 보내는 국민의 편지

 

(3) 핑코리아(http://pingkorea.com/assembly/) : 자신과 맞는 정당과 성향 척도 알게 하는 사이트

 

(4) 국회톡톡(http://www.toktok.io/) : 순 방문자 23만 명, 73%35세 이하

1단계 : 시민 제안

2단계 : 지지자 모집(1,000명 이상이면 3단계로)

3단계 : 제안에 찬성하는 국회의원 매칭, 국회의원의 찬성, 반대, 무응답 공개, 대부분 무응답이나 그것도 의미가 있고 찬성과 반대 표명하는 의원도 있음.

 

(5) 온라인 시민의회(http://www.citizenassembly.kr/) :

토론 후 시민 대변인 추천

 

(6) 박근혜게이트.com(http://www.parkgeunhyegate.com/) : 박근혜 부역자 고발

 

*정치는 공감의 예술(ART)이다.

Accountable(약속)

Responsive(응답)

Transparent(투명)

 

3. 책 내용

아다 콜라우는 바르셀로나에서 주거권 운동을 펼쳐 2015524일 바로셀로나 최초 여성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2011515일 시작되어서 15M운동(분노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인디그나도스 운동이라고도 함)이라는 건축반대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시민들은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특권계급화한 주류 정당으로는 도저히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2015년 시민 주도 정치연대인 '바르셀로나 엔 꼬뮤(모두의 바로셀로나)'라는 새로운 조직을 발족해 그해 5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11석을 얻어 시의회 제1당이 되고 아다 콜라우가 시장에 취임했다.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는 이탈리아의 신생 정당인 오성운동을 설립해 2013년 선거에서 상원 54(2), 하원 109(1)을 차지했다. 오성운동은 인터넷 정당으로 정치 비용을 최소화하고 블로그와 SNS를 통해 토론하고 의사결정을 한다. 베페 그릴로는 정치는 직업이 아니라 일시적인 봉사이므로 재선 이상 한 사람은 다시 선거에 나가지 말고 본래 생업에 돌아가야 한다며 삼선금지 법제화를 주장했다. 베페 그릴로는 이 같은 취지로 2009년 새로운 정당을 설립했다. 스스로 정당이 아닌 운동집단이라고 주장하며 다섯 개의 별을 심볼로 내세우는 오성운동’, 약어로 MMS(Movimento Cinque Stelle)이다. 오성운동의 다섯 가지 주요 목표는 공공수도, 지속가능한 교통수단, 지속가능한 개발, 인터넷 접속 권리, 생태주의이다. 오성운동의 정치적 의의는 첫째,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념적 성향을 기준으로 정당을 결성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치 부패, 권력남용에 반대하며 기존의 정치적 메커니즘과 과감히 단절해 정치 신인 우선 발탁하고, 3선 금지를 내규로 정했다는 것이다. 셋째, 인터넷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시스템의 힘이다. 정치학 박사로 스페인의 온라인방송과 TV의 시사문제 논객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20143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의 신생 정당 포데모스를 창당했다. 그해 5월 포데모스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120만표(8%)를 득표해 이글레시아스를 비롯해 5명을 유럽의회에 진출시켰다. 이글레시아스를 포함한 포데모스 집행부 26명은 모두 아고라 보팅이라는 온라인 투표 시스템으로 선출되었고, 이 투표에는 55천 명이 참여했다. 유럽의회 의원 선출 방식 역시 33천 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로 이루어졌는데 포데모스 당원이 아니어도, 심지어 다른 정당 소속이어도 경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완전경선제를 채택했다. 다양한 시민의 요구를 포괄하고 정당 내 주요 결정과 후보 선출을 시민 주도로 진행하는 원칙에 따른다. 포데모스의 중요 전략적 목표는 공교육 개선(45%), 부패 근절(42%), 주거권 보장(38%), 공공의료 개선(31%), 가계부채 조정(23%) 순이다.

스코틀랜드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벤 나이트는 뉴질랜드로 돌아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루미오(Loomio)라는 협력적 의사결정 모델을 개발했다. 루미오는 시민토론 플랫폼으로 베틀과 조명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Loom에서 따왔다. 루미오는 누군가 문제를 제시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찬반 표시를 하고 의견을 표명하면서 조율의 과정을 거쳐 정해진 기한까지 투표를 받는다. 토론의 질과 양에 따라 최종 마감 전까지 찬반투표 결과는 계속 변화할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에 더 다가가도록 설계되었다. 웰링톤 시의회 의원들도 의안 토론과 표결에 루미오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스페인의 포데모스도 루미오를 이용해 27천 명이 토론과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의견이 비슷한 사람끼리 엮어주는 브리게이드(Brigade)는 다른 설문조사와 달리 다른 사람과의 의견 비교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의견 표명을 하면 여기에 대해 찬성, 반대, 보류 가운데 하나로 답변할 수 있고, 그 의견에 이유를 달게 된다. 여러 가지 문항에 찬반 표시해 가며 자신의 의견이 누적되면, 그 결과가 합산되어 다른 이용자와의 의견 일치, 불일치 정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폴리스(pol.is)는 누군가 한 주제로 설문조사 페이지 개설하면 사람들이 링크를 타고 들어와 그 주제에 대한 생각을 올리고 그 의견을 찬반 투표에 부칩니다. 사람들이 매 문항에 답변할 때마다 네트워크 맵 상의 내 위치가 이동해 의견의 유사성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그 속에서 나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바로셀로나 엔 꼬뮤가 사용한 데모크라시 OS(DemocracyOS)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민들에게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 찬반투표와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만든 플랫폼이다.

핀란드에서는 20123월 신헌법 개정안이 발효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시민이 작성한 법안이나 제안이 6개월 기한 내에 5만 명(유권자의 1.2%)의 지지를 받으면 국회에 자동 회부되어 토론과 표결에 부쳐진다. 오픈 미니스트리는 사회혁신가 요나스 페카넨이 정부보다 한발 앞서 20123월 핀란드 국민이라면 누구나 직접 국회에 법률 또는 의견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서명을 진행해 법 제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은행과 개인정보 취급 회사들이 개인인증 부분을 무료로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서 서명이 법적 효력을 갖는 것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정치관계법 개정작업을 온라인을 활용해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 작업은 라바코그(Rahvakogu)’ 우리말로 민회라는 특별 기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1단계로 민회 웹사이트에 14주 동안 3천 명의 시민들의 내놓은 5천 개가 넘는 제안을 정리해 최종적으로 15개 정치제도 개혁안이 탄생했다. 이 개혁안이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국회에 회부되어 최종적으로 7개 법안으로 다듬어져 공포되었다.

마드리드 시에서 시민참여를 담당하고 있는 파블로 소토 의원은 시민들이 시의 재정과 입법, 행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디사이드 마드리드(decide.madrid.es)를 만들었다. 이 웹사이트는 단 세 명의 팀원과 십만 유로의 예산이 쓰였다. 디사이드 마드리는 20159월 오픈한 정책 발의, 참여예산, 공공 데이터 개방 등의 주요 기능으로 하는 시민참여 포털로 3대 가치는 시민참여, 정보공개, 정부 투명성이다.

대만의 ‘g0v’는 민간차원의 공공정보 포털로 g0v거브 제로라고 읽는데, 대만 정부 홈페이지(gov.tw)를 패러디해 만들어진 온라인 커뮤니티이다. g0v인터넷 세대, 원점부터 시작한다라는 모토 아래 공공정보 공유, 정부 투명성 및 시민 참여를 위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g0v는 정부예산 감시, 공무원의 관광성 해외 연수 감시, 정치 기부금 감시, 의사록 열람, 회의 영상 다시보기 서비스 등을 제공해 시민들이 좀 더 쉽게 정부가 하는 일을 감시할 수 있게 돕는다.

캐나다 비영리 스타트업 오픈 노스(Opennorth)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시의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 눈에 보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오픈 노스는 정부 투명성과 시민 참여를 목표로 데이터 표준 개발, 정보공개, 입법 감시와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요 서비스인 시티즌 버젯은 시민들이 직접 예산 책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시뮬레이션 서비스다.

뇌의 거짓말

- 마이클 캐플런, 엘런 캐플런 지음/이지선 옮김/이상 펴냄/2010.7.15

 

10p

  오류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고 평등하다.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의견조차도 단지 소문과 권위와 편견과 정당화가 교묘하게 합쳐진 하나의 집합체일 수 있다. 비논리성과 비합리성은 프로레슬링 경기뿐만 아니라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실험실에도 만연해 있다. 이 같은 일반적인 어리석음(vulgar error)은 단순히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와는 다르다(끈 이론이나 대위법, 혹은 키르케고르의 철학에서는 이를 용서가 되는 무지로 본다). 문제는 날마다 말하고 행동하는 익숙한 것들에서 노골적으로 저지르는 잘못이다.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충동적으로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는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대중매체의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하는 어떤 막연한 대상들이나 사건들에 책임을 전가한다. 심지어 자신을 내세우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혀 관계없는 이유를 끌어다 쓰기도 한다(나는 진실한 신자이기 때문에 내 믿음은 분명 진실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온갖 미사여구(‘진정한 미국인이라면 나를 지지할 것이다’)와 사실이 아닌 통계수치(‘200% 더 싼 가격!’)를 들이댈 때, 우리는 쉽게 현혹되기도 한다.

 

20p

  매우 감정적이거나 정치적인 의미가 함축된 말은 객관성이 필요한 진술에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이 같은 비형식적인 오류들은 교묘하게 논리적 균형을 깨뜨린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유도 심문에서 그렇다. ‘그래서 지금 월마트가 저소득 공동체에 저가 물품을 공급하는 정책이 나쁘다는 겁니까?’ ‘그래서 우리가 줄행랑을 친다면 테러리스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제 아내는 안 때리시나요?’ 화자의 권위도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 화자의 강한 존재감과 드높은 명성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논거의 허점을 지적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그 오률들은 이렇게 속삭인다. ‘내가 더 크니까, 내가 더 좋은 교육을 받았고 더 좋은 차림새이며 더 좋은 지위에 있으니까 내 의견에 찬성해야 하고, 내가, 내가 아는 사람이, 내가 지금 언급하는 사람이 이미 크게 곤혹을 치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 말을 따라야 한다’ ‘당신은 내 영화들을 좋아했으니까 총기 규제에 관한 내 의견도 받아 들여야 한다’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고기를 더 많이 먹어야 한다

 

23p

  그런데 영역 논리를 입돠 더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타당성진실성의 차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적 타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규칙들을 제시했지만, 내용의 진실성까지 따지지는 않았다. 언뜻 다다이즘의 성격을 띠는 듯한 삼단논법을 예로 들어보겠다.

 

1. 모든Xqrspoo.

2. 2VX7Xqr이다.

3. 그러므로 2VX7spoo.

 

이 명제들은 진실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형식논리의 규칙을 착실하게 잘 따르고 있다. , 대전제, 소전체, 결론의 추상적 관계가 잘 성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용이 진실하지 않아도 형식논리의 측면에서 결론은 참이다. 이외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 우리가 믿는 것들,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도 이 삼단논법에 대입해볼 수 있다. 물론 튀어 오르는 원자들혹은 춤추는 천사들도 해당된다.

 

28p

  이마누엘 칸트의 표현대로 그 당시는 미몽에서 벗어나는시대였다. 칸트와 다른 모든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뉴터의 발견이 천문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듯이 독단적인 사고를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는 태도가 계몽주의를 싹트게 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는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여겼다. 계몽주의가 내건 표어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다. “용기 내어 지신의 이성을 사용하라(Sapere aude!)”

 

29p

  베이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기꺼이 믿을 수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이간은 관찰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참을성 있게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배척한다. 진실하고 균형된 것도 마찬가지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적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신에 집착하며 그보다 차원이 높은 것들을 배척한다. 자만에 빠져 경험의 관점도 배척한다. 저속한 자들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일반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것들을 배척한다.

 

38p

  스위스 뇌샤텔 대학의 레두안 비샤리(Redouan Bshary)10여 년 동안 청소 물고기를 관찰한 결과는 궤변과 억지가 판치는 시장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청소 물고기들은 각자 자기만의 작은 공간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오는 고객은 지역 주민들만이 아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매우 다양한 종의 물고기들은 빠른 서비스를 받기 위해 언제 어느 가게로 갈지를 선택한다. 그래서 시장을 둘러보는 관광객처럼 까다로운 물고기를 상대할 때는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다른 고객들에게 어떻게 서비스를 하는지 꼼꼼히 지켜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비스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느껴져야 비로소 자세를 취한다. 그러다가 무슨 속임수를 눈치 채기라도 하면, 당장에 지느러미를 흔들어 그 작은 물고기를 해치우려고 한다.

 

42p

  애덤 스미스가 창시한 고전파 경제학에서 가치란 대체 가능한것을 말한다. , 가치 있는 것이라면 가치 있는 다른 것과 주저 없이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완벽히 대체 가능한 가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50만 달러에 달하는 당신 집을 사겠다면서 은행 수표가 아닌 현금(100달러짜리 지폐 5,000장을 일일이 세면서), 혹은 금 50파운드를, 혹은 앞으로 10년 동안 당신의 십대 자녀 두 명을 무보수로 돌보겠다는 각서를 내민다고 상상해보라. 모두 화폐 액수는 같지만, 어쨌든 당신이 느끼는 가치는 각각 다를 것이다. ‘사용가치개념에서 교환가치개념으로 전환하는 일은, 합리적 경제학이 보장하는 약속의 땅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복잡한 일이다.

 

42~44p

  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어떤 상황의 결과에 대해 알거나 혹은 적어도 추측한 것을 바탕으로 한다고 가정한다. 이 가설이 과연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은퇴하는 날 다우지수가 어디에 머물지 추측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대효용을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확실한 가능성을 따질 수 있다면 합리적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가설에 대해 1953년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모리스 알레(Mauice Allars)가 제기한 흥미로운 문제가 있다. 다음을 읽고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 보라.

알레는 당신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제안한다.

A) 1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100%

B) 1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89%, 5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10%, 한 푼도 못 받을 확률 1%

선택을 했다면 다음 두 가지 중에서도 하나를 선택해 보자.

C) 1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11%, 한 푼도 못 받을 확률 89%

D) 500만 달러를 받을 확률 10%, 한 푼도 못 받을 확률 90%

A)D)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사림이 아니라 컴퓨터다. 컴퓨터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A)100만 달러를 받을 기회가 있다(이 경우는 확실하다). C)도 그렇다. B)500만 달러를 받을 확률이 10%이고, D)도 그렇다. 따라서 내가 1%라도 높은 확률을 원해서 A)를 선택한다면, 당연히 C)도 선택할 수는 없다. 그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선택한다. 결과가 불확실해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도박보다는 결과가 확실한 것을 선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관적 기대효용이론을 세운 I. J. 새비지(I. J. Savege)조차 A)D)를 선택했다. 그가 자신의 본능이 저지른 실수를 정정할 때까지였지만 말이다.

 

50p

  먼저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과연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가? 우리가 괜찮은 베이컨 샌드위치에 대해 말할 때 그 괜찮은 정도는 괜찮은 트럼펫 연주에 못지않을까?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카밀로 파도 아스키오파(Camillo Padoa-Schioppa)와 존 아사드(John Assad) 교수는 노의 안와전두피질에 있는 뉴런들이 가치에 대한 생각을 부호화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그것은 우리를 비롯한 영장류들이 이를테면 사과와 오렌지를 돈 같은 매개물로 전환하지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선호의 척도가 된다). 게다가 이 뉴런들이 부호환된 선호도는 일관적이고 강력하다. 붉은털원숭이들이 늘 사과주스 세 모금보다 포도주스 한 모금을 더 선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사과주스가 네 모금일 때는 사정이 달라지지만 이 같은 뇌의 선호도는 경험에 따라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노년에 부자가 되어 고급 샴페인을 맛볼 수 있게 되더라도 가난한 젊은 시절에 마시던 맥주보다 더 좋은 맛이 안 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대뇌피질의 외내두정역에 있는 뉴런들은 시각 정보를 안구 운동 지령으로 바꾸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여러 물체를 보면서 기대 이익을 추측할 때에도 활성화한다. 그에 따라 우리 뇌의 일부는 혜택과 가능성을 계산하며 주관적 기대효용에 근거하여 작동하기도 하는데, 그 계산이 꼭 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는 두개골 안에 있는 재정 고문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관심을 보내는 것이다.

 

52~53p

  신고전파의 경제학의 거장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1963년 한 MIT 동료 교수와 점심식사를 했다. 그때 새뮤얼슨이 한 가지 게임을 제안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맞추는 내기에서 이기면 200달러를 따고, 지면 100달러를 잃는 게임이었다. 경제학자인 그 동료는 난색을 표하며 답했다. 만약 그 내기를 한 번에 끝낸다면 사양하겠지만, 연속해서 몇 차례 계속한다면 기꺼이 할 의사가 있노라고, 그렇자 새뮤얼슨이 화를 내며 말했다. “결국에 가서 유리한 내기라면 한 번에 끝내도 유리한 건 마찬가지네. 불리한 내기면 몇 번을 해도 승산이 없을 테고.”

  그러나 그 동료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을 표출했다. “결국에 나한테 승산이 있다 해도 동전을 단 한 번만 던진다면 나는 질 수도 있지. 나는 그게 싫어.” 똑같은 행동이라고 해도 우리가 받는 느낌은 그것에 따르는 위험의 크기와 위험이 다가오는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널따란 널빤지 위를 걸을 때, 그 널빤지가 땅 위에 있는지 20층 위에 있는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유리할 것 같은 내기를 제안하더라도, 당신은 분명 내기에서 질 가능성뿐만 아니라 왠지 불길한 다른 가능성들까지 고려할 것이다. ‘게임은 공정할까?“ ’내가 이기면 돈을 선뜻 줄까?‘ ’내가 모르는 어떤 함정이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잘 속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러한 의심은 유리한 조건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게임이 여러 번 반복된다면 그런 의심은 점점 사라진다. 새뮤얼슨의 동료가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53~55p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r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사람들이 돈 내기를 꺼리는 성향, 손실 회피를 수량화하는 데 성공했다. 기대효용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이 기피 현상에 관한 연구는 행동경제학이 태동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그 결실로 카너먼은 2002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트버스키는 그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연구의 피험자들은 대체로 내기에서 이길 때 얻는 돈이 위험을 감수하며 건 돈보다 적어도 두 배가 되어야만 내기에 응했다. 사실 두 배 이상의 수익은 심지어 사기꾼조차 홍보할 엄두를 못 내는 수준이다.

놀랍게도 예일 대학 키스 첸(Keht Chen) 교수의 꼬리감는원숭이들 또한 거의 같은 계산을 했다. 그들은 확실한 만족감을 얻을 기회와 불확실하지만 더 큰 만족감을 얻을 기회 중 하나를 선택할 때, 불확실한 만족감이 확실한 만족감보다 적어도 두 배 반이 되지 않으면 결코 도박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절대적 관점이 아닌 상대적 관점에서 삼루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를 준거점 의존성이라고 한다. 실험자들이 한 원숭이에게 사과 조각 몇 개를 보여준 다음 거기에 몇 개를 더 추가했을 때(이때 총계를 X라고 하자) 그 원숭이는 기뻐했다. 그러나 실험자들이 처음에 X보다 더 많은 양을 보여준 다음 몇 조각을 빼고 남은 총계인 X를 건넸을 때는 원숭이의 고약한 심술을 상대해야 했다. 우리 영장류는 잃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는 이미 가진 것뿐만 아니라 가질 수도 있었던 것까지 고려하면 손실을 측정한다. ‘나는 구글을 150달러에 살 수도 있었다’ ‘나는 보스턴의 아파트를 팔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록밴드를 해체하지 않았어야 했다우리 내면의 꼬리감는원숭이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준거점 의존성은 단순한 가치판단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의 본질적인 단면이다. 19세기 독일의 심리학자 에른스트 베버(Ernst Weber)는 자극과 지각의 관계가 비대칭적임을 설명한 베버의 법칙을 만들어 명성을 떨쳤다(처음에 강한 자극을 주면 이후의 약한 자극에는 변화를 지각하지 못하고 더 크게 자극해야 지각할 수 있다는 법칙). 우리가 소리나 밝기, 무게와 같은 것이 일정한 비율로 점차 커지고 있다고 느끼려면(예를 들면, 1+1+1+1), 실제로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야 한다(1*3*3*3). 그렇게 때문에 별의 밝기나 데시벨을 측정할 때는 대수 계산자를 사용한다.

 

57~58p

  보유 효과는 놀라운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무엇을 잃고 난 뒤에 그것을 다시 살지 여부를 묻는 문제다. 당신은 기대감에 잔뜩 부푼 채 영화관에 도착한다. 티켓 가력은 10달러다(눈치 챘겠지만 실제 극장이 아닌 실험 속 가장 극장이다). 극장 안에 들어섰을 때, 당신은 A) 주차하는 동안 10달러 지폐를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도 티켓을 살 것인가? 혹은 B) 이미 샀던 티켓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티켓을 다시 살 것인가? 이 질문으로 실험한 결과, A)의 경우 88%의 피험자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한 반면 B)의 경우는 46%만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돈은 오로지 잠재적인 것이지만(아직 실질적 가치를 발휘하지 않았으므로) 티켓은 나의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두 번이나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수익률이 높은 주식을 지나치게 빨리 팔고 수익률이 저조한 주식을 지나치게 오래 끌어안는 경향이 있다. 비록 투자 손실이 과세에서 비롯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판 주식은 팔지 않은 주식보다 다음 해 수익률이 평균 3.4% 높았다. 우리는 좋은 것을 버리고, 나쁜 것을 유지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손실을 끌어안는 것은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원래 보유한 나의돈이 줄어든다. 이와 달리 수익률이 높은 주식을 팔면 분명한 수입인 남의 돈이 내 손에 들어온다. 이것을 바로 도박사의 오류라고 한다. 무언가가 평균 가치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그 가치를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심리다. 이 경우 우리가 평균으로 여기는 것은 주식을 살 때 지불했던 금액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이렇게 다짐한다.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때까지는 꽉 쥐고 있는 거야.” 그러나 1929RCA 주식(주가가 무섭게 치솟다가 192910월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와 함께 곤두박질 쳤음)을 보유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59p

  보유 효과란, 무엇이든 구매해서 자신의 것일 되고 나면 구매하기 전보다 그 물건에 더 애착을 갖는 현상을 뜻한다. 보유 효과는 돈마저도 단순한 돈으로 생각할 수 없게 유도해 우리를 더 큰 재정적 혼란에 빠트린다.

 

62p

  하지만 이런 현상은 개선되기보다는 손실 회피, 보유 효과, 근거 없는 낙관이 더해지면서 방치될 뿐이다. 역사는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에디슨이 백열전구 필라멘트 실험에서 만 번이나 실패했던 이야기 같은 수없는 실패담을 들려줄지 모른다. 하지만 이성은 할리우드의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W. C. 필즈(W. C. Fields)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한다. “처음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한 다음 멈추라. 정신을 차려보면 저주받은 바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덫에 걸린다. 재정 낭비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해서 무리수를 둔다면 세상의 비웃음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재정적 타격을 면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65p

  극단적인 예로,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뇌 영역인 전전두피질이 손상된 사람들은 위험한 판단이 야기할 불행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계산을 정확하게 할 수 있고, 이기는 게임과 지는 게임을 추상적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는 게임이라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언제 그만두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직감이 없거나 설령 있다고 해도 대개 무시한다.

이들보다 덜 극단적인 상태인 위험을 즐기는 도박꾼들은 미래의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 상황이 좋든 나쁘든 간에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잠재적 손실이 증가할 때 점점 큰 고통을 느끼고 잠재적 이익이 증가할 때 점점 큰 쾌감을 느끼는 것과 달리, 이들은 어떤 경우에서도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감각을 느끼기 위해 더 큰 자극을 원한다. 번지점프나 러시안룰렛(총알이 한 발만 들어있는 회전식 연발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방식으로 목숨을 거는 내기) 못지않게 위험한 도박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간단한 카드 게임인 고 피쉬에서 이길 때 느끼는 쾌감은 앞서 말한 도박사들이 전 재산을 걸 때 느끼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67p

  이 압도적인 욕망의 결과를 과도한 가치폄하라고 한다. 물건을 받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 그 중요성이나 가치를 대폭적으로 깎아내리는 심리를 말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 손에 당장 주어지는가 혹은 먼 미래에 주어지는가에 따라 그 가치를 판단한다. 비록 31일 후에 받는 1달러 10센트와 30일 수에 받는 1달러 중에서는 전자를 선호하겠지만, 내일 1달러 10센트를 받는 것보다 오늘 당장 1달러를 받는 편을 서택할 것이다. 즉각적인 보상과 지연되는 보상의 가치를 평가하는 뇌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본능적 욕구와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가 맡지만, 후자는 냉철한 판단을 하게 하는 전전두피질이 맡는다. 경제적 선택이 구매를 동반한다는 사실만 아니라면, 즉각적인 보상을 선호하는 심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본능이다. 만약 우리가 오늘의 1달러를 내일의 1달러 10센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누군가는 우리에게 1달러를 그러한 기준으로 팔려고 할 것이다. 바로 신용카드 발급을 제안하면서.

 

71p

  신용 사기꾼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사람들의 두 가지 비합리적인 본성에 의지한다. 그것은 바로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가용성 간편추론법’, ‘대표성 간편추론법이라고 부른 것이다(간편추론법의 다른 말은 어림짐작이나 주먹구구식으로 헤아리는 방법). 이 중 앞의 것은, 우리가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이상적이고 만족스러운 것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하는 특성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좋아하고, 따분한 숫자들이 나열된 통계표보다 하나의 좋은 사례를 더 환영한다. 그리고 흔히 내가 기억하는 걸 보면 중요한 것이 분명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뒤의 것은, 서로 관련이 없는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때 둘 사이의 관련성을 생각하는 특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값비싼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재계의 실력자들만이 알 법한 금융 비화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면, 그 사람의 존재감을 크게 느끼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스스로 삶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불법 텔레마케터들이 외과 의사를, 이메일 사기꾼들이 성직자를 주로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75p

  오늘날의 시장에서 진정으로 자주적이고 자유로운 해지펀드들은 규제나 감시를 받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돈을 이용해 그리고 가장 예측하기 힘든 파생상품을 통해 주식을 사고팔지만, 여전히 일관되게 절대적인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심지어 시장이 상승세를 탔던 1990녀과 2000년 사이에도 그중 90% 이상이 수익을 내지 못했다. 높은 수수료가 부과되기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77~79p

과학은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아마도 이 가설은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실생활에서 효과적이지 않은 다른 가설들을 낳는다. 실제로 우리는 비합리적 행동에서 비롯된 여러 경제 문제들을 겪고 있으며, 거시 경제는 계속해서 변칙들을 양산한다.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lof, 이 장에서 언급한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처럼 그도 노벨상 수상자다)2007년 미국 경제학회에서 그중 다섯 가지를 설명했다.

첫째,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고전파 경제학은 사람들이 부(현 수입과 할인된 미래 수입의 총계)가 증가할 때만 소비를 늘린다고 가정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중 절반 이상은 현 수입만 증가해도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무모하게 소비를 늘린다. 이 사회에는 검소한 개미가 있는가 하면 무책임한 베짱이도 늘 존재한다.

둘째, 당신과 당신 자녀들이 모니악에 설치된 수조처럼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면, 당신은 죽기 전에 정부 지원금을(이를테면 방탕한 생활을 통해) 모두 써버리려고 할 것이다.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든 결국은 당신 자녀들에게 상속세와 양도세를 부과함으로써 도로 거둬들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본질적으로 빌린 돈을 유산으로 상속하는 것일까?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그리고 말년에는 단지 무언가를 남기는 즐거움을 위해 지나친 절약을 한다.

셋째, 이론상 회사 임원들은 주주들을 위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려고 최상의 투자를 시도한다. 이용 가능한 현금 자금을 활용하든 주식을 되사든 부채를 지든 그 방법은 중요하지 않지만, 올바른 투자라면 융자 옵션들을 균형 있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 역시 개인과 마찬가지로 장기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경상수입만 고려해 투자를 촉진한다. 현금이 갑자기 많이 유입될 때, 그 기업 임원들은 무엇이라도 사야 할 것만 같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

넷째, 필립스 곡선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관계를 매우 간단하게 보여준다. 실업률이 낮을수록 임금 인상률이 높게 나타난다. 후에 이 이론은 자연실업률이 반영되면서 수정되었다. , 실업률이 낮으면 임금 상승 기대로 말미암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실업률이 높으면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로 말미암아 경기침체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1990년대 미국의 상황(역대 최저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동시에 낮은 인플레이션을 보였다)뿐 아니라 불경기에도 임금이 낮아지지 않고 단지 임금을 받는 사람 수만 더 적어진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했다.

다섯째, 고전파 경제학은 합리적 기대를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다음 달 무슨 조치를 내릴지 미리 예측하는 것은 합리적 기대에 속한다. 만약 중앙은행이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통화정책을 완화하기로 결정한다면, 각 경제주체들은 수요를 늘림으로써 이에 미리 대비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만 높아진다. , 통화정책은 이론상 실물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파워가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1970년대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아서번스(Arthur Burns)G. 윌리엄 밀러(G. William Miller)는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과 고물가 상태)을 잡기 위해 애를 썼음에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1990년대에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눈썹을 한 번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80~81p

애틀랜타의 여키스 국립영장류연구소에서 갈색 흰목꼬리감기원숭이 무리는 우리의 오랜 습관처럼 일하고 지불하고 소비하는 행동 패턴을 보였다. 그들은 본래 협력하는 무리로, 먹이를 포함해 무엇이든 공유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보상에 관한 한 그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거래를 주시한다. 포도는 맛이 좋고 오이 조각은 맛이 덜하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한 암컷에게 오이 한 조각을 주고 그 이웃에게도 똑같이 한 조각을 주면, 그 암컷은 오이 조각이 맛이 없어도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이웃에게는 오이가 아닌 포도를 주었다면, 그 암컷은 당신 얼굴에 오이를 던지려고 할 것이다.

단지 오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캐플런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일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거나 적성에 맞아서이거나 존경을 받기 위해서이므로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로는 충분치 않다. 보수만으로는 의미 없이 분주한 노동을 충분히 보상할 수 없다.

 

82~84p

먼저 죄수의 딜레마를 보자. AB는 범죄 혐의를 받고 검거된 후 서로 격리된 채 심문을 받았다. 검사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만약 A가 밀고하고 B가 침묵하면 A는 자유의 몸이 되고 B20년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가 침묵하고 B가 배신할 경우 A20년형을 받게 된다. 만약 서로 상대방을 배신하면 AB10년형을 받는다. 만약 서로 협조적으로 끝까지 함구한다면 몇 달 수에 방면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 개인에게 가장 좋은 전략(,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 형량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기 위한 전략)은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 게임이론을 보면 냉전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핵무기 경쟁이 대표적인 예, 핵무기는 비용이 많이 들고 사회적 불안감을 조장하는 등 이익이 될 것이 없지만,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군사적 우위를 차지할까봐서 계속 핵무기를 만들게 되는 딜레마에 빠졌음).

최종제안 게임에서는 A가 게임의 주재자에게서 10만 달러를 받는다. A는 그 돈을 자기 몫과 B의 몫으로 나누는 역할을 한다. A10만 달러를 73으로 나누어도 되고, 5 5로 나누어도 된다. 만약 BA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AB는 그 비율대로 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BA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둘 다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한다면 A10만 달러 중 극히 일부를 B에게 제안해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고, B는 그 제안을 거절해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하는 쪽보다 극히 일부의 돈이라도 받는 쪽을 택할 것이다. 물론 컴퓨터라면(그리고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선택을 쉽게 할 것이다.

그러나 페르 교수의 피험자들은 예상과 다르게 행동했다. 여러 번 실험 한 결과, 그들은 경제성과 합리성보다 공정성과 이타성을 더 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상대 용의자와 협력하고, 계속해서 돈의 공정한 배분을 요구했다. 게다가 배신자나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상대방을 응징하기 위해 기거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결정은 장기적인 안정성을 획득하거나 자신에 대한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실험은 단 한 번에 그쳤고 피험자들은 서로를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훌륭한 도덕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피험자들 중 약 50%는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사회적 기준들을 개인의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평가했다.

당신이 ,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취리히 대학원생들에 한한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전에 페르 교수는 당신의 생각을 읽었다.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금액이 석 달 치 월급에 달하는 진짜돈을 걸고 똑같은 실험을 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네델란드, 미국에서도 같은 실험을 했다. 각 실험 결과,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사회적 응집력은 같은 비율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팀에서는 경제학이나 심리학 이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에 사는 민족들인 탄자니아의 하드자(Hadza), 몽골의 토르구드(Torgoud), 파푸아의 구노우(Gnau), 파라과이의 아체(Achá), 페루의 마치구엥가(Machiguenga)족 등을 상대로 실험을 실시했다. 농부든 양치기든 정착민이든, 유목민이든, 튀르크 어파에 속하든 쿠시 어파에 속하든 매크로파노타칸 어파에 속하든 간에 개인적 이기심보다 공정성을 따지는 사회규범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호호 이코노미쿠스는 사람이 사는 육지에는 살지 않는 모양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사회적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더 사회적인 사람들이 있다. 페루의 키추아(Quichua)족과 인도네시아의 라마레라(Lamalera)족이 각각 최종제안 게임을 했을 때, 평균 제안액은 전자가 훨씬 더 적었다. 라마레라족은 돈의 절반만을 제안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카추아족은 상대가 얼마를 제안하든 기꺼이 수락하는 경향을 보였던 반면 도도한 구노우족은 호의적인 제안을 피츠버그 대학생들보다 더 자주 거절했다. 이렇듯 다양한 양상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상호 거래가 활발하고 협력 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이익을 더 공정하게 분배하며 사회규범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예컨대 라마레라족은 고래잡이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때문에 협력이 중요한 부족이다). 개인별로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은 무의미하다. 집단의 기준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제로 분배 게임이 몇몇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아웃사이더들만이 즐겨 하는 무모한 놀이라고 생각하는 부족은 없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은 재화의 공정한 분배를 결정하는 것이 일상생활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했다(케냐의 오르마(Orma)족은 자신들도 그와 같은 게임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 게임을 하람비(harambee)’라고 불렀다).

 

85p

앞의 시럼들에서는 어떤 목적성도 과감히 배제했다. 남은 것은 페르 교수가 강한 상호성이라고 부른 것뿐이다. ,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타인의 친절을 친절로 갚고 타인의 불친절은 불친절로 응수하는 본능적인 태도다. 이 본능이야말로 비합리적이고 비형식적인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놀랍게도 우리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약을 맺는다. 라고스나 상파울루에서 택시를 잡아탈 때, 운전기사는 우리가 요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지 알기도 전에 우리를 행선지로 데리고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요금을 내지 않고 도망칠 수도 있지만 대개 요금을 지불한다. 강한 상호성은 직장에서도 적용된다. 직원들이 법정 근로 시간을 초과하여 일할 때(물론 심야 비디오 대여점은 예외다), 고용주는 직원에게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발언들은 그 논리정연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비합리적인 계급 평화주의라는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고 만다. 자본가든 노동자든 우리가 같은 장소에서 일할 때, 우리는 서로 함께 일하고 있다고 믿는다.

 

86~87p

캘리포니아 대학의 제프리 골드버그(Jeffrey Goldberg), 리비아 마르코치(Livia Markóczy), 로렌스 잔(Lawrence Zahn)에 따르면 그 욕구는 단순하다. 그들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상대를 배신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대와 협력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가지 특징을 밝혀냈다. 그것은 통제감 착각대칭이다. 우리는 특정한 상황에서 막연히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믿으며, 무언가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지나치게 과신한다. 선거를 생각해 보자. 자신이 뽑은 당이 다수당이 되지 않았을 때 짜증이 나는가?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투표를 하는가?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져본다면, 당신의 표는 수백만 표 중 하나에 불과할 뿐 그다지 큰 의가 없다. 또한 게임이론에 따르면 합리적인 선택은 이기적인 배신자가 되는 것이지만, 대칭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공정한 선택을 하길 바랄 거라고 느끼게 한다. 이와 동시에 통제감 착각은 우리의 공정함이 상황을 올바르게 만들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물론 그런 것들은 사회적 훈련에 따른 습관과 선택일지도 모른다. 몽골의 천막집과 아마존의 오두막, 형광등이 켜진 세미나실에서 모두가 같은 행동을 보일 때, 우리는 사회적 삶에 가해지는 압력(어머니의 훈계 같은)은 놀랍게도 세상 어디에나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몇 가지 실험에서는 그러한 우리의 사회규범들 저변에 더 기본적이고 확고한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준다. 실험의 피험자가 불공정한 제안을 받았을 때, 뇌 영상에서는 사고와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일부인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크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르 교수의 연구진은 이 뇌 영역의 활성화를 억제하기 위해 경두개 자기자극을 가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만족과 관련 있는 뇌 영역인 선조체가 현금을 지급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배신자를 응징할 때도 활성화되었다. 우리는 상대를 응징할 때 경제적 손해를 보더라도 경제적 이익을 얻었을 때와 똑같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민속학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협력, 배신, 복수와 같은 문제들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것은 사실이다.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수치만 보더라도 그 피험자가 불공정한 제안을 얼마나 쉽게 거절할지를 알 수 있다(‘고작 3달러를 주겠다고? 이거나 먹어라!’). 남성의 뇌는 그렇게 경제적 의사결정을 내리고는 바로 스위치를 끈다. 반면 여성의 뇌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미래의 보상을 예측하고 전략을 세우며 불공정성에 분개한다. 그리고 서로가 협력할 때 여성의 뇌는 보상 영역인 선조체와 규칙과 관습을 인지하는 영역인 안와전두피질에 스위치를 켠다. 이렇게 볼 때, 여자들이 이기적인 행동보다 공정한 행동에서 더 큰 만족을 얻으며 그러한 행동을 더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92p

지극히 평범한 물건도 저항하기 힘들 만큼 유혹적인 대상으로 보여야 한다. 따라서 영리한 광고는 그저 필요하기만한 물건을 모두가 갈망하는 물건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암시와 연상 작용을 사용한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상품을 개인적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93~94p

벨기에 루벵 대학의 연구팀은 둘째손가락과 넷째손가락 길이의 차이와 남성들이 섹시한 여성이나 란제리 사진을 본 후 불공정한 제의를 받아들일 확률 사이에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손가락 길이라니? 하지만 사실이다. 둘째손가락이 넷째손가락에 비해 더 짧을수록 태어나기 전부터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남성일수록 최종 제안 게임에서도 대개 속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쉽게 주의가 흐트러질 수 있고 성적인 자극이 가해졌을 때는 불공정한배분을 수락할 가능성이 더 높아간다. 돈보다 즉각적이지만 더 작은 보상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성적 욕망은 과도한 가치폄하가 작용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상인들은 예쁜 여자 점원을 고용했고, 자동차 공구회사들은 섹시한 여성의 사진이 인쇄된 달력의 힘을 일찍부터 발견했다. 불공정한 거래를 분간하지 못하도록 남성들에게 성을 파는 것이다.

 

96~97p

그러나 우리는 막상 선택권이 주어지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심지어 의사가 관절염 처방을 내리기 위해 두 개의 치료약 중 하나를 선택할 때도 그렇다. 버트랜드 연구팀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험을 했을 때도 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은행이 단기 대출 프로그램 안내장을 보낼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자, 월별 이자율을 2.3% 올렸을 때만큼 대출 신청 수가 줄어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는 많은 휴대전화 회사들이 복잡한 요금제를 실시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느니 차라리 가장 비싼 요금제를 선택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생활에서 우리의 이상은 다음과 같은 코닥의 약속 안에 있다. “버튼만 누르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합니다.”

광고가 정보나 경고, 혹은 선택권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앞에서 보내는 수천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전 세계적으로 그 산업에 연간 수천 억 달러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인지, 위신, 연상이다. 먼저 인지부터 살펴보자. 우리의 마음은 효율을 추구한다. 효율은 우리가 선택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무언가가 필요한 순간 인지도 높은 브랜드를 발견하면, 우리는 그 브랜드를 선호하게 된다. 뇌 스캔 실험에서 사람들은 같은 코카콜라라도 브랜드를 몰랐을 때보다 브랜드를 알았을 때 맛이 더 좋다고 느꼈다(흥미롭게도 펩시의 경우에는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듯 편향된 선택은 우리가 일반적인 제품들을 지칭할 때 제록스클리넥스같은 특정 상표명을 언급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위신 역시 선택을 크게 좌우한다. 만약 할리우드 여배우 앤디 맥도웰(Andie MacDowell)이 당신에게 자신의 메이크업 브랜드를 사용할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무례한 일일 것이다. 광고는 그 제품을 사용하면 우리도 동료 영장류가 주스 및 몇 모금을 희생해서라도 보려고 안달이 난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광고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비단 개인의 지위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교묘하고도 의미심장한 계급의식을 심어준다. 랄프로렌(Ralph Lauren)은 부유층 자녀들이 입었던 치노바지와 샴브레이 워크셔츠의 고급화 전략으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그 옷을 입은 빼빼 마른 모델들은 조금 서투르고 어색하면서도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어서 마치 그로턴과 미스 포터즈(미국 명문 사립학교들)의 학생들을 보는 것 같다. 옷이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까지도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신감이 높아서 겉치장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반영한 것이다.

99p

가격처럼 위신도 상대적인 문제다. H. I. 멩컨(H. I. Mencken, 미국의 평론가이자 언론인)부유한 남자란 처형의 남편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비교당하는 것만큼 불쾌한 일도 없다. 하지만 햄프턴, 생트로페, 키웨스트의 쇼핑가들을 거닐다보면, 경쟁적인 과시와 소비의 불안한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단조로운 어촌으로 온 사람들이 또다시 그 틀에 갇히고 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당신은 이번 시즌의 필수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는가? 이 맥락에서 당신의 검정 티셔츠가 J. C. 페니(J. C. Penney)인지 아르마니(Armarii)인지는 실제로 중요하다. 브랜드는 당신이 오이가 아닌 포도를 땄다는 안심을 주기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는 수요뿐 아니라 공급도 반영한다. 그래서 제품의 희소성 또한 위신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102p

반면 경험을 구입할 때, 우리는 오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스카이다이빙 레슨을 받거나,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오르거나, 운하용 배에 올라타 루아르 강을 건너거나, 야구장에 갈 때, 각각이 주는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는데다 결코 질리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증명된 바는 없지만 설득력 있는 네 가지 가설이 있다.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영원한 부분이 되지만, 소요물은 분실, 부패, 퇴색 등을 통해 언젠가 버려질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라 경험은 사회적이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해주는 반면, 소유물은 개인적이어서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 경험은 물질만큼 우열을 가르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대성당 안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세인트바트 섬 해변에서 휴식을 취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롤렉스는 나의 타이맥스에 끊임없이 모욕을 준다. 또 경험은 시간을 늦춘다. 신형 메르세데스 벤츠는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일과 속에서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자동차 주행거리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를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한여름에 카타딘 산에서 해돋이를 본 기억은 전혀 다른 교훈을 준다. 짧은 순간도 더없이 충만하고 황홀한 기끔을 담아 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110p

성인의 뇌에는 그 수가 대략 1조에 달하는 뉴런들이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은 다른 1만 개의 뉴런들과 연결되어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또한 1초당 뇌에서 만들어지는 신호는 1년간 전 세계의 국제 전화 통화 중에 오가는 단어 수보다 1,000배 더 많다. “나는 수많은 것을 담고 있다.”라는 휘트먼(Whitman, 미국 시인)의 말은 옳았다.

 

112p

스탠퍼드 대학의 콰비나 보아헨(Kwabena Boahen)은 실리콘으로 뇌의 뉴런 구조들을 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인정한다. “최첨단 컴퓨터는 초당 109개의 명령을 수행하는 데 100와트의 전력을 사용하지만, 뇌는 초당 1016 시냅스 작용을 수행하는 데 겨우 10와트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볼 때 뇌가 109와트로 처리하는 일을 컴퓨터가 하려면 무려 1기가와트(10억 와트)가 필요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수치는 대다수 발전소의 최다 발전량을 초과하는 양이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전력을 50만 가구에 공급하든지 아예 하 인간의 지성에 공급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뇌는 매우 느리기도 하다. 대다수 뉴런들은 5밀리 초(1밀리 초는 1,000분의 1)당 오로지 한 번만 활성화할 수 있다. 우리가 0.5초 사이에 하는 행동(구덩이를 피하기 위해 길을 가로지르거나, 자기방어를 위해 총을 꺼내는 것처럼 인식, 결정, 행동으로 이어지는 패턴)에서 뉴런은 100회에 걸쳐 활성화한다. 하나의 컴퓨터로서 인간의 뇌는 랩톱컴퓨터보다 클록 속도가 50만 배나 느리다.

 

114p

뇌는 병렬 처리를 함에 따라 추가적으로 두 가지 기능을 더 갖는다. 그 때문에 뇌는 범용컴퓨터의 단순한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다. 첫 번째 특징은 모듈성(단원성이라고 한다)이다. 한 가지 문제를 두고 뇌의 다양한 영역에 있는 개별적인 시스템들이 동시에 작용해 그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이때 자극의 위치나 강도 같은 기본적인 감각 정보는 물론 더 고차원적인 문제들도 처리한다. 이 과정은 1초당 200회에 이르는 뉴런의 활성화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롤린슨의 예로 돌아가 보자. 롤린슨이 쓴 혼란스러운 문장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 동안 당신의 뇌는 다양한 영역에서 매우 다양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한다. 명암이나 날카로움, 형태 등을 단순히 파악하는 것에서 나아가 문법, 구문론, 의미, 기억 그리고 이게 뭐지?‘ 하는 어리벙벙함까지. 이 다양한 생각의 흐름은 저절로 전개된다. 화사의 경영자 같은 누군가가 나서서 일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로지 이 같은 뇌의 처리에 따라서만 세상을 인식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빈 서판, 인간이 백지 상태에서 태어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은 없다. 인간의 마음은 이미 내부에서 미리 형성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비선형성(반응이 주어진 것에 비례 또는 반비례하지 않는 성질)’이다. 개별적인 뉴런만을 볼 때, 뉴런의 임무는 간단하다. 흥분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뉴런이 흥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집단이다. 이웃 뉴런들로부터 흥분성 또는 억제성 입력을 받는 것이다. 만약 흥분이 뉴런의 시냅스를 거쳐 다른 뉴런의 입구(수상돌기)로 전달된다면, 그 흥분은 그 뉴런 안(축색돌기)에서 전기 신호로 전도된다. 이 연결은 마이크로 회로의 논리적 문들처럼 고정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마치 친구들이 밥을 여기서 먹을지 다른 데서 먹을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개연적이고 순환적이다. 이러한 비선형적 요소는 뇌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에 속한다. 따라서 동일한 자극에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고, 미세한 변화로 인해서도 매우 의외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예측 불능을 낳는 미생물이 늘 존재한다. 뇌 속에 있는 각기 다른 수준의 다양한 모듈들은 하나의 (인지적) 문제를 두고 병행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측 불능성을 띠며 수많은 상황 속에서 오류를 저지르기 쉽게 되다. 따라서 열쇠를 잃어버린다거나, 모임에서 본 낯선 사람을 친구로 착각한 나머지 지나치게 친한 척을 한다거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예측 불능성은 더 나아가 사랑을 할 때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인간이 컴퓨터보다 더 나아 보이게도 한다. 입력은 출력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저마다 다르게 반응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또한 뇌의 활동이 비록 전기화학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하더라도 이 같은 비선형성 덕분에 우리의 경험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즐겁게도 자유의지처럼 느껴질 것이다.

 

117~118p

이 문제의 원천은 우리의 탁월한 능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는 동시에 세 개의 뇌를 사용한다. 바로 뇌의 진화과정에서 발달한 세 가지 층을 말한다. ‘3부 뇌이론을 주창한 매클린(Paul Maclean)은 이 세 개의 뇌를 양손이 두꺼운 모직 장갑을 끼고 주먹을 쥐어 들어 올린 모양으로 묘사했다. 이때 손바닥에 해당하는 뇌간은 원시적인 파충류의 뇌. 트라이아스기에 번성하던 파충류의 뇌와 다를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파충류와 원숭이의 뇌에서 이 구조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담당한다. 사냥하여 먹이를 구하고 구애를 위해 과시하고 잘 곳을 마련하며, 떼를 지어 다니고 영역을 지키고 약자를 겁주고 한곳에서만 배변하는 등의 동물적 본능을 주관한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다.

손가락들(변연계)포유류의 뇌가 된다. 이 역시 의식적이지 않으며, 파충류는 못하지만 포유류는 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한다. 새로운 행동을 배우고 가족들을 돌보며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 같은 것들이다. 이런 행동들은 파충류 노이무조건적인 반사 의식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감정의 소용돌이치는 힘에 따른 것이다. 당신이 개와 함께 산다면 그 감정의 역할이 얼마나 강렬하고 미묘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외로움, 공감, 심술, 모성애. 아마도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다른 동물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느낄 것이다. 느끼는 방식에 관한 한 우리는 그들과 같은 매커니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모직 장갑(신피질 혹은 대뇌피질)은 우리가 영장류로서 특별한 사고를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엄지손가락들(전전두엽)은 우리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한다. ,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접근법을 통해 자신을 조절하는 등 인간다운 정신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엄지손가락은 손이 하는 모든 역할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뇌포유류의 뇌파충류의 뇌를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동시에 모든 층에서 삶을 경험한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 두려움, 욕망, 불쾌감은 신중한 결심과 계획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우울, 향수, 연민은 우리의 결의를 무력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고 자문하고 있다면, 즉 다시는 안 마시겠다던 술을 마시고 있거나, 단골 고객에게 모욕을 주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었다면 그것은 당신이 라고 부르는 정신이 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와 반대인 본능과 감정이 없는 논리도 똑같이 위험할 수 있다.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이 손상된 상태에서 전전두엽이 작용한다면, 위험을 잘 판단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욕과 열의를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120~121p

왼쪽 눈을 감아보라. 채을 들어 눈과 어느 정도 간격을 둔 다음, 옆 페이지 그림 안의 왼쪽 하얀 점을 응시하라. 그 상태에서 책을 가까이 당기면 검정색 십자가 사라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눈에 맹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맹점은 망막에 시신경만 있고 시세포가 없어서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이 실험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당신에게 맹점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사라진 정보를 배경 무늬로 대신 채웠다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당신의 뇌가 구성한 무언가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많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같은 실험을 해볼 수 있다. 막대 모양의 딱딱한 빵 한쪽 끝을 주시하면,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럼 그가 샐러드를 텅 빈 공간 속으로 밀어 넣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123~126p

이 같은 시각적 착각은 바로 착시라고 부르는 것으로, 실제로는 변함이 없는 것에 대한 우리의 타당하지 않은 추측일 뿐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볼 수 있는것을 통제한다.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절뚝거리는 것일까? 왜 자신이 실물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내버려두지 못할까? 왜 우리는 착각의 수렁 속에 빠지는가?

그 답을 얻으려면 다시 자원으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각 눈은 1초 마다 무선 랜 접속 시 데이터 량(10메가비트)만큼의 시각 정보를 대뇌에 공급한다. 그 시각 정보들은 투과된 빛을 감지한 시세포들을 통해 부호화된 신경 신호들이고, 시각 중추는 시신경을 타고 전달된 이 신경 신호들을 바탕으로만 색각(색 식별 감각)을 느낀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보는 현실은 매우 축소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이 빈약한 정보의 흐름이 마치 거침없이 쏟아지는 소방용 호스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우리의 경험들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중 대부분의 것들을 내다 버리고 나머지 것들을 우리의 기대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비록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우리 뇌에는 목적지가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각 경로가 있는 듯하다. ‘북측 경로는 주로 이게 뭐지?’ 하는 물음을 던지기 바쁘다. 이 경로를 따르는 신경 신호들은 날카로움, 방향, 그림자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과 같은 시각적 자극들에 반응한다. 이 북측 경로의 중요한 역할은 분류다. 그러므로 머릿속에서 나는 모른다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이 경로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배측 경로에서는 여기가 어디지?’ 혹은 이걸로 뭘 할 수 있지?’ 하는 의문을 품는다. 이에 따라 우리는 시력이 미치는 범위로 손과 발을 뻗는 등 우리의 신체 활동을 시야와 연결시킨다. 그런데 시각 경로들은 각각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북측 경로는 착시에 의해 조작되어 우리가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로 오인하게 하거나 보이지 않은 것을 봤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배측 경로 착각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다. 사물의 인식과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옆 페이지의 그림을 보자.

왼쪽 그림의 중심 원이 오른쪽 그림의 중심 원보다 더 크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두 원의 지름을 재보면 길이가 같다. 북측 경로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사람은 이 착시현상처럼 크기와 모양을 바르게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것들의 이름을 정확히 대지 못한다. 하지만 모양이 제각각인 모형들을 같은 모양의 구멍에 올바로 넣을 수는 있다. 이에 비해 배측 경로 착각은 증세가 덜 뚜렷하다. 그런데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갑자기 섬광이 번쩍이더니 나는 뒤로 넘어졌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사방이 훤비 보였다. 그때 나는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유체이탈 체험은 이제 죽음만큼이나 판에 박힌 이야기가 되었다(비록 그런 현상은 대개 기절하거나 약에 취하거나 측두정엽에 손상을 입었을 때 나타날 수 있지만, 캐나다 로렌시아 대학의 실험에서는 강한 자기장이 노의 특정 영역을 자극하도록 만든 헬멧을 쓴 피험자들도 똑같은 현상을 경험했다). 최근에 실시된 실험에서는 건강하고 완전히 의식적인 상태의 피험자들이 오로지 착시현상만을 통해 그것을 체험했다. 피험자들은 가상현실 안경을 쓴 다음 뒤에서 몇 미터 떨어진 카메라에서 나오는 영상을 보았다. 그러자 그들 각각은 자신의 의식적 자아가 육체 밖에 존재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한 실험자가 카메라 근처에서 공중에 주먹질을 했을 때는 피험자들의 피부 전기 반응이 고통을 감지하는 것처럼 활발해진 것이다. 비록 그들은 자신들이 앉아 있는 위치가 주먹질을 당하기에는 멀다는 걸 알았지만 말이다.

 

127p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진짜도 가짜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구분하는 것뿐이다. 뇌는 귀중한 자원들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그것들을 분류하고, 자원들을 통해 감각 경험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알아낸 후에야 그 감각 경험에 대한 의식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 ,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은, 사실 대뇌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수들이 간결하게 추려 내고 거기에 설명을 단 요약본이다.

 

130p

현실 세계를 인식하는 데는 청각이 시각보다 많은 점에서 낫다. 시력은 미치는 범위가 한정적이지만 청각은 사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루 알아볼 수 있다. 청각은 자연에서 적외선과 자외선 사이의 근소한 범위보다 더 넓은 영역의 주파수를 감지한다. 시각은 20분의 1초보다 빠른 섬광을 식별할 수 없지만(만약 식별할 수 있었다면 영화나 텔레비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각은 1,000분의 1초 간격으로 들리는 딸깍 소리를 인지한다. 소리는 언어의 풍부한 상징성과 음악의 감동적인 진실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목소리는 우리가 상대의 표정을 보며 읽으려고 애쓰는 성격과 감정에 대한 많은 단서들을 복제한다. 실제로 시력을 잃는 것보다 청력을 잃는 것이 삶에서 더 큰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맹인은 다른 감각기관들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뇌의 시각 회로를 활성화할 수 있다. 마음속에서 소리, 냄새, 감촉을 종합해 그려낸 이미지는 하나의 사진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러나 귀가 멀먼 부족한 감각 정보를 보충하기 우해 주변을 계속 의식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마치 의식적으로 호흡을 해야 하듯이 말이다.

 

132p

우리는 소리를 인지할 때 시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여러 소리 중에서도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듣는다(마이크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듣고 싶은 소리를 선별적으로 듣는 우리의 성향을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한다). 놀랍게도 뇌는 지각을 조절한다. 그래서 빠른 빛과 느린 소리는 그 간격이 최대 30미터까지 함께 도착하는 듯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각은 또한 귀를 속이기도 한다. ‘맥거크 효과(MacGurk effect)’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입모양으로 라고 말하면서 라는 소리를 낸다면, 우리가 실제로 인지하는 소리는 가 융합된 일 것이다. 단순히 음절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He’s got your boots”“He’s gonna shoot”으로 혼동한 것이 한 예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 혼동에 빠진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어도 그 혼동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복화술사와 움직일 입 없이도 말하는 앵무새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며, 콧수염이 있는 사람들과 전화상으로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말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138p

다른 곳을 보다가 시계의 움직이는 초침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 초침이 순간적으로 매달려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초침의 첫 번째 1초가 두 번째 1초보다 10% 더 길게 느껴지면서 말이다. 이는 당신의 뇌가 단속운동이 일어난 약 100밀리 초(1밀리 초는 1,000분의 1)를 당신이 그 에 보았던 것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뇌는 또한 경험을 묶음으로써 단순화한다. 만약 새를 세 마리 보게 된다면 우리는 한 마리씩 각각을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섯 마리로 늘어나고 계속해서 더 큰 무리를 짓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또한 우리는 특정한 얼굴 같은 분명한 것들뿐 아니라 거실에 어울릴 만한 색과 같이 모호한 것들에도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대상들이 눈앞에 있을 때, 우리는 동시에 일곱 가지 정도에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많으면 묶음으로 분류되거나 큰 혼동이 일어난다. 이것은 약자들의 생존 비결이기도 하다. 청어들의 소용돌이치는 공 모양, 떼를 지은 영양들의 V자는 포식자가 어느 한 개체의 잠재적 희생자에 관심을 집중하는 능력을 빼앗는다.

 

139~140p

짧은꼬리원숭이들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뇌의 하측두골 영역(시각적 판독을 담당하는 고차원적인 영역)’에서 전에 본 적이 있는 것들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을 부호화한다. 이 부호화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수백 개)의 뉴런들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발생한다. 시각적 판독은 불과 13밀리 초만에 이루어지는데, 이는 안구의 단속운동 속도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원숭이는 어떤 사물을 눈으로 보기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덜 진화된 피조물들은 윗둔덕(진화적으로 오래된 구조로, 인간의 뇌에서는 뇌간에 있으며 마치 구멍장이버섯류처럼 보인다)을 통해 시선 방향을 통제한다. 물론 우리도 자주 그렇게 한다. 선사시대의 파충류가 그랬듯이 우리도 시각적 패턴들을 무의식적으로 판독한다. 일반적으로 뇌에서 이루어지는 관심 메카니즘의 속도와 확산으로 볼 때, 우리가 스스로 중요한 것을 의식적으로 결정하고 그것에 관심을 집중한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결정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이것을 봐. 그리고 저 그림에서는.” 뇌는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무작위성과 우연의 일치를 믿기 어려워하고 증거가 충분치 않아도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보고 있지 않다.

 

141p

모세는 노아의 방주에 동물을 종류별로 몇 마리씩 실었지?”라고 누가 묻는다면, 당신의 대답은 , 모세?”가 아니라 두 마리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에 순순히 반응한다. 그래서 한 영리한 청소년은 어머니에게 “‘오늘밤 외출할 때청바지를 입을까요, 아니면 카고 바지를 입을까요?”라고 물을 수도 있다. 마치 영리한 투자 설계사가 “‘개설한 투자 계좌에수표나 현금으로 입금하시면 그 배당금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더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의 일부만을 강조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병사 훈련의 핵심은 절차와 명령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해서 적보다 상관을 더 무서운 존재로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병사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압도당하지 않고 마음을 단단히 중무장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는 빈틈없이 잘 짜인 변론이 사건에서 복잡하게 얽힌 실을 유리하게 풀 수 있기 때문에, 변호인은 아무리 소송의 쟁점과 상관없다 해도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일 이슈나 사실을 끌어들이는 데 주력한다. 한 변호인은 많은 증거와 증언이 제시되어 피고인의 살인죄가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일치하지 않으면 무죄입니다.”라는 유명한 말로 인종차별과 혈흔 불일치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어 상황을 역전시켰다(O. J. 심슨 살인 사건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사 조니 코크란(Johnnie Cochran)이 변론 마지막에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했던 말로 큰 효과를 발휘했다).

 

146~147p

1930년대의 대중 관찰 운동은 편견 없이 무작위로 수집한 사실들로만 역동적인 사회학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영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일기 쓰기를 권장했고, 그에 따라 이 운동의 몇몇 참가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특히 독일군이 런던에 폭탄 세례를 퍼부었던 런던 블리츠동안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날마다 정확히 기록했다. 몇 년 후, 그 운동의 창시자였던 톰 해리슨(Tom Harrisson)과 필립 지글러(Philip Ziegler)는 일기들 중 일부를 발표했다. 그리고 일기의 주인공 중 생존자들의 기억과 그들이 일기에 남긴 기록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했다. 지글러는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기억은 두려운 속임수를 쓴다. 우리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 당시의 상황을 다시 이야기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더불어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어떤 기록도 찾아보지 말 것을 요청했다. 예닐곱 명이 우리의 요청에 응했다. 당시의 기록과 30년 후의 회고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잘못 알고 있었다. 시간이며 장소며, 심지어 사건의 순서까지도, 거의 모든 경우에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사건의 중심에 더 가까이 끌어다놓았다. 이웃에게 일어났던 사건이 이제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이 되었다.

 

150~152p

거짓 기억이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면,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도 생생하게. “네가 다섯 살 때쯤인가, 기억나? 우리가 쇼핑을 하러 나갔는데, 네가 길을 잃어버렸잖니?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너를 발견했는데, 네가 그 할아버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잖아. 하지만 그 분은 정말 좋은 분이셨어. 그 분이 아니었으면 너는 계속 길을 헤맸을 거야. 그 할아버지가 무슨 옷을 입었고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니?” 거의 예외 없이 모두가 이 이야기에 친근감을 느낄 것이다. 영국 어빈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 연구실에서 바로 이 효과를 활용했다. 그려는 쇼핑하는 동안 길을 잃은이야기를 실험 수단으로 사용했다. 피험자들은 기꺼이 그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그 할아버지는 플란넬 셔츠를 입었다.” “엄마가 다시는 길을 잃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니가 아닌 언니가 해줘도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로프터스는 또한 피험자들에게 무언가(머리에 분필을 문질렀다든가, 플라스틱 개구리에 입맞춤을 했다든가 하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일)를 했다고, 혹은 디즈니랜드에 가서 벅스 버니(디즈니의 캐릭터가 아니다)를 봤다고 오로지 상상만 하던 거짓 기억을 실제로 겪었던 기억으로 믿도록 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날까? 왜 사람들은 일어난 적이 없는 일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할까? 어째서 거짓 기억을 실제로 일어났던 일처럼 완벽히 떠올리는 걸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다. 첫째, 만약 권위 있고 신뢰할 만한 정보원이 정보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그 정보를 개별적인 카테고리에 저장하기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들로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인 자가 자신을 상상활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기억하는 과정과 위험하게도 매우 유사하다.

 

둘째, 기억을 유지하는 일은 역동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기억을 쌓아올리는 동시에 거기에 광택을 낸다. 진주 혹은 담석처럼 매끄럽고 윤기 있게. 각각을 회상할 때, 우리는 관련이 없는 듯한 요소들을 버리고 관련이 있어 보이는 요소들을 추가한다. 만약 쇼핑하는 동안 길을 잃었던 때를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와 관련된 다른 기억들이 그 기억의 조각이 되어 풍부한 내용의 거짓 기억을 완성한다.

 

마지막으로, 기억은 어떤 중앙 서버에 저장되지 않고 분산된다. 어떤 기억 요소들은 놀라울 정도로 개별적이고 지엽적이다. 피험자들의 뇌를 스캔하는 실험에서는 그들이 할리우드 여배우 할리 베리(Halle Berry(또는 제니퍼 애니스톤 Jennifer Aniston이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의 모습이나 이름을 보자마자 개별적 뉴런들이 활성화되는 걸 볼 수 있다. 기억의 시각적 구성 요소들은 시각 체계에 존재한다. 언어 기억들은 구어나 문어와 관련 있는 영역들을 활성화한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순간에는 흩어져 있던 감각적·추상적 정보들이 재조합되며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의 상황과 관련된 과거가 떠오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이 되살아난다.

 

154p

이런 과정이 원숙기에 접어들면, 우리 뇌에서는 백질(신경 중추부에서 신경 섬유의 집단을 이루며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기능을 함), 즉 전도부의 비율이 높아진다. 어린 시절의 짜릿한 자극은 개별적인 일괄 회로로 안착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 속에 정교하게 만든 경험들은 감각 인상들에 대한 열렬한 반응(아이는 어른보다 감각 뉴런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우리는 초콜릿 케이크를 어렸을 때 더 맛있게 먹었다)에서 속담들, 우화들, 무서운 경고들(우리 어른들이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들)로 전환한다. 하루 일과 속에서 우리는 실로 많은 것들을 획득하기 때문에 우리를 이끌어줄 더 많은 것이 필요치 않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새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은 더 더디게 진행된다. 학자 조지 리틀턴(George Lyttelton)70대의 나이에 지적했듯이, 노쇠의 징후는 잘 잊는 것이 아니라 잘 기억하는 것이다. 노인들은 젊은이들과 식탁에 마주앉아 그들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고릿적 경험담이나 우스개 이야기를 거듭 늘어놓는다. 그 이야기를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자주 했는지를 빼고는 모두 세세하게 기억해낸다.

 

158p

로버트 매클로스키(Robert McCloskey) 미 국무부 대변인은 베트남과 관련해 브리핑하는 동안 즉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제 말을 이해했다고 믿으실 거라는 걸 저는 압니다. 허나 여러분이 들은 것은 제가 의미한 바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을지 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만약 말이 단순히 의미의 전달이라면, 그래서 말할 무언가가 있을 때만 말을 한다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말을 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최근 UCLA에서 실시한 실험이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말을 한 마디 했을 때,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도체에서 스트레스를 높이는 활동이 약해졌다. 연구를 이끈 매튜 리버먼(Matthew Lieberman)말로 감정을 표현하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낮아지기 때문에 몸은 약한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백악관에서 닉슨의 외침과 속삭임은 단순히 말 못할 그 무언가에 대해 말하기 위한 시도만이 아니었다. 궁지에 몰린 하수인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매클로스키(후에 대사직에 임명되었음0의 말은 외교적 중의성의 문제였다. 매클로스키는 한때 좀 더 명확한 표현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명확성을 위해 모호성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179p

당신에게 나오미라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 친구는 학교에서 예술적인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정치 성향이 급진적이며,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서 수학 점수가 매우 낮았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나오미가 은행 직원과 조각가 중 어떤 직업을 택할 것 같은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아마 나처럼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은 틀렸다. ‘것 같은은 확률의 문제다. 나오미의 적성과 무관하게 통계는 우리에게 조각가보다 은행원의 수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오미가 은행 직원과 비영리 조합은행 직원 중 무엇이 될 것 같은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 또한 다른 관점에서 틀렸다. ‘조합은행 직원은행 직원의 부분 집합이다. 이러한 종류의 오류를 인지적 착각이라고 한다. 우리의 준거 틀이 저지르는 실수는 우리가 쉽게 속아 넘어갔던 시각적 착각만큼이나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자연스럽다.

 

182~184p

낙관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단순한 인류학적 환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삶과 행복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한 여성 환자가 의사인 당신에게 암 검진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그녀 나이 또래의 여성들 중 0.8%가 암에 걸린다고 당신은 알고 있다. 그리고 암에 걸린 사람이 양성으로 진단될 확률이 90%. 그리고 검사 결과 거짓양성, 즉 실제로 양성이 아닌데도 양성으로 나올 확률은 7%. 그녀의 경우,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암에 걸린 걸까? 독일의 한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대다수 의사들은 그런 문제가 자신들에게 주어졌을 때 그렇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몇몇 의사는 진단 결과가 음성으로 나온 경우 정확도를 그 반대로 90%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 판정은 정확하고 양성이다. 그밖에 뭐가 더 필요한 걸까?

사실 그 환자가 암에 걸릴 확률은 겨우 9%에 불과하다.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그 문제를 재구성한다면, 당신도 아마 이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1,000명의 여성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8명은 암에 걸릴 것이고, 암 검진은 그들 중 7명에게서 암을 발견할 것이다. 한편 암 검진은 70명의 여성에게서 암을 잘못발견하는 오류를 범할 것이다. 당신의 환자는 양성 판정을 받은 77명의 여성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고 그중 7명은 실제로 암이다.’ 확률에 서툰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자연스럽게 확고히 해줄 수 있는 낙관적인 증거들을 선호하고 신뢰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이것은 과학적 실험이나 실기 시험의 기본적 형태로, 본질적으로 매우 형식적인 문제다. 만약 이것이 쉽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세상의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해낼 수 있다. 반대로 쉽지 않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대다수 사람들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당신 앞에 카드 네 장이 있다. 한쪽에는 알파벳이, 다른 한쪽에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D

K

3

7

 

188p

한편 아무도 졸속이라고 부르지 못할 최전방 전투기의 기술 개발에서도 말썽이 있었다. 그 기술을 책임지는 조직에서 잘못된 가설을 참으로 여기는 허점을 드러냈다. 2007211일 최신예 전투기 F-22 랩터 여섯 대가 하와이의 히캄 공군기지를 더나 일본 오키나와로 향했다. 그런데 여섯 대 모두 비행 도중 완전히 방향을 잃었다. 그 연료 제어 시스템과 통신 시스템은 125백만 달러의 가격표를 무색할 정도로, 농약 살포 비행기 같은 아둔한 모습을 보였다. 그 당시는 날씨가 쾌청했고, 전투기들은 결함이 생길 경우 안전 모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동반하는 공중 급유기(많은 연료를 싣고 연료를 보급하기 위한 특수 장치를 갖춘 대형 수송기) 뒤를 순한 양처럼 따라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려던 숨은 적은 대체 무엇일까? 문제는 바로 국제 날짜변경선이었다. 랩터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천 개 이상의 기업들 중 아무도 태평양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할 때 날짜가 앞당겨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기체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는 시간을 뛰어 넘었을 때 이상 징후를 보인다. 미국의 풍자 시인 오그던 내시(Ogden Nash)가 지적했듯이, 때때로 지나친 영리함은 멍청함이다.”.

 

206~208p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하려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그 답이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상쇄효과가 늘 우리 앞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몰입 상태를 추구하면 새로운 안전장치가 막아주지 못하는 위험을 무릅쓸 가능성이 높아진다. 잠금 방지 브레이크 장치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그것을 장착한 자동차들이 오히려 더 많은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그 안전장치는 운전자들에게 안전성에 대한 지나친 과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헬멧을 쓴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더 위험한 산길을 달리려고 하고, 물에 빠지지 않도록 설계된 유아용 목욕 의자 때문에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기가 많아진다. 완전히 안전하거나 완전히 위험한 것은 없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화 <포고(Pogo)>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적을 만났다. 그 적은 바로 우리다.”.

 

학술 자료에서 인적 과실에 관해 찾아본다면, 이것을 대신하는 용어로 인적 신뢰도가 자주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실수는 인간이 수행하는 일들의 불가피한 부분집합이라는 깨달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인류가 갖는 완전함에는 한계가 있다. 한결같이 탁월할 것이라는 전제로 당신의 시스템을 설계했다가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불완전성에 저당 잡힐 수 있다. 또한 실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모든 실수에 책임이 따르지는 않는다. “비극적 삶에는 악인이 필요치 않다!” 오류가 늘 죄는 아니다. 가벼운 실수는 큰 실수와 다르며, 착오는 혼동과 구분된다. 같은 맥락에서 인적 신뢰도 평가는 단순히 경고로 비난하고 금지하지 않고, 위험성이 높은 행동들을 성질에 따라 몇 단계로 분류하고 각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문제들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과실을 줄이고 과실이 불러올 충격의 강도를 낮추기 위해 필요한 행동 수정을 제안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인 제임스 리슨(James Reason)은 이를 스위스 치즈 모델이라고 부른다. 치즈 조각에 난 구멍들이 한 줄로 늘어서지만 않는다면 커다란 재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오류는 인지 오류다. 상황이 잘못돼가고 있다는 증거가 존재하는데도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자동차 사고와 항공 사고들은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났다와 같은 인식 오류의 결과로 발생한다. 타이밍 역시 문제를 일으키는 큰 요인이다. 우리는 연달아 일어나는 사건들을 인과관계로 쉽게 단정 짓는 경향이 있듯이, 순차적이지 않은 사건들 사이의 관련성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 접속 상태가 느릴 때, 우리는 반복적으로 마우스 버튼을 누르다가 의도하지 않게 올랜드 행 티켓을 네 번 이상 구입하고 만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10p

제임스 리슨은 실수의 유형을 다음의 세 단계로 분류했다. 첫째, 능력을 적절히 발휘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실수’, 둘째, ‘올바른반응이 잘못된 상황에 적용된 규칙 기반 실수’, 셋째, 상황을 전반적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기로 결정하는 지식 기반 실수’. 리슨은 우리가 이 오료의 굴레에 강하게 속박 당할수록 오류에서 벗어나 사물을 제대로 인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평범함에 대해 무심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리슨의 분류는 또한 어째서 전문가들이, 특히 자신감이 넘치는 전문가들이 마찬가지로 쉽게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내가 할 수 있다’(혹은 더 위험한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개인적인 전부함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나에게는 정상적이라는 가정이다. 이때 그 예상치 못한 상황 자체는 스스로를 신중하게 점검하는 과정을 방해한다. ‘차르52’의 조종사들이 깨달았던 바처럼 말이다.

 

213~214p

니벨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하겠지만, 시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다만 병에 걸렸을 뿐이다. 그의 병은 가장 지적인 사람이 쉽게 걸리는 동기에 따른 추론이었다. 이 병은 지성보다 더 깊은 차원의 정신 구조인 인식력 자체를 약화시킨다. 프린스턴 대학의 지바 쿤다(Ziva Kunda) 심리학 교수는 이러한 주제의 연구 대다수를 다룬 한 논문에서 특정한 결과를 바라는 욕망인 동기는 관찰, 기억, 계획과 같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대개 정보를 선택하고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어떤 특정한 의견을 가진다. 그래서 확실한 증거가 부족할 때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안성맞춤인 동전 던지기를 택하면서 그 결과가 우리의 바람대로 32승인지를 본다.

 

216~217p

세계 최초로 음속 장벽을 돌파하는 비행을 한 척 이거(Chuck Yeager)는 애처롭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대로 말한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 해도 말이다. 이보다 더 큰 진실은 없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진실이 있다. 추상적인 신앙의 가르침인 교의, 공인 본문(성서 연구에서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원전),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믿음 등이 그렇다. 신학교, 마드라사(이슬람 국가의 고등교육 기관) 혹은 예시바(정통파 유대교도를 위한 학교)의 졸업생들이 느끼는 충만한 만족이란, 많은 지식을 탐구한 끝에 자신의 가설들을 입증해 줄 증거를 발견한 사람들이 느끼는 만족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들의 이성에도 반드시 동기가 있기 때문에 자원들을 취사선택할 때 이미 객관성은 그들의 착각이 된다. 그들의 마음은 오로지 자신에게 이로운 홈게임만 한다. 신앙이 그들의 이성에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에, 신앙과 관련이 없는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218p

자신의 입장 설명하기, 다른 가능성 인정하기, 타인처럼 생각하기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는 몰입 경험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세상을 더 안전한 곳으로 끌어다 놓을 수 있다. 어느 산부인과 의사에게 자연 분만이 아닌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할 때마다 그 이유를 자발적으로 설명하도록 요구했을 때, 제왕절개 수술 비율은 4 1에서 10 1로 줄어들었다. 그 절차는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무리한 수술을 하지 않도록 하여 산모와 태아가 위험해지는 확률을 줄인 것이다. 표본이 된 동성애자들에게 성관계에서 콘돔을 사용하지 않을 때마다 그 이유를 기록하도록 했을 때는(비록 그 이유가 그 순간의 뜨거움때문이라고 해도) 콘돔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실수는 죄악에서 태어난 인간의 적이 아니다. 실수는 우리 사고 과정의 일부로서 인격이 없다.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동맹자다. 비록 위험한 동맹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무의식적 실수에서 동기화된 이성에 이르는 다양한 실수의 유형을 안다면, 실수를 어느 정도 모면할 수 있다.

 

228~229p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언어 선택이었다. ‘때때로’ ‘대개의 경우’ ‘자주’ ‘잠시’ ‘더 명확히 말하면’ ‘어느 정도’ ‘의심스러운’ ‘다른 한편으로는등과 같이 상대성과 개연성을 암시하는 말을 주로 사용한 관리자들은 실제로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반면 언제나’ ‘절대로’ ‘예외 없이’ ‘확실히’ ‘결코’ ‘오로지’ ‘당연히와 같이 절대성을 암시하는 말들을 주로 사용한 관리자들은 성공을 얻지 못했다. 이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리더십 과정에서 제시하는 어휘 목록에 반드시 들어 있는 확고하고 강한 느낌의 말들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설령 그런 말들을 자주 쓰는 이유가 상황을 단순화하기 위한 좁은 소견 때문이었든, 자신 있는 행동과 유능함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했기 때문이었든 말이다. 만약 능력 있는 사람은 성격이 단호할 거라고 믿는다면, 그리고 과단성 있는 행동이 효과적인 리더십을 부여해 줄 거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앞서 언급했던 기본적 귀인 오류의 희생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진짜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잊고 있다. 그것은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에 초점을 맞춘 가치인 개방성, 왕성한 호기심, 변화를 보는 눈,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배려심 등 같은 것들이다.

 

233~234p

4주 후,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v Petrov) 중령은 소련 모스크바 위성 통제 센터인 세르푸호프-15의 비림 감시 벙커에서 사령관의 위치에 있었다. 그가 위성 활동을 점검할 무렵 컴퓨터 시스템에서는 군사 위성이 보내는 요란한 조기 경보가 울렸다. 미국이 핵미사일 1기를 소련에 발사했다는 신호였다. 매우 급박한 순간이었다. 불과 몇 주 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 발생했기도 하거니와,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소련의 선제공격에 대비해 엑서사이즈 에이블 아처 83’이라는 시뮬레이션 훈련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소련은 이제 KGB(구소련의 국가 보안 위원회) 전 의장 유리 아드로포프(Yuri Andropov)가 이끌고 있었다. 그는 냉전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편집증적인 증세를 강하게 나타냈기 때문에,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한다면 즈각적인 보복 공격을 지시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페트로프는 보복 공격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미국의 선제공격이 타이밍과 세부 사항을 기준으로 볼 때 과연 적절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페트로프가 상황 파악을 위해 애쓰는 동안 경보음이 또 다시 울렸다. 위성은 미국이 두 번째 핵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핵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보고가 뒤를 이었다. 경보음은 귀청이 떨어질 정도였다고 페트로프 중령은 당시를 회상했다. “15초 동안 우리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우리는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이미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페트로프 중령 앞에는 빨간색 개시버튼이 깜박이고 있었다. 상황을 어서 보고하라는 상부의 독촉 명령이 떨어졌다. 페트로프는 말했다. “예감이 이상했다. 나는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라면 핵미사일 5기로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련의 반격이 불가능하도록 핵미사일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발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페트로프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상관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된 경보라고 보고했다.

그의 순간적 판단은 적중했다. 위성 시스템은 높은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적의 미사일로 오인했던 것이다. 실제로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그 위성 시스템은 버그가 제거되지 않은 채 풀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신중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우리는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라면.”)을 갖춘 페트로프는 표준 절차들과 명령 계통에 따라 위임 받은 책임을 준수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세상이 핵전쟁으로 초토화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240p

모든 것은 전형적이고, 보편적이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모호한 사회주의적 형제애를 명분으로, 압제자에 의해 거부당했던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동시에 축배를 들었다. 군중이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이유는 그 자체는 행동과 거의 관련이 없다. 역사는 일시적인 집단적 광기의 사례들로 가득하다. 그 순간이 지난 후 가담자들은 이런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241~242p

셰리프 교수는 그 소년들을 아무 기준 없이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소년들은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며 잘 지냈다. 반 이름을 정하고(한 반은 독수리이고 다른 한 반은 방울뱀’), 깃발의 도안을 그리는 등 집단적인 여러 활동을 했다. 그들은 서로 친밀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실험자들은 두 집단 사이에 경쟁심을 부추기는 일련의 게임들을 준비했다. 게임에서 이기면 (날이 네 개 달린 야영용 칼을 비롯하여) 소년들이 탐낼 만한 상을 주기로 했다. 즉시 독수리 반과 방울뱀 반 모두 심술 맞은 경쟁 심리가 발동했다. 그들은 서로 속이고 비방하면서 뒤에서 몰래 밀기도 했으며,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급기야 독수리 반이 방울뱀 반의 깃발을 불태우고, 방울뱀 반이 독수리 반의 오두막집을 급습해서 상들을 훔쳐가자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셰리프 교수는 두 집단을 떨어뜨려 냉각기간을 준 후 다시 함께 즐기며 어울릴 수 있도록 바비큐 파티와 불꽃놀이를 마련했지만 그들이 화해하기는 좀처럼 어려워 보였다. 오히려 더 심하게 서로를 경멸하고 모욕했으며, 심지어 음식을 던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화해를 할 수 있었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은 함께 해결하고 성취해야 할 공동의 목표였다. ‘반달(공공 기물 파손자)로 인해 캠프에 물 공급이 차단되었을 때, 독수리 반과 방울뱀 반은 한 집단으로 뭉쳐서 함께 파이프라인을 점검하고 해결책들을 제시했다. 물자 공급 트럭이 정문 바로 밖에서 시의 적절하게 고장 났을 때는 함께 힘을 합쳐 트럭을 정문 안으로 밀었다. 그리고 마침내 캠프 일정을 마칠 무렵에는 한때 갈등을 빚었던 두 집단이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함께기기로 약속했다.

5학년생들이 인간의 모든 유형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버스 케이브의 경험은 익숙한 역사적 사건들과 많이 닮아 있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그들 자신들을 우리그들로 구분하며, 근거 없이 전장에 우호적인 반면 후자에 적대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과 적개심은 오로지 함께 헤쳐 나가야 할 더 큰 도전 과제가 주어질 때에 극복된다. 어떤 보상을 얻기 위한 과제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진실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남는다. 대체 왜일까?

 

243~244p

최근 하이파 대학에서 실시한 한 흥미로운 연구에서도 표정이 유전된다는 점을 입증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본 아이들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지은 표정이 그들 친족들의 표정과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 한 맹인 남성은 18세가 될 때까지 만난 적도 없는 생모와 표정이 닮았다. 우리가 친족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단순히 눈, , 입만이 아니다. 히죽 웃는 표정과 찌푸린 표정, 흘기는 표정도 함께 물려받는다. 혈족 관계를 드러내는 그런 징표들은 행동에도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류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많은 문화권에서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어머니의 친족들은 아이 아버지에게 그 아이가 아버지를 얼마나 쏙 빼닮았는지를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 충동은 사실상 아이가 가장 중요한 잠재적 보호자의 보호르 받아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본능적인 시도라고 한다. 한 실험에서 실험자들은 피험자들에게 얼굴 사진을 각각 두 장씩 보여주었다. 그중 한 장은 그들 자신의 얼굴과 닮아 보이도록 교묘하게 조작된 것이었다. 사진을 본 피험자들은 자신과 관련 있는얼굴에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성적인 매력은 덜 느꼈다. 그러한 성향은 친족들끼리 근치상간을 하지 않고 함께 협력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들처럼 오이디푸스도 얼굴들을 좀 더 예민하게 보았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246p

그런데 일방통행 도로인 경우, 다시 말해 자신이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결정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다는 걸 알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뇌영상학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보다 거울 신경이 더 적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미 직관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눈치나 재치는 단순히 성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그런 면이 부족하다면 사회성 부족을 의심해볼 수 있다. 신경과학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기 하지만, 거울 신경 시스템과 관련된 피질 영역이 얇을수록 자폐증의 정도가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앞에서 언급한 성별에 따른 차이와 함께 이 연구 결과는, 심리학자 사이먼 배런 코언(Simon Baron-Cohen)의 이론인 자폐성을 보이는 사람은 사회적 배려가 없는 극단적인 남성 뇌이 소유자라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248~249p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타인의 욕구를 예측하고 숨은 의도를 추론하는 현상들을 정리해 마음 이론이라는 하나의 완전한 가설을 세웠다. 이 이론의 핵심은 우리 인간만이 타인의 믿음, 특히 잘못된 믿음을 추측할 수 있으므로 인간의 지성은 짐승들의 지성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갖춘 독특한 특성이 한 개인에게서 나타나는 시기는 꽤 늦다. 이에 대한 한 고전적인 실험이 있다. 아이들은 한 방에서 두 사람(혹은 두 개의 인형이나 만화 캐릭터)이 장난감 한 개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관찰한다. 둘은 상자 안에 그 장난감을 넣는다. 그 후 둘 중 한 명인 샐리(Sally)가 방을 나간다. 그러자 방에 혼자 남은 앤(Anne)은 상자에서 그 장난감을 꺼내 다른 곳에 숨겨둔다. 조금 후에 샐 리가 돌아온다. 그때 그 장면을 지켜본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진다. “샐리는 그 장난감이 어디 있다고 생각할까?” 3~4세 아이들 대다수는 자기들이 아는 것처럼 샐리도 장난감이 어디 있는지를 알 거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5세 아이들은 샐 리가 알지 할 거라는 걸 추측해낸다. , 앤이 장난감을 숨긴 걸 샐리는 알지 못하므로 장난감을 상자 안에서 찾을 거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다. 샐리의 잘못된 믿음을 추측한 것이다. 이렇듯 일정한 연령이 지나면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등 상상하는 능력이 갑자기 생겨난다(이때가 되면 거짓말도 훨씬 능숙하게 할 수 있다). 한편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욕구나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과 상대의 입장을 같다고 본다. 그래서 익히지 않은 브로콜리와 크래커가 앞에 놓여 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크래커만 주려고 한다. 심지어 실험자들이 크래커를 싫어하고 브로콜리를 좋아하는 척해도 소용이 없다. ‘모두가 자기처럼 브로콜리 맛이 끔찍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51p

그렇다면 실질적 공동체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배가 고플 때 서로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은 모두 얼마나 될까? 배가 고플 때 서로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은 모두 얼마나 될까? 대략 150명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중에서 최대한 12명을 자기 자신만큼이나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추산을 한 사람은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 지난 20년 동안, 그와 그의 동료들은 인간과 다른 영장류 동물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관찰한 다음 흥미로운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영장류 동물의 뇌에서 신피질의 크기가 클수록 그 종의 전형적인 사회집단도 컸던 것이다(이 상관관계는 다른 육식동물들에게도 적용되는 듯하다). 지위를 얻고, 짝짓기를 하고, 음식을 나누고, 몸단장을 하는 등 복잡한 사회적 관계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전된 두뇌 자원들이 매우 많이 소비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획득하는 사회적 정보들은 자신이 이 친구들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 이 상황에서 어떤 친구들 믿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할 때 유용하다.

 

252p

150명의 공동체는 보통 수렵 집단이나 전통문화를 보유한 작은 마을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보다 복잡하다. 던바는 이 점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낼 사람들의 명단이 필요하다고 하자. 적어도 1년에 한 번 연락할 필요가 있을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그러니까 친척들, 오랜 친구들, 회사 동료들 그리고 왠지 싫긴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보통 130명에서 최대 153명 정도다. 그 한도는 확고하다. 150명 이상에게 개인적으로신경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천재이며, 외교관이 되어야 할 사람이다.

 

259~261p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와 그의 동료들은 다양한 문화 속에서 혐오감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들은 혐오감의 물리적원천들(배설물, 시체 등)은 어디에서나 같지만, 도덕적이고 지걱인 차원의 원천들은 누에 띄게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미국 사람들은 무분별한 폭력과 인종차별적인 태도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일본 사람들은 무례한 행동과 개인적 결점들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정치인과 뚱뚱하며서 해변을 나체로 활보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인들은 뻔뻔스러움에, 호피(Hoppi(적어도 하이트가 인터뷰했던 6명의 경우))은 우주와의 부조화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원천은 다양하지만 반응은 오직 하나, 혐오감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여러 문화가 충동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코 가하는 도덕적인 모욕은 거의 용서할 수 없을 정도다. 도덕적인 모욕감이 일으키는 반응은 도덕적이 아니라 물리적이기 때문이다.

이 혐오감은 뇌의 인슐라가 주관한다. 인슐라는 영장류의 뇌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채 오랫동안 일관되게 제 기능을 발휘해 온 것으로, 우리의 직감과 본능적 감정들(두려움, 분노)을 제어한다. 혐오감은 가시 돋친 말(“저런 사람들은 어딜 가도 꼭 있다니까.” “넌 네 여동생이 그런 사람하고 결혼했으면 좋겠니?”)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관습이나 야만적인 의식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등장한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경멸 혹은 연민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타인을 어리석고 무능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영국 사람들은 아일랜드 사람과 인도 사람을 그렇게 여겼다). 당신은 부러움을 느끼는가? 그렇다고 당신은 타인을 더없이 냉랭하고 몰인정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아일랜드 사람들과 인도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을 그렇게 여겼다). 우리는 이 근본적 감정들 위에 복잡한 문화를 세운다. 거기에서 우리는 인슐라의 즉각적인 편견을 이끌어낼 만한 행동을 경계한다.

그래서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국인들은 인종차별적 태도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감정이 뿌리 박혀 있다. 그 감정은 아주 깊숙이 숨어 있다. 알렉산드라 골비(Alexandra Golby)가 발표한 뇌영상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는 자신의 인종과 낯선 인종의 얼굴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경웨 우리 머릿속에서는 사람을 식별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추상회에서 특히 얼굴에 관한 정보를 처리하는 방추형 얼굴 영역이 더 활성화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국에서 이 혀상은 흑인들보다 백이들 사이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흑인들은 인구수에서 소수로 밀려나기 때문에 다수인 백인들을 식별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백인들은 인종에 대해 비교적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다. 물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인식은 그들의 감정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비록 백인 미국인들을 상대로 뇌 영상 촬영 및 심리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에서는 인종차별주의를 명백하게 입증할 증거를 거의 찾지 못했지만(표준적인 질문들에 답변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오히려 흑인들에 대해 우호적이다), 백인 얼굴과 흑인 얼굴을 제시하고 연상되는 단어를 분류하도록 했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반 흑인 성향을 보였다. 좋은 의미의 단어들을 보며 흑인 얼굴을 연상하는 데 걸린 시간은 백인 얼굴보다 오래 걸렸다. 내재적 인종 편견을 측정하는 이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피험자들은 흑인 얼굴을 볼 때 더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불쾌한 자극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주관하는 영역인 편도체가 더 크게 활성화된 것이다. 그러나 인종에 상관없이 낯익은 얼굴인 경우에는 이 신경 반응들이 사라졌다. 이때 그는 흑인이 아니다. 그는 존스다.”라고 고리타분한 농담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자신도 모르게 숨어 있다는 의미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 테스트가 보여주는 바는 단순한 지적 노력만으로는 이 수치스러운 절뚝거림을 교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편견이 우리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따져보고, 그 결과에 따라 의지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263~264p

이처럼 범죄로까지 발전하는 부정적 차별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은연중에 흔들어 놓기도 한다. 현재 스탠퍼드 대학에 재직 중인 클로드 스틸(Claude Steele)의 실험들이 대표적이다. 스틸 교수는 서로 인종이 다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인종의 정체성에는 단순한 피부색보다 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1980년대 후반(정치적·사회적으로 자유롭지만 많은 학구적 노력을 요하는 학교인) 미시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할 당시, 그는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백인 학생들과 같은 성적을 받고 입학한 흑인 학생들 중 상당수가 학기 중에 낙제를 받아 중퇴를 하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것이 내면화된 편견, , 그가 고정관념 위협이라고 부른 자신감 결핍의 소산인지를 궁금하게 여겼다. 그래서 한 상황을 연출했다. 학업 성적이 비슷한 흑인 학생들과 백인 학생들에게 GRE(대학원 자격시험)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도록 했다. 피험자들에게 이것이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말하자 흑인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보다 눈에 띄게 낮은 성적을 받았다. 다음번에는 학습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어진 상황 해결 능력을 보기 위한 시험이라고 말하자, 흑인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성적을 받았다. 같은 시험인데도 불구하고 흑인 학생들이 앞의 시험에서 더 낮은 성적을 받은 이유는 뭘까? 그는 단순한 열등감보다는 어떤 특정 집단이 어떤 걸 잘하고 어떤 걸 못할 거라는 고정관념 위협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스틸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시험 문제와 피험자의 범위를 확대했다. 그 실험 결과는 무의식적인 편견들의 촘촘한 망을 보여주었다. 어려운 수학 시험에서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성적이 더 낮았다. 그러나 피험자들에게 과거의 시험에서는 남녀 간의 성적 차이가 없었다는 말을 하자 여학생들은 남학생들과 비슷한 성적을 받았다. 백인 남학생들은 아시아계 학생들보다 수학 성적이 더 낮았는데, 이 또한 개인적 열등감보다는 아시아인들이 수학을 더 잘할 거라는 고정관념 위협에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백인 골퍼들은 전략적 사고를 평가하기 위한 게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보다, ‘타고난 육상 실력을 평가하기 위한 게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더 저조한 실력을 보였다. 그리고 백인 학생들은 흑인 코치에게 평가받았을 때 점프 실력이 훨씬 더 저조했다.

최악의 상황은 한 집단의 고정관념 위협이 다른 집단의 이기적인 편견과 만날 때다. 이럴 때 두 집단은 끔찍한 상호 의존에 빠진다. 학대하는 남편과 학대당하는 부인의 관계처럼 파괴적이며 쉽게 벗어날 수도 없다. 여러 문화에서 세습적 신분제도가 지속되었던 주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러한 제도는 정복(인도에 침입한 아리아인이 인도 원주민이었던 드라비다인을 정복, 에티오피아인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투치족이 원주민인 후투족을 정복하고 왕국 건설)이나 무력 사용(러시아 농노제, ‘인자한식민주의)의 결과로 나타났지만, 굳이 역사적 근거까지 댈 필요 없이 실험실에서도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266~267p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충격적이고도 우울했다. 실험이 진행되면서 교도관들과 죄수들은 이상하게 변해갔다. 일주일 동안 협박, 폭행, 배반, 복종, 심지각한 정신장애가 모두 나타났다. 그리하여 실험은 예상보다 훨씬 일찍 종결되었다. 하지만 교도관들은 죄수들을 통제하는 자신들의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실험이 끝나는 걸 원치 않았다. 실은 교도소장도 그랬따. 필립 짐바르도는 실험이 시작되고 뎌칠 후부터 죄수들의 저항을 더 이상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아닌 모의 감옥의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그 역시 진짜 교도관이 되어 있었다.

이 실험을 통해 권력 관계가 본질적으로 사악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더 많은 것을 내포한다. 우리는 폭정에 대해서는 지배당하기를 거부하지만 정당한 권력에는 순순히 따른다. ‘여기서 누가 책임자일까?’ ‘성공한 경영자는 기업을 어떻게 운영할까?’ ‘엄마는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지도자와 추종자, 계획자와 실행자로 분류된다. 그리고 지위는 우리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는 감정으로 나타난다(만약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걸리기 쉽고,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1984년 마이클 J.(Michael J.) 롤리(Raleigh) 교수는 긴꼬리원숭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혈액 내 세로토닌 수치와 권력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실험을 실시했다. 지배자(수컷) 원숭이는 지배당하는 다른 원숭이들의 두 배에 달하는 세로토닌 수치를 보였다(마찬가지로 그 교수의 세로토닌 수치도 그의 지도를 받는 대학원생들의 두 배에 달했다). 지배자의 위치에 있으면 그만큼 큰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세로토닌이 활발히 분비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배자의 역할을 맡게 된사람들의 세로토닌 수치도 증가한다. 심지어 지배자의 위치를 과시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과 의례들도 세로토닌 분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정당성이 결여된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세로토닌 수치가 급격히 낮아졌다(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타솔의 수치가 높아졌다). 짐바르도의 죄수들 중에서 많은 수가 극단적인 심리 반응을 보인 이유도 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의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수치스러운 두 가지 감정을 분출한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죄책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모욕을 주고 학대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다.

 

271~272p

알트마이어의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동조를 더 많이 한 사람들)합법적인 사회 권위에 순종하기 쉬울 뿐 아니라, 권위라는 명목의 공격을 감수하고 사회 인습에 구애 받을 가능성이 높은사람들일 것이다. 알트마이어는 그들을 우파 권위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케인스 경제학이나 총기 소지자에 대해 어떤 특별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대다수가 지지하는 생각과 믿음을 유지하려는 강한 성향을 보인다는 의미다.

실제로 권위주의자들은 권위가 그들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든 간에 순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나치스 돌격대(반 나치스 세력에 무력행사를 하고 나치즘을 선전하는 데 앞장섰떤 준군사 조직)와 스탈린 정권의 특별 작업대(정량 이상의 작업을 이행하는 노동 특공대)는 거의 다를 바가 없다. RWA는 스스로 다수 집단의 일원이 되어 위험하고 분방한 급진주의자들로부터 정치적 통일체를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비난의 화살을 소수 집단(약탈자들, 밀렵자들, 도시의 청년 패거리, 지르박 춤꾼들, 이탈자들)에게 돌린다. 알트마이어는 나아가 RWA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피험자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만약, 연방 정부가 특정 종교 단체들의 활동을 불법화하는 법언을 통과했다면, 당신은 그 단체 구성원들을 색출해서 체포하는 일을 기꺼이 도울 것인가?” 그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알트마이어는 이 가상의 금지 법안 적용 대상을 바꾸어보았다. “공산주의자라면?” “물론이다.” “동성애자나 애국심이 없는저널리스트라면?” “당연하다.” “KKK(사회 변화와 흑인의 동등한 권리를 반대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미국 테러 단체)이라면?” “, 그렇다.” “‘RWA;라면?” “그렇다.” 비록 그들의 어조는 처음보다 덜 단호했지만, 대다수 RWA들은 권력의 편에 서는 데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기꺼이 그들 자신을 박해하는 집단의 일원이 되었다. 그들이 파이러스에게 어떻게 대할지는 상상만으로도 짐작이 갈 것이다.

 

275p

놀랍게도 16개월짜리 아이는 어른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를 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경우에 그렇다. 세 살 무렵이 되면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기는 어른들이 한 말은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신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어른들이 한 말은 믿을 만한 정보의 원천으로 점점 더 확고히 자리 잡는다. 그래서 만약 마리아 이모가 다정하고 정직하며 언제나 맛있는 쿠키를 구워준다면, 비록 약간 제 정신이 아닌 듯한 의견이라고 해도, 이때 마리아 이모의 의견들은 그 아이의 정체성을 휘감으며 아이와 함께 머물게 된다. 그 의견들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배운 물리적 사실들만큼이나 진실한 것으로 여겨진다.

 

277~278p

엉성한 추리와 극단적 가설이 불러일으키는 재앙을 다룬 <주술 과학>의 저자이자 무신론적 물리학자인 밥 파크(Bob Park)는 사실 과거에 감리교 청년회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파크가 신앙을 버리게 된 이유는 창세기에 대한 그의 순진한 질문에 대해 목사가 네가 의심한다면 도둑질을 했을 때만큼 빨리 지옥에 떨어질 게다.”라고 답한 일 때문이었다. 그 집단은 그 의 믿음을 저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이유가 그 사람의 믿음 때문일 때는 그 이유가 피부색이나 낮은 지위일 때와 다소 다르다는 가정에서 이 글을 시작했지만 사실 실질적 차이는 없다. 믿음 역시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집단적 특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믿음은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고 외부인을 집단 구성원과 구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람들이 비록 베네수엘라의 수도 이름이나 1파인트가 몇 온스인지와 같은 질문들에는 쉽게 확신을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279p

대다수 공개 토론들은 사람들의 대뇌변연계(본능적 욕구와 감정을 주관함)를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인간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휘장과도 같은 전전두피질(이성적인 사고를 주관함)은 그동안 잠을 잔다. 또한 음모론들도 판을 친다. “부시는 911 사태의 배후 인물이었다(심지어 프랑스 주택부 장관도 그 가능성을 시사했다).” “에이즈를 유발한 주범은 CIA이며, 소아마비 백신은 이슬람교도들을 불임케 하기 위한 서양의 음모로 탄생했다(그래서 소아마비가 거의 근절되다시피 했다가 다시 발병률이 높아졌다).” 합리적 사고의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러한 이론들은 완전히 터무니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실험을 고려해 볼 때, ‘우리그들에게 느끼는 편견을 확고히 해주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허튼소리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들의 피에는 맥주가 섞여 있다고 믿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들, 덜 먹고 더 운동하겠다고 결심하는 것만큼이나 그다지 효과가 없다. 그보다는 그 문제의 근본 원인인 변연계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빠르다.

 

287p

1,000년 전 세계 인구는 오늘날 미국의 인구와 같았다. DNA 증거에 기반을 둔 추론에 따르면, 7만 년 전에는 인구가 고작 2,000명에 불과했는데, 그들 중 약 150명의 용감한 무리가 동아프리카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는 그 몇 안 되는 이주자들의 후손이다. 우리의 혈통을 추적해 그 시기까지 이르면, 근친상간을 자연스럽게 목격하게 된다. 바로 연산을 통해서 말이다. 만약 당신의 조상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서 과거 인류의 총 인구와 비교해본다면 30세대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약 1,000년 전까지만 해도 당신의 잠재적 조상은 230명에 달한다. 이는 세계 인구의 3배를 넘어서는 수다. 따라서 통계적으로 볼 때, 그 시대에 살았던 어떤 한 사람을 지목할 경우 그 사람이 당신의 조상일 확률은 매우 높다. 만약 당신이 파란 눈의 소유자라면, 당신과 이 채의 필자들은 1만 년 전 흑해 근처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의 같은 후손들이다. “반가워요, 사촌!”

 

289p

공동으로 상속받은 이 집단 무의식에 대해 또 다른 단서가 있다. 바로 전 세계의 7천 개 가량 언어 중 어떤 언어를 쓰는 아기라도 음조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모든 언어에는 음조가 같으면서 의미도 같은 표현들이 있다(“잘했어!” “왜 그래?” “안 돼, 안 돼, 안 돼, 조심해.” “, 가엾은 것”). 욕설의 경우에도 단어는 다르지만 음조는 동일하다.

장소에 대한 취향에서도 집단 무의식이 작용한다. 미시간 대학의 스티븐 캐플런(Stephan Kaplan)교수(모든 캐플런들은 제사장 아론(Aaron)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그도 피자들의 친척인 셈이다)는 풍경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을 비교적 정확히 알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캐나다, 한국, 이집트에 이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을 상대로 총 30회에 걸친 실험을 했다. 모두가 인문환경보다는 자연환경을 선호했고, 특히 나무가 우거지고 깨끗한 강이 흐르며 꽃이 활짝 핀 초원에 열렬히 반응했다. 그 풍경은 대다수 문화권에서 천국을 떠올릴 때 쉽게 연상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대다수 사람들이 포식자들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한 은신처와 주변을 정찰하기 위한 조망을 강하게 선호했다.

 

292p

당신이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의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족(Kung)이라고 해보자. 당신의 일과는 당신과 자식들이 먹을 약 4,000칼로리의 음식을 구하는 것이다. 이때 연장은 거의 필요없다. 대신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54종에 이르는 동물들의 습성을 꿰뚫고 있어야 하고, 85종에 이르는 무독 식물들을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식물들 대부분은 땅속에 줄기가 들어 있는 덩이줄기여서 웬만한 지식 없이는 절대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당신은 또한 음식 섭취로 얻은 에너지르 가지고 동물 쫓기나 땅 파기와 같은 일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정확히 감지해야 한다. 이러한 지식들이 있다면 생계를 유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의 4분의 1에 불과하게 된다. 나머지 시간은 연장을 수리하고 춤추고 노래하는가 하면, 겨드랑이에 태양을 끼고 있던 한 게으른 사내를 아이들이 하늘로 던져 세상이 밝아졌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을 지어내며 보낼 수 있다. 이곳의 삶은 참으로 단순하고도 편안하다. 현대인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값비싼 은신처만 해도 여기서는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뭇잎을 재료로 오두막을 완성하는 데는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원뿔형 천막집이나 이글루나 유르트(몽골 유목민의 천막집)도 오래 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296p

규모의 경제(하나의 치약, 하나의 타바스코 소스, 하나의 집)로 보나 노동의 분배(“나는 식료품점에 갈 테니 당신은 아이들을 데려와요.”)로 보나 그렇다. 게다가 결혼이 부여하는 책임감과 자긍심 덕분에 직장에서도 예전 같으면 농땡이를 부리거나 사직서를 내려고 생각할 시간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그래서 남자들은 결혼 후에 10~40% 정도 더 많이 번다. 그들이 갑자기 더 똑똑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반면, 이혼을 하면 여자들은 소득이 27%까지 줄고 남자들은 오른다 해도 겨우 10%에 그친다. 그래서 이혼은 사회 전반적으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편부모 가정은 아동 빈곤과 소득 불균형이 주된 원인이 되므로 정부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혼 한 건당 복지 지원 및 청소년 범죄 예방에 추가로 드는 평균 비용이 3만 달러에 이른다. 2002년 미국에서 140만 건의 이혼이 발생했을 때는 납세자들이 400억 달러 이상(그해 연방 적자액의 4분의 1에 달함)의 세금을 더 부담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재정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환경적 손실도 이에 못지않다. 2005년 미국의 이혼 가정들은 자원을 이혼 전보다 1인당 41~62% 더 많이 소비했다. 그 현상은 38백만 개 이상의 빈 방들, 730억 킬로와트시의 전력 소모 6,270억 갤런의 물 소비로 나타났다. 모두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욕구인 사랑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299p

만약 신체 건강한 남자가 하루에 수억 단위로 배출하는 자신의 정자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면, 시간당 약 1,20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 반면 여자는 초경에서 폐경에 이르기까지 총 400개 정도의 난자를 배란하며, 평생 최대 20회까지 자녀를 낳을 수 있다. 번식의 관점에서 남녀의 본질적인 차이는 성욕에서도 드러난다. 남자들은 순간의 쾌락을 탐닉하며 그 순간이 얼마든지 반복되기를 갈망하지만, 여자들은 이 순간이 지나면 일어나게 될 일들, 즉 임신과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지는 어색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상상한다.

 

302p

여자가 남자를 고를 때는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다. 그들은 키 큰 남자를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외모를 중시한다. 남자의 외모는 신체 건강을 말해주는 좋은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저음의 목소리를 들으면 큰 키와 많은 털, 강인함을 비롯한 여러 바람직한 남성성을 연상하면서 그러한 목소리에 매력을 느낀다. 사실 목소리는 높은 수치의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보다는 균형을 측정하는 데 좋은 척도가 된다. 그래서 당신이 전화 목소리와 달리 외모가 그리 남자답지 않다 해도 아예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리고 여자들이 남자들을 처음 평가할 때는 제일 먼저 세 가지 기준을 고려한다. 바로 눈, 손가락, 엉덩이인데, 모두 나름의 적절한 이유가 있다. 먼저 눈의 경우, 여자들은 안륜근이 자연스럽게 수축되는 모습을 좋아한다. 그 모습은 눈꼬리에 주름이 생길 만큼 진심으로 짓는 미소인 이른바 뒤셴 미소(Duchenne Smile)“를 말하는데, 만약 당신이 이 표정을 지을 줄 모른다면 아무리 이를 드러내고 열심히 웃어도 여자들에게 당신이 좋은 남자라는 확신을 심어주기는 어렵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야말로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아내와 자식들에게 양식을 제공해야 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손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알 수 있는 좋은 척도일 뿐 아니라 그 잠재적 부양자의 영양 공급 상태도 보여준다. 강하고 긴 손가락과 민첩한 손놀림은 좋은 신호다. 마지막으로 엉덩이는 우리를 다른 유인원들과 구별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특징이 된다.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리버먼(Daniel Lieberman) 교수의 말에 따르면, 생활환경이 숲에서 대초원으로 변하면서 진화 인류의 모체가 된 조상들의 몸은 위로 약 60센티미터 올라갔다고 한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무들 사이에서 매복했다가 급습하는 대신 먹이를 추적하기 위해 몇 마일이고 계속해서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달리기를 하면서 엉덩이 근육은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303p

여자들은 단순히 남자의 얼굴 사진만 봐도 그 남자의 전반적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파악할 수 있다. ‘지배자의 얼굴인 강한 턱뼈와 돌출된 코, 길쭉하게 솟은 눈썹은 군대나 프로스포츠 팀처럼 남자가 대부분인 환경에서 성공을 예언한다. 그러나 여자들이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성격이 차갑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닌지,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지도 주의 깊게 본다. 호르몬을 읽어내는 여자들의 신비로운 능력을 증명한 실험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은 남자들일수록 자신이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높았고 여자들은 장기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상대로 그러한 남자들을 선택했다.

 

304~305p

유성생식이 한 사람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방식이라면, 적절히 잘 숨긴 간통은 하나의 이기적인 전략으로 꽤 합리적일 수도 있다. 아마존의 카넬라(Canela), 아체(Ache), 바리(Bari), 야노마모(Yanomamo)족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이 생각은 타당하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들은 난자가 마치 진주처럼 정액에 겹겹이 에워싸이면서 아이가 생겨난다는 이론을 믿기 때문이다. 여자가 괜찮은 조건의 여러 남자들과 자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며, 아이를 낳으면 남자들은 모두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70년간 핀란드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란을 비롯한 전 세계 37개 문화권에서 실시된 실험에 따르면, 배우자르 선택할 때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그 점을 두 배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애인을 구하는 광고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경제력에 대한 언급을 11배 더 많이 한다. 미국의 대졸 여성들은 소득이 상위 30%에 들지 못하는 남성과 살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면 남성이 억만장자라면 다른 많은 결점들이 용서된다. <오만과 편견>이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도 남자 주인공의 결점은 재산으로 만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306p

훌륭한 사냥꾼이 되려면 뇌 전문의가 되는 것보다 더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아마존, 파푸아, 칼라하리의 소년들은 5세 때부터 작은 활과 화살로 훈련을 시작하지만, 30세가 되어도 사냥 기술의 정점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물론 30대에 이르면 체력은 떨어지겠지만 전문 기술과 지식, 지략과 같은 노하우가 이를 충분히 보완해준다. 그 시기에는 고기에 대한 가장의 초대 공급 능려과 가족의 최대 수요가 일치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대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를 선택한다. 많은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보농 4~5세 연상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티위(Tiwi)족처럼 노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26세 연상까지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307~308p

행동 조건에서 볼 때, 남자들은 자신이 자녀의 아버지임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여성의 순결에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들은 결혼에 있어서 순결의 징표를 신뢰성의 척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여성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자유분방한 사회에서도 남자들은 잠재적 배우자의 신뢰성에 비합리적으로 민감하다. 관대한 네델란드 사람들이나 민주적인 스웨덴 사람들 사이에서도 질투와 애착이 낳는 분노의 감정은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들은 배우자의 성에 대해서는 이처럼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에게는 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실제로 남자들은 상대가 바뀔 때 성적 욕망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쿨리지 효과 Coolidge effect’라고 한다). 여자들은 마치 남자들의 그런 성향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듯, 성적인 배신보다는 오히려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약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정부가 아닌 자신이라면, 결혼 생활은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의 마음까지도 침대를 떠났다면 복수를 꿈꾼다.

외모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깨끗하고 굵고 윤기 있는 모발이다. 사람들이 각종 헤어 제품들에 소비하는 금액이 연간 50억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을 볼 때, 모발은 단순히 일시적인 인상이 아닌 근본적인 매력을 좌우하는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토록 많은 금욕주의적 청교도 문화들에서 머리에 무언가 쓰도록 의무화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분명 좋은 모발은 건강뿐 아니라 기생충으로부터의 자유도 말해준다. 거세된 남자의 가는 머리카락과 성병 환자의 벗겨진 머리를 보면 남자의 바람직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314p

음식에는 우리 모두가 자제심을 잃고 탐닉에 빠지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대뇌변연계가 전두피질을 압도한다. 욕망의 울부짖음은 이성의 목소리를 몰아낸다. 미식가와 대식가 사이에는 이론적으로 분명히 차이가 있겠지만, 호박 파스타가 담긴 접시 앞에서 자제심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은 같다. 영국의 시인 콜리지(Coleridge)가 말했듯이, 아무도 사과 경단을 진심으로 거절할 수는 없다.

 

317p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의 문화에는 하라 하치 부의 개념이 있는데, 여기에는 5분의 4 정도 부를 정도로만 먹자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오키나와는 100만 명당 100살 이상인 사람의 수가 미국보다 4배 더 많다. 배고플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은 지각력을 예리하게 하고 학습 능력을 촉진하며 움직임을 민첩하게 한다(그래서 냉장고 안을 뒤지는 것보다 더 분투적인 무언가를 하게 된다). 그래서 배고플 때 운동하는 것이 좋다는 트레이너의 말은 맞다. 다만 문제는 트레드밀(회전식 벨트 위를 걷거나 달리는 기구) 위에서 목적 없이 무작정 달릴 때는 사냥감을 쫒으면서 맛보는 스릴을 똑같이 느끼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만약 약해빠진 영양 한 마리가 달아나는 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한다면 아마도 더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319~320p

그런 강력한 욕구는 단순히 지적인 동물의 본능에 관한 문제로만 남지 않는다. 사랑이 섹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듯이, 음식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단순히 채우고 비우는 것 이상의 무언가다. 다이어트를 하는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무척 그립다. 음식은 지난 몇 년간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안정제가 되어주었고, 고독감을 완화해주었다. 그렇게 막다 보면 어느새 잠의 무의식에 빠졌다. 음식은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자기 조절에 실패한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과식은 다른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바로 감정 말이다. 배고픈 사람은 우울한 소식을 들었을 때 더 많이 먹는다. 스트레스와 걱정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주방으로 향한다. 원시적인 공동체에서 그러한 반응은 꽤 유용하게 작용했다.

 

326~327p

사회화는 유아기의 본능이다. 새끼 사자가 와락 덤벼들고 무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는 주장하고 제안하고 협상하며 감정이입을 하고 농담하는 법을 배운다. 유아들은 가장 권력이 센 남자 어른이 언제 너그러워지고, 언제 무서워지는지를 곧 알게 된다. 어떤 일의 목적이나 언제 시끄럽게 떠들어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느낌으로 구별할 줄 알게 된다. 부모에게서 전해지는 따뜻한 무언가(나중에 자기 자녀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어떤 것)도 느끼게 된다.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인 존경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희망을 자기 자신의 희망 목록에 포함하기도 한다. 그런 세세하고 집중적인 훈련 없다면, 그 공동체는 계속 이어질 수 없다. 인간이 올바르게 자라기 위해 필요한 자양분은 우유와 채소만으로 충분치 않다. 공유하는 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한다.

문화와 환경은 나라와 인종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뇌는 다양한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있다. 인간은 편견 없이 태어난다. 우리 뇌는 신경 네트워크를 가능한 한 폭 넓게 확장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탄생한다. 그러나 사춘기에 이르면 불필요한 뉴런들을 버리고 가장 자주 사용하는 피질 경로들만을 수초로 감싸 전도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절연시키기 시작한다. 피질의 영향 아래 진행되는 이 과정은 정신적 활동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고 예측과 반응을 빠르게 하지만 그 범위를 제한한다. 한편, 추상적 판단을 주관하는 전두엽은 뇌의 주인이 20세가 될 때까지 활동이 잠잠하다. 따라서 비록 덩치 크고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란 아들이 이번 주말에 차를 빌려야 하는 몇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한다 해도 안 돼.”라고 잘라 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329p

젊음이 알기만 한다면, 늙음이 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말이 나타내는 것처럼 아이들과 노인들은 서로 잘 어울린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 동물들과 달리 독특하게도 갱년기를, 특히 여성의 경우 폐경기를 겪는다. 이론상 공동 육아를 위한 좋은 조건이다. 자녀 양육의 짐에서 벗어난 능력 있는 노년층 여성은 자신보다 더 젊지만 식견이 부족한 친족의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다. 어쩌면 노인들은 거만할 수 있다. 풍부한 경험을 쌓아왔으므로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에 대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사춘기 아이들이 제일 나중에 습득하는 자기 조절력을 제일 먼저 상실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는 것들은 당신이 위키피디아에서도 얻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진실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거듭 회상하는 과정에서 정제되고 다듬어져서 보석처럼 빛나며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를 잘 반영한다. 속담, 우화, 계보, 시와 노래가 저장된 할머니의 창고는 갖가지 경험 법칙이 축적된 곳이다. 그들은 크고 작은 어려움이 생기고 부보들의 근심이 늘어나도 여전히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젊은 세대에게 말해준다.

 

331~332p

그런데 엄밀히 다수의 수렵채집 사회 구성원들이 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그 균형은 결코 그들이 처음부터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북아메리카 대륙은 원래 매머드나 메가테리움(나무 위가 아닌 땅 위에서 지내는 거대한 나무늘보)처럼 몸집이 거대하지만 행동이 굼뜬 동물들의 주요 서식처였다. 그러나 그 동물들은 초기 인류의 출현으로 결국 멸종되었다. 마찬가지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도 유대목 동물들과 날개 없는 새들을 멸종시켰다. 그리고 두 문화권 모두 사냥에 용이하도록 정기적으로 황무지를 불태웠다. 결국 사회가 수렵채집 중심에서 농경 중심으로 변한 실질적 이유는 (12천 년 전 예리코 근처에서 무화과 재배를 시작하면서) 식용되는 야생동식물의 공급이 이렇듯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사냥꾼들은 마지못해 농사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인류가 어떤 문화를 더 선호하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바비큐 파티를 위해서는 친구들을 초대해도, 오트밀이 담긴 단지들을 나누려고 일부러 초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해도 우리 조상들은 현대인에 비해서는 자연과의 균형을 더 중시했다. 그들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우리 현대인은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자연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렛 하단(Garnett Hardin)1968년 발표한 논문에 실리면서 유명해진 이 용어는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이 일치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에서 암소는 남자들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지위를 얻고 신부를 사들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암소다. 그런데 소와 달리 그 소들을 방목할 수 있는 목초지는 모두가 사용하도록 개방된 공유지다. 따라서 개인들은 자신의 소들을 키우는 데 이 공유지를 가능한 한 많이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 가축 수를 늘리는 일에 혈안이 되어 공유지는 가축들로 붐비게 되고, 그 결과 공유지는 소들이 먹을 풀이 더 이상 남지 않은 황무지로 변하게 된다. 사적인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려는 이기심이 앞선 나머지 모두가 소해를 보는 비극이 초래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소 주인들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그들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생선회 수요가 높아지면서 참치 수가 30년 만에 거의 80%까지 줄어든 사례에서 그러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참치가 앞으로 20~30년 안에 다른 상업용 물고기 종들처럼 멸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정부들은 참치 어획을 제한하는 데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다는 전 세계에 개방된 공유지이기 때문이다.

 

347~348p

인사란 곧 친근한 감정이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신호다. 이 메시지는 기호논리학의 관점에서 부호화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갯과 동물이라면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싸움 놀이를 할 때, 두 마리의 개는 서로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행동을 조정한다. 그레이트 데인은 작은 애완용 개를 누르지 않는다. 스코티쉬 테리어는 세인트 버나드의 부드러운 살을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격 본능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고전적 도덕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요구했던 방식처럼 말이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선을 넘으면 그에 대한 반응은 단순한 고통이나 분노를 넘어선다. 으르렁거림에 고스란히 담긴 격분에는 너는 행동하는 방식을 몰라.”라는 실망감이 내포되어 있다.

 

348~350p

물론 공원이나 라크로스(하키와 비슷한 경기) 경기장을 마련하는 일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나아가 완전한 사회적 약속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감정적인 상황들, 특히 개인의 욕구가 집단의 순조로운 기능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들에 대응하는 올바른 반응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에모리 대학의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영장류 동물들의 도덕적 삶을 연구하는 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았다. 그 결과에서는 우리가 동물원에서 즐겁게 구경하는 영장류 사촌들의 소소한 정치적 기술들과 복잡 미묘한 섬세함을 보여준다. 황금원숭이의 수컷들은 서로 싸우는 암컷들을 진정시킨다. 침팬지 암컷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수컷들을 화해시킨다. 그리고 각자 서로 음식과 선물을 교환하며 우정을 쌓고 동맹을 강화한다. 개코원숭이들은 동료를 잃으면 슬퍼한다. 붉은털원숭이들은 우울해 하는 동료를 위로한다. 야생 침팬지들은 무리 중에서 앞이 안보이거나 뇌를 다친 동료들을 특별히 보살핀다. 보노보들은 긴장을 해소하고 화합을 다지기 위해 입마춤, 포옹, 잦은 짝짓기를 한다. 이것들은 비유하자면 유엔에서 적용하는 방식들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열하기 쉬운 대립의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한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들임은 분명하다.

영장류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이 분석들은 이라는 개념에 대한 복잡한 매듭을 푸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 첫 번째 측면은 이 모든 도덕적 행동들이 감정적이라는 점이다. 유인원들은 기만적이고 계산적일 수 있다(특히 포도를 얻는 문제에 있어서), 그러나 그들은 냉정하게 합리적이지는 않다. 혹은 더 엄밀히 말하면, 냉정함도 그 자체가 감정적인 표현이다. 네델란드의 아른험 동물원에서는 사춘기에 접어든 두 마리의 암컷 침팬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길 거부하는 바람에 저녁식사가 늦어졌을 때, 다음 날 다른 모든 침팬지들이 그들의 이기심에 대해 질타했다. 그것은 처벌에 대한 계산된 행동이면서 분노의 표출이기도 했다. 한편 에모리 동물원의 연구자들이 그들에게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다발을 주었을 때는(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 그 무리의 행동에 변화가 왔다. 그 도루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서로 더 많이 공유하고 더 활발히 상화작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서로 끌어안는 등 교감을 나누는 시간도 늘어났다. 무리의 유대감과 계층 구조를 재확인하면서 말이다. 이는 우리 인간의 크리스마스나 축제처럼 좋은 날을 자축하는 의미다.

사회적 행동의 두 번째 측면은, 영장류 동물들의 도덕성이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도덕적 행동은 몇몇 아름다운 도스토예프스키 원숭이들의 영혼에서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원숭이들은 늘 자신들이 속한 무리의 순조로운 기능을 방해하는 특정한 위협들에 대처한다. 그 위협은 무리 안에서 올 수도 있다. 이때 유전적 관점에서 본다면 수컷의 성생활은 공격적인 이기심을 위한 것이다. 번식 기회를 독점하여 경쟁자들의 자손을 없애고 암컷들의 하렘을 지배하는 것이 덩치 크고 기질이 성마른 수컷의 욕망이다. 그러나 암컷은 다르다. 수컷들 중 하나를 배우자로 선택하고 평온한 환경에서 자식들을 정성껏 기르는 것이 암컷이 바라는 바다. 이처럼 상이한 욕구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영장류의 종에 따라 다양하지만 행동의 요소들은 같다. 암컷들은 수컷의 독점욕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한다. 즉 수컷들의 경쟁을 중재하고, 짝짓기를 대신해 수컷의 자부심을 만족시켜 줄 대안들을 고안하며, 심지어 발정을 일으켜 수컷 자신의 새끼이 아버지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행동들이 복잡하게 균형을 이루게 되면 공동체도 순조롭게 기능한다. 삶은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유전적인 선과 사회적인 선이 혼란스럽게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에 헌신하려는 개인은 많지만, 도덕적 행동에 뒤이어 따라오는 평화는 결코 일정하거나 한결같지 않다. 연속극만 보더라도 배역이 그대로지만 줄거리는 끊임없이 변한다.

세 번째 측면은 영장류의 도덕이 한 추상적요소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장류 동물들은 자극에만 반응하는 단순한 생명체가 아닌 도덕적인 생명체가 된다. 집단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감정적 균형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한 일화를 독특하거나 또는 완전히 전형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 사건들은 개개인의 성격과자질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일어난다. ‘저 녀석이 내 사과를 가져간다는 생각은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혹은 녀석은 배신자다로 분석될 수 있다. 이때 법칙이나 규칙은 그 문제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다. 만약 녀석이 나의 당연한 분노에 대한 사죄의 표시를 공개적으로 한다면 공정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상을 나에게 좋은 것을 준다면 그는 배신자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다. 그러나 불공정함이라는 생각과 배신자라는 오명은 경우에 따라 미래에 다시 적용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352~353p

러시아의 영장류 동물학자 나디에 라디기나 코흐츠(Nadia Ladygina-Kohts)는 어린 침팬지와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그 침팬지가 지붕 위로 올라가 내려오길 한사코 거부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유혹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그녀가 내린 해결책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마치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울부짖는 것이었다. 침팬지는 그 즉시 지붕 아래로 뛰어내려와 그녀를 팔로 감싸고 걱정스럽게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러한 섬세함은 영장류 동물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개느 주인 가족들이 크게 싸우거나 슬퍼할 때 적잖이 근심스러워한다. 아마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서 한 번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물론 실험에서 확인된 사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혀상이 애완견을 기르는 주인에게만 단순히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과 거리를 두는 성향이 있는 고양이들을 떠올려보라. 고양이들은 집 주인에게 큰 위기가 닥쳤을 때도 대개 텅 빈 식기 근처에서 의미심장하게 울부짖을 뿐이다.

 

우리의 도덕적 감각은 얼마나 원숭이 같을까? 우우 소리를 내고 이를 드러내어 웃으며 배설물을 던지는 그 정글 주민들과 우리를 구별해주는 것은 확실히 이성의 신성한 불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성적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주관하고 본능적인 욕구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결론을 내리게 만드는 전전두피질을 우리가 어째서 갖고 있겠는가? 하지만 계몽주의적 관점에서는 불행히도 모든 증거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우리는 기본적인 욕구들을 느낄 때뿐만 아니라 그 욕구들을 통합하고 조절하는 방식에서도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우리의 신성한 기념비들에 황금색 글자로 새긴 가르침에 이르기까지도.

 

그리고 그 손해는 사회적 맥락과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가책을 더 쉽게 느낀다. 암컷 영장류로서 그들의 존재는 무리의 화합을 위태롭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들에 비해 남성들은 겉으로만 가책을 느끼는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그들은 관찰 받을 때와 관찰 받지 않을 때를 더 확실히 구별하여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그들은 함께 먹는 우유에 입을 대고 마실 수도 있다.

 

355~356p

미국국립보건원의 호르헤 몰(Jorge Moll)은 도덕적 행동 결정과 뇌 작용의 관계에 대해 실험했다. 그는 피험자들이 128달러의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해 쓸지를 결정하는 동안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그들의 뇌를 스캔했다. 그 결과, 돈을 받을 때 기분을 좋게 만드는 뇌 영역(긍정적인 보상을 통한 학습과 관련이 있는 복내측 선조체)은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을 때 훨씬 더 강하게 활성화되었다. 우리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실제로 더 좋아한다는 걸 밝힌 것이다. 선행은 단지 기분만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또한 몰은 사회적지지, 우정의 보답들과 관련이 있는 슬하 영역의 활동을 관찰했다. 그는 낙태와 안락사를 조장하는 단체들처럼 사회적으로 불화를 일으키는 자선 단체들도 실험에 포함해 피험자들의 반응을 보았다. 피험자들 중 그러한 목적을 저지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반감, 분노, 도덕적 혐오 등을 일으키는 중요한 영역인 외측 안와전두피질이 활활 타올랐다. 플라톤은 혈기를 가슴 아래로 끌어내리고 차가운 이성이 우리의 머리를 지배하길 희망했다. 그러나 혈기는 여전히 가슴보다 위에 머무른다.

몰의 모든 피험자들은 익명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행동했다. 따라서 이 실험의 결과들은 그야말로 남몰래 하는 선행의 즐거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타적 행위를 공개적으로 끌어다 놓았을 때, 그 행위는 훨씬 더 강한 감정적 힘을 얻었다.

360~361p

선행의 감정적 동기는 크게 세 가지다. 단순히 자비를 느끼는 것,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게 되는 것, 잠재적 배우자에게 좋은 이미지로 비치는 것,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선행을 하든, 그 이면에는 이 세가지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역시 옳고 그림에 대한 당신의 추상적 감가도 좌우할 것이다.

만약 도덕적 판단에서 감정을 분리해본다면 이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단적으로 그와 관련된 뇌 영역이 손상을 입은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다. 마크 하우저(Marc Hauser), 아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를 포함한 저명한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함께 실험을 했다. 실험에 참가한 6명의 피험자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감정을 고려하는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손상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감정들을 그다지 나타내지 않았다. ‘동정심이나 수치심은 그들에게 단지 의미없는 단어일 뿐이었다. 그러나 추상적 추론 능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연구원들은 그들과 대조군에게 두 번에 걸쳐 질문지를 나누어 주었다. 질문들이 개인의 감정을 묻는 내용이 아니었을 때는 두 그룹의 답변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의 감정을 묻는 데다 복잡한 생각을 요하는 질문이 주어졌을 때는 그 차이가 확연했다. “병사들이 당신의 마을을 공격하고 있다. 당신과 몇몇 사람들은 지하실에 숨어 있다. 그때 당신의 아기가 울기 시작한다. 당신은 당신과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당신 아기를 질식시켜 죽이겠는가?” VMPC 환자들은 즉각적으로 가장 실리적인방법을 선택했다. 가장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아기를 질식시킨다는 생각에 감정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밖에도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나머지 한 명을 철로 안으로 밀어 넣거나, 만원이 된 구조선에 마지막으로 올라탄 부상당한 승무원을 바다에 빠트리기도 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동정심과 죄책감이라는 사회적 감정들에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362~363p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은 말했다. “정부는 최상의 상태에서도 필요악일 뿐이고, 최악의 상태에서는 참을 수 없는 악이다.” 하지만 정부는 선에 대한 우리의 강박관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부는 우리의 도덕성이 펼쳐지는 중심 무대가 된다. 은둔과 명상 속에서 한평생을 보낼 것이 아니라면 누구든 적어도 정치적 견해는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정치적 견해란 무심코 생각해서 나온 단순한 것이 아니고, 열띤 적극성과 완강함이 동반된 결과다. 그리하여 우리의 관심과 토론이 끊이지 않는가 하면, 지난 5천 년 동안 도입된 여러 정치체제를 통해 수많은 실험이 이루어졌음에도 우리의 시스템은 여전히 유인원 무리들의 시스템만큼 유연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 사촌인 침팬지와 보노보, 고릴라는 함에 기반을 둔 계층적인 사회를 유지한다. 그들에게 초월적인 공산 사회는 없다. 낮은 계층은 언제라도 저항의 유혹을 받는다. 그들은 지나치게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자에게 맞서거나, 그 자리를 빼앗거나, 아니면 그 지배자를 추방하기 위해 단결한다. 저항의 자극은 대개 사회적 교환의 불공정성에 의거한다(앞 장에서도 보았듯이 사회적 영장류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그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을 하게 만든 힘은 바로 우리에게도 친근한 감정인 분노. 분노는 유혈에 대한 욕망이나 계획적인 공격과는 다르다. 그것은 부당함을 자각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는 감정이다. 그 문제를 가장 큰 이슈로 만들고 빠르게 해결책을 찾기에는 좋은 방법이 된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억압된 분노는 명치에서 활활 타오르며 구멍을 낸다. 더 심각하게는 불필요한 희생을 낳기도 한다.

 

365~366p

그렇다면 이러한 성향은 타고난 것일까? 스탠퍼드 대학의 데보라 그루엔펠드(Deborah Gruenfeld)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루엔펠드는 세로토닌이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할 뿐 아니라 억압을 해소해준다는 사실을 알고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권력을 부여하면 어떤 사회적 효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실험을 했다. 그는 세 명의 학생으로 이루어진 그룹들을 무작위로 선택한 다음 그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주었다. 바로 정책에 관한 글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루엔펠드는 각 그룹이 협력해서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쿠키가 한 가득 든 접시를 그들 앞에 놓았다. 그런 다음 그룹별로 한 명씩 무작위로 선택된 학생들이 다른 두 그룹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때 좋은 평가를 받는 그룹은 현금 보너스를 보상으로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루엔펠드가 관심을 가진 것은 평가가 아닌 쿠키였다. 평가자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학생들은 더 많은 몫의 쿠키를 가져갔을 뿐 아니라 씹을 때 입을 더 크게 벌렸고 테이블에 부스러기를 더 많이 흘렸다. ‘이런 얼간이들!’ 권력이 주어지면 예외가 없어진다는 사실은 다른 행동 실험들에서도 똑같이 입증되었다. 심지어 주어진 권력이 일시적인데다 인위적이라도 해도 권력자는 늘어진 자세로 앉아 있거나, 타인을 방해하거나, 반박을 하거나, 코를 후벼 파는 경향이 높았다. 반면 권력이 약한 사람은 점잖게 앉아서 경청하고 동의하며 기침을 할 때 입을 가렸다. 강자는 규칙을 무시한다. 심지어 자신이 남들에게 지키도록 강요했던 규칙들까지도, 균형 예산 운운하는 국회의원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범죄에 대한 엄중 처벌 원칙을 내세우는 주지사들이 매춘부와 놀아나고, 여성 친화적이라는 상원의원들이 공항직원실에서 익명의 누군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세금은 이런 얼간이들을 위해 거둬가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극단적인 이기심은 처음부터 타고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만약 그랬다면 애초에 권력자의 자리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협력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학습된 사회적 기준이다.

권력은 보상과 위험이 한데 섞인 짜릿한 칵테일을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권력자가 그 두 요소의 균형을 잘 맞추기만 한다면 그들이 누리는 특전을 용납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우리에게 특전을 누리는 데 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우리는 인식한다. 프랑스의 앙리 4세는 위생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발과 겨드랑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더구나 불륜을 자주 저질렀고 게으르고 제멋대로였다. 그러나 사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았다. 그는 손에 검을 쥐고 엉덩이를 안장에 붙인 채나라를 보호했으며, ‘적어도 일요일에는 모든 노동자가 닭을 먹어야 한다고 선언할 줄도 알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들이 부유해지는 대가로 사회적 의무를 요구한다. 루즈벨트나 케네디 가문이 거액의 재산을 모은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혜택은 공적인 임무를 맡은 대가로, 그러니까 손에 검을 쥐고 엉덩이를 안장에 붙인대가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저절로 모인 재산과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안하무인에는 분개한다. 그것은 부당하기 때문에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큰 문제는, 우리 영장류 사촌들과 달리 우리가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유인원의 세계에서 분노는 빠르게 작동한다. 곧 무례한 자들이 처벌되면서 아우성이 사라지고, 삶은 다시 계속된다. 힘의 새로운 균형과 함께, 그러나 우리의 진화된 사회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문제는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 단순히 상대를 세게 한 번 꼬집는 것으로 끝나는 차원이 아니다. 그 권력자 주위에는 보호막이 겹겹이 싸여 있다. 그들에 대한 어려운 접근성, 권위, , 거액의 소송비는 그들을 약자로부터 분리시켜 보호한다. 그런가 하면 부당하게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자들은 그 부당함을 유지하는 데 모든 관심을 쏟는다. 하찮은 권력이나 해를 끼치는 권력이라 해도, 그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서 안달하는 우리 사회의 무수한 폭군들은 질서라는 명목으로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을 위협할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과거 오스트리아 빈에서 군중은 비록 허약한 페르디난트 I세를 몰아내려고 힘을 모았지만, 그 과정이 프랑스의 성공적인 혁명 의욕을 북돋우는 고무적인 예가 되었던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369p

하버드 경영 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모욕적으로 대하고 혹평을 일삼는 문화가 두드러진 조직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약물치료 과정에서 저지르는 실수를 보고하지 않을 가능성이 최대 10배나 더 높다. 이렇듯 안하무인은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당사자에게는 아니다.

이와 달리 앙리 4세는 자기 사람들에게 진지한 호기심을 느꼈고, 그들의 근심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이런 성향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책임감 있고 공정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가 권력의 맛에 취해 주변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는 걸 막아주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저명인사들에게 씌우는 보호막은, 우리가 느끼는 분노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얼간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게 한다. 누가 감히 그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성공의 보상들에 둘러싸인 그들은 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반대 의견들에 대한 관심을 둔다.

 

371~373p

우리의 말은 죽어 있다. 우리의 피로 생명력을 주어야 한다.” 그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깊은 목구멍소리가 난다. 마치 집에서 만든 악기로 능숙하게 연주할 때 소리가 그런 소리일 듯싶다. “당신들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정부는 계속해서 전 세계에 있는 나의 민족에게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른다. 당신들은 그들을 지지했으므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내가 나의 무슬림 형제자매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위해 복수할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당신들은 우리의 표적이 될 것이다.” 비디오테이프에서 말하는 사람은 모하마드 시디크 킨(Mohammad Sidique Khan)이다. 잉글랜드 요크셔의 공업 도시 리즈에서 태어나 자라며 교육받은 칸은 그 지역 초등학교에서 이민자 자녀들을 위한 지도 교사로 근무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100% 헌신적인데다 매우 친절하고 자상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 공동체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은 어린이 캠프 지도자, 스포츠 모임 운영자, 논쟁의 권위 있는 중재자, 힘들고 어려운 청소년들의 조언자이자 친구였다. 그는 또한 200577일 영국 런던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켰던 조직의 리더이기도 했다. 그 사건으로 런던 시내에서 지하철과 버스에 타고 있던 무고한 시민 52명이 사망했고, 700명이 부상당했다.

어떤 부당함이 그를 고통스럽게 했나? 본질적으로, 그런 것은 없었다. 칸은 많은 비 무슬림 사람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고, 그들에게 자신을 시드라고 부르라고도 했다. 그리고 지역 내에 체육관 건립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 기관들과 자선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기도 했다. 그의 장모는 그 지역 교육계의 저명한 인사로 버킹엄 궁전에 초대받아 여왕을 직접 만난 적도 있다. 이런 칸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은 바로 고통의 이미지였다. ‘오로지 강자와 이익을 위한 정책에 혈안이 된 정부들이 나의 민족에게 가한 폭격, 독가스 공격, 감금, 고문이 그것이었다. 그는 감정이입하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남들의 찬사와 존경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어린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런데 아마도 그는 자신이 기대한 만큼 세상에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 듯하다.

무례함과 부당함에 대한 일반적인 분노, 개인의 무력감에 대한 가책, 한 가족에 대해 느끼는 강렬하지만 막연한 감각,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이러한 감정들이 누군가를 테러리스트로 만든다. 게다가 이것들은 자살 폭탄 테러범들을 세뇌하기 위해서도 본질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다.

 

376~377p

만약 한 동굴 거주자에게 일곱 가지 대죄에 대해 설명한다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도덕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행동 양식이 그 대죄들이 생겨난 중세 유럽의 행동 양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정욕은 대다수 수렵채집자들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적인 생각들은 그 부족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혼잡한 세상에서만 정도에서 벗어난 욕망이 되어 가정을 짓밟고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렇다면 탐식은? 우리는 얼마든지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는데 탐식이라니, 지금 농담하는가? 오로지 농부들만이 다음에 뿌릴 씨앗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봄을 굶주린 채 보낸다. 또한 탐욕은 소유물이 거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나태? 나태 역시 수확의 결실을 맺기까지 오랫동안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농부들에게만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교만은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 어떤 이들이 스스로 남들보다 잘났다고 여겨 뽐낸다면, 그 사회조직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당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그곳 사람들과 교만을 주제로 대화를 한다 해도 서로 공감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구약성서를 오늘날 적용할 때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교황청도 죄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래서 2008년에는 세계화 시대에 맞는새로운 대죄 목록을 만들었다. 그 목록에는 유전자 조작 실험, 환경 파괴, 마약 거래 및 복용, 소수의 지나친 부 축적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중세 농부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때때로 추상적 개념은 행동하는 몸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도덕적 의복으로 갈아입는 데 유용한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 유대법에는 마음을 훔침이라는 개념이 있다.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에 대한 의문과 논쟁에서 싹튼 개념이다(가톨릭교와 루터교에서는 일곱 번째 계명). 수천 년에 걸쳐 이 계명은 이익을 위해 거짓된 모습을 꾸미는 것혹은 선의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금지로 해석되었다. 구약성서에서 성유를 비싸게 속여 파는 것 같은 죄들은 이제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광고, 시험 중의 부정행위, 부도덕한 회계감사 관행, 창고 물건들에 잘못된 가격 라벨 부착 등과 같은 현대판 죄들로 바뀌었다. 이 모두는 십계명에서 다룬 도적질만큼이나 멀리해야 하는 죄들이다.

 

법과 계율뿐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숭배를 받는 것들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원칙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 도덕적 개념들은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의 더 순수한 관점과 관련이 있다.

 

378~379p

콜버그는 피험자들의 도덕적 발달 수준을 시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딜레마를 만들었다. 당신의 배우자가 희귀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약제사가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했다. 그러나 당신이 구입하기에는 약값이 너무 비싸고, 약제사는 값을 낮추길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한밤중에 약방에 몰래 들어가 그 약을 훔칠 것인가? 콜버그는 대답이 아니요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그 대답의 이유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1단계 수준에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오. 그러다 붙잡힐지도 모르잖아요.” 혹은 , 정말 그 약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나 6단계 수준에 도달하면 피험자들은 이것이 추상적 차원의 질문임을 이해하게 되고, 사람의 목숨을 재산권과 비교해 평가한 후 판단을 내린다. , 각자는 스스로 선택한 도덕적 원칙에 따르는데, 그 원칙은 구체적이기보다 추상적이다.

콜버그는 적어도 몇몇 하버드 학생들이 이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기를 기대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버드 심리학자 캐럴 길리건(Carol Gilligan)이 다양한 여성들을 인터뷰했을 때는 그들 대부분이 콜버그의 관점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걸 발견했다. , 그들은 어떤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추상적 원칙에 근거하기보다는 궃적 맥락에 근거했다. “그 약제사와 잘 아는 사이인가요?”는 하나의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길리건의 말에 따르면, 이 실험은 추상적 원칙이 공정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근거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배려의 도덕성이라고 불렀던 주로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도덕덕 특징들인 감정적 관계와 감정이입 역시 우리가 올바른 행동을 하게 만든다.

성별에 따라 도덕적 관점이 다르다면 나별로도 다를까? 전통은 도덕성이 나라별로 다르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결코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다양한 개념들 또한 전통이 옳다는 걸 말해준다.

 

380~382p

2005년 미국 국립 노화 연구소에서는 49개의 서로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을 상대로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국가에 대한 고정관념은 확고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 판단할 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개개인의 성격 검사 결과와 비교해보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캐나다인들은 미국인들보다 덜 적극적이고 더 이타적이며 더 겸손하지 않다.’ 하지만 오로지 그렇게 여기지는 것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내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프랑스계 스위스인들은 스스로 외향적이라고 여기는 스페인인들보다 더 외향적이다. 태평스러운 칠레인들은 어깨에 힘이 실린 독일인들만큼 진지하다. 그리고 성미가 매우 까다롭다고 여기지는 체코인들은 자신의 친절도를 스스로 가장 높이 평가한 상위 5개국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친절하다. 모험성, 외향성, 적극성의 경우에는 어떤 나라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말수가 적고 내색을 잘 하지 않는다고 여기지는 영국인이다. 국가의 특징은 국가의 옷과 같다. 오로지 관광객들을 위해서만 입는 옷 말이다.

고정관념의 허구성은 당신이 다른 개인들과 함께 혹은 그들에 해해 대화할 때 분명해진다. 그 까닭은 우리 모두에게 저마다 하나의 도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습득하는 것은 격언이나 율법, 문화나 교육을 통해서도 아니고 심지어 본능을 통해서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그것을 습득한다. 우리는 강요보다는 선택을 통해 더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통제를 가치 있게 여긴다. 권위적이고 사회적인 압력을 받아 행동하는 것보다는 자아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복종과 순응은 허약함의 징표다. 규율과 구속은 힘을 과시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건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집단의 선(우리의 가치, 우리의 전통)과 우리의 개인적 확신 사이에서 혼동을 느낀다. 이 혼동은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할 때 더 커진다. “한 사람을 위해 가장 좋은 자유는 모두를 위해서도 가장 좋아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경멸하는 전통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서도.”

미국독립선언은 우리의 양도할 수 없는 자유권을 증거가 필요치 않은 자명한 진리로 선포했다. 그러나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쓴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이것이 허튼소리라는 걸 인정한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선포는 권리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에 대한 의견 불일치에서 비롯된 정치적 타협이라는 것이다. 역사가 데이비드 하켓 피셔(David Hackett Fischer)는 미국의 새로운 민주공화국이 4분기를 지나오는 동안 자유라는 용어는 분기마다 그 의미가 크게 달라졌음을 지적했다. 처음에 자유는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에서 신의 의지를 따를 자유였다. 이어서 그것은 펜실베니아의 퀘이커교도들을 독립전쟁에 끌어들일 자유로 바뀌었다. 그 다음은 예의바른 올드 도미니언(버지니아 주의 속칭)에서 당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사는 자유이거나, 거친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살 자유였다. 한 단어에 서로 다른 네 가지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올바른 삶에 대해서는 이성적인 계몽주의자들조차도 정의 내리기를 어려워했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적 삶에서 거창하게 강조되는 원칙들과 우리 개인들이 집단생활에서 연대감을 높이기 위한 원칙들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할 때 그 모호성으로 말미암아 똑같은 혼동을 느낀다. 제도적 차원의 도덕은 심지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해도 실생활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는 늘 정부에 대해서보다 우리가 응원하는 스포츠 팀에 대해 더 복잡하고 균형 잡힌 이해력을 보인다.

 

385p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타나랜드(가상 국가)를 다스리는 데 성공한 극소수의 사람들과 실패한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든 것에 숨어 있는 잠재적인 힘을 인정하며 확률적으로사고했다. 그들은 자신이 지배자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자만하지 않고, 불완전하고 복잡한 시스템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시험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새로운 것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하는 인간의 원시적 욕구를 유지했다. 물론 그들은 여느 인간들처럼 비선형 혼돈과 복잡성이 숨어 있는 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한정적 결론을 계속 적용하며 더 넓은 분포의 확률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허구를 창조하는 인간의 욕구, 즉 문화는 상황들을 형성할 수 있는 도구들을 우리에게 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설명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창조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허구들은 우리의 운명을 형성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우리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는 이미 오래 전에 멸종했을 것이다. 확실성의 희생자가 되어.

 

386p

미국 남서 지방의 푸에블로 인디언인 주니(Zuñi)이 성인식을 치를 때, 소년들은 어릴 적부터 두려워했던 가면 쓴 징벌의 신인 카치나(kachinas, 푸에블로 인디언의 수호신)’들에게 채찍질을 당한다. 마지막 채찍질이 끝나면, 마주하고 선 카치나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그들의 아버지와 삼촌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밀을 맹세하고 나면 이번에는 소년들이 그 가면을 하나씩 쓰고 채찍으로 자신의 연장자인 아버지와 삼촌을 때린다. 이는 그들이 성인이 되었음을 선언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적용하기를 시도하는 많은 추상적 원칙들, 예컨대 자유의지, 신의, 정의, 믿음 등은 그런 카치나와 같다. 완전히 신적이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으며, 거기에는 신성한 힘도 개인적인 변덕도 없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 자신보다 늘 더 위대할 거라는 믿음에 따라 그것을 우리가 지켜야 하는 의무로 받아들인다. 우리처럼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다른 모든 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들이다. 실수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추구하기 때문에 실수하며, 가장 멀리 도달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신학이나 생물학을 통해서가 아닌 역사를 통해 전해진다. 역사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분야지만, 우리의 결론들이 진실하다는 걸 입증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작위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며, 그 세상에 의미를 주입하려고 애쓴다. 이때 우리 마음은 직접적이고 익숙한 것들을 가장 선호한다. 우리는 권력과 지배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지금 여기에 대해, 이 추운 밤에 대해 생각한다. 가면 뒤에서 사랑하는 얼굴들이 나타나는 걸 관찰하며.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 위베르 망시옹, 스테파니 발랑제 지음/권지현 옮김/흐름출판 펴냄/2012.7.3

 

29p

  볼테르는 "인간은 행하지 않은 선행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아무 것도 하지 는 것, 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자기 밭에서 자라나는 식물의 죽은 뿌리를 밟는 것, 자기 팔다리를 스스로 잘라버리는 것이다.

 

32p

  융은 말했다.

  "나는 문명화된 사회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위대한 성과를 부정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러나 그 정복은 엄청난 상실을 대가로 이뤄진 것이다. 이제 막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를 엿보기 시작했다."

 

36~37p

  소유란 본래 어딘가에 앉는 것이다. 앉는 것이란 머무는 것이다. 움직임은 소유가 아니다. 떠돌아다니는 원주민들은 저축이 무엇인지, 부동산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소유한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다. 상실의 두려움은 모든 두려움의 어머니가 아니던가.

 

37p

  아메리카 인디언을 만난 서구인 대부분은 그들이 소유에 대해 매우 무관심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이 물질에 무관심하고 아예 경멸한다고까지 말했다. 원주민들은 흔히 말한다. "이게 마음에 듭니까? 그럼 가지세요. 이제 당신 것입니다."

  기근이 심한 제임스만에서도 크리족은 음식을 개인 소유로 여기지 않았다. 먹을 것은 배고픈 자의 것이었다. 또 먹을 것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과 나누었다."

 

47p

  원주민들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현실화"된 것이다.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의지를 가진 존재들이 행동하여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구체적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51p

  미국의 광고계에서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욕구를 만족시키고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라."고 말한다. 소비로 행복을 약속하면서, 욕구를 만족시킨 후에 다시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내라는 것이다.

  단선적인 시간의 개념에서는 영원히 존재하는 중심이 존재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 조상들은 시간을 돌고 도는 원으로 보았다. 의식(儀式)은 절기에 따라 반복되었다. 해가 뜨고 지고 다시 뜨는 삶 자체가 스스로 순환하며 돌고 돌았다.

 

54p

  시간을 원으로 보는 것은 늘 제자리로 돌아가는 부동의 개념인 반면, 시간을 선으로 보는 것은 미지의 세계, 즉 불안을 향해 달려가는 개념이다. 아슬아슬한 점프대와 같은 직선의 끝에 도달한 수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선은 우리에게 그 답을 주지 못한다. 반대로 원은 그것을 가르쳐준다. 언제가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69p

  포니족에게는 동물들의 회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상시 열리는 동물들의 대회의에서 인간사가 결정된다고 한다. 고통받는 인간이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원하면 대회의에서 동물 한 마리를 보내 길을 안내하거나 힘을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74p

  또한 재판장에게 성경에 손을 올리고 '진실만을, 오로지 진실만을' 말할 것을 요구받은 미스티시니의 사냥꾼 프랑수아 미안스쿰은 통역사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습니다. 아는 것만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76~77p

  서양의 사법 정의는 유죄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원주민의 사법 정의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경우, 증인은 피의자 앞에서 증언을 하지만 원주민들은 그런 일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무엇보다 공동체 유지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북아메리카의 재판 절차는 '모든 진실'을 밝히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우리는 피고에게 후회의 뜻을 내비치도록 강요하지만, 원주민들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도록 강요하며 공동체가 운명을 받아들인다.

  또한 백인들의 형벌 체계는 원주민 전통에 정면으로 대치한다.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지 범인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원주민들에게 정의는 죄를 지은 자가 스스로 용서하고 화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88p

  "우리가 만든 것이 우리를 만든다."고 처칠은 말했다.

 

92p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라.

  내 뒤에 있는 것을 모두 아름답게 하라.

  나의 말을 아름답게 하라.

  그것은 아름다운 것

  그것은 아름다운 것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니.

- 나바호족의 산을 위한 노래

 

108~109p

  어느 날 저녁, 체로키족 노인이 손자에게 내면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얘야, 우리 안에 있는 두 마리 늑대가 싸움을 벌이고 있단다. 그중 한 마리는 못된 늑대지, 그것은 분노, 질투, 후회, 탐욕, 거만, 무시, 죄의식, 원한, 열등감, 거짓말, 불명예, 우월감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늑대란다. 기쁨, 평화, 사랑, 희망, 경건, 겸손, 친절, 공감, 너그러움, 진실, 동정, 믿음이지."

  손자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겨요?"

  "네가 먹이를 더 많이 주는 늑대가 이기지."

 

135p

  점술에 대해서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수천 년 동안 이 문제를 두고 얼마나 많은 설전을 벌였던가. 그것은 마치 사람과 같아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과 믿음을 지닌 사람 사이에서는 어떠한 토론도 불가능하다.

  태곳적부터 모든 사회에서 인정받은 인간의 초감각적 능력은 앞으로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것이다. 그들은 고양이가 쥐를 잡듯 이성이 현실을 장악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호들갑을 떤다. 그들의 경험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155~156p

  사냥터에서 돌아온 뒤에도 크리족은 사냥감에 대한 존중심을 표하기 위해 특정한 의식을 따라야 한다. 사냥꾼의 가족들은 기쁨을 표현해서는 안 되며 대개 천막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사냥꾼들도 사냥의 결과를 두고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조용히 하도록 타이르는데, 과거에는 아이들이 제일 먼저 사냥감을 보는 것마저 금지했다고 한다. 이런 금기에는 사회심리학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냥꾼에게 실망감을 표현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작은 사냥감은 그대로 가져와서 천막 안에서 동쪽을 향해 누이고, 큰 사냥감은 현장에서 자른다. 사냥꾼들은 고기를 땅에 묻은 후, 눈과 소나무로 덮고 고기 몇 점만 가지고 귀가한다. 현장에서 사냥에 실패한 동료에게 고기를 나눠주기도 하는데, 이것은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빈손으로 돌아갈 사냥꾼에게 사냥에 성공한 사람과 똑같은 사회적영적 지위를 갖도록 해주는 행위인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냥감의 모든 부분을 가져와 동물을 죽인 사냥꾼의 천막 안에 놓는다. 머리는 동쪽을 향하도록 놓는다. 모든 사람들이 사냥감을 경건하게 바라보고 30분 뒤에 고기를 똑같이 나누어 각 가족에게 분배한다.


162p

  사회계급도 없고 구성원 간 빈부 격차도 없는 크리족 사회를 살펴보자. 그들에게는 서열도, 사제도, 감옥도, 사형제도도, 권위도, 고아도, 가족의 해체도 없다. 동물을 죽였을 때에는 동물을 추모하고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는 자는 존중과 공유 속에서 살아간다. 만약 크리족의 계율 중 2가지만이라도 지키며 살아가는 백인 공동체가 이 세상에 단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전 세계 기자들이 그곳에 몰려들어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바쁠 것이다(심지어 그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우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두 얼굴-내면의 진실

EBS <인간의 두 얼굴> 제작팀 지음/지식채널 펴냄/2010.6

 

28p

이들의 실험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에 비해 변화를 더 잘 알아차린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대니엘 레빈(Daniel Levin)은 이를 사회적 집단의 차이로 설명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일 경우에는 변화를 잘 알아차리지만, 다른 나이대의 사람인 경우에는 속한 집단이 다르기 때문에 인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대학교 내에서 공사장 인부 차림의 실험자가 동원되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실험자가 학생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비교적 잘 알아차렸지만 공사장 인부의 복장일 경우에는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사회적 집단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변화에 둔감했던 것이다.

 

32p

이런 착각을 변화맹이라고 부른다. 이는 말 그대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 이외의 것에 소홀하게 되면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의 뇌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을 경험할 때 이에 해당하는 정보를 전부 수용하지는 못한다. 많은 정보들은 걸러지거나 버려지며, 바로 이때 우리는 보았으면서도 보지 못하는경험을 하는 것이다. 앞의 실험에서 실험참가자들은 길을 가르쳐 준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고 다음에 이어진 실험에서는 문진표를 작성한다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눈앞에서 사람이 바뀌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상황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변화조차 알아차릴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이 착각의 시작이다.

 

37p

이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리적 편향성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편향성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왜 자신이 선택한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착각했는지, 또 어째서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이 사실과는 다른 것임에도 진실이라고 착각했는지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간의 심리적 편향성에 대한 설명으로는 기본적 귀인 오류가 있다. 심리학자 리 로스(Lee Ross)가 명명한 이 오류는 타인의 행동에 대해 외부 상황의 영향보다 그 사람의 성향에서 원인을 찾는 경향을 말한다.

 

38~39p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 대해 상황보다 그 사람의 개인적인 특성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러한 심리적 현상은 너무나도 일반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기본적귀인의 오류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때는 반대로 나타난다. 이것을 행위자-관찰자 편향이라고 한다. 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할 때는 상황적 요소를 많이 고려하는 반면,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내부적인 요인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을 말한다.

 

43~44p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봉투를 다른 사람의 것과 바꿔서 읽어보세요.” 심리학자가 이렇게 말하고 나자, 각자 서로의 분석을 바꿔 읽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알고 보니 다섯 명의 성격 분석은 똑같은 내용이었다.

이 안에는 도대체 어떤 말이 적혀 있었던 걸까?

 

당신은 스스로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당신은 약속을 중시하는 사람이며 책임감이 강합니다. 당신은 속정이 많고 보기보다 다정다감해서 남의 감정 상태를 잘 파악하는 예민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자존심이 강해서 남에게 머리를 숙이고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직에서 생활할 때는 자존심을 굽힐 줄 아는 현명함도 있습니다.”

 

어떤가, 당신도 혹시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심리학에서는 바넘 효과라 불리는 이런 현상은 19세기말 미국의 유명한 서커스 흥행사였던 바넘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두 개의 명언을 남겼는데, 하나는 서커스 공연에서는 항상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해당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 순간 그는 잘 속아 넘어가는 얼간이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바로 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무언가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 바넘 효과의 핵심이다.

 

49p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만 바라보는 것만 같은 착각,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스포트라이트 효과라고 한다. 이 역시 다른 착각처럼 마음의 자기중심적인 특징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코넬대 심리학과의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착각 중에 하나는 우리가 실제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덜 관심을 기울입니다.”

 

54p

부부 싸움을 하는 많은 부부들은 서로 상대방의 말하기 방식이나 태도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제작팀이 한 실험이 보여주듯이, 그것은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된 하나의 착각일 수 있다.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를 잘 생각해 보면 자기중심적인 시각이 불러온 문제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나보다 더 잘못했고, 내가 상대방보다 더 잘했다고 느끼는 것 역시 객관적인 평가이기보다는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 있다.

 

55p

토론 때 누가 가장 참가자들의 주목을 받았는가에 대해서도, 세 사람 모두 자기가 가장 주목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 역시 객관적인 사실과는 동떨어진 생각이지만, 실험의 결과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62p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인지 체계에 부합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취사선택되며 일부는 왜곡된다. 선택적 지각은 기억의 자기중심성에 의해 더욱 강화된 형태로 남게 된다. 우리가 받아들인 정보는 그대로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다. 뇌의 처리 과정을 통해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남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기억이 오래 유지되는 것이다.

 

64p

우리가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는 1초에 11백만 개 정도이지만, 이중에 겨우 40개 정도만을 뇌에 저장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보고 싶고, 자기가 믿는 것만 보고 싶고, 믿는 대로만 보고 싶어 해요. 자기가 보고 있는 그 세상, 그게 바로 착각이죠.”

-허태균 교수(고려대 심리학과)

 

칵테일파티 효과란, 파티장과 같이 사람이 많고 혼잡스러운 곳에서도 자신의 이름이나 자기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소리를 들으면 다른 소리에 비해 훨씬 더 또렷하게 들리는 현상을 말한다.

 

68p

사람들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한다고 착각하죠. 이 모든 것들이 다 자기중심성하고 관련이 있고요. 이런 모든 것들이 착각의 한 현상이면서 착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허태균 교수

 

심리학에서 통제의 착각이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은 운이나 우연, 확률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73p

영상의 내용이 자동차 충돌 사고였다는 것은 동일했지만, 이것이 충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여 강한 이미지를 심어준 질문은 깨진 유리라는 연관성을 실제로 깨진 유리를 보았다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이 단계에서, 당신의 기억 속에는 실제로 깨진 유리가 존재하고 있다.

 

74p

이처럼 우리의 뇌는 자신이 지각하는 정보가 실제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유명한 개념은 인지 부조화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주창한 이 개념은, 태도와 사실 사이에 모순이 일어났을 때 이를 일치시키기 위해 태도를 바꾸는 경향을 이른다.

 

77p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자신이 행한 과제가 실제로 재미없었다는 느낌(태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 과제가 재미있었다고 말했다는 사실(이미 일어난 행동) 사이에는 모순이 일어난다. 자신의 신념체계와 이미 일어난 사실 사이에 부조화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 사람의 마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다. 앞에서 본 자기 유지 본능과 마찬가지로, 마음은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86p

UCLA대 심리학과의 샐리 테일러(Sally Taylor) 교수 역시 이러한 편견을 과장된 믿음과 관념의 결과이기 때문에 일종의 착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순히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만이 착각이 아니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해 실제와는 다른 것을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착각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피하기 어려운 잘못된 믿음, 이것을 우리는 사회적 착각이라고 부른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편견은 상대 집단 혹은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의미한다. 이 부정적 평가가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96p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법학연구실 명예교수인 데이비드 로젠한(David Rosenhan)은 논문에서 인간의 정신 진단은 내면이 아닌 맥락 속에서 내려지며 그런 진단이 엄청난 실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98p

정신과 의사에게 제 발로 찾아와서 증상을 이야기한 사람은 우선적으로 환자로서 카테고리화 되는 것이다. 일단 고정관념이라는 마음의 틀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그 사람의 개체적 특성보다는 그가 속한 집단 내에서 평가받게 된다. 이에 대해 의심하거나 카테고리 밖에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 역시 이 실험은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아무런 정신과적 질환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이 최대 52일 동안 정신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다.

사회심리학자인 토머스 길로비치는 이를 확증 편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식 체계에 부합하는 정보에 대해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쉽게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나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중시하면서 반대되는 정보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성은 편견에 기반하고 있을 경우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114p

후광 효과란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 그 대상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나 평가가 다른 특성을 바라보는 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학력에 따라 상대방의 능력을 검증도 해보지 않고 높게 평가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이다.

 

123p

우리의 사회적 착각은 고정관념에 의해서 형성되고, 이 고정관념이 우리의 의식 체계를 형성하는 요소로 들어오면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정보처리의 효율성 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항상 의심하거나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은 인간이 받아들이는 방대한 정보의 양을 생각할 때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뇌는 받아들이는 많은 정보들을 기존에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나 확신을 통해 재빨리 처리한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뇌의 구조가 우리 선조에 해당하는 유인원 시기에 확립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숲 속에서 불명확하게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을 때, 판단이 늦거나 주저하는 일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빨리 정보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성향이 단순히 문을 여는 정도의 일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행동에 있어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140p

세상이 아름답고 공평하고 정의롭다는 생각은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고 생각하면 그렇게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셀리 테일러 교수

 

152~153p

우리는 앞서 변화맹이 주의가 선택적으로 쏠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보았다. 경인 씨나 승조 씨와 같이 자신이 선택한 것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선택맹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실험은 스웨덴의 심리학자 라르스 할(Lars Hall)2005'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실험을 참고한 것이다. 할의 실험에서도 약 80%의 참가자들이 사진이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했고, 바뀐 사진을 받아들고 그것을 선택한 이유를 만들어냈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자기유지 본능또는 항상성 유지 본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경험하는 세계를 일관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159p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면 그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그 여성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건 분명히 착각이고 이것을 귀인의 오류라고 합니다.”

-이철우 박사(사회심리학)

 

제작팀이 한 실험은 심리학자 발린스(S. S. Valins)의 실험을 각색한 것이다. 발린스는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누드 사진을 이용해 인간이 흥분하는 정도를 측정했는데, 그의 실험에서도 가짜 심장박동 소리를 들려주어 실험참가자들에게 자신이 흥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실험참가자들은 심장박동 소리가 빠르게 들린 누드 사진에 대해 높은 평가를 했다.

 

206~207p

부모나 주위 사람의 언어습관과 행동에 따라 사람의 능력이 달라지게 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을 딴 것이다.이 남성 조각가는 여성을 혐오하여 평생 혼자 지내기로 결심했는데, 자신이 조각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자신의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달라고 기원했고, 아프로디테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피그말리온이 집에 돌아와 여인의 조각상에 키스를 하자, 그 조각상에 피가 돌아 살아 움직이는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신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실제 상대가 어떠한지에 상관없이 기대와 지지를 심어주면 그 사람은 변화한다. 특히 한창 성장하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작용했을 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246p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후보가 당선되자 저 사람이 될 줄 알았어.”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나, 대규모의 참사가 일어났을 때 방송에 나와 이를 분석하면서 예고된 사건이었다.”고 말하는 전문가를 본 기억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사후 인식 편향이 드러난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사후 인식 편향이란 이미 결과가 나온 상태일 때, 이 결과가 자신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신이 이미 그 결과를 예측했다고 주장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이때 그 사람에게 과거의 일은 새로운 시각을 통해 받아들여진다. 내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가하게 되는 것이다.

 

254p

이것은 수없이 일어나는 다른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핵심은 우리가 먼 훗날의 일에 대해서는 그것의 의미를 중심으로 파악하는 데 반해서 가까운 일에 대해서는 절차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할 수 있는 착각 중 하나이다. 언제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걸리는 절차와 그 일의 의미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모든 일을 의미중심의 상위 수준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가까운 미래나 현재의 일이라고 해서 절차만을 따지는 하위 수준으로 생각하면 그 일이 다만 지루하고 귀찮아질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이 모여 먼 미래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충고는 아주 타당한 것이다.

, 인간을 읽다

마이클 코벌리스 지음/김미선 옮김/반니 펴냄/2013.3.30

 

21~22p

뇌의 나머지 부위에 대한 신피질의 비율을 구해 보면 우리는 4.1로 다른 영장류들보다 위에 있고, 침팬지가 3.2, 고릴라가 2.65, 오랑우탄이 2.99, 긴팔원숭이가 2.08로 바짝 뒤를 따른다.

 

이 비율은 함께 생활하는 집단의 크기에 비례해 커지는 것 같다. 긴팔원숭이는 약 15마리의 집단과, 오랑우탄은 약 50마리의 집단과, 침팬지는 약 65마리의 집단과 생활한다. 다소 고독한 고릴라는 오히려 예외적인 것 같다. 우리 사람족 선조들의 뇌 크기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추정하자면, 집단의 크기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경우 약 60명으로 일정했지만 250만 년 전쯤 사람속이 출현하면서부터 꾸준히 커지다가 호모사피엔스에서 절정을 이루었음에 틀림없다. 공식에 따르면, 인간의 집단 크기는 약 148명이어야 한다. 전형적인 신석기 마을의 집단 크기와 일치한다. 물론 현대 도시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실제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만 합산한다면 그 수준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51p

인간의 뇌가 주의를 통제하는 방식은 비대칭적이다. 좌뇌는 공간의 오른쪽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우뇌는 왼쪽을 향해 어느 정도 편향되어 있긴 하지만 양쪽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므로 우뇌가 손상된 환자는 왼쪽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지각하지 못하며, 이 현상을 편측무시라고 한다. 편측무시 환자는 접시의 오른쪽에 담긴 음식만 먹고, 몸의 오른쪽에만 옷을 걸치고, 왼쪽에서 말을 거는 사람을 무시하고, 체스에서 왼쪽 측면 공격을 당하면 쉽게 질 것이다. 유명한 예가 있다. 독일의 화가 로비스 코린트(Lovis Corinth)1911년에 우뇌가 뇌졸중에 걸렸지만 14년 뒤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52쪽에 보이는 초사오하에서처럼 왼쪽을 무시하는 작품을 많이 그렸다.

 

62p

캘리포니아 신경외과의 필립 보겔(Philip J. Vogel)과 조지프 보겐(Joseph E. Bogen)이 난치성 간질 환자를 치료하려고 뇌의 양쪽을 잇는 커다란 섬유 다발(뇌량)을 절단하기로 했다. 발작의 전파를 막자는 발상이었고, 그런 면에서 수술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발작은 크게 줄거나, 약물 요법으로 즉시 진정되었다. 처음에는 이 수술이 이원론을 입증하는 것 같았다. 보겐은 분리뇌 환자들이 소위 사회적 정상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들의 일상 행동이 완전히 정상으로 보인다는 뜻이었다. 수술 후 환자는 골이 쪼개지도록 아픈 것만 빼면 괜찮다는 농담까지 했다.

 

그렇지만 이원론은 오히려 타당성이 떨어졌다. 심리학자 로저 스페리(Roger W. Sperry)가 더 구체적인 실험을 해 보았다. 뇌의 양쪽을 따로따로 실험했더니 각각 나름의 생각, 느낌, 기억을 가지고 나름의 의식 안에 거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가 발견한 대로라면 좌뇌와 우뇌가 서로 다른 종류의 의식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말이나 계산은 좌뇌만 할 수 있었고, 우뇌는 공간 처리나 감정 처리에 더 능숙한 것 같았다. 스페리는 이 연구 결과로 1981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70p

방추상얼굴영역이라고 하는 뇌의 측두엽에 있는 특별한 부분에서, 얼굴에 관한 정보를 부호화하고, 누군가를 아는지 모르는지에 관한 정보를 재빨리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 같다. 방추상얼굴영역이 손상을 입으면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만 잃어버리는 반면 다른 사물을 알아보는 능력은 멀쩡할 수 있다. 이것을 얼굴인식불능증이라고 하며,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한 연구에서는 환자들의 측두엽에 가느다란 전극을 꽂아 인간의 뇌 덩어리를 구성하는 1억 개의 세포 가운데 일부 세포의 활동들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이 기록의 목적은 간질 발작의 출처를 찾는 것이었다. 한 환자의 경우에는 여배우 제니퍼 애니스턴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한 개의 특정한 세포가 활성화되었다. 그 세포는 다양한 자세의 애니스턴에게 반응했지만, 같은 사진에 브래드 피트가 나타나면 마치 뭔가 안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제니퍼 애니스턴과 브래드 피트는 결혼 후 5년 뒤에 이혼했다.)

 

71p

자전거나 나무와 같은 대부분의 사물은 뒤집어도 알아보기 쉽다. 그러나 얼굴은 뒤집으면 기묘하리만치 알아보기 어렵다. 72쪽 위 그림은 얼굴을 묘사하지만, 돌려보기 전에는 그것이 얼굴임을 알아보기 거의 불가능하고, 심지어 돌려놓은 다음에도 약간은 노력을 들여야 할지 모른다. 72쪽 아래 사진은 미소 짓는 마거릿 대처임을 알아볼 수 있다 싶지만, 막상 돌려놓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여기서 쓴 트릭은 입과 눈을 똑바로 두고 얼굴의 나머지만 뒤집는 것이었다. 이는 눈과 입이 얼굴을 알아보는 데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똑바로 세우고 볼 때만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얼굴은 다른 사물들과 달리, 흑백이 뒤바뀐 음화로는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이는 교묘한 속임수를 써서 입증할 수 있다. 73쪽 위 그림의 가운데에 있는 네 개의 점을 20초가량 응시한 다음, 빈 벽이나 백지를 바라보라. 그 결과를 부의 잔상이라고 하며, 이 경우에는 틀림없이 얼굴이 보이고, 아마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73쪽 위 그림은 그 얼굴의 음화다.

77~78p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욕설의 약 3분의 2는 좌절, 분노, 놀라움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욕설은 일종의 공격적 무기로서 신체적 폭행을 대신하는 구실을 할 것이다. 욕설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 외향적인 사람, 적개심에 가득 찬 사람이 더 많이 하며, 온순한 사람, 양심적인 사람, 종교적인 사람, 성적으로 불안한 사람은 욕설을 덜 한다. 욕설은 단순히 일종의 속어일 수도 있어서 죽인다쿨하다와 같은 다른 유사 단어들보다 더 불쾌할 것도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남성 집단에서는 욕설이 충성의 상징일 수도 있다.

 

화가 났을 때 욕을 하느냐 마느냐는 뇌 깊숙한 곳의 몇몇 영역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이며, 감정과 관련되는 편도체라는 구조가 여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 선택은 아마 더 차원 높은 구조들, 특히 전두엽이 욕하려는 충동을 억누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피질이 손상되어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도 흔히 비속어를 내뱉는 능력만은 유일하게 보유하므로, 그 능력을 그토록 아낌없이 발휘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는 욕설이 자동적이며 제어되지 않는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다른 예로 투렛증후군이 있다. 투렛증후군은 유전되는 신경병이며 강박적 외설증과 더불어 틱 증세를 보인다. 자신도 모르게 욕설과 음담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홱홱 꺾고, 침을 뱉고, 새된 소리를 지른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내뱉는 비속어에 당혹스러워하지만 자신도 어쩌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든 뇌 안에서 예의바른 피질과 더 원시적인 감정 중추들 사이의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83~85p

1977, 젊은 선교사 다니엘 에버렛(Daniel Everett)은 브라질 오지의 피다한족(Pirah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려 했다. 그는 6년간 가족과 함께 그들과 어울려 살며 그들의 언어를 배웠다. 피다한족에게는 시간 개념이 거의 없고 허구나 창조 신화도 전혀 없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현재에 산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되었고 그들에게 종교를 이해시킬 수 없었던 에버렛은 오히려 스스로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의 관심은 언어학으로 옮겨갔고, 지금 그는 매사추세츠주 벤틀리대학교에서 예술과학 학장을 지내고 있다.

 

피다한족의 생활의 단순성은 그들의 언어에 반영된다. 그들에게는 색깔에 관한 단어가 없고, 셈을 위한 단어도 세 개뿐이다.(대충 하나’, ‘’, ‘많이로 번역된다.) 그들의 동사에는 현재와 비현재의 단순한 구분만 있을 뿐 시제가 없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표현할 방법도 없다. 그들의 문장은 수식문이 없는 단문이다. 에버렛은 그들이 어떤 유전병을 앓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보편 문법이란 단어 자체가 모든 언어가 표면적으로만 다르고 공통의 기본 구조를 타고난다는 뜻을 함축한다. 촘스키가 이 결론에 도달한 주된 이유는 인간이 언어를 닮은 무언가를 가진 유일한 종이며, 모든 아이가 모든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피다한어에는 보편 문법에서 으레 기대할 수 있는 구조가 거의 없다.

 

인간의 언어는 어떤 보편 문법의 관념도 편안히 수용할 수 없는, 훨씬 가변적인 것이라는 깨달음 말이다. 심지어 시제가 거의 없는 것도 그렇게까지 유별난 일은 아니다. 예컨대 중국어에도 시제가 없는 대신 과거와 미래를 가르키는 방법으로 어제 또는 내일과 같은 부사를 사용하기도 하고, ‘상 표지라는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령 그는 전에 자신의 다리를 부러뜨렸다.’라는 문장에 들어 있는 전에라는 단어가 상 표직에 해당한다. 영어에서도 이미나 마침내와 같은 부사들을 사용하거나 날짜와 시각 등의 표지들을 사용해서 시간을 더 정확히 나타낼 수 있다.

92~93p

세계의 언어에는 1,500개가 넘는 서로 다른 말소리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10퍼센트 이상을 사용하는 언어는 하나도 없으므로, 그 때문에 많은 언어에서 성조가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다. 언어에는 음성학적 가능성이 지나치게 많이 부여되어 있다.

 

99~100p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는 틀린 기억들이 기억 속에 쉽게 심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었던 사건이나 열기구에 탔던 사건 등을 떠올려 보라고 하자, 질문을 받은 사람들의 4분의 1 정도가 실제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다. 기억은 설득력 있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바뀌거나 심어지기도 한다.

 

이 사건과 더불어 로프터스의 연구는 과거 사건에 대한 기억을 탐색할 때는 유도심문과 유죄 추정을 피해 조심스럽게 행해야 한다는 것을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뇌는 결코 사진기나 녹음기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기억이란 보통 우리의 사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일화에 대한 기억을 의미한다. 이를 일화기억이라고 하며, 의미기억과는 구분된다. 의미기억이란 웰링턴은 뉴질랜드의 수도다.’, ‘설탕의 맛은 달다.’와 같은, 세계에 관한 지속되는 사실에 대한 기억이다. 그런 사실들에는 우리가 아는 모든 단어와 함께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대상들도 포함된다. 당신도 아마 5만여 개의 단어를, 연상되는 사물들, 동작들, 성질들과 함께 알고 있을 것이다.

 

기억상실중에 걸리면 일화기억이 전형적으로 심하게 훼손되는 반면, 의미기억은 거의 온전하게 남는다. 극적인 일례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해마라는 뇌의 부위가 파괴된 뒤 심한 기억상실증에 걸린 영국의 음악가 클라이브 웨어링(Clive Wearing)이다. 일화기억을 상실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잠 또는 죽음에서 방금 깨어났다는 인상을 받으며 찰나적으로 살지만, 말도 하고 아내를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아직도 피아노를 치고 합창을 지휘할 수 있다. 그의 의미기억은 대부분 멀쩡해 보인다.

 

일화기억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도 심각하게 훼손된다.

 

111~112p

단연코 가장 흔한 형태의 공감각이 바로 글자와 숫자로써 또는 요일로써 유발되는 색깔 감각이다. 가장 흔히 보고되는 감각은 색깔인 듯하지만 냄새, 촉감, , 소리, 온도를 포함한 다른 감각들이 유발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공감각을 유발할 수 있는 입력 항목의 종류도 많다. 예컨대 색깔은 냄새, 소리, , 심지어 오르가슴과도 연결된다. 묘하게도 공감각이 쌍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글자와 색깔을 연관시키는 사람들에게 색깔을 보여준다고 글자가 보이지는 않으며, 오르가슴에 색깔이 있는 사람들도 다행히 내가 아는 한, 색깔을 보고 오르가슴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1880,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Fracis Galton)은 약 20명 가운데 1명이 공감감자라고 추정했다. 더 근래의 추산으로는 23명 가운데 1명이 유형을 불문하고 공감각자이고, 글자나 숫자로써 색깔을 경험하는 공감각자는 90명 가운데 1명이다. 그러나 한 가지 난관은 정확히 누가 공감각자이고 누구는 아닌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정도의 문제다. 나의 경우도 화요일이 황갈색의 색조를 띠긴 하지만, 나는 내가 진정한 공감각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113p

그러나 공감각적 감각에 대응되는 영역들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되자 과학적으로 존중을 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단어-색깔뿐만 아니라 단어만으로도 활성화된다. 같은 영역이 실제 색깔로는 활성화되지만, 색깔을 상상만 해서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록 소수에게만 해당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공감각이 정말로 실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114p

신생아들은 사실 뇌 안에 연결 부위가 지나치게 많아서, 발달 과정에서 오히려 가지를 쳐낸다. 그러므로 공감각은 봄에 어린 가지들을 적당히 쳐주지 않은 정원처럼, 가지치기가 되다 만 결과일 수 있다. 심지어 신생아는 모두 다 공감각자이지만 대부분 생후 3개월 무렵에 이 능력을 잃는다는 가설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가설은 3세가 넘어서야 습득하는 인쇄체 단어나 글자들과 공감이 그토록 자주 연관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깔 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단어나 글자의 확인을 담당하는 영역 옆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색 지각에 부분적으로 바쳐졌으나 가지치기가 덜 된 영역에 비교적 늦게 출현한 읽기 기술들이 침입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121p

250만 년 전, 그 시기에 우리 수렵채집인 선조들이 사방이 뚫린 사바나에서 살아남으려면, 사회적으로 단결하여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사자, 하이에나 같은 위험한 동물들과 싸워야 했다. 그들이 일단 자연을 정복하자 사람족의 여러 부족이 먹을 것, 쉴 곳, 기타 생활필수품을 놓고 서로 경쟁하기 시작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사회생활의 기반이 되는 협동과 기만의 미묘한 조합이 생겨났으리라는 것이 니컬러스 험프(Nicholas Humphrey)의 주장이다.

 

123~124p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는 동물 스스로 땅콩을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뿐만 아니라, 사림이 이 동물의 눈앞에서 땅콩을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에도 같은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원숭이가 어떤 운동을 할 때에도 반응하고, 사림이 하는 같은 운동을 원숭이가 관찰만 할 때에도 반응하는 뉴런을 거울 뉴런이라고 일컬었다. ‘보는 대로 따라하는뉴런이라고 묘사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뇌를 일종의 입출력 장치로 보아 왔다. 이 장치에서 일부 뉴런은 같은 종에 속하는 다른 구성원의 얼굴이나 부르는 소리와 같은 특정 입력에 반응하고, 일부 뉴런은 동물이 무언가를 쥐거나 울부짖는 것과 같은 어떤 운동을 할 때 반응할 것이다. 다른 뉴런들은 입력과 출력 사이에서 아마도 우리가 대답하기 전에 질문의 의미를 숙고할 때 하는 것과 같은 생각을 표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거울 뉴런을 보면 입력이 출력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 같다.

 

125p

이 거울 뉴런들은 우리에게 동작에서 반영되는 남들의 생각과 느낌에 공명하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앞에서 거론했던 인간의 감정이입과 마음의 이론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준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정신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특징적 증상인 자폐증은 거울 뉴런 계통이 망가져서 생기는 것으로 널리 추정된다.

 

139p

몸이 좌우대칭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좌우에 대한 무심함이다. 무슨 일이 어느 편에서 일어나든 똑같이 알아차리고 그에 따라 반응할 수 있도록 우리의 눈, , , 다리 등이 대칭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뇌마저도 대체로 대칭이다.

 

하지만 좌우를 구분하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는 비대칭이 필요하다. 여기서 좌우 구분이란 단순히 우리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갈 때나 이쪽저쪽의 물건에 손을 뻗을 때처럼 비대칭 입력에 대해 비대칭으로 반응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b자를 라고 부르고 d자를 라고 부를 때나 구령을 듣고 정확히 좌향좌나 우향우를 할 때처럼 좌우의 거울상을 상징적으로 달리 해석하는 능력이다.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비대칭이 내장되어 있지 않다면 이런 식으로 반응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비대칭은 한 손의 점처럼 사소할 수도 있고, 뇌 자체의 비대칭처럼 복잡할 수도 있을 것이다.

 

141p

그렇다면 아마 사건을 일어난 대로 기록하고 좌우를 뒤집어서도 기록하는 우리의 성향도 이반 빌(Ivan Beale)과 내가 반구간 반전이라고 부른 이 과정으로 설명될 것이다. 이 성향은 읽기를 배울 때는 골칫거리이지만, 우리 선조의 실세계에서는 적응력을 얻게 해 주었다. 누군가 오른편에서 위험한 사자의 공격을 받았지만 운이 좋아서 탈출했다고 하자, 그가 동시에는 그 사건을 마치 왼편에서 공격이 온 것처럼 기록한다면, 다음번에는 어느 쪽에서 공격이 오건 더 훌륭하게 대처할 것이다.

 

149~150p

피실험자들에게 단순한 단어 말하기부터 미적 판단까지 광범위하게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그러나 뇌 안에서 마치 사용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드러지게 조용한 부위는 하나도 없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운명을 타고난다. 우리에게 한계를 부과하는 것은 쓰이지 않는 뇌 공간이 아니라 바로 문화이다. 신경학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들 가운데 하나가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의 사례다. 철도 건설 감독이었던 그는 1848년에 폭발 사고를 당했는데, 이때 발파공을 틀어막는 1미터 길이의 막대가 그이 전전두피질 앞부분을 뚫고 날아가며 큰 손상을 입혔다. 그의 지적 기능은 놀랍도록 멀쩡한 것 같았지만, 정작 변한 것은 그의 성격이었다. 한때 책임감 있고 믿음직스러웠던 그가 불손하고 불경스런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전전두피질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흔히 관례적인 정신 기능 검사로는 장애를 거의 보이지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좌충우돌하게 될 수 있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기껏해야 전전두피질은 기능이 다소 방만하다.’일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은 정의하기 힘든 측면들, 예를 들면 자유의지와 같은 알쏭달쏭한 개념을 정립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예컨대 아이들은 누구나 세계 6,000여 개의 언어 가운데 어떤 언어라도 배울 능력이 있지만, 설사 뇌를 100퍼센트 사용한다고 해도 그 언어들 중에서 미미한 비율 이상을 배울 수 있는 아이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1 2 3 
BLOG main image
초록주의(녹색주의)
초록주의는 생명을 섬기고 삶을 나눔으로써 평화로운 공존의 사회를 지향합니다.
by 초록주의

공지사항

카테고리

초록 세상 (581)
행사 안내 (166)
포럼 및 강의 (71)
성명서 및 기사 (20)
초록 정치 (37)
초록 사회 (58)
초록 경제 (16)
초록 문화 (42)
서평 및 발제문 (16)
책 내용 발췌 요약 (30)
자료 (40)
짧은 글 긴 여운 (48)
시인의 마을 (18)
빛으로 그린 그림 (16)
생각의 끝 (0)
The And (0)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